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逆) 남파랑길(아홉 번째 - 1)
(고성∼통영, 2023년 11월 25일∼26일)
瓦也 정유순
사천시를 벗어나면 경남 고성군이다. 고성(固城)은 ‘무쇠로 만든 단단한 성’이란 뜻이다. 단단함에서 돌보다 더 강한 것이 무쇠이므로, 고성의 본래 이름도 철성(鐵城)이라 했다. 이첨(李詹)은 시에서 ‘고을의 성은 새롭게 철문으로 쌓았는데, 누 위에 북소리는 둥둥거리네. 유민을 점검하니 예전 수준에 미치고, 절후는 3월이라 봄갈이 펼치네.’라고 했다. 따라서 신라 경덕왕(景德王)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고성이란 땅 이름은 견고함에서 철성과 같은 맥락이다.
<경남 고성군 지도>
이런 연유인가? 고성해변에는 공룡의 흔적들이 생생하다. 그래서 고성에서 처음으로 발길이 닿은 곳이 고성군 하이면의 공룡발자국이 있는 상족암 해변이다. 상족암 해변 언덕에는 고성공룡박물관이 상징적으로 보인다. 상족암(床足岩)은 켜켜로 쌓아놓은 시루떡을 연상시키는 수성암 덩어리다. 생김새가 밥상다리 모양 같다고 하여 상족(床足) 또는 쌍족(雙足)으로도 불린다. 공룡 발자국이 선명한 상족암 주변은 공룡의 화석발자국 핵심 지역이다.
<고성공룡박물관>
바위 곳곳에는 파도에 씻겨 생겨난 깊숙하고도 기묘한 굴이 이리저리 미로를 만들고 있어 신비롭다. 이 굴이 선녀들이 하강하여 석직기(石織機)를 차려 옥황상제의 비단옷을 짰던 곳이라는 전설도 전해온다. 썰물 때가 되면 백악기 공룡들이 걸어 다닌 흔적이 드러난다. 바닷가 퇴적층에는 공룡의 발자국 등이 고르게 화석으로 남았다. 간격이 일정한 발자국은 공룡이 떼를 지어 남쪽으로 이동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공룡발자국>
<공룡발자국>
공룡(恐龍, Dinosaur)이란 겉모습이 도마뱀이나 악어를 닮은 동물로서 지금으로부터 약2억 2천 5백만 년 전인 중생대 트라이아스기에 지구상에 처음 나타나 약6천 5백만 년 전인 중생대 백악기 말까지 무려 1억 6천만 년 동안 지구를 지배하였던 것으로 나타난다. 공룡은 육지에 살았던 동물 중에서 가장 길고, 가장 크며, 가장 무거운 동물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공룡 중 많은 종류는 초식공룡도 많아 성질은 순한 것도 있을 것으로 알려진다.
<고성군 하이면 공룡해변>
<공룡발자국>
우리도 데크로 되어 있는 해변 길을 따라 공룡발자국을 추적해 본다. 상족암으로 가는 데크 끝 지점에는 낙석방지를 위한 출입금지 구역이지만 백악기에 형성된 기암괴석들은 넘어 오라고 유혹한다. 파도가 출렁이며 부딪힐 때마다 켜켜이 쌓였던 전설들이 노래되어 흘러나온다. 미로 같은 길을 빙글빙글 돌아다니며 숨바꼭질하던 어린 시절이 공룡의 미소가 되어 피어오른다.
<상족암 원경>
<공룡발자국>
고성 덕명리 공룡과 새발자국 화석산지는 천연기념물 제411호로 지정된 곳이다. 화석의 양은 물론 다양성에서도 세계적으로 손꼽힌다고 한다. 목이 긴 초식공룡 용각류, 두 발 또는 네 발로 걷는 초식공룡 조각류와 육식공룡 수각류의 발자국이 있다. 공룡발자국이 포함된 지층 전체두께는 약150m이며, 200여 퇴적층에서 약2,000여개의 공룡발자국이 발견되며, 해안을 따라 약8㎞까지 공룡발자국이 이어진다.
<상족암>
나무 산책로 계단으로 내려가 공룡 발자국 화석을 만져보는 체험도 가능하다. 화석과 함께 해변에서 만나는 독특한 지형이 눈길을 끈다. 공룡 발자국 옆 바위는 점토질 퇴적층임을 나타내는 ‘건열’이라는 균열 현상을 보인다. 지하 깊은 곳의 마그마가 퇴적암을 뚫고 올라와 굳은 ‘암맥’, 퇴적물이 암석으로 굳기 전에 공룡이 반복해서 밟아 표면이 울퉁불퉁한 ‘공란 구조’도 목격할 수 있다.
<상족암>
<상족암 바위>
상족암군립공원이 있는 고성군 하이면(下二面)은 동쪽으로 하일면(下一面), 서쪽으로 호두산(虎頭山:226m)을 비롯한 높이 200m 내외의 산지를 경계로 사천시에 접하며, 남쪽으로는 남해 한려수도에 면하고 북쪽으로 사천시 사남면(泗南面)에 접한다. 전체적으로 면의 북·동부는 산지이고 서부를 남북으로 관류하는 봉현천(鳳峴川) 일대에 평야가 넓게 발달하여 면의 중심부를 이룬다. 쌀·보리 외에도, 참깨·감·복숭아 등이 생산된다.
