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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전교조대구지부남부지회 원문보기 글쓴이: 좋은숲임성무
*** 앞산살림을 위해 오래전 시인들에게 부탁을 드렸지요. 그런데 오늘 대구작가회의 분들이 시 14편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동안 시가 없어서 제가 유치하게 시를 썼는데 이제는 시같은 시를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앞산터널반대 생명ㆍ환경 시화걸개전
- 2006.5.5(목) ~ 오랫동안 - 앞산 달비골 산길따라 -민족문학작가회의 대구지회ㆍ앞산터널반대범시민투쟁본부
(* 14편, 성명 가나다순)
2006년의 봄비 고희림 누가 앞산에 불 지르고 있습니까 헤아릴 수 없었던 봄과 수백만의 봄과 같은 사람들 봄비 맞으며 흘러갑니다 수억년 동안의 여름과 수백만의 여름 속 깊이 만난 사람들이 잿빛 구름위로 지나갑니다 누가 앞산에 불 지르고 있습니까 수억년 동안의 가을과 수백만의 가을과 같은 사람들 수억년 동안의 겨울과 수백만의 겨울과 같은 사람들의 뜨거운 입김이 쌓인 곳 위로 말하려는 듯 말하려는 듯 바람이 일자 지금부터 사라질 반생의 만장처럼 봄꽃잎들 뚝뚝 아프게 떨어져 나갑니다 아! 누가 앞산에 불 지르고 있습니까 여기, 흙비에 젖어 떠밀려 내려가는 것은 비에 져 주는 꽃잎 진자리 보시라 보시라하는 꽃잎의 말씀입니까 꾸짖는 듯 꾸짖는 듯 내리는 신의 손길입니까 숲/적요/봄 김경윤 이제 남은 것은 제 몫이라며 가지 많은 나무들 떼지어 걸어 들어와 한 마리 짐승 보듬는다 맨발로 걸어나간 햇살 봄 강에 제 발 담그며 꺄르륵 박새와 놀고 있다 온종일 푸른 페달 차올리던 봄바람 똑 똑 나무 문 두드리고 있다 유리공처럼 웅크린 뱀 한 마리 조올고 있는 가시나무 아래 고양이 혀 같은 꽃망울 젖몸살 앓는 숲의 봄날 배고픈 남자가 걸어가고 있다
그대, 누구인가? 김미경
앞산자락 팔베개 하고 푸른 품에 안겨 살던 너의 심장에, 누군가 폭탄테러를 꿈꾼다 생명 품어주던 가슴, 순교자의 푸른 피 뚝뚝 흘리며 무덤보다 깊은 터널 속으로 걸어가야만 하는가 시퍼런 하늘 아래서, 서슴없이 생명줄을 끊으려는 이유는 좀 더 빨리 좀 더 빨리 달려가기 위함 이란다 왜? 누구를 위하여? 어디로? 세상의 모든 터널을 지날 때면 사람들의 회색빛 길 아래 죽어간 뭇 생명들의 피울음 소리가 들린다 상수리나무와 아기다람쥐, 노루와 사람의 길이 되어주는 산
둥글게 우리를 안아 키워주는 어머니의 젖가슴 같은 저 산의 고동치는 심장을 관통하려는 자 그대, 누구인가? 그대, 잿빛 총알이 되려는가?
