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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출신 원로작가 탐방(1)/ 이유식
*이유식 연보
*저서 및 수상
*거목으로 뿌리내린 평론가 겸 수필가 이유식/ 대담;양왕용 본회 고문
*이유식의 대표작
출생
1938년 경남 산청군 신안면 출생, 성장지 하동 옥종
학력
*1951년 옥종초등학교 졸업
*1957년 진주중·.고등학교 졸업
*1964년 부산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1983년 한양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1988년 세종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경력(일반)
*1964년 월간 <세대>지 편집기자
*1966년 부산 항도교(현 가야고) 영어교사
*1970년 서울에서 외국어학원 운영(8년간)
*1979년 한국관광공사 교육원 교수(2년간)
*1981~86년 서울여대,한양대,세종대 강사
*1983~04년 배화여자대학교 교수
*1997년 강남문화원 창립이사/배화여대
교수협의회 초대회장
*2004년 청다한민족문학연구소 개소 및 소장 취임
*2008년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수필반 교수
*2009년 자랑스런 옥종인상(고향) 수상
*2013년 합천이씨 전국중앙종친회 고문
경력(문단)
*1961년 <현대문학>지의 평론 완료추천으로 문단 데뷔
*1983년 한국문인협회, 한국문학평론가협회 이사
*1983년 제3회 한국문학평론가협회 세미나 주제 발표
이후, 현재 각 문학단체의 주제 발표 40여 회
*1989년 한국문인협회 평론분과 회장, 국제펜클럽 이사
*1992년 제3회 한국문협 해외 세미나(카자흐 알마아타)에
한국측 대표 주제 발표
*1993년 <수필문학>지 상임편집위원장
*1994년 한국문학비평가회 창립회장
*1995년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1996년 서울 강남문인협회 창립회장
*1997년 제8회 한국문협 해외 한국문학 세미나
(캐나다 토론토) 한국측 대표 주제 발표
*1999년 한국문학비평가협회 명예회장
*2004년 하동 평사리토지문학제 제4회~6회 추진위원장
*현재
한국문인협회 고문,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고문, 한국문학비평가협회 고문,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고문, 강남문인협회 고문
*저서
*1982년 평론집 <한국소설의 위상>(이우출판사)
*1989년 수필집 <벌거벗은 교수님>(창우사)
*1992년 수필집 <노래>(문학아카데미)
*1993년 수필집 <그대 떠난 빈자리의 슬픔>(장원)
*1994년 평론집 <우리문학의 높이와 넓이>(교음사)
*1996년 평론집 <오늘과 내일의 우리문학>(박이정)
*1997년 평론집 <흘겨보기와 예쁘게 보기>(박이정)
*1998년 평론집 <전환기의 새로운 길 찾기>(박이정)
*2000년 수필선집 <찻잔 너머의 여자>(교음사)
*2001년 수필집 <내 마지막 노을빛 사랑>(문학관)
*2002년 평론집 <한국문학의 전망과 새로운 세기>(국학자료원)
*2003년 평론선집 <반세기 한국문학의 조망>(푸른사상사)
*2007년 수필집 <세월에 인생을 도박하고>(문학관)
*2008년 평론집 <변화하는 시대 우리문학 엿보기>(푸른사상사)
수필집 <옥산봉에 걸린 조각달>(한누리미디어)
수필선집 <남자 뺨을 때리는 여자들>(소소리사)
*2009년 평론집 <새로운 시대 수필이론 다섯 마당>(교음사)
*2011년 수필집 <이유식의 문단수첩 엿보기>(청어)
*2016년 수필집 <새로운 장르, 새로운 수필의 향연>(수필과 비평사)
수필집 <문단 풍속 문인 풍경>(푸른사상사)
*2017년 평론집 <우리 시대 대표시 50선 평설>(한누리미디아)
2017년 수필선집 <구름에 인생을 그려본다>(수필과 비평사)
이외에 평전, 편저 10여 권
수상
*1971년 제16회 현대문학상
*1983년 제2회 한국문학평론가협회상
*1997년 제11회 예총 예술문화 대상
*1998년 제10회 남명(조식)문학상 본상
*2002년 제39회 한국문학상
*2016년 제36회 예술평론공헌상(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1971년 현대문학상 시상식. 앞 줄 맨 왼쪽 이유식. 뒷 줄 조연현 김동리 오영수 박두진
국제펜클럽 세미나 주제 발표. 중앙 이어녕 장관. 우측 이유식
1997년 예총 예술문화 대상 수상
2004년 정년퇴임 기념문집 봉정식 좌측 김봉근 우측 이유식
2016년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예술공헌상 수상
거목으로 뿌리내린 평론가 겸 수필가 이유식
대담 : 양왕용 본회 고문
서울은 눈이 내릴 듯 포근하면서 흐린 하늘이다. 삼성역 4번 출구 번화한 도심의 야트막한 길가 벤치에서 문단 원로인 평론가 이유식 선생을 만나다. 출향 원로문인 첫 대담자이다. 인사를 나누고 단골식당으로 앞장 서 걷는 선생의 모습은 유쾌하고 정정하다. 팔순을 맞이하는 반백 원로의 걸음에는 아직도 기가 살아있는 듯해 보인다. 겨울 초입의 보도에는 낙엽이 휘날리지만 가로수에는 물들지 않은 푸르른 잎들도 남아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난 원로는 “이야기를 나누기는 내 집이 더 편하지”하면서 근처에 있는 대치동 자택으로 안내한다.
