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크(Kazak)
카자크(우크라이나어: козаки́; 러시아어: каза́ки; 폴란드어: Kozacy) 또는 코사크는 15세기 말 부터 20세기 초까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남부에 있었던 군사 집단이다. 구성원의 출신 국가는 다양하였다.
15세기 말 우크라이나의 중앙 지역을 가로지르는 드니프로 강을 중심으로 한 자포리쟈 지역에서 자포로쟈 카자크가 처음으로 결성되었다. 16세기에는 돈 강 유역을 중심으로 돈 카자크가 결성되었다.
자포로쟈 카자크는 애초에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봉신으로서 출발하였다. 초대 헤트만이었던 보흐단 흐멜니츠키가 반란을 일으켜 잠시 동안 카자크 헤트마네트라는 이름으로 독립하기도 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진압당하였다. 1654년 페레야슬라프 조약으로 우크라이나의 대부분 지역이 러시아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카자크는 이후 3백여년간 러시아의 통치를 받았다.
현재 카자크의 출현에 관한 다양한 학설이 존재하고 있다. 역사학자인 샴바로바(В. Шамбарова)와 구미료바(Л. Гумилёва) 박사의 견해에 따르면, 카자크 인들은 확실히 몽고-타타르 군대의 침입 후에 크라스노(Касог)와 브로드닉(Бродник)의 통합에 의해 형성되었다. 카소그인들은 옛날 카프카즈의 민족으로 10~14세기에 쿠반 강 하류 지역으로 이주하였었다. 브로드닉들은 터키-슬라브 민족 출신으로, 12세기에 돈 강 하류에 부락을 이루면서 살았다.(그 당시 이들은 키예프 루시와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 몽골인들에 의한 정복 후에 카소그 인들은 북쪽으로 피난을 가게되고, 돈 강 유역의 브로드닉 민족과 융합되었고, 자신들의 이름을 계승하여 카자크(казак)라 불렀다. 그리고 그때 브로드닉들은 몽골 측에 투항하여 깔까(Калка)강에서의 전투에서 루시를 격퇴하였다. 그리하여 카자크인의 최초의 조직이 정비되었고, 타타르인들에 의한 복속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몽골군은 피정복민인 카자크인들이 그들 자신의 종교를 보존할 수 있도록 하였고, 또한 몽골군 중에는 카자크 군에 투항한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카자크인들에게 자신들의 정체성을 보존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준 사파이스코-포돈스코에(Сарайско-Подонское)교구도 있었다. 금장한국의 분열 후에 금장한국의 영역에 남겨진 카자크인들은 자신들의 군대 조직을 보존할 수 있었고, 그때 이들은 분열된 제국의 일부분이었던 노가이 한국(Ногайская орда)과 크림 한국(Крымское ханство)으로부터 독립하였으며, 루시를 침입했던 모스크바 공국으로부터도 자유로웠다. 그리고 1380년 카자크들은 드미트리 돈스코이에게 "돈 강의 성모(Донской Богоматери)"라는 이콘을 바치고 쿨리코보 전투에서 마마이에 대항하여 싸웠다고 전해진다.
코사크라고도 한다. 러시아어(語)인 ‘카작(Kasak, Kazak)’이 바뀐 말로 스스로를 카작으로 불렀는데 이 말은 터키어의 ‘자유인(自由人)’을 뜻하는 말을 기원으로 삼고 있다. 또한 집단으로서의 카자크를 가리키는 러시아어는 카자체스트보이다.
그들은 선거에 의해 수장(首長)을 선출하여 모든 중요한 문제를 합의로 결정하는 민주적인 자치를 행하고 공동으로 러시아 ·폴란드 ·리투아니아의 봉건제후, 그리고 이웃한 투르크 타타르계 유목부족 등과 싸워 자기의 토지를 확대하였다. 16∼17세기의 타타르 및 투르크의 침입에 위협을 느낀 러시아와 폴란드·리투아니아는 카자크에게 무기 ·탄약 ·식량 ·자금을 주어 그들로 하여금 국경을 방비케 하였다. 러시아 제정(帝政)의 강화와 더불어 위정자는 카자크 상층부에 갖가지 특권을 주어 회유하면서 카자크 자치(自治)의 축소를 기도했으나 17세기 후반의 S.라진, 18세기 후반의 푸가초프를 지도자로 한 농민전쟁은 이에 대한 하층 카자크의 반항이었다. 18세기에 이르러 유력수장(首長)들은 정부의 관등(官等)을 얻어 지주귀족화하였고 카자크는 광대한 토지와의 교환조건으로 제정 러시아의 비정규군으로서 전투집단에 재편성되었다.
20세기 초기에는 전국에 걸쳐 11개의 카자크 군단이 각 지방 군관구에 소속되어 있었다. 1912년 카자크 총인구는 약 400만, 그 중 약 45만이 군사요원이었는데 그 주력은 기병 150연대였다. 11월혁명(구력 10월) 후 국내전에서는 대다수의 카자크는 중립을 지켰으나 극빈층은 새로운 소련정권을 지지하였고 부농층은 백위군(白衛軍)측으로 돌아섰다. 소련체제의 확립과 더불어 특권계층으로서의 카자크 집단은 해체되었고 부농박멸운동과 농업집단화가 진행되었다. 1936년 카자크의 적군(赤軍) 참가 제한이 폐지되었고, 새로 편성된 카자크 사단은 독 ·소전쟁에서 용명을 떨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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