푸른색은 안쪽에서 빛난다 김승해 푸른빛에 출렁출렁 발목 적시며 너무 멀리까지 와버린 참나무 숲 사람들 해찰치며 두들겨 댄 나무마다 돌돌만 잎을 두른 도토리거위벌레 알들의 잠이 깊다 푸른빛 떠메고 오르는 한낮의 깊은 잠에 덜 익어 떨어 진 도토리 한 알도 함부로 들어올릴 수 없는 무게 등줄기 시퍼렇게 솟구쳐 오르는 알들의 환한 잠 저 숲의 푸른빛은 안쪽에서 빛난다
반딧불이 -앞산 살리기 범종교인 생명평화 촛불문화제 낭송시(06. 4. 27) 김용락 멀리 서인도제도 바다 밑에 살고 있는 반딧불이는 8월 보름쯤이면 해지는 시간과 달뜨는 시간에 맞춰 일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단지 1초간 반짝 불빛을 수놓으면서 암놈과 수놈이 사랑을 나눈다고 합니다 우리집 막내, 새끼손톱보다 더 작아 불과 10mm 정도에 지나지 않는 이 친구들의 희귀한 사랑은 생명을 지키려는 그들 나름의 뜨거운 메시지이겠지요 대구에서도 앞산 남쪽 자락 가창면 상원리에는 조선의 토종 반딧불이가 유난히 많습니다 아마 개울이 아름다운 이 작은 동네에는 차마 神도 비켜갈 수 없는 애틋한 사랑이 풀섶 언저리에 남몰래 숨어 있는 가 봅니다 숨어서 조용히 빛나는 이 사랑도 생명에 대한 그들 나름의 따뜻한 덕담이겠지요 상원리만이 아닙니다 냉천골, 용두방천, 달비골 그 어느 곳에서나 캄캄한 어둠 속에서 잠시 반짝하고 사라지는 빛이 있다면 그건 바로 반딧불이의 노래입니다 반딧불이가 인간들에게 보내는 희망의 전언입니다 부디 이 희망을 꺽지 마세요 어머니의 몸, 대구의 大德 앞산을 뚫지 마세요 반딧불이의 목숨에 상처를 주지 마세요 캄캄한 봉건과 중세의 암흑 속에서 반딧불이를 명주 주머니에 매어달아 형설지공을 닦고 형창설안을 연마해 인간해방의 빛나는 근대를 보았다면 오늘은 반딧불이 꽁지에 매인 미약한 이 불빛 한 조각으로 폭력적인 개발문명의 야만을 밝히려 합니다 앞산을 관통하지 말아 달라는 바람 앞에 흔들리는 반딧불이들의 이 소중한 촛불을 기억해주세요 꺼질 수 없는 이 생명의 기도를 기억해주세요
뒤가 허전하다 김윤곤 뒤가 허전하다. 턱 아래를 뚫어 등뼈와 내통하려는 자들, 부드러운 팔 조금만 구부려 등에 닿는 것 질색이어서 곧장 몸 질러 뚫어대야 시원한 자들이 한사코 밀어붙이는 도시에서 또 뒤가 허전하다, 너의 뒤도 허전하다. 코흘리개 소풍시절, 여드름투성이 데이트시절, 잠시 여유로웠던 나들이시절, 주말마다 걷고 있는 어느덧 지금 똥배시절까지 돌아보지 않아도 조금만 눈 돌려도 마주치는, 너와 나 뭇 시선과 장면과 추억의 배경이 늘 그였던 도시에서 뒤가 허전하다. 추억만이랴, 그곳에 깃들인 양지꽃과 참나무, 반딧불이와 풀종다리… 고즈넉함과 정한 기운, 신령스러움은 말해 뭣하랴. 누가 그 사진첩마다 구멍을 뚫는다. 너와 나 한때의 전부, 추억을 발파한다. 이 도시, 마음의 안산(案山)이자 몸의 진산(鎭山) 앞산에 누가 동티내려는 지금 부르르 소름 돋도록 뒤가 허전하다. 뒤가 몹시 결린다.
속수무책 김은령 지금 이 순간에도 혼신을 다해 잎 틔우는 나무야 혼신을 다해 한 뼘 더 자라는 풀아 화사하게 천지간을 열어젖히는 꽃아 미안하다 더불어 살아 온 산 모기 한 마리야 딱따구리 一家야 아니, 아니 네 발 가진 짐승들아 날개 가진 짐승들아 미안하다, 미안하다 수수만년에 걸쳐 나를 만들어 ‘산’이라 이름 갖게 해 준 생명들아 미안하다 지금, 나를 제물 삼아 斷種의 시대를 부르는 저 인간들의 철없음에 그냥, 미안하다
앞산 박경조
사람들아, 이 봄 아들 딸 손잡고 달비골과 용두골 잠시만 걸어보라 뭉게뭉게 짙어가는 능선따라 때죽나무 생강나무 조록싸리, 수리취 비비추... 아마 달비골에서는 물장구치는 도룡뇽들도 만날거다
그 뭇 생명들 올봄에도 때 맞추어 찾아와서는 싱싱한 젖줄 척 물려주는 지극한 모성을, 언제 거세당할지 도시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니 내 몸 뚫어 4.45km 인간의 길 내어준다면 온갖 뿌리들 공중에서 부황들고 말텐데 버린 길 곧 후회할 그대들의 어리석음은 기어이 알몸의 산 보아야만 하겠니 오늘, 내 몸 꺽어 감히 충고 한 마디 하니
제발 좀 멈추어라!