책으로 벽을 이룬 서재는 여러 개의 의자가 놓인 작업실이다. 종일 글을 쓰다가 엉덩뼈가 배기면 옮겨 앉느라고 갖다 놓은 것이라 한다. 책상에는 최근에 발간한 『문단풍속, 문인풍경-풍속사로 본 한국 문단』과 『새로운 장르, 새로운 수필의 향연』 이 얹혀 있다.
양 : 반갑습니다. 오늘 저희가 이렇게 찾아뵙게 된 것은 부산을 출향하신 원로문인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서입니다. 서부 경남 출신으로서 부산으로 오신 것은 언제였지요?
이 : 아, 아주 좋은 기획입니다. 마침 부산과 깊은 연고가 있는 강정화 시인도 동행을 하셨군요. 세 분 매우 반갑습니다. 부산에 온 것은, 진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안 사정으로 한 해를 쉬다가 1958년 부산대학 영문과에 입학하면서 부산생활이 시작되었지요. 경남 하동군 옥종면에서 부산으로 단거리 유학이라도 가면 친인척 집에 밥을 부칠 수 있는 유리점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양 : 현대문학 평론에 상당히 일찍 데뷔하셨던데 관련한 이야기를 해주시죠.
이 : 영문과에 입학하고서는 쉽게 문학에 빠져들었습니다. 원서를 읽으면서 외국 문학을 공부했어요. 1학년 2학기 초에 평론인지 무엇인지 분명한 장르의식도 없이 「대학국어」에 실린, 김동리의 단편소설 ‘바위’를 분석하여 50매 정도의 글을 썼어요. 그 당시 「문학개론」은 작가이기도 한 김정한 교수가 맡고 계셨는데 강의가 있는 어느 날 오후 연구실로 찾아가 원고를 보여드리면서 평을 받고 싶다는 말씀만 드리고 그냥 강의실로 곧장 갔지요. 그런데 바로 그날 그 글을 가지고 곧바로 강의를 시작하시면서 끝에 가서 평을 해주셨어요. “이 작품은 대단한 평론이다. 앞으로 조금 길게만 쓰면 석사학위 논문감이다.”라고 하는 과분한 칭찬을 들으면서 이것이 바로 평론이구나, 라고 확인했지요. 우쭐한 기분으로 문학공부에 전력투구하면서 평론습작도 꾸준히 했어요. 두서너 달 지나 습작 중 우수작을 골라 「현대문학」지에 투고해봤어요. 투고에 대한 의외의 엽서가 왔는데, 주간이신 평론가 조연현 선생님의 편지였어요. 내용은 “유능한 평론가를 얻겠다.”라는 격려와 “다른 작품을 한 편 더 보여 달라”는 요청이었어요. 곧 한 편을 더 보냈지요. 두 번째 답신은 “거의 추천권에 드는 수준이니 더욱 열심히 해 보라”는 한 등급 더 오른 답장이 왔어요. 그런데 입영통지서가 나와 군에 입대하게 되었지요.
