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듦의 찬가(老後讚歌)>
우리 집의 아침은
늦게 밝는다.
나이 지긋이 든 사람과
좀 젊은 아내가 사는 집,
우리 내외의 수면 형태는 다르다
나는 아침형 인간이지만
아내는 동창(東窓)의 햇살이
눈이 부실 때까지
마음 놓고 잠에 취한다.
그러나
출근길이 바쁜 직장인도,
학교에 늦을 학생도 없으니
얼마든지 게을러도 괜찮은 나이
늦은 아침을 맞이할 때마다
나는 내게 찾아온 나이가 든 걸 예찬한다.
아침 식사가 걸직하다.
잡곡밥에 된장국,청국장,사과, 달걀
그리고
텃밭에서 수확한 각종 푸성귀 반찬
생선이나 육고기 등.....
식전 감사 기도를 한 후
아내는 풍성한 밥상을 차려주며
"귀리,콩 등 잡곡밥,
조식(粗食)이
건강식인 것 아시지요?"
조악(粗惡)한 음식이라야
노후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며...
지중해식 식단보다 낫은 우라집 식단
나에게는 걸직하게 차린 아침 식단이
입맛에 맞는 일상의 식사로
고맙기 이를 데 없다.
새로운 메뉴가 나오면
"참 맛있다"
"둘이 먹다가 한 사람 죽어도 모르겠는 걸"
아부성(?)칭찬을 하니
^내가 요리한 음식을 잘 먹어주니 고맙소^
그러면서 중얼거린다.
나이 들었다는 것은
정말 편한 것이구나.
식후의 커피처럼
황홀한 것이 또 있을까.
우리 집의 거실은
찻잔을 들고 바깥을 내다보면
남쪽의 야산 수목과 앞뜰의 정원수 소나무가
마치 내 집 마당처럼 눈에 들어온다.
나는 가꾸는 수고 없이
그 안에 가득한
꽃과 나무를 즐긴다.
소유하지 않으면서도
누릴 수 있는 많은 것들,
거실 안에는 아내가 오랫동안 가꾸어 온
수 십개의 꽃,화분과 어항,
볼 때마다 새롭고 힐링이 된다
분주한 젊은이에겐
어림없는 일이다.
한유(閑遊)의 복은
나이 듦의 특권이다.
느긋하게 신문을 본다.
주식시장에
며칠 사이 수십조 원에 이르는
자금이 날아갔다는 기사를 읽는다.
이익이 있는 곳이면
벌떼처럼 모이는 군상들,
눈으론 신문을, 귀론 TV를 듣는다.
권력을 잡기 위한 사투의 현장,
거기에 온갖 거짓과 뻔뻔함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내게는
어느 남가일몽(南柯一夢)의 꿈인 듯 허망하다.
다만 젊은 후손들의 심사를 오염시켜
사람인지 짐승인지 구분 못하는 세상 될까 두렵다.
일상에서 초연해질려고 애쓰는 것이
^나이 듦^'의 은총인가.
만용이 사라지고
과욕이 씻기어 나가고...
인생에서 어느 시기를
제일 좋은 때라고 말할 수 있을까
뛰어놀고 공부만 하면 되는
어린 시절일까,
드높은 이상(理想)에 도전해 보는
열정의 청춘 시절일까,
아니면 가정을 튼실히 이루고
사회의 중견이 되는
장년 시절인가.
도전하고 성취하고 인정받는 이런 시절은
가히 황금기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좋은 시절에
나는 결코 행복하지도 황금기를 맛보지도 못했다.
경쟁대열에서 뒤떨어지지 않으려 애쓰던 그 시절,
삶의 본질은 할 일 없는 자들의 주술로 여기고,
앞만 보고 달렸기에 남에게 아쉬운 소리 안 하고 살았는가 보다.
그러면서
세월의 영욕 속에 밀리고 밀려 추락의 끝이라고 생각한
'나이 든 후'라는 땅에 이르렀다.
그러나 내가 도착한 ^나이 든 세상^'은
축복의 땅이었다.
잃을 것이 없는
빈손 때문이 아니라,
얻으려는 욕망이 줄어들고
비교도,경쟁도 없는 빈 마음으로 풍요의 고장이었고,
비로소
최선(最善)과 정도(正道)가 보이는
밝은 눈의 영토에서 살고싶다.
책임에서도
의무에서도
자유로운 나이
세상에 있으되
세상에 묶이지 않는
평화와 고요가
가득한 곳에 살고싶다.
아내와 둘이 사니 우선 아늑하고 편안하다.
청소도 일주일에 한두 번 하면 된다.
그러고는 아침에 일어나면 잠자리에서 꼼지락 운동과 물 한 잔으로
나이 든 육신 보전하며 모자라는 삶의 공부도 보충한다.
외출복으로 갈아입곤 나의 아지트(?)인 내 방으로 출근한다
인타넷으로 여러 신문의 사설,칼럼과 경제면을 훓어본다
라디오로 노래를 들으며 일터이자 놀이터인 온라인 증권객장에 출근한다
유튜브상의 멘토 가르침대로 따라하니 편하고
소액이나마 돈을 버니 재미있다
덤으로 세상의 흐름도 공부하게 된다
심심하면 산책도 하고 도서관에 가는
여유도 부려본다.
술은 즐기지는 않지만 한 잔 씩한다
아직 살아있음을 고마워하면서.
몇칠 후 춘분 날이 오면
결혼 58주년이 되는 해이다.
머리 하얀 나와
나보다 훨씬 젊은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며
젊은 시절
한 번도 나누어 보지 않은
정다운 눈빛으로
서로의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두 손을 잡고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 시집와서
고생한 아내를 응시하며
우리 내외에게
살아 있을 때 즐겁게
나이든 인생을 맞이하게 허락하신
우리들 생명의 주인과
우리를 살게 해 준 여러 인연들께
진실로 감사의 마음을 드린다.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우리 나이,
오늘 지금을 즐겁게 사는 게 천당이고 극락으로 여기고 산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도 살아있음을 고마워하면서,
하루를 의미있게 지내며
구호를 외친다
"나이 듦은 젊음보다 아름답다."....♡
서유석의 너 늙어봤니 나 젊어봤단다
https://youtu.be/QuMQZaDCcfA?si=e7Iu-gt_fd7RnZ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