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주나 쉬고나서야 오늘 완전체 4명이 되어 바람쐬러 나선다.
2024년 6월 25일(화) . 오늘은 6.25 발발일. 1950년으로부터 74년이나 흘렀다.
한 때는 육이오 동란, 육이오 사변, 한국전쟁, 한국동란.. 구구불일했던 명칭서부터,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될 때까지 싸웠던 민족끼리 싸움이 세계적인 전쟁으로 되고,
지금도 그치지 않고 오물 풍선이 내려오고,,
고맙게도 대한민국은 세계 톱10에 들어가는 선진국이 되었고, 북한은 아직도 오물 풍선이나 보내는 쓰레기 수준에 머물러 있고.
마침 10여년 전, 중국 곤명 여행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비행장 서점에서 구입한 책이 생각났다.
한국전쟁을 공산국가에서는 어떤 관점에서 보는 지가 궁금해서 사서 읽었다.
아침 티비에 나오는 뉴스에는 24일 저녁부터 계속 오물 풍선을 보낸다고 전하고 있고,
아직도 6.25 전쟁은 계속 되고 있는 현실이 씁쓰름하기만 하다.
(아래 사진은 6월 26일 KBS 1티비에서 나온 뉴스 사진을 캡쳐한 것이다.)
9시에 먼저 셋이서 만나서 떠난다.
늘 만나는 곳에 서 있는 감나무는 이제 계절의 시계인양 애기 감이 한참 자라고 있다.
가을이 되면 빨갛게 익을 것을 기대하면서 사진을 찍는다.
삼부에서 비로소 완전체가 된 우리는 행선지로 가는 길에 혼란을 겪다가 비로소 고속도로가 아닌 일반국도로 행차할 것을 정한다. 날씨는 요 며칠 사이보다는 제법 선선해서 드라이브 하기는 안성맞춤.
비래동 폐고속도로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금산 추부 방면으로 코스를 정해서 간다.
1971년 경부고속도로는 우리나라 근대화의 상징이되었고, 저 적문교를 우리끼리는 "콰이강의 다리"라고 부른다.
그 옆으로는 질현성이 있고,,,,,,
많이도 변해버린 (대전시) 동구를 벗어난다.
닭재 산성 답사 이야기도 하다보니 어느 새 차는 대전과 금산의 경계하는 마달령 고개밑으로 지나간다.
마달령고개, 머들령이라고도 하고,,,,, 아련한 추억으로 떠오르는 고갯길이 이제는 굴길 터널이다.
진안 용담댐 옆에 있는 섬바위에서 일단 쉰다.
시간이 11시가 넘어가니 배도 심심하고, 구경거리도 있고.
진안 섬바위. 사람하나 없는 곳, 우리끼리 평상 하나 차지하고 간식으로 요기를 한다.
섬바위 사진도 찍고 , 싱싱한 천년 소나무로 이름을 날리는 소나무도 보고..
진안 섬바위 모습. 감동 벼룻길도 있다는 데..
"천년 소나무"로 소문난 소나무도 본다.
차는 다시 달린다. 산지기가 주변 지명과 그에 따른 이야기를 한다.
근처에 운일암반일암도 있고, 정천면, 주천면의 정자와 주자가 중국 유학자 정이와 주자의 이름에서 따왔다는데..
진안읍내를 지나 장계를 거쳐 육십령쪽으로 길을 잡아가다가 성지기의 제안으로 갑자기 삼봉리 고분군을 찾아간다.
장수가야의 유산이라는 고분군을 눈으로 직접 보는 것.
들어가는 길을 잘 몰라서 헤매고 물어보고나서야 제대로 된 길로 들어선다.
고속도로에서도 잘 보라고 저리도 높이 설치한 삼봉리 고분군 안내판.
그렇게 찾아도 보이지 않더니..
거대한 봉분 4개가 우뚝 솟은 곳 옆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돌아보기로 한다.
발굴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는 곳도 보인다.
두 개씩의 봉분이 짝지어 있는 모습이 육감적으로까지 보이기도 하고.
침령산성 답사시 읽었던 장수가야의 고분군이 산성 서북쪽 천천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동쪽 육십령 쪽에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다. 돌아다니면서 알게 되는 역사적 사실들.
장수 삼봉리고분군. 인근 삼봉산에 산성이 있다고 성지기는 말하고.
아래 항공 사진은 발굴하기 전의 모습인듯.
서쪽 봉분 옆으로 지나간다.
붉은 점 부분은 침령산성이 있는 곳
하지가 지난 햇볕에 잘 자란 잔디 봉분들.
처음 만들었던 것으로 보이는 안내판 보기 ; 장수 삼봉리 가야고분군
전라북도 기념물 제125호가 보인다.
백화산 (해발 850.9m ) 북쪽으로 인근에 다른 고분군이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등등...
나중에 세운 안내문으로 읽어본다.
-----
망외의 가야고분군을 보고는 육십령 쪽 국도로 나간다.
웬 숲이 보이고 궁금증이 발동한 일행은 힘들게 찾아들어간다.
<평지숲>이란다. 시설은 낡았는데 유료라는 안내판에 그만 대충 둘러보고 나온다.
(장수) 논개 출생지가 이 근처에 있다는 것을 이정표에서 찾아 읽는다.
"평지숲" 이 안내되어 있는 안내판
----
육십령 고개를 향해서 가는 길에 남덕유산 줄기가 왼쪽 차창으로 보인다.
60명이 되어야 고개를 넘어갈 수 있을 정도로 도적들의 횡포가 심했다는 고개가 육십령 고개.,
고개 높이가 698미터.
700미터가 다 되는 높은 고개이다.
눈앞에 보이는 충혼탑에 태극기가 펄럭인다. 옆에는 현충일에 추념식을 올린 현수막이 아직도 있고.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충영탑(忠英塔)이라고 쓰여있다.
우선 고개 숙여 묵념으로 예를 표한다.
당신들의 고귀한 희생의 덕으로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어나는 기적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라고 속으로 외쳐본다.
보통은 영혼 靈 자로 쓰는 것으로 알고 있던 나에게는 대신 흔히 '꽃부리 영'으로 통하는 英자가 잠시 낯설다.
영웅 (英雄)의 영자로 해석해 보고 싶다. 산화(散華)도 같은 의미가 아닌가?
육십령 고개 정상에서 서쪽 침령산성 쪽을 바라본다. 삼봉리 고분군도 찾아보고...
장수(長水), 장계(長溪), 지명속에서 금강의 최상류임도 생각해본다.
백두대간 육십령 터널 너머로 경상도 함양 일대 산이 보인다.
충영탑 오른쪽에 있는 백두대간 안내판도 들여다본다.
이렇게 육십령 고갯마루에서 휴식을 취하고는 우리가 원래 목표했던 함양 거연정을 향해서 육십령 고개를 넘어간다.
(함양 편은 다음 (2)에서 계속됩니다.)
(2024.06.27(목) 카페지기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