군복무를 마치고 2학년에 복학하여 인사 겸 <현대적 시인형>이란 시론을 보냈는데 추천 통고가 왔어요. 첫 추천에서 완료추천까지는 적어도 1,2년이 소요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나는 한 달 후 용감하게도 한 편을 더 보냈습니다. 뜻밖에도 사진 한 장과 추천완료 소감을 써 보내라는 완료추천의 통지서가 행운처럼 날아왔어요.
양 : 그럼, 그 추천완료 때의 작품은 어떤 것이지요?
이 : <푸로메테우스적 인간>이란 제목인데, 실존주의 계열의 문학작품을 다룬 글로 같은 해 11월 호에 선을 보였어요. 두 달 만에 이루어진 조연현 선생님의 전격 추천완료이었지요. 대학의 문우들은 모두 놀랐고 나는 나대로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지요. 자부심과 긍지를 한껏 가졌어요. 최연소 평론가로 데뷔했으니 부러움과 질투를 동시에 받았습니다.
양 : 대충 짐작이 갑니다. 그건 그렇고 부산문인협회 평론분과 회장을 하신 걸로 아는데 그게 언제입니까?
이 : 부산대 재학 중인 1963년이었지요. 혜성처럼 데뷔하여 국제신보와 부산일보 양대 신문에 칼럼을 연재하고 2년에 걸쳐 『현대문학』에 원고 8편을 발표할 때였지요. 대학생 신분으로. 나를 따라올 자가 없다는 자부심이 있었지요. 부산문인협회가 경남과 분리될 때 초대 ‘수필 및 평론분과위원장’을 맡았습니다. 그 당시 부산문협의 회원이 30명 전후였고 또 평론가가 밥의 뉘처럼 귀한 시절이다 보니 가능한 일이었지요.
양 : 여담입니다만, 작고한 평론가 김종출교수의 문단 데뷔에도 관련이 있다고 들었는데 두 분 사이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는가요?
이 : 그분은 영문과 조교수로서 나의 은사입니다. 영어나 영문학 교수로 일관했기에 우리 문단 사정이나 우리 문학에 관해서는 좀 어두운 편이었는데 마침 제자인 내가 문단에 나와 활동하는 것을 보고 큰 자극을 받았다고나 할까요? 저를 집으로 자주 놀러오게 해 제자와 스승의 관계를 초월해 서로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참 많이 나누었지요. 평론가로 데뷔해보겠다는 각오였습니다. 본격적으로 공부하여 1964년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되었지요. 은사님이지만 내가 문단에는 3년 선배이지요, (웃음).
양: 부산에서 열심히 활동하시다가 졸업 후 서울로 올라오셨지요?
이: 1964년도에 졸업하여 대학원국문과에 합격했는데 등록금 마련이 어려워 진학하지 못했어요. 가정형편이 안됐어요. 그 때 월간 『세대』 사에서 같이 일하자고 연락이 와서 상경했지요. 그러나 학연과 지연의 바탕이 없다보니 꿩 떨어진 매와 같아 3-4년 일하고 부산으로 다시 내려왔어요. 부산에서 항도고등학교 영어교사를 삼 년 했지요. 기억나겠지만 양 교수도 그때 만났잖아요. (담배 한 개 피 꺼내 피우며 잠시 생각에 젖다)
그러나 다시 생각이 바뀌어 중앙무대에서 뛰어보자는 생각으로 서울행을 결심했지요. 직접 내 일을 하기로 하고 1970년도에 외국어학원을 열었어요. 동시에 『현대문학』지에 ‘한국소설론’을 연재도 시작했어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서 그때그때 연재되는 글을 요약 소개해주어 큰 용기도 얻었죠.
그 뒤, 7-8년간은 확고한 생활터전 마련이 우선이다 보니 학원운영에만 매달려 월평 이외의 본격 평론에는 자연 등한하게 되었던 사정이 있었지요. 그러나 대학으로 옮긴 이후부터는 그 양상이 많이 달라졌지요.
양 : 아, 생각나는 일 하나 있습니다. 재학 중에 간선문학 동인을 하셨지요?
이 : 예. 그 당시 나는 명색이 기성문인이 되어있었는데 비슷한 나이의 몇 문청들이 주가 되어 학내에서 후배들을 모아 만든 모임이었지요. 그게 그러니까 1963년도이었는데 그때의 후배멤버였던 시인 김창근, 시조시인 임종찬, 작가 장양수와 최화수, 그리고 수필가 정진농 등과 나와 같은 나이의 정재필 시인이 부산 문단을 지켜주고 있으니 한결 든든한 생각이 든답니다.
