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갈머리와 주변머리.
독(禿)선생들이 이마 위쪽에 돋는 털들의 부족으로 인해 당해야하는 괴로움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이 상상하기 어렵다. 한 올의 털을 심고 지키기 위해 '노력'을 보이는 이들에게 '빛나리' 따위로 조롱하는데 익숙해져 있는 우리 사회이고 보면 마이너 집단에 대한 집단 괴롭힘에 가깝다.
속되게 쓰는 우리말에 소갈머리와 주변머리라는 말이 있다. 소갈머리는 머리의 봉긋한 안쪽이 무모증인 경우를 가리키고 주변머리는 머리통의 가장자리에 돋아있어야 할 머리칼이 드물어진 경우를 일컫는 말로 굳어져가고 있다. 원래 소갈머리와 주변머리는 그런 뜻은 아니다.
소갈머리의 원뜻은 심지(心志)다. 원래 '속알머리'였다. 속과 알은 같은 말이다. 내부를 가리킨다. 머리란 얌통머리, 처신머리등에서 쓰이는 것처럼 무엇인가를 얕잡아보는 말이다. 짓거리와 같은 뜻으로 즉 마음이나 생각 혹은 뜻한 바에 대한 비칭이다. 소갈머리가 없다는 뜻은 염치가 없거나 생각과 사려가 부족하다는 뜻이 된다. 즉 속이 없다는 말이다.
속이 없다는 뜻은 묘한 말이다. 어떻게 들으면 속셈이 없다는 뜻으로 들려 사람이 순수하고 정직하다는 느낌을 준다. 그런데 그 말의 다른 쓰임새가 더 익숙해졌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없고 자기만 생각하는 비좁은 마음씀씀이다.
마음을 그릇으로 비유하던 옛 사람들의 통찰이 떠오른다. 속이 없다는 것은 마음의 그릇이 좁아서 그 곳에 충분한 생각을 담을 여유가 없다는 뜻이다. 어떤 견해를 고집하기 시작하면 다른 견해를 받아들일 융통성도 없고 다수의 이익과 즐거움을 위해서 자신의 이익과 즐거움을 희생할 넉넉한 정신의 탄력성도 없다. 그런 이에게 붙여지는 아주 혹독한 비난이 바로 소갈머리 없다는 말이다.
주변머리란 무엇인가.
주변이란 한자어에서 나온 말이다. 원래 뜻은 '두루두루'라는 말이다. 지금은 일을 주선하거나 잘 변통하는 재주의 뜻으로 쓰인다. 말 주변이 없다고 할 때의 바로 그 주변이다. 두름손 혹은 수완(手腕)이라고 바꿔쓰기도 한다. 이 말은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데서 빚어지는 사교의 기술이나 사람다룸의 기술에 초점을 맞추는 말이다.
주변머리가 없다는 것은 융통성도 없고 말도 잘 할 줄 모르고 남보다 손해보며 행동도 엉성하고 빈틈이 많아 실수를 잘 저지르는 경우를 일컫는다. 소갈머리가 인격의 그릇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주변머리는 사교의 기술을 가리킨다. 소갈머리가 내면적인 미덕을 가리키는 말이라면 주변머리는 태도와 행동의 실제적인 미덕을 가리킨다. 그런 점에서 두 말은 알맞은 대척점에 서있기도 하다.
이 말이 어쩌다가 무모증의 부위를 가리키는 기묘한 말로 대치되어 세상살이의 중요한 두 미덕을 가리키던 옛 지혜를 잃어버렸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곰방대를 두드리며 어리석은 행동과 마음들을 경계하던 조상들의 눈에 한없이 소갈머리 없고 주변머리 없어보일 어리석음이 득실대는 요즘의 세상인 건 분명하리라.
-낱말의 습격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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