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볼트에 있어서 “언어는 결코 언어를 통해 주어져 있는 낱말과 규칙들의 집단 속에 놓여 있는 소재가 아니라 하나의 실행이며, 삶이 육체적인 과정인 것처럼 언어는 정신적인 과정이다. 언어에 관련되는 어떠한 것이라도 해부학적 처리와 비교될 수 없으며 오로지 생리학적 처리와 비교될 수 있을 뿐이다. 언어 속에 정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모든 것은 동적이다.”
훔볼트가 무엇보다도 에르곤(Ergon, 작품)과 Energeia(에네르게이아, 활동)을 대비시키는 것의 참뜻은 다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즉 끊임없이 생동하는 생산행위로서의 언어, 그러므로 늘상 “지나가고 있는 어떤 것‘으로서의 언어란, 인간이 의사소통의 목적을 위해 어떤 임의의 물체처럼 사용할 수 있는 어떤 대상형성물, 즉 파악이 가능하며 명확하게 경계지을 수 있는 대상형성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언어는 활동, 즉 에네르게이아로서 단지 발생적으로만 규정될 수 있다. 따라서 훔볼트에 의한 언어의 본질에 따르면 언어는 결코 종결상태에 이를 수 없으며 끊임없이 새롭게 생성되는 정신적 과정이다.
그러나 에네르게이아로서의 언어는 성과없이 쇄도하는 정신활동이 아니라 ‘말로 표현된 것’을 성과로 제공한다. 그렇지만 말로 표현된 것이 ‘비언어적인 어떤 것’이라고 표기될 수는 없다. 이를 테면 언어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은 낱말형식, 음성형상, 통어적 모형 및 고정적 규칙들 자체는 언어의 생성적 활동과는 무관하다. 그리고 이들은 그때그때 말하기의 행위 속에서 비로소 실현되어 재생산됨으로써 생동하게 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재생산은 언어라는 대상형성물에 속하는 이미 주어진 형식들에 필연적으로 구속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또한 훔볼트에 있어서는 저장된 낱말 및 규칙들의 체계는 철저하게 언어에 귀속되어야 한다.
-<훔볼트의 언어철학>에서
[단숨에 쓰는 나의 한마디]
에르곤과 에네르게이아에 대해 인터넷에서 검색한 것들을 몇 개 옮겨 온다.
“에너지(energy)라는 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에서 처음으로 찾아볼 수 있다. 에너지의 어원은 ‘에네르게이아(energeia)’인데, 이는 그리스어인 ‘에르곤(ergon, 일·활동 또는 그 성과·작품)’에서 나온 파생어이다.”
“언어는 에르곤(ergon, 작품, 이뤄진 것)이 아니라, 에네르게이아(energeia, 활동, 이뤄 내는 힘)”이다.
“(1) 에르곤(ergon) : 의사소통 수단으로서의 언어, 즉 언어활동의 결과. (2) 에네르게이아(energeia) : 사상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계속 반복되는 정신의 활동”
“언어는 그 실제적인 본질에서 파악하자면 어떤 지속적인 것이고 매순간마다 지나가는 것이다. 언어자체는 작품이 아니고 행위(에네르게이아)이다. 언어를 정확히 파악하자면 언어는 필수적으로 개별적인 행위이고 그때마다 말하기의 규정이다. 언어는 그것을 생산해낸 행위로부터 떨어져 나와 생산된 생산물(에르곤)로서가 아니라, 생산과정으로서 즉 행위(에네르게이아)로서 이해된다.”
무슨 말일까? 누군가 이렇게 말을 했다고 보자. “나는 이제 말 다했어. 니가 알아서 판단해.” 그의 말은 끝난 것일까? 절대적로 변하지 않는 작품이 된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상대가 말을 하는 순간, 그가 했던 말은 지속적인 사고를 통해 다른 말로 바뀌어간다는 것이다. 고정이 아니라 변화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글쓰기에서는 어떻게 볼 것인가? 누군가의 글이 유통된다고 보자. 그 글은 영원히 고정된 것인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 작품은 객체이고, 누군가의 내면에서 어떤 식으로든 읽혀지고 그것이 새롭게 표현되면서 객체에 변화가 온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과정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말들인데, 고정적 세계관이 지배했던 중세를 지나 근대로 넘어오는 시기에서는 대단히 혁명적인 사고였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에르곤과 에네르게이아 개념은 고치기에서 유용한 근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 문장이 최고야, 라는 고정적 사고란 있을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인식 전환이다.
에너지 정의에 대한 인터넷 글을 보자.
“에너지(energy)는 그리스어의 '내부(en)'와 '일(ergon)'의 합성어이다. 즉 물체 내부에 간직된 일이라는 뜻이다. 일반적 교과서적인 에너지의 뜻으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으로 소개를 하고 있다.”
글쓰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글쓰기는 정신활동을 강화시켜준다. 내 속에 있는 에너지에서 글쓰기란 일을 열심히 끄집어내어 힘든 일 잘 헤쳐 나가는 삶을 살자. 그것이 언어의 본질일 것이다. 글을 쓰려는 분들, 글을 쓰고 있는 분들, 모두 파이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