양 : 십여 년 남짓한 부산문단활동을 하시면서 혹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같은 것은 없으신가요?
이: 왜 없겠어요. 그런 여러 가지 일 중 한 가지만 소개하면, 1963년에 부산시 문화상을 받을 뻔 했어요. 심사위원은 김정한, 이주홍 선생님인데, 신인을 키워준다는 의미로 작품상을 준다하여 마음이 붕 떴는데, 작품상을 이유식에게 주기로 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일부 문인들의 반대가 심했어요. 한사코 너무 젊은 사람에게 상을 주면 안 된다하여 못 받았지요. 그 해 문학부문에는 아예 수상자가 없었습니다.
양 : 그렇지만 그 뒤 곧 서울에 올라와 현대문학상은 수상하셨지요?
이 : 예. 수상작은 1970년 『현대문학』에 연재한 <한국소설론>이었지요. 어쩌다 나로 보면 최초의 문학상일 수 있는 상을 비록 부산에서는 놓쳤지만 대신 서울에서 타게 된 셈이라고나 할까요.
양 : 이 <한국소설론>은 뒤에 <한국소설의 위상>이라는 책으로 엮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이 비평들은 한국소설비평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것으로 현대소설 연구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정도였습니다.
이 : 아, 그것 참 듣기 좋은 소리군요. 사실 현장소설론을 개척하고 정립해본다는 생각에서 우리의 중요 단편들을 분석비평으로서 1982년도에 이우출판사에서 출간되었어요. 한국소설비평사에서 거의 한번도 다룬 적이 없는 소설제명을 통한 소설사의 흐름 파악, 소설의 시간성 문제, 전전소설과 대비되는 문장 변천, 소설의 시작과 끝부분의 소설론적 유형화, 기법문제, 주인공의 이름 문제와 그 상징성, 종결부 처리와 주인공의 죽음의 문제. 작품 속의 아이러니 양상 등등을 논해 보았지요. 지금 되돌아보면 그때가 내 소설비평의 정점이요, 황금기였다 싶습니다.
양 : 그럼, 학원경영 후 대학교수는 어떻게 되었나요?
이 : 글쓰기의 시간여유를 갖기 위해서 1983년도 배화여대로 직장을 옮겼어요. 20년 좀 넘게 봉직을 하고 정년퇴임을 했습니다. 학원원장 시절의 문학적 공백을 메꾸기 위해 그 기간에 문단활동과 문필활동을 새로운 각오로 다시 시작했지요.
양 : 별도로 평론 이외에도 많은 수필을 쓰셨는데 수필쓰기와 수필이론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이 : 내가 본격적으로 수필을 써 본 것은 신진 평론가시절 부터인데. 문학시평이나 칼럼을 〈국제신보〉에 쓰고 있을 때였지요. 어느 날 원고를 전해주려고 문화부에 들렀더니 아동문학가인 최계락 문화부장이 연재 에세이를 써볼 용의가 없느냐고 해서 써본 것이 바로 나의 첫 테마 에세이 ‘회색의 자화상’ (한국인의 프로필)인데 반응이 좋아 수필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지요.
90년대부터 테마 수필을 쓰기 시작했어요. 테마 수필을 개척한 거지요. ‘유행가에 나타난 세태’를 〈스포츠서울〉에 연재했는데 이 글이 실리는 요일에는 가판대 부수가 굉장히 올라갔다고 했어요. 평론가로서 수필가 못지않게 수필을 꽤 써오다 보니 수필비평에 관심을 갖게 되고 수필의 정체성 문제는 물론 진일보한 수필이론을 정립해 보려는 노력도 하게 되었어요. 그 결과 「새 시대의 수필이론 다섯 마당」 이론서도 갖게 되었지요. 수필의 정체성 확보를 염두에 두면서 신변잡기도 피해야겠고 메시지 없이 겉멋만 부릴 공산이 큰 서정수필 내지 유사 시적수필도 피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중수필 위주로 글을 써왔지요.
