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교수의 "숙론"이다.
서론은 "누가 옳은가를 결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를 찾으려는 것이다."로 시작한다. 그리고 토론, 토의과 영어로 discussion, debate을 비교하고 대안으로 숙의, 또는 숙론 영어로 discourse를 제시한다.
책은 여러 장으로 나누어, 토론/토의/숙론해야하는 것들을 펼쳐놓았다. 제목이 숙론이라 그가 한 과학자로서 숙론할 결과를 접해볼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덤벼들었으니, 나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그러나 사회의 한 어른이 현재 대한민국에서 숙론이 필요하다고 느낀 것을 경험과 함께 나열한 것을 접해보는 것만으로 조금은 위로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의 바램으로만, 책 안에서만 맴돌지 않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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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두 사람 중 한 사람에게 뭔가 중요한 질문을 할 때 바로 들이대지 않는다. 이런 질문을 하고 싶다고 알려준 다음 다른 사람에게 지극히 단순한, 그래서 별 준비 없이 편안하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먼저 던져준다. 그 사람이 답변하는 동안 할 얘기를 충분히 준비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는 매우 현명한 기법이다. < .....>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보자 대담을 담당하는 우리나라 진행자들은 날카로운 질문을 해서 후보자를 궁지에 빠뜨려야 훌륭한 진행자로 평가받는다. 이럴 때마다 나는 도대체 우리가 뽑으려는 대통령이 과연 어떤 대통령인지 묻고 싶다. 98
애덤 브랜던버거Adam Brandenbuger와 배리 일버프Barry Nalebuff가 1996년에 출간한 책 《경협CoOpetition>을 통해 핵심 내용을 터득했다. 자연계에서 종간에 벌어지는 관계로 경쟁 competition, 포식 predation, 기생 parasitism, 공생 mutualism, 네 가지가 있다. 기본적으로 서로에게 해가 되는 관계가 경쟁이고 서로에게 득이 되는 관계는 공생이다. 한편 한 종은 이득을 보고 다른 종은 손해를 보는 관계로 포식 또는 기생이 있다. 그러나 나는 경쟁을 다른 관계들과 동일한 차원에서 비교하는 것은 지나치게 평면적인 분할이라고 생각한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는데 그걸 원하는 존재들은 늘 넘쳐나는 상황에서 경쟁은 피할 수 없는 삶의 현실이다. 그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연은 맞붙어 상대를 제압하는 것 외에도 포식, 기생, 공생 등을 고안해냈다. 자연계에서 가장 무거운 생물 집단이 무엇일까? 그건 고래나 코끼리가 아니라 꽃을 피우는 식물, 즉 현화식물 Howering plants 이다. 이 세상 모든 동물을 다 합쳐도 식물 전체의 무게에 비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이다. 지구는 누가 뭐라해도 식물들의 행성이다. 그렇다면 자연계에서 수적으로 가장 성공한 집단은 누구일까? 단연 곤충이다. 115
석사 박사 학위는 그 분야에서 대가가 되었다고 수여하는 훈장이 아니다. 이제 홀로 설 수 있는 학자가 되었다는 뜻으로 주는 일종의 자격증일 뿐이다. 대학원생들을 다그치면 지도교수로서 나는 보다 많은 논문을 챙길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독립된 연구자로 홀로서기를 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 내 교수 인생 내내 절대로 그리하지 않았다. 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