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말씀의 교회와 새빛장로교회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자유 게시판 Free Board 스크랩 예배복장에 대한 성경적 원리 / 이성호 교수
상록수 추천 0 조회 18 15.05.06 21:3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예배복장에 대한 성경적 원리 / 이성호 교수

 

 

문제 제기 : 복장의 자율화?

▲이성호 교수

주일예배에 참석할 때 신자들은 어떤 옷을 입고 가야할까? 성경은 여기에 대해서 어떤 가르침을 주고 있는가? 주님께서 우리에게 들에 핀 백합화를 가리키면서 “무엇을 입을까?”를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다는 것을 다들 잘 알고 있다. 그러니까 예배시간에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옷을 입어도 되는가? 성경은 성도들의 복장에 대해서 어떠한 가르침도 제공하고 있지 않을까?

 

 

필자는 미국에서 유학할 때 다양한 교회를 경험했다. 필자가 출석했던 개혁교회는 모든 성도들이(심지어 어린 아이들을 포함) 정장을 입고 예배에 참석했다. 그와 정반대로 현대적인 대형교회에 다니는 신자들은 그야말로 자유로운 복장으로 예배에 참석했다. 특히 여름에는 슬리퍼를 질질 끌고 짧은 바지에 어깨 끈이 달린 러닝을 입고, 손에는 콜라를 들고 예배당에 들어가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한국의 전통적 예배에 익숙한 필자는 미국교회의 자유로운 복장을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귀국해서 보니 복장의 자율화는 한국교회에서도 많이 진행됐다. 예전에 주일성수 개념이 분명했을 때에는 대부분의 성도들은 교회에 갈 때 특별한 옷을 입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깨끗하고 단정한 옷을 입었고, 새 옷을 사면 주일까지 기다렸다가 교회에 갈 때 입기도 했다. 부활절 같은 경우에는 흰옷을 입기도 했고, 명절에는 한복을 입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그 결과 어른들은 대부분 예배시간에 정장을 착용했다.

 

그러나 이런 교회의 좋은 전통들은 많이 퇴색되고 있다. 그런 것을 율법주의로 치부하면서 그런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늘어가고 있다. 특히 그들은 그런 교회의 관습들이 새신자들에게 부담을 주기 때문에 폐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회는 누구나 올 수 있는 공간이 돼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마치 복장에 대해서 성경은 어떤 원리적 가르침도 제시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성경의 가르침

주님은 “무엇을 입을까?”를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지만, 이것이 예배시간에 아무런 옷을 입어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옷에 대해 성경이 침묵하고 있다는 것도 사실과 다르다. 우리 주님은 제자들을 세상에 파송하면서 “두 벌 옷을 갖지 말라”고 엄히 명하셨다. 만약 우리가 이 명령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신자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대부분의 옷을 처분해야 한다. 교회 역사 속에는 실제로 주님의 명령을 지키려고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주로 수도사가 되려고 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모든 소유를 버려야만 진정으로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두 벌 옷을 갖지 말라”는 말씀은 사도들에게 주신 특별한 명령으로 봐야지, 모든 성도들이 지켜야 할 일반적 명령으로 봐서는 곤란하다. 이 점에서 세심하고 정확한 성경 해석이 필요하다. 성경대로 한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따라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성경의 모든 명령이 특수한 것은 아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서 목회하고 있는 디모데에게 여자들이 ‘아담한 옷’을 입어야 할 것을 명령했다(딤전 2:9). 이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뒤에 나오는 ‘값진 옷’과 대구를 이룬다는 점에서 검소한 옷으로 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이것은 성경이 명시적으로 옷에 대해서 신자들에게 주는 가장 기본적인 가르침이다. 제자도를 누구보다 강조했던 재세례파 신자들은 이 성경의 가르침을 구체적으로 자신들의 삶에 적용시켰다. 그들은 아담한 옷은 장식이나 화려함이 없는 무채색 옷이 돼야한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그들 중 어떤 이들은 옷에 어떤 단추도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바로 그 유명한 아미쉬 공동체 사람들이다.

 

우리가 재세례파 사람들처럼 살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말씀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본받을 필요가 있다. 적어도 “아담한 옷을 입으라”는 말씀이 성경에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아야 한다. 아담한 옷이 구체적으로 어떤 옷인가에 대한 생각은 다르겠지만 교회에서 아담한 옷을 입어야 한다는 의식은 성도라면 갖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교회에서 자신이 입고 싶은 옷을 마음대로 입어도 된다는 것은 성도로서 적절치 못한 신앙의 자태다.

 

 

옷은 우리의 몸을 위한 것이고 우리의 몸은 성령께서 거하시는 전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다면 적어도 예배시간에 우리의 옷은 예배에 적합한 옷을 입어야 한다. 등산용 옷이나 운동복이나 작업복이나 화려하거나 값비싼 옷은 오히려 예배를 방해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인간의 편리함 때문에 하나님과 교회의 거룩함이 가려져서는 안 된다.

