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는 물었다.
" 너희들 시대에도 나처럼 부친을 죽인 적당과 타협하며
미래를 지향했던 정치가는 있는가 "
" 신은 서로가 서로를 정치꾼이라 욕하며 백성들은 아랑곳하지 않는 政商輩외에는 볼 수 없었습니다."
이 회사에 입사할 때부터 근무를 희망했던
부산본부에 발령이 났다. 初任地인 영남화력에서 고리원자력본부 제 1 건설소 , 제 2 건설소 , 제천전력관리처, 원자력연수원 , 울산지점 , 부산본부 전산실 , 거제지점, 동래지점, 김해 자재센터 등으로 돌고 돌아
"술 한 잔 먹고 부린 客氣가 業績 "이 되어" 정직 3개월"이란
훈장달고 입사 30여년 만에 他意에 의해
내가 근무하기를 원했던 사업소에 근무하게 되는 웃어주지 않으면 웃을 수가 없는 개그가 벌어졌다.
부산본부가 전국 최우수 사업소로 선정된 것은 " 빛은 생명을 지배하고 생명은 빛을 쫒는다" 는 자연의 이치를 모토로 우리 영업과 직원의 단합된 힘으로 이룩한 실적이 없었다면 최우수 사업소가 되는 것은 불가능했다.
計量 지표에 나타나 사업소장도 어찌할 수 없는 포상이 우리 과에 배정된 1등급 상이 두 개였다.
이는 회사 포상 제도가 생긴 이래로 전무후무한 것이다.
그러니 나를 죽이려니 명분이 부족하고
살려두려니 기분 나쁜 계륵 같은 존재라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본부장이 수여하겠다는 포상이 심의회에서 부결되는 조직의 쓴 맛을 봤다
지점 평가에 절대적인 항목을 차지하는 收金率이 저조해 내가 그 책임지고 있을 때였다.
고질적인 체납자를 대상으로 야간 수금활동을
하고 있었다.
마감 시간이 다가와 십 분도 허투루 보낼 수 없는 긴장된 분위기였다,
그때 노랫소리가 크게 들렸다. 이름값조차도
못하는 부장이란 분이 노래를 흥겁게 듣다가 조작을 잘못한 것이다.
평소에도 무사안일에 빠져서 복지부동도 부족해 낙지부동하고 있어 불만을 품고 있는 차에 나도 모르게
" 이 쌔끼 음악이나 듣고 " 라고 욕을 한 적이 있다,
나는 다른 사람의 기분은 아랑곳하지 않고 거침없이 말해 버리는 나쁜 버릇이 있었다.
이에 대한 보복이었다,
" 事判僧 , 理判僧 " 이다
" 서면 광장에서 다양한 볼거리와 멱을거리로
‘맘껏! 실컷! 놀아보자! ." 라는 심정으로
내가 중학교 때 열심히 공부한 시립도서관이 폐관되지 않고 부전도서관으로 개명되어 존속하고 있다는 게 감사했고,
기회다 싶어 책을 대출해 잃고, 옛 거리를 더듬으며 거닐었다.
서면 학원 , 삼산 탁구장이 어디론가 가고없다.
부산상고 담벼락 호떡집은 사라졌지만 서면시장이 옛 모습이고 ,
일층 칼국수 가게들이 그대로 있어 옛 대한 극장을 지나 태화 극장 앞 지하도를 건너 점심 먹으로 갔다.
제일 제당 앞 동천도 복개되어 깨끗했지만 사무실에서 삼성생명 부산지점을 찾아가는데
"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 보다 더 어렵다.
복개천 한 평짜리 헌 책방이던 " 영광 책방 "이
5층인가 6층이가 하는 건물에 "영광서점"이란
어마어마한 간판을 달고 있어
옛 날 생각나서 " 사장님 좀 만납시다 "라고 하니 이쁜 비서께서 "뭐라 뭐라" 하며 안 된다고 한다.
장사를 하려면 단골손님을 괄시하면 안 된다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다.
학교 정문으로 가기위해 옛 길을 더듬어 갔더니 학교 흔적을 알려 주고 있는 것은 오히려
눈에 익은 "부전동 어린이 놀이터"였고
그 앞에 표석이 세워져 있다.
