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03년 6월 28일 (토) - 6월 29일 (일)
장소 : 경남 남해일대
테마 : 시와 노래가 있는 남해문학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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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편지 - 정호승
나의 별에는
피가 묻어 있다
죄는 인간의 몫이고
용서는 하늘의 몫이므로
자유의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하여
나의 별에는
피가 묻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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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기불능의 시어들은
어두운 지하철길을 달리며
권태의 세뇌를 강요하고
도시의 외로운 진자들은
미친 속도의 감옥에서
화석인간으로
대량복제되고 있다.
미당의 뱀대가리,
미당의 봄을 만들기 위해서는
슬픈 일,
슬픈 일이 필요했다.
천둥번개에게
엽서를 보낸다.
천둥아, 번개야 !
때려다오.
가위에 눌려
제대로 못 가누는 몸을
제발 깨워다오.
바람에게
장문편지 보낸다.
바람아!
불러다오.
아직 덜 깬 혼들이
산산조각 나도록
흔들어다오.
하지만, 도시의 일기예보는
지리한 부패의 장마에
짜증의 기압골을 형성하고
무기력의 전선을 동반한
저기압 고기압이
오르락내리락거린다.
그러나,
천우신조.
남쪽 하늘가에
새벽별에서
피가 묻은
편지가 날아든다.
그래, 가자.
가서 슬픈 일 좀
묻혀오자꾸나.
모놀대장님의
기습적인 출격명령은
거의 한달 동안
밤낮으로
크고 작은 흥분의 총성이
멈추지 않았다.
남해군관광발전위원회에서
2003 남해 팸투어를 한단다.
팸투어라,
뭐지.
팸투어는
Familiarization Tour,
즉 사전답사여행이란다.
그러니까, 남해기습작전의
척후병이 되라는 명령이었다.
지난번에도 심심치 않게
첩보활동한 곳이라
흔쾌히 자원하여
모든 무장을 완비하고
출격날짜를 기다린다.
그러나,
초조했다.
시간은 더디 가고
자꾸 막 일정이 꼬이려고도 하고,
그런데다가 날씨까지도
이래저래 덫들이 많다.
하지만, 거짓말처럼
모든 먹구름이 거치고
대체로 날씨가 좋았다.
설마
모놀 인데..
설마의 기우는
남해군사랑의 푸닥거리로
일단 입막음을 하고
남해로 가는 고속도로는
물 찬 제비가 된다.
농익은 남해대교의 이슬다리는
새로 치장한 다리를 벌려
소비의 적군들을 유인하고
노량앞바다의 해전은
일대격전의 예고를
감추듯이 잠잠하다.
먼저 쇄국의 창고인
척화비 앞에 섰다.
참 멀리도
귀양 왔구나.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의
굳은 글자 속에 갇힌다.
비단 비신 위에
글자만 갇혔겠는가.
자신의 처지를 망각한 체
체면의 돌은 갓머리만 이고 있었구나.
물론, 보수의 갓도
이처럼 다 나쁜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처럼 막무가내식
집단최면은 곤란하지 않는가.
뭍의 답답한 체증이
명치를 누른다.
바다의 비린한 짠내음이
시장기를 일깨워준다.
점심은
매운탕이었다.
하지만,
소금을 씹는 기분이다.
뭐, 도시의 불결한
육신의 숨을 죽인다지만,
갈증에 겨운 입은
물만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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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는 적에
어디서 일성호가 (一聲胡笳)는 남의 애를 끊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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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은
달빛에 칼을 씻고
우국충정을 춤추고,
시인은
달빛에 마음을 말리고
애국단심을 노래한다.
어디 나라를 위한 마음이야
다를까마는
충무공의 칼을 집어삼킨
노량 앞바다의 달빛엔
시의 피가 흐른다.
7년 전쟁의 마침표인
노량해전으로
큰 별은 바다에 잠겼다.
그분의 식지 않은 육신이
잠시 머문 곳이
바로 이곳, 남해 충렬사다.
그분의 위상을 대변하듯
가파른 계단의 제단 위엔
라이벌 당파의 수장격인
송시열, 송준길 형제의
머리 조아린 송사와
고 박정희대통령의
(그분을 엄청 흠모했다 하는데)
제 분수도 모르는
어설픈 몽둥이가
너무도 대조를 이룬다.
