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펀 신작시|류윤모
낙동강을 베끼다
반도의 젖줄,
고공 촬영을 하면
대지 위 손금처럼 새겨져 있을 낙동강
신축성이 좋은 골덴 스판 재질같은
투명한 물살 속에는
아직도 눈에 선한 피리 갈겨니
붕어, 모래무지, 버들치, 은어의 유유자적
토착의 강가에서 여름 90일을 자맥질로
이목구비를 갖추어
도회로 떠난 모천회귀의 꿈들
弓弓乙乙 휘어지며
징징 징 소리를 두드려 펴서
박피로 펼쳐 놓은 것 같은
강줄기의 외피
서산이 해를 꼴까닥 삼키고 나면
암담한 표정으로 자조하지만
새벽이 오면 몽환의 안개에 싸인
환상적인 비단뱀이 살아서
구불텅거리는 것 같은
눈부신 장관의,
강의 옆구리에
눈썹 같은 정자를 붙인
진경산수의 음풍농월과
사람 사는 마을의 고단한 서사를 이끌고
굽이굽이 산등성이를
에도는
山태극 水태극의
면면한 흐름 이어왔다
태백산맥 줄기 강원도 황지에서 발원한
어린 물살이
이두박근 삼두박근으로 장성해
합종연횡의 손잡고 흩어지는
유장한 흐름으로
길 없는 길의 전위가 되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며
벌목 장정의 강원도 발 뗏배를 띄워
물산을 남으로 남으로 실어 보내기도
육 이오 동란 때는 동족상잔의
비극의 현장
강이 온통 선연한 피로 물들기도 했다는 증언
한반도의 하체에 불거진
돌올한 정맥류 같은,
역사는 직진하지 않는다
결코 길을 잃는 법도 없다는 말을
실체적으로 입증이라도 하듯
거대 담론의 변곡점을 그으며
낙동강 하구언에 이르는
일천삼백 리 국토 대장정
하늘 한 귀퉁이를 보쌈하는
수천, 수만 마리 철새 떼의 군무가
장엄 대장경으로 이마에 새겨지는
대 서사시를
누가 흐르는 눈물로 읽고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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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윤모|1992년 《지평의 시인들》 10집으로 작품활동. 2008년 《예술세계》 신인상 등단. 시집 『내 생의 빛나던 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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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윤모-낙동강을 베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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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19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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