 

복식 논쟁(Vestments Controversy)

옷과 관련된 가장 격렬한 신학적 논쟁이 종교개혁 직후 영국교회에서 일어났다. 논쟁의 핵심은 ‘목사가 예배시간에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가?’였다. 이것을 보통 ‘복식 논쟁’이라고 한다. 영국교회의 종교개혁은 왕에 의해서 주도됐기 때문에 상당히 온건할 수밖에 없었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거짓된 교리들은 다 제거됐으나 예배에서 로마교회의 전통들은 상당 수 그대로 남아 있었다. 특별히 모든 사제(목사)는 예배시간에 지정된 특별한 예복을 입어야 했다. 이것을 옹호하던 이들은 성경에 목사의 복장에 대해서는 명시적인 규정이 없기 때문에 국가가 정한 규정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철저한 개혁을 소원했던 청교도들은 그와 같은 규정이 성경에 근거해 있지 않기 때문에 목사의 복장은 개체교회가 자율적으로 정할 문제로 봤다. 보통 청교도들이 목사 가운에 반대했다고 하는데 정확하게 말하면 가운 자체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 로마교회의 자취를 갖고 있는 화려한 가운을 반대한 것이었다. 종교개혁으로 희생제사로의 미사가 폐지됐기 때문에 목사는 제사장의 옷(화려한 복장)이 아니라 설교자의 옷(검은색의 단순한 복장)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무리 교리가 개혁됐다고 하더라도 목사의 복장이 예전처럼 그대로라면 평신도들은 로마교회로부터 개혁됐다는 것을 전혀 실감할 수 없었기 때문에 복장 문제는 소위 ‘아디아포라’라고 불리는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목사의 복장은 예배의 본질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가시적으로 보여준다. 예배는 제사인가? 그렇다면 목사는 제사장의 복장을 취해야 한다. 이것은 천주교가 현재 취하고 있다. 목사가 엔터테이너인가? 그렇다면 목사는 자유롭게 관중들이 좋아하는 옷을 입으면 된다. 이것은 현대적 예배를 선호하는 교회에서 계속 도입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설교가 예배의 중심이라면 목사의 복장은 목사가 설교자라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복장이 돼야 한다.

 

청교도의 영향을 받은 대부분의 교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형식적인 요소들을 지나치게 제외시켜버렸다. 그 결과 교회 안에서 예배 속에서 예전이 거의 사라지게 됐다. 사제복을 거부한 것은 잘했지만 그것에 대한 대안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함으로 오늘날 목사들은 복장에 대해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생각하고 있다. 그 결과 교회의 통일성이 현저하게 약화되고 말았다.

 

한국교회에서 복장 문제

오늘날 목사의 복장에 대해서 여러 가지 다양한 흐름들이 존재하고 있다. 아마 대부분의 목사들은 정장 차림으로 설교할 것이다. 형식을 강조하는 이들은 특별한 옷을 입기도 한다. 특별히 성찬식이 있는 주일에는 가운을 착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가운은 대부분 신학교에서 졸업할 때 사용한 석사학위(M. Div) 가운이다. 당연히 이것은 말씀의 봉사자인 목사에게 적합하지 않은 옷이다. 목사를 목사 되게 하는 것은 학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반대로 어떤 목사들은 청년들에게 쉽게 다가가기 위해서 찢어진 청바지 차림으로 강단에 올라가기도 한다. 심지어 눈높이를 맞춘다는 구실로 반바지를 입기도 한다. 설교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 강단에 있는 설교단을 아예 치우든지 아니면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소형 강단으로 대치하는 이들도 있다. 이런 현상 자체는 예배가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인간 중심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차라리 교회가 목사를 위한 특별한 복장을 제정하는 것도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목사 가운은 우리 교회 안에 아직 보편적으로 사용되지 않지만 찬양대 가운은 거의 보편적으로 받아들였다. 찬양대는 보통 성가대라고 부르는데 이 용어 자체가 거룩한 찬송과 그렇지 않은 찬송을 구분하기 때문에 로마교회의 잔재라고 할 수 있다. 찬양대 중에 가운을 착용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런 가운을 통해서 찬양대는 구별된 성가대라는 것을 가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찬양대 가운은 한국교회에서 찬양대가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가운이 없어도 얼마든지 찬양대석에서 찬송을 부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운을 (거의)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는 관습적 사고는 예배학적으로 한 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찬양대 가운 정도는 아니지만 상당 수 교회에서 헌금 순서 맡은 이들이 가운을 착용하고 있다. 안내를 맡은 사람들도 유니폼을 입는 경우도 많이 보게 된다. 이 모든 것을 볼 때 목사의 복장은 가벼워지고 다른 예배 순서자들의 복장은 점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말씀의 권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아닌지 세밀하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

 

결론

예배에서 마음은 내용이고 복장은 형식이다. 형식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내용과 형식은 분리시킬 수도 없고 분리돼서도 안 된다. 요즘 아침 일찍 시작하는 1부 예배 시간에 적지 않은 신자들이 등산복 차림으로 교회당 문에 들어선다고 한다. 따라서 요즘 성도들의 복장이 가벼워지는 것을 대수롭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예배시간에 복장이 가볍다는 것은 예배 자체를 가볍게 생각한다는 것을 증명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아담한 옷을 입으라”는 주님의 분명한 명령에 모든 성도들은 귀를 기울여야 한다. 비록 아담한 옷에 대한 절대적 기준을 세울 수는 없겠지만 신자들은 누가 봐도 검소하고 단정한 옷을 예배시간에 입어야 한다. 이것을 주님의 명령으로 받아들인다면 예배당에 오면서 명품으로 자신을 치장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특별히 여성들은 서로 간의 대화중에서 상대방이 입은 옷에 지나치게 관심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 더운 여름에는 특히 노출이 심한 옷은 삼가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예배한다는 인식을 분명히 가진다면 ‘아담한’ 옷에 대한 개념이 구체적으로 잡힌다.

 

예배시간에 성도들의 옷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함을 드러내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주일에는 집에 있는 옷 중에서 특별한 (단정하고 검소한) 예배복을 지정해 입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런 것이 신앙습관이 되면 주일마다 ‘무엇을 입을까?’를 고민하는 일은 없게 된다.

이성호 교수 / 고려신학대학원



기독교보 ksnews@chol.com

 

 

http://www.knews.or.kr/news/view.html?section=79&category=90&no=5901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