특히 근년에는 내 문단생활의 경험을 소재로 한 테마 에세이를 2권 써보았는데 「이유식의 문단 수첩 엿보기」가 문단이면사라면, 금년에 나온 「문단 풍속, 문인풍경 –풍속사로 본 한국문단」은 말 그대로 문단풍속 테마 에세이입니다.
양 : 장차 하시고 싶은 일이 궁금합니다.
이 : 데뷔이후 어언 55년이란 세월이 흘렀어요. 다행히 도중하차는 하지 않았고 그동안 문학을 놓지 않으려고 안간 힘만은 써왔어요. 장르별로 크게 구분해 보면 60년대는 시 비평, 70년대와 80년대는 소설비평, 90년대 이후부터는 수필쓰기와 수필비평에 주로 관심을 가져왔어요, 내 나이도 내년이면 80이예요. 건강이 하락하면 테마 수필을 계속 쓸 계획입니다.
양 : 지연이나 학연으로 큰 의지가 없는 이곳 서울에 올라와 약 45년간 가히 고군분투하다시피 해 지금은 문단의 거목으로서 큰 뿌리를 내렸으니 먼저 후배로서 존경하고 축하드립니다. 어느 자료를 보니 문단활동도 문협 임원으로서 또 다른 단체의 수장으로서 누구 못지않을 정도로 화려하게 활동하셨고 또 더욱 놀라운 일은 문학단체의 세미나에 40여회의 주제발표를 하셨더군요. 뿐만 아니라 저서도 30여권 이상을 내었으니 충분히 자부를 가지셔도 좋으시리라 봅니다.
이 : 격려 고맙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후회스러운 일이 참 많습니다. 그렇지만 인생이란 속성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닌가하고 자위할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양 : 오늘 여러 가지 좋은 말씀 매우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건강을 유지하시면서 후배들에게 좋은 본보기로 되어주시기 바랍니다.
(월간 '문학도시' 2017년 2월호)
이유식의 대표작
수필/다리는 인생의 소극장
평론/수필의 벽과 그 극복의 길
다리는 인생의 소극장
다리는 육지와 육지를 연결해 부는 관문이요, 땅과 땅의 중매쟁이요, 허리띠며, 길과 길의 악수다. 다리는 새로운 세계로 뻗어 나가고자 하는 욕망의 콤마요 접속사며, 잠시 경관의 아름다움에 도취케 하는 탄성의 감탄부호며, 종착지의 마침표를 향해 가는 욕망의 간이역이다.
다리는 늘 두 다리를 뻗고 부동 자세로 서 있는 견인주의자다. 육로가 산문이라면 다리는 시다. 자연 경관을 배경으로 물새가 날고 물의 음악이 흐르며 달빛이 흐르고 햇살이 반짝거린다.
자연의 조화(造化)가 하늘의 무지개라면 인간의 조화는 다리다. 지상에 놓여진 다리를 보아 왔던 몽상가들이 문득 하늘의 은하수를 보고 상상해낸 창작품이 바로 오작교다. 지상의 다리가 하늘에 투영된 것이 이른바 ‘견우 직녀 이야기’가 아닌가.
그런가 하면 시인 아폴리네르는 일찍이 「미라보 다리」란 시에서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은 흐르고/우리네 사랑도 흘러내린다/내 마음에 깊이 아로새기리/기쁨은 언제나 괴로움에 이어 온다”고 노래하며 인생의 잠언적 진리를 명상해 보기도 했다.
확실히 다리 위에는 많은 인생 이야기가 서리어 있고 아로새겨져 있다.
인생의 소무대요 소극장이다. 낭만성이 있는가 하면 비극적 낭만성이나 낭만적 애수가 깃 들고 있는 곳이다.
그것은 다리라는 공간이 그 어떤 다른 공간보다도 이별의 장소, 기다림의 장소, 만남의 장소로 사랑을 받아 왔기 때문이다. 다리의 차별성이나 변별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약속 장소라면 서로가 찾아가 만나는데 쉽게 찾을 수 있는 편리한 지형 지물(地形地物)이 되고, 재회의 약속 공간이라면 유일성(唯一性) 때문에 혼동이 일러날 리 없이 기억 속에 쉽게 그리고 오래 각인 될 수 있으며, 전송이나 이별의 경우라면 가장 인상적인 장소라 설사 세월이 흘러도 기억의 잔영 속에 오래 남아 있을 수 있는 장점이 있고, 막연한 기다림이라면 찾아오고 지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목이라 기다림의 상대를 쉽게 찾거나 만날 수 있는 개연성이 가장 높은 공간이다.
