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정법원 로고 : 정의의 여신상
어느 날 내가 사는 아파트 진입로를 '통행료'를 지불한 뒤 지나갈 수 있다고 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아파트와 같은 집합건물은 아파트 자체를 소유하는 전유부분과 주차장 및 진입도로 등을 이용할 수 있는 대지사용권 등으로 구분된다.
그런데 아파트 전유부분과 대지사용권이 분리돼 대지 등이 다른 사람의 소유로 넘어갈 경우, 통행료를 내고 가야하는 억지스런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
우리 법원은 이런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집합건물인 아파트에 압류처분을 할 경우 전유부분과 대지의 분리처분이라는 결과를 낳게 되기 때문에 무효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재판장 김정숙 부장판사)는 최근 아파트 구분소유자들 중 일부인 L씨 등이 구로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압류처분 무효확인소송에서 "(당국의) 압류처분이 아파트 대지에 대한 공매절차를 개시할 수 있도록 하는 절차로 필연적으로 전유부분과 대지의 분리처분이라는 결과를 낳게 된다"며 무효 판결을 내린 것으로 26일 확인됐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A아파트는 한보상사를 운영하던 J씨가 1978년 단지를 건설해, 1979년 사용승인을 받아 일반분양했고, L씨 등은 A아파트의 입주자들로 구분소유자들 중 일부이다.
서울시는 지난 1975년 '영동 제2지구 토지구획정리사업'을 시행했고, 1982년 환지처분 공고를 했는데, 그 환지확정조서에 의하면 J씨 소유의 대치동 일대 토지인 종전토지가 A아파트의 대지 한 필지(2200㎡)로 환지됐다.
한편 구로세무서장은 J씨에 대한 조세채권자로서 J씨 소유의 종전토지를 압류했고, 이후 A아파트 대지 중 한 필지로 환지등기가 이뤄지지 않아 미등기 상태로 있는 것을 서울시가 나중에야 발견하고 환지등기촉탁을 신청했다.
이에 서울시가 관할등기소에 환지등기를 촉탁해 2014년 2월 환지등기가 경료되자, 종전토지에 대한 압류등기가 A아파트 대지로 이기됐고, 구로세무서장이 A아파트의 대지에 대한 압류처분을 함과 동시에 관할등기소에 압류등기를 촉탁함으로서 이 대지는 서울중앙지방법원 등기국에 압류등기가 경료됐다.
과세당국은 우선 "L씨 등은 A아파트 대지에 대해 아무런 권리가 없으므로 압류처분을 다툴 법률상 이익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행정법원 재판부는 "L씨 등이 구분소유자들로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상 대지사용권을 갖고 있다"며 당국의 주장을 배척했다.
재판부는 "건축자인 J씨가 대지를 매수했으나 아직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치지 않았다해도 매매계약의 이행으로 대지를 인도받아 그 지상에 집합건물을 건축했다면 매매계약의 효력으로서 이를 점유·사용할 권리가 생긴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건축자인 J씨로부터 A아파트의 전유부분과 대지지분을 함께 분양받은 L씨 등은 대금을 모두 지급함으로써 소유권 취득의 실질적 요건은 갖추었지만, 전유부부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만 마치고 대지지분에 대한 부분은 아직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치지 못했다. 그러나 이런 사람 역시 전유부분의 소유를 위하여 건물의 대지를 점유·사용할 권리가 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대법원 판례를 인용하면서 "L씨 등이 갖는 이러한 점유·사용권은 단순한 점유권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본권으로서 집합건물의 구분소유자가 전유부분을 소유하기 위해 건물의 대지에 대해 가지는 권리인 대지사용권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L씨 등이 A아파트 대지 부분에 관한 소유권 취득의 실질적 요건은 갖추었음에도 환지등기절차의 지연으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므로 이들에게 J씨와의 매매계약의 효력으로서 전유부분의 소유를 위해 A아파트 대지를 점유·사용할 권리가 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당국의) 압류처분은 A아파트에 대한 공매절차를 개시할 수 있도록 하는 절차로서 필연적으로 전유부분과 대지의 분리처분이라는 결과를 낳게 되므로 집합건물법 규정내용과 입법취지에 반해 효력이 없다"고 판결했다. [참고 판례 : 2014구합6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