<상족암 해변에 정성들여 쌓아 올린 돌탑군>
상족암 주변에는 한지(韓紙)의 주원료로 사용하는 닥나무가 눈에 많이 띈다. 상족암이 있는 덕명리(德明里)는 평지가 적고 산지가 더 많이 분포하며, 한려수도권에 접하여 리아스식 해안을 끼고 있고, 천수답이 많고 수원도 좋지 못한 지대로 농경지는 비교적 적은 편이다. 자연마을로 제전마을이 있다. 제전마을은 옛날에 닥나무(楮)밭이 많이 있었다고 해서 ‘닥밭골’로 불렸으며,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제전(楮田)이란 지명이 되었다.
<닥나무>
이어진 발걸음은 고성읍에 있는 ‘고성남산공원’이다. 고성읍 주변과 남해 바다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공원으로 공원 입구는 선인들의 행적비가 정비되어 있고, 호국영령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운 충혼탑과 봉안각, 한국전쟁 반공유적비 등이 세워져 있다. 산등성이에는 생활체육시설을 조성하여 체력단련과 함께 휴식 공간이 조성되어 있다. 남산공원은 전문 육상선수들의 동계훈련장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곳이다.
<고성남산공원 입구>
남산공원 입구에는 ‘고성이씨이덕로의처밀양박씨열녀비(固城李氏李德老妻密陽朴氏烈女碑)’가 있다. 열녀(烈女)는 유교에서 중요한 덕목으로 효(孝)와 열(烈)이 꼽는데 효는 자식이 부모를 잘 섬기는 것이며 열은 아내가 남편을 잘 섬기는 것이다. 고려 말까지만 해도 남편이 죽은 후 아내가 재혼하는 것은 일반화되었으나, 조선시대에는 남편이 죽으면 재혼할 수 없도록 법제화하였다. 고대의 열녀로는 도미(都彌)의 아내, 신라의 박제상의 아내, 고구려의 평강공주 등이 전해온다.
<열녀비>
정상으로 올라가는 84계단 우측 언덕에는 박목월 시인의 ‘나그네’시비가 홀로 서있다. “강나루 건너서/밀밭 길을//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길은 외줄기/남도 삼 백리//술 익는 마을마다/타는 저녁놀//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 그러고 보니 박목월(朴木月, 1915∼1978)은 경남 고성읍 출신이나, 1919년 경상북도 경주시로 이주하여 사람들은 경주출신으로 알고 있다. 1946년 조지훈, 박두진 등과 청록파(靑鹿派)를 결성하고 청록집(靑鹿集)이라는 시집을 발간하였다.
<남산공원 84계단>
<박목월 시비>
산책로를 따라 남산공원 정상으로 올라가는데 길옆에는 맥문동 같은 식물이 푸른 잎을 자랑한다. 그래서 나는 “야 여기 맥문동이다”라고 말하자 옆에 계신 도반께서 “저것은 맥문동이 아니고 꽃무릇”이라고 친절하게 알려 주신다. 꽃무릇은 석산(石蒜)이라고도 하며, 꽃이 먼저 핀 다음에 잎이 올라와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해 일명 상사화라고도 불리는데, 그 많은 길을 걸었어도 꽃무릇의 잎은 처음 보았다. 잠시 노자(老子)의 ‘아는 자는 말이 없고, 말로 하는 자는 아는 게 없다[知者不言 言者不知]’란 말이 떠오른다.
<꽃무릇(석산) 잎>
우드칩이 깔린 산책로는 ‘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의 기조에 발맞추어 인공포장재 대신 천연 간벌목(間伐木)인 편백나무의 우드칩을 활용하여 조성한 산책로로 노면(路面) 유실방지를 막아 보수비용을 절감하면서, 잡초발생억제와 보습(保濕)성 등의 효과를 높힐 수 있으며, 보행 시 부드러운 촉감으로 여유로운 산책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서 걸어가는 발바닥의 촉감은 부드러웠다.
<남산공원의 녹차밭>
남산공원 정상에는 남산정(南山亭)이라는 누각이 세워져 있다. 누각으로 올라가면 평면은 ‘아(亞)’자형 공간으로 동서남북을 가리키는 사방형 같다. 고성읍이 한눈에 보이고 고성만 해안이 맑은 호수처럼 보인다. 실외의 ‘아(亞)’자형 공간은 처음 보는 것 같다. ‘아(亞)’자형 공간으로는 경상남도 하동군에 있는 칠불사(七佛寺)의 벽안당(碧眼堂)이라는 참선 수행하는 선방(禪房)이 있는데, 이곳은 실내의 공간으로 이중(二重) 온돌방이다. 이 방은 신라 효공왕(孝恭王) 때 담공선사가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남산정>
https://blog.naver.com/waya555/223280556274
첫댓글 등제감사합니다.
[남산정]보니 남원[광한루]가생각난다.
건축미하면 역시 한국의[광한루]이지요.
...15박장춘...
광한루는 밀양의 영남루와 평양의 부벽루와
함께 한국의 3대 루에 해당된다고 합니다.
선배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