물론 이별의 공간, 만남의 공간, 기다림의 공간이야 어디에건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시골의 경우를 떠올려 보면, 이별도 영마루의 이별, 산모롱이의 이별도 있을 수 있지만 그래도 다리의 이별이 훨씬 시적(詩的)이라 나루터 이별과 그 정감적 부피와 질감이 맞먹는다. 약속이나 재회의 만남도 지서 앞도 있고, 학교 앞도 있고, 장터 앞도 있고, 면사무소 앞도 있고, 삼거리도 있고, 방죽 거리도 있고, 조금은 음침한 복선이 있는 듯한 물레방앗간이나 뒷동산도 있지만 설령 비밀스런 공간이 아니라면 삼거리나 방죽 거리를 제외하면 너무 산문적이고 사무적인 인상이 짙다. 뭐니 해도 다리의 만남이 역시 시적이다. 그리고 기다림도 여러 공간이 있을 수 있지만 다리목의 기다림은 역시 나루터의 기다림처럼 더 애절하고 열모(熱慕)의 정이 깊다.
뿐만 아니라 설령 다리에는 누가 이별의 슬픔이나 기다림의 실의에 빠진다 할지라도 위로나 위무를 해 주는 그 무엇이 있다. 어쩔 수 없는 이별을 감수해야 하거나 또는 지난날의 연인이 재회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렸다면, 되돌아서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하염없이 흘러가는 다리 밑의 물길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세상사의 덧없음을 한숨처럼 되새겨 보며 무겁고 심란한 마음을 다시 한 번 추스려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동병상련처럼 울어대는 물새 소리를 귓전으로 들으며 마음의 위무를 받을 수 있는 곳이 바로 다리이다.
다리 위에는 이렇듯 만남과 재회가 있고, 이별과 기다림이 있다. 그리고 이별의 우수와 슬픔, 만남의 환희와 눈물, 기다림의 설레임과 실의 그리고 애틋한 그리움과 사랑이 있다.
그래서 다리는 많은 문학 작품이나 영화의 배경이나 소재가 되어 왔고, 되고 있다.
우선 도스토예프스키의 걸작 단편 「백야(白夜)」가 생각난다. 불행한 가정 환경 속에서 성장한 주인공 나타리아라는 처녀의 순정이 우리의 가슴을 찡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자기 집에 하숙 든 청년과의 짧은 사랑 그리고 서러운 이별이 그려지고 있는데 여기에 재회의 약속 장소로 다리가 나온다. 그러나 약속된 그 수많은 기다림의 밤이 지나도 그는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날 밤 그 애 타는 기다림에 보상이라도 하듯 그 청년이 다리 위에 모습을 나타낸다는 이야기다.
이때의 다리는 헤어짐의 애달픔, 기다림의 설레임과 실의 그리고 재회의 기쁨이 교차하는 장소로 설정되어 있다.
영화에서라면 제일 먼저 원명이 「워털루 브리지(Waterloo Bridge)」라는 「애수(哀愁)」가 떠오른다. ‘올드 랭 사인’의 아름다운 선율과 비극적인 라스트 신으로 아직도 우리의 기억에 남아 있는 추억의 명화다. 1차 대전에 휘말린 런던을 무대로 한 청년 장교와 미모의 발레리나와의 너무나도 슬픈 사랑이 만인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던 영화다.
그들이 운명적으로 만난 곳도 런던역 부근의 워털루 다리였고 또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대한 가슴아픈 회한에 이끌려 여주인공이 다시 찾아 온 곳도 추억의 그 다리였다. 그러나 안개 짙은 그 다리 위를 실성한 여인처럼 걷다가 밀려오는 자동차에 치여 몸숨을 잃고 만다는 비극적인 이야기이다.