순천 왜성을 휘둘러
남해대교에 발을 딛는다
임진왜란의 마지막 결전지
빠르게 휘둘러 나가는 물목에서
소서군의 마지막 무너져 내리는
피비린 함성이 들린다
남해대교를 건너 금산 보리암
상주해수욕장에서 미조항까지
‘때가 위급하니 내 죽음을 지금은
밖에 알릴 때가 아니다‘
충무공의 마지막 유언을 새겨 들으며
한 바퀴 섬을 휘둘러 나와
노량 앞바다에 선다
바람이 세차게 분다 물결이 높다
대선단은 불타고 왜구는 상주벌로 밀려나고
뿔뿔이 흩어져 달아난다
섬 주민은 죽창을 들고 나와 마지막 잔당들의 소탕으로
시산혈해를 이루던 곳
한 사람도 살아 돌아간 자 없었다.
소서의 사위 도진의홍이 진을 친
사천왜성도 꼼짝없이 무릎을 꿇고
7년전쟁의 마지막 승리는 이곳에서 장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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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전쟁은
먼 나라 일처럼 낯선 얘기 같지만
기실 우리는
아직 전쟁 중이다.
우리는 지금 휴전상태지,
정전상태가 아니다.
임진왜란도
휴전상태가 있었다.
임진왜란은 1592년에,
그리고 그 후 정유재란은 1597년에 일어났고 해서
도합 7년 전쟁인 것이다.
지금
우리도 그렇다.
625동족상잔의 전쟁이
1950년에서 1953년에 걸쳐 3년 동안 싸웠지만
잠시 휴전하고
언제 다시 재개될지 모른다.
아마 후세 역사학자들은
60년 아니 70년 전쟁이라고
기록을 할런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여튼, 그렇게
임진왜란은 많은 상처를 남기고
이곳에서 대미를 장식했다.
그런데, 그중에서
가장 큰 상실은 큰 별의 떨어짐이리라.
이락사.
이전부터 있던 명칭이라서
이미 이순신 장군의 죽음을
암시했다고 하는데,
큰 별의 운명은
미리 정해지나 보다.
입구의 조형물은
정말 신경을 많이 쓴 것 같은데,
과연 지하의 충무공은
뭐라고 말씀하실런지...
바람이 분다.
물결이 높다.
첨망대에서 바라보는
남해바다는 일응 고요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면엔 피가 불고 있음이랴.
하지만, 관음포는
우리에겐 무한한 자비를 안긴
축복의 바다이다.
최영장군, 이성계, 정지장군 등이
왜군을 분쇄하고
결국은 이순신까지
불패의 바다라고 할런가.
하지만, 이 또한 자비를 배풀고저
팔만법문을 펄에서 건져낸 공덕이야
또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물론, 팔만대장경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도 없지 않다.
사실 처음의 의도는
무신정권 최씨일가의 개인공덕을
위해 조성되었다고 하는데....
아마 그래서,
이곳 남해까지 내려오지 않았을까.
최충헌의 외가가
바로 경남 진주이고
이곳에 엄청난 농장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최씨일가는
60여년의 영화를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팔만법문은 해인사에서
천년의 천수를 누리고 있으니,
어디 최씨들의 공덕만으로
가능이나 했겠는가.
이는 필시 그 당시 민중들이
비록 최씨의 하수인 노릇을 하였지만,
일심으로 나라사랑하는
남몰래의 마음을 다해
새겼기 때문이리라.
첫댓글 팅구야~~~많은 것 되세겨 줘서 땡큐~~~
그래, 팅구야. 담에 만나면 정식으로 술 한잔 하자^^
역시나~~~어쩜 그리도 자세하고도 ...넘 멋져요 해아리님...다녀 온것보다 더한 감동이 밀려 오네..한번 놀러 와요..수선화님과 함께요.
해아리님 좋은글 감사하고 좋은 만남에(인상이 왜 그리 좋은지)감사하고...
장편 대 서사시를 쓰셨군요... 열심히 메모하시더니. 즐감했습니다.
좋아여~~~
우와 해아리 글이 점점 더 좋아진다..... 등단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