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믿음(sola fide)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것은 종교개혁의 핵심교리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말은 성경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문구는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것을 부인하는 듯한 야고보서의 말씀에 등장한다.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약 2:24). 그렇다면 오직 믿음이란 교리는 성경말씀과 상충되는 것인가?
이 말이 나오게 된 종교개혁의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 어거스틴(Augustin)과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의 가르침을 따라 중세 로마 가톨릭은 믿음 플러스 사랑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고 주장하였다. 칭의를 사랑으로 온전해지는 과정으로 본 것이다. 이에 대응하여 종교개혁자 루터와 칼빈은 오직 믿음이라는 문구를 강조한 것이다. ‘오직’이란 믿음 외에 다른 모든 것, 즉 사랑과 선행을 칭의의 조건에서 배제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선함과 의로움, 사랑의 행위에 근거해서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동시에 ‘오직은’ 낯선 의로움, 즉 예수 그리스도가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이루신 의로움만을 칭의의 근거로 의지한다는 뜻이다.
믿음은 믿음 외에 다른 모든 것을 칭의의 조건에서 배제시킨다. 그리고 믿음 자체마저도 칭의의 조건에서 제외시킨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지만 믿음이 하나님께 의롭다함을 얻는데 공로적인 근거가 아니다. 믿음은 오직 타자의 의로움, 예수 그리스도가 죄인을 위해 이루신 의로움만을 바라보는데 그 가치가 있다. 믿음은 그 의로움을 붙잡는 빈손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우리 죄인을 의롭다하심은 오직 예수의 의로움(Solus Christus)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Sola Gratia)로 말미암음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에게 자랑할 것이 전혀 없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게 한다(Soli Deo Gloria). 종교개혁의 기본원리는 여기서 하나로 연결된다: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예수(Solus Christus),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종교개혁의 교리는 신자에게 구원의 확신과 위로를 안겨주는 복된 가르침이다. 그런데 이 교리가 오해되고 남용되는 경우가 많다. 야고보가 말한 대로 아무런 행함도 없이 거짓되게 살면서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착각할 수 있다. 오직 믿음을 행함과 사랑과 순종을 모두 필요 없게 만드는 교리로 오해할 수 있다. 어떤 이는 믿음이 행함과 사랑과 순종을 대체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순종하지 않아도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우긴다. 믿노라고 하면서 회개의 열매가 전혀 없는 구원파적인 신앙에 치우친다. 이렇게 솔라 피데 교리가 잘못 이해되면 사람들을 방종과 나태에 빠지게 하는 값싼 은혜의 복음으로 전락하게 된다.
‘오직 믿음’이란 칭의의 조건으로 모든 행함을 배제한 것이지 칭의의 열매로서 행함까지 배제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오직 믿음’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된 선행과 순종과 사랑을 행할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이며 방편이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는 믿음은 텅 빈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채워져야 한다고 했다. 그에 반해 루터는 믿음은 우리의 사랑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채워졌다고 했다. 믿음은 그리스도가 거하시는 성전이라는 것이다. 바울사도도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거하신다고 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엡 3:17).
오직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와 부활로 이루신 모든 구원의 은혜와 효력이 우리 안에 역사한다. 주님이 십자가로 성취하신 새 언약과 새 창조의 은혜가 오직 믿음을 통해서 우리 안에서 작동한다. 새 언약과 새 창조의 은혜는 불순종의 완고한 마음을 하나님을 자원해서 순종하는 부드러운 마음으로 변화시킨다. 그런 이에게 순종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따라서 주님을 붙잡은 오직 믿음은 반드시 순종과 사랑의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다.
오직 믿음을 통해 우리 안에 주어진 새 언약의 은혜가 우리 안에서 작동한다(operate). 따라서 믿음은 사랑으로 역사한다. 회개와 순종의 열매를 맺는다. 그럼에도 믿음과 사랑은 구별되어야 한다. 믿음과 순종이 긴밀하게 연합되어있지만 믿음은 곧 순종이라는 식으로 둘을 동일시하는 것은 여러 가지 혼란을 야기한다. 순종과 사랑, 회개와 행함은 참된 믿음의 열매이다. 이런 열매가 없으면 그리스도가 없는 믿음, 텅 빈 믿음, 죽은 믿음이다.
첫댓글 '오직 믿음'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된 선행과 순종과 사랑을 행할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이며 방편임을 기억하고~♡
순종과 사랑, 회개와 행함은 참된 믿음의 열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