또 영화라면 「퐁네프의 연인들」과「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도 빼놓을 수 없다. 「퐁네프의 연인들」은 걸인 곡예사 알렉스와 걸인 화가 미쉘과의 기구한 삶과 사랑을 그리고 있는데 그들이 처음 우연히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는 곳도 퐁네프라는 이름의 다리에서이고 또 기약 없는 헤어짐이 있고 난 3년 후 크리스마스에 둘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다시 이곳에서 만나 잊혀진 사랑이 아님을 확인한다는 내용이다.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사진기자 로버트와 시골 유부녀 사이에 있었던 3일 간의 불꽃같은 금지된 사랑이 주된 내용인데 그후 평생 동안 가슴속에 묻어 두었던 두 사람만의 애틋한 사랑이 보는 이마다 눈시울을 붉게 해 준 영화였다. 두 주인공을 만나게 해 준 인연의 고리가 바로 다리였고, 또 그들의 사랑이 무르익어 간 곳도 이 다리 위에서였다.
이렇듯 다리란 교통의 요충지나 관문으로서만이 아니라 남녀 관계의 순수한 여러 일들이 연출되는 무대요 그런 것을 제공해 주는 소극장이다. 그래서 거기에는 꿈결 같은 한 순간의 삶의 이정표가 있고 기억의 이정표가 있다.
그러나 때론 이런 정적인 일들만이 교차하는 곳만은 아니다. 살벌한 전쟁의 교두보나 필사의 방어선으로서 팽팽한 긴장이 감도는 곳이기도 하다. 6․25의 한강 다리, 영화「콰이 강의 다리」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우리는 이를 보아 왔다.
이런 것만 빼놓으면 다리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대상이요 누구에게나 잊을 수 없는 추억거리가 있을 법한 감미롭고 슬픈 기억의 공간이기도 하다.
다리는 역시 아름답다.
<「월간문학」, 2000년 12월호>
Ⅰ.머리말
오늘의 수필문단은 괄목할 정도로 수적으로 비대해져 있다. '70년대만 해도 시나 소설 장르에 비해 열세를 면치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많은 수필가들이 배출되어 수적 팽창세는 물론 수필집도 가히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한편으로는 반가우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질적 저하를 우려하는 소리도 들려오고 있다.
'수필의 벽'이라면 우선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외부의 벽'과 '내부의 벽'이 바로 그것이다. '외부의 벽'이라면 외부에서 수필을 보는 시각(잡문시 경향)과 누구나 수필을 쓸 수 있다고 쉽게 넘보는 태도일 것이다. '내부의 벽'이라면 실제로 창작과정에서 부딪칠 수 있는 벽을 뜻한다 하겠는데 취약점이나 애로점이 과연 무엇인가라는 문제로 귀착될 것이다. 나는 여기서 논의의 방향을 '내부의 벽'에만 한정시키면서 그 벽을 극복하는 방법을 언급해 보기로 하겠다.
Ⅱ. 창작과정에서 만나는 수필의 벽
수필가들이 직접 수필을 창작하는 과정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벽이라면 첫째가 신변잡기 식 경향으로 빠지기 쉬운 점과 소 논문이나 논설문 식으로 둔갑되기 쉬운 취약점이라 하겠다. 그 둘째의 벽은 참신한 주제를 찾는데 따른 어려움과 사실에만 충실하느냐 아니면 허구를 얼마쯤 도입해도 무방하느냐에 따른 망설임일 것이다.
1) 경수필의 경우-신변잡기로의 위험성
수필을 관례대로 경수필과 중수필로 크게 분류해 놓고 보면 경수필의 경우는 소재론적 입장에서는 자연히 신변수필이니 생활수필이 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특히 신변수필을 쓰다보면 자칫 신변잡기에 빠질 위험성이 높다. 신변잡기란 문자 그대로 자기나 자기주변의 이야기를 단순히 늘어놓는 식이라 하겠는데 이런 수필은 의미성이 거의 없다. 신변수필이라고 해서 무조건 신변잡기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체험이 고도의 예술적 여과를 거쳐 질서화 내지 의미화 된다면 거기서 우리는 인생의 어떤 보편적 진실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고, 때로는 감동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만큼 경수필을 쓰는 경우라면 신변수필이 신변잡기가 되지 않도록 각별한 조심과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2) 중수필의 경우-소 논문이나 논설문으로의 위험성
중수필을 쓰다보면 고도한 작법훈련이나 발상법이 없으면 무미건조한 소 논문 식이거나 논설문 식으로 끝날 위험이 높다. 이런 함정을 극복하려면 첫째로 소재를 수필의 제재(題材)에 과부족이 없는 '단소경박'(短所輕薄) 형을 찾아내는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만약 어느 누가 '장대중후'(長大重厚) 형의 제재를 가지고 글을 쓴다면 십중팔구 소 논문 식이거나 논설문 식으로 끝나기 마련일 것이다. 그런 만큼 중수필의 제재라면 가령 정치학. 경제학.사회학. 역사학. 심리학. 생활과학. 민속학. 문화인류학. 철학. 윤리학 등의 인문과학과 나아가 자연과학의 연구대상 그물에서 빠져 나온 사금(砂金)과 같은 제재가 가장 이상적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제재에 대해서는 정면접근을 피하고 오히려 측면이나 후면접근을 하는 것이 수필적 접근이 될 것이다. 어디까지나 '낙수'(落穗)요 '여적'(餘滴)의 성격으로 접근해야 된다는 뜻이다.
