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독립운동의 성지 안동 독립운동 기념관
한국독립운동의 성지로 불리는 안동, 그 안동에 독립운동을 기념하는 기념관이 있다.
한국 근대 최초의 의병인 갑오(1894년7월) 의병이 일어난곳 또한 안동이다.
그래서 독립운동 기념관이란 이름이 매우 당연하게 느껴진다.
독립운동 기념관은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옛날 협동학교 자리에 2007년 8월 10일에 개관되었다.
기념관 안으로 들어서기전 처음 만나는것은 안동의 독립운동가 2.000명의 명단이다.
안동독립운동 기념관은 1894년 갑오의병에서 1945년 안동농림학교 학생항일운동까지
51년간 독립운동을 전개한 안동인의 활동을 기념하기위한 기념장이자 교육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50여년간 독립운동을 전개한 안동
안동의 독립운동은 유교문화의 학문적 정신적 맥락과 함께 전개되었으며
대다수 지도자들이 퇴계학맥을 잇는 학자들이셨다고 한다.
입구 정면에 있는 사진 한장이 눈에 들어온다.
안동에도 독립운동을 위한 여러 조직들이 만들어지고 거기에 사회주의 사상을 가진 단체들도
생겨나게 되었다. 이들을 통합하려는 활동이 나타났는데 그것이 신간회의 조직이다.
1927년 안동의 신간회 운동지회가 설립되었다.
이 사진은 1928년 1월 보광학교에서 열린 신간회 안동지회 제2회 정기대회 모습이다.
국내관에는 국내에서 펼쳐진 안동의 독립운동과 독립운동가에 대해서 자세히 소개되어 있었다.
안동지역과 안동인의 국내독립운동의 역사를 살펴볼수 있는 곳이다.
한국 독립운동의 출발은 1894년 갑오의병이 일어나면서 부터이고
그것이 안동에서 시작되었으므로 안동이 한국독립운동의 발상지라 불리게 되었다.
1894년 갑오의병 결성은 안동향교에서 있었다.
지금은 시청이 이자리에 들어섰고 향교는 송천으로 이건되었다.
1905~1910년대 전국에서 70여명이 자정순국 했다.
그 가운데 안동출신이 10명이나 되고 한지역에서 가장 많다고 한다.
다수의 안동 인사들은 단식으로 목숨을 끊었고 이것이 주변에 끼친 영향이 아주 컸다고 한다.
안동 유림의 의를 소중히 하는 정신이 여기에서도 보여진다.
협동학교에서 쓰인 교재들이다.
협동학교는 안동지역 최초의 근대식 중등교육기관으로 1907년 내앞 현 안동독립운동 기념관 자리에
설립되었다. 학교를 설립한 주역은 김인식, 김동삼 선생이고 인근에 자리하고 있는 가산서당과
백하구려가 교사로 쓰였다.
1919년 학생들이 임동면 만세시위에 앞장섰다가 일제의 탄압으로 결국 문을 닫았다.
국외관으로 이동하기전 태극기와 협동학교의 교실로 쓰였던 백하구려의 모습을
조각맞추기 해보는 코너도 있었다.
국외관에는 국외에서 활동한 안동출신 독립운동가를 소개하고 있다.
안동인은 주로 만주로 망명하였고 거기에서 무관학교와 서로군정서를 통해 독립군을
양성하는데 힘썼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의열투쟁, 한국광복군 등에서도 활약하였다.
기념관에는 주로 안동인이 독립운동을 전개한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 지역의
활동들을 전시하고 있다.
영상추모관에서는 안동인의 독립운동사를 영상으로 보여준다.
상영이 끝나고 나면 스크린이 올라가고 안동 독립운동가를 추모하는 공간이 된다.
입구로 돌아나오는 자리에는 체험코너가 있다. 감방 체험과 고문 체험 이다.
그저 체험일 뿐인데도 살떨리는 공포감이 전해진다...
저런곳에서도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는것에 그저 고개 숙여질 뿐이다.
안동독립운동 기념관에서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여러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역사의 현장이 되기도 하고 여러가지 체험으로 민족정신과 애국정신을 가르치는곳이 되기도 한다.
안쪽으로 자리한 협동마당은 각종 행사와 공연장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독립운동의 역사를 어찌 가벼운 걸음 한두번으로 다 알수 있을까?
오늘 내가 누리고 있는 이 소소한 일상의 기쁨들이 그저 얻어진것이 아니라
이분들의 희생과 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것...
* 저의 증조할아버지께서도 독립운동에 참여하셨습니다.
성명(한자) 천치락(千致洛)
생존기간 1876.5.17~1942.4.23
출생지 임동면 사월리
운동계열 3·1운동
임동면·임북면 3·1운동
훈격(연도) 애족장(90)
공적내용 본관은 영양(潁陽). 자는 향양(鄕陽). 호는 일송(一松). 출신지는 임북면(臨北面)
사월동(沙月洞:현 임동면 사월리) 726번지. 천치락은 1919년 3월 21일 임동면 중평동
편항시장(鞭巷市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고, 이어서 3월 22일 당시 임북 면소재지이던
사월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이 활동으로 그는 1919년 8월 1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요·건조물 손괴·가택침입·상해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형을 언도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묘는 대전국립묘지에 있다.
1977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안동독립운동기념관 인물검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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