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게 들어주니 힘나요"
■ 구연동화 봉사 최옥희(61)·허길자(62)씨
최옥희(왼쪽), 허길자 할머니가 율동과 함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고 있다.
춘천의 맨 끝자락 동산면 동산어린이집.
40여명의 어린이들이 말똥말똥 눈을 뜨고 귀를 쫑긋 세웠다.
최옥희(61), 허길자(62) 할머니가 막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고 있었다. "그때 엥~ 하고 사이렌소리가 들렸어요. 병수 친구 민경이네 집에 불이 난거에요.… 병수 아빠는 민경이를 구하러 불속으로 뛰어들었어요."
최 할머니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몸에 흉터가 많은 아빠를 부끄러워했던 병수가 그 흉터는 남을 위해 희생한 영광의 상처였다는 사실을 알고 아빠를 자랑스러워했다는 내용의 구연동화다. 최 할머니에 이어 허 할머니의 '망고이야기'가 끝나자 어린이들은 하나만 더 해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할머니라고 부르기엔 미안할 만큼 젊고 활달한 표정과 미소를 유지하고 있는 그녀들은 지난해 3월 춘천노인복지회관에서 구연동화를 배우면서부터 더 젊어졌다고 한다. "좋아하는 아이들 얼굴을 볼 때가 가장 즐거워요. 이야기를 하다보면 동심으로 돌아가게 되고 이야깃거리를 만들려고 책도 많이 보게 돼 늙을 새가 없지요."
토끼와 호랑이, 은혜 갚은 두꺼비, 아빠의 훈장 등 전래동화와 창작동화 할 것 없이 할머니의 레퍼토리는 다양하다. 활동범위는 어린이 집뿐만 아니다. 노인 주간보호소를 찾아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도 동화를 들려주고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구연을 하기도 한다. 어린이들은 호랑이와 도깨비가 등장하는 이야기를, 어르신들은 역사이야기를 좋아한다고 한다. 말을 못하는 장애인들이 말 대신 미소와 손짓으로 호응을 할 땐 '가슴이 찡' 하다고 한다.
명절 때 손주들이 모이면 어김없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명절 음식준비 와중에 정신없이 장난을 치던 아이들도 할머니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조용해진단다.
지난해 말 구연동화지도사 자격증까지 따낸 이들은 요즘 기타에 마임, 마술을 배우고 있다. 이야기를 더 실감나고 재밌게 만들기 위해서다.
정양혜 동산어린이집 원장은 "어린이들이 할머니 오는 날만 기다리고 있다"며 "시내에서 이곳 변두리까지 직접 차를 몰고 와 이야기를 하는 할머니들의 열정이 고맙다"고 했다.
이수영 sooyoung@kado.net
강원도민일보 기사 : 2006-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