대구 앞산 터널은 생명을 죽이는 총구멍이다
차가 총알보다 빨리 달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차를 몰고 터널 속을 빠져 나오면 내가 총알이 되어 짐승의 내장 속을 뚫고 나온 듯 내 몸이 오싹합니다 마침 온 몸으로 흘러내리는 피를 핥으며 누워있는 큰 짐승 같은 산을 돌아봅니다 특히 KTX를 타고 고향산인 금오산 터널을 지나올 땐 더욱 그러합니다 산마다 총알이 뚫었습니다 바로 내 몸이 총알에 뚫렸습니다 제 2의 고향인 대구앞산에 또 터널을 뚫는다고 합니다 내 몸에 이제는 두 개의 총구멍이 나는 듯 나는 검은 피를 흘립니다 내 몸을 뚫고 나온 차소리가 순식간에 고요한 달비골과 도원동을 소음과 먼지로 덮어 버립니다 고요하게 숨쉬던 내 몸이 먼저 소음과 먼지 속에 시들어 버립니다 달비골 우거진 상수리나무숲으로 드나들던 다람쥐와 너구리들이 길을 잃고 도로에서 차에 치여 죽여있는 게 선연하게 보입니다 그들은 지난날의 자유롭고 즐거웠던 내 유년이고 영혼의 요람이기도 합니다 내 꿈이 죽어가는 걸 나는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습니다 바로 내 영혼의 휴식처인 바람과 햇살과 새소리와 녹음인 달비골 산책로를 빼앗길 수가 없습니다 지금 도로의 공화국인 대한민국의 무자비한 도로들은 있는 것2만으로도 너무 많습니다 우리는 총알택시 같은 위태한 삶을 더 이상 바라지 않습니다
길 뚫으면 유가형 산머루, 청미래, 으름, 여주 어디다 머리며 팔 뻗고 자랄까? 아침이슬 덮고 잠 던 풀각시 새가 날아가면 누가 와서 깨우리. 차바퀴 지나간 자리 묻은 기름띠 꽃인 양 앉을 호랑나비 안타까워 어떡하나. 휘황한 불빛에 앉을 자리 못 찾고 칭얼대는 아기별 자장자장 누가 업어 달래나?
별 전태련
오래 하늘가에 빛나던 별 하나 조용히 흐려진다 한참을 마음 따뜻하게 해 주던 고향 앞 논에 핀 자운영꽃 같은 내 별 사라지려 한다 겨울 마른 나뭇가지 제 종아리 내리치듯 갈퀴의 바람이 온 몸을 흔들 때도 가지 끝에 환히 매달려 있어 주던 그 별 막다른 골목 끝에서 다시 길이 열리듯 모든 게 끝난 자리에 그것은 다시 오려나 어둡고 습기찬 마음 한켠을 환히 빛나게 해 줄 내 별 어느 들판 자디잔 꽃잎으로 피어나는가 나는 어느 누구의 하늘에 별로 뜨는지 별은 초록빛이다
안동 간 고등어 -간이 밴 여자 정숙
맛이 있다는 것은 간이 잘 들었다는 말인가 간이 잘 절여졌다는 것은 간잽이가 소금을 맞갖게 잘 뿌렸다는 말이겠지만 제 고향 바다를 떠나 그 골짜기까지 험하고도 먼 길을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보니 그 성깔, 생 속 다 죽이고 저절로 푸욱 절여져 나긋나긋 짭짤한 그 맛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 무심히 흘러가기만 하는 시간과 터진 생채기에 덧씌워 뿌리는 사람 사이의 소금 말고는 매정스런 칼바람에다 살과 살 부딪히는 비린내와 뒷골목 썩은 냄새나는 삶의 현장만한 간잽이가 또 어디 있겠는가
앞산의 진달래
황병목
아니라고 그럴 리 없다고 손사래치던 사람 무엇이 그럴 것이냐는 얼굴은 이미 붉게 타는 것을
술에나 취하지 꽃에 취할 것이냐던 얼굴은 온통 붉은 진달래 천지인 것을 어쩌랴,
술에도 취하지만 앞산 달비골 안지랑골 용두골 붉은 진달래에도 취하는 것을 가슴도 핏빛으로 붉은 것을 앞산이 있다는 것은 -박숙이- 우리에게 저 앞산이 있다는 것은 우리의 앞이 앞산처럼 창창 푸르러라는 그런 뜻일 게다 나는 매일 신 새벽 앞산을 깨우면서 서로의 얼굴을 봐 주면서 서로의 풋풋한 살 냄새를 맡으면서 말없이 정이 든다 어둠에 걸려 수없이 내 자신에게 넘어졌을 때 아무 말 묻지 않고 선뜻 푸르럼의 의자를 내어주던 산! 이젠, 금슬 좋은 부부처럼 하루도 안보고는 못사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함께 뛴 긴 세월, 새소리, 물소리, 고 꽃들의 향긋한 숨소리가 하루도 안 보면 아, 눈에 밟혀온다네. |
첫댓글 이렇게 직접 옮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께 늘 고맙고 죄송한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