유심히 보니 롯데 백화점 후문에 "부산상업고등학교 歷史" 가 자랑스럽게 서 있는 것이다.
지금의 대학입시는 수능을 기반으로 수시 /정시 등 다양한 입시제도가 병행되고 있지만,
우리 때에는 대학 진학을 위해서 한날한시에
같은 시험을 보고
오로지 성적으로만 대학을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보다도 훨씬 많은 인구로 인해 학령인구는 넘쳐나지만 진학할 수 있는 대학은 적어
아주 치열한 경쟁을 치루야 했다. 정말 이 악물고 공부하지 않으면 출세할 수 없었다
학교도 그 옛날에는 한 반에 6 ~70명이 되고
좁은 집에는 대가족이 모여 살았으니 부자 집외에는 공부방이 없는 것은 당연했다.
이런 현실에 비로소 생겨나게 된 것이 독서실이란 공간이다
부전 독서실 주변 동네는 특히 취락 지역이라
이런 학생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 독서실은 숙식도 하는 곳이라 라면 그릇에 침을 뱉어도 먹기에 여념이 없었다.
부산상고 진학반 학생들은 조기 취업에 성공하여 학교를 떠나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학업에 열중하지 못했고 선생님들도 열의가 부족해 이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친구들이 몇 있었다.
이 독서실을 운영하는 분이 학생들의 어려운 사정을 이해하여 주어 학생들이 편하게 공부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나 여럿이 생활하다 보니 얽히고설킨 사연들이 묻힌 독서실이다.여기에서 담배를 배워 한 개비 다 못 피워 어지러워 쓰러지기도 했다.
7반 신정욱선생님이 독서실을 기습 방문하여
잽싸게 담배 재떨이에 덮은 교모를 들며
" 분위기 좋은데 ~ 내일 전부다 오전 중에 교무실로 올 것"
" 대학 재수생인 권자영 , 김ㅇㅇ과의 만남은
친구 한ㅇㅇ가 알려준 ㅇㅇ여대 합창단 ㅇㅇㅇ 라는 친구 소개로 알게 되었다. 그들의 진로에 나도 조언을 하다 보니 친하게 지냈다.
그 후 권자영은 ㅇㅇ선배의 좋은 배우자가 되었다
내가 동래지점에 근무할 때 부부동반으로 만나 저녁 식사도 하고 노래방에도 가서 옛 날의 회포도 풀며 즐겁게 놀았다.
애당초부터 권자영이란 이름은 실명이 아니고 가명이었다.
바누라와 권쟈영은 옛 친구를 만난 듯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다.
자정이 되어 헤어질 때 나는 " 우리 이제 언제 다시 만나겠나 악수나 한 번 하자 " 하니
권자영이가 조용히 손을 내 민다.
어느 날 열람실에 들어서니 예쁜 모습으로 공부에 열중인 여학생이 보였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얼굴이었다.
내가 붙들이 옆 집에 살 때 오가며 보았던 여학생이었다.
여고 일학년 일 텐데 일찍이도 대입 준비를 하구나 했다.
가만히 스치면서 아는 체했드니 그 애도 미소를 짓는다.
"고등학교 재수합니다" 라고 한다. 애달프게 느껴졌다.
이 두 여성이 내가 영혜를 알기 전에 알았고 영혜를 만난 이후에는 만난 적 없으나 지금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이 두 여성 외에 내가 호감을 가지고 만난 적이 있는 여자는 지금까지 세명 더 있었다. 이들에 대해서도 마누라에게 짬짬이 이야기해 주었다.
솔개가 나타났다!
바다에 날뛰는 숭어를 발견하고
다리를 내리는 솔개
놓친다
근처에 갈매기가 쫓아오고 있어서..
집중력이 떨어진 솔개다
다시 재시도!
하려다가 갈매기한테
저지 당한다.
낮게 나는 솔개
정면으로 날아오는 솔개
바다 아래 숭어를 찾고 있는 듯..
잘생긴 솔개
까마귀 난입한다.
까마귀에게 쫓기는 솔개
바짝 추적하는 까마귀
계속되는 까마귀 떼들의 추격
까마귀에게 쫓기는 솔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