이런 형의 중수필에서 인생의 진실이나 어떤 이치를 깨닫게 된다면 그거야 말로 촌철살인(寸鐵殺人)적 수필다운 효과요, 그 멋과 맛이라 하겠다. 중수필이라고 해서 '장대중후'한 큰 창문 식 제재를 통해 인간사를 바라볼 것이 아니라 '단소경박'한 제재 즉 바늘구멍이나 열쇠구멍 또는 문구멍을 통해 인간사를 바라보는 것이 긴장과 짜릿함의 멋이 있다는 뜻이다. 또 이렇게 되어야 소 논문이나 논설문 식의 무미건조성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다라서 중수필의 집은 대형 간판이 거창하게 붙은 '불고기 집'이나 '불갈비 집'이 아니라 골목 어귀에 있음직한 '꼬리곰탕 집'이거나 '족발 집'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한 예를 들어보자. 만약 여성의 남녀동등화 문제를 수필로 다룬다고 하자. '장대중후'한 제재를 피한다면 가령 여성의상을 통해서도 그런 주제를 얼마든지 형상화 할 수 있다. 아니 진정 '바늘구멍' 식 관찰이라면 의상에 부착된 단추나 지퍼의 위치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그런 해석을 도출해 낼 수 있다. 아시다시피 여권신장이 안 됐던 지난 시절에는 블라우스나 바지 그리고 스커트나 원피스의 단추나 지퍼가 불편스럽게도 뒤쪽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복고풍이 아닌 이상 남자복식과 마찬가지로 그 위치가 모두 앞에 와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해 준다.
3) 참신한 주제 찾기의 어려움
소재에서 주제를 찾아내건, 주제를 정하고 그에 알맞는 소재를 찾건 수필창작에 있어서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참신한 주제 찾기에 있다고 하겠다. 특히 경수필만 써 온 수필가라면 한두 권의 수필집을 내고 보면 소재나 주제의 고갈을 실감할 것이다. 비슷한 소재나 비슷한 주제에 스스로 싫증도 느낄 것이고, 때로는 참신한 주제가 없을까 많은 고심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발상법의 전환'이나 '착상법의 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이 점은 수필창작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뒤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로 한다.
4) 허구도입(虛構導入)의 망설임 문제
수필가라면 때로 허구의 도입이 허용되는지 안 되는지 꽤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수필평론에 있어서도 이미 이런 점은 공개적으로 쟁점화 된 바 있다. 구성화 하는 과정에서 사실은 사실 그대로여야 한다는 논리와 필요시엔 허구의 도입도 인정해야 한다는 논리가 맞서 있다. 허구를 일체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논자들의 논리는 수필이 '체험의 문학'이요,'사실의 문학'인 만큼 어디까지나 체험이나 사실에 충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수필을 소설과 대비해서 본다면 우선 그 논리가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소설이 '허구의 문학'이라고 해서 일체의 어떤 사실이나 체험이 들어가서는 안 되고, 어다까지나 100% 허구이어야 한다고만 주장하면 그것은 개념적 정의에만 지나치게 속박시키는 폭력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수필이 '사실의 문학'이라고 하여 허구가 조금이라도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한다면 그것도 '사실의 문학'이란 개념적 정의를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경직된 논리라고 하겠다.
나는 무조건적인 허구의 도입은 인정하지 않지만 예술적 효과나 감동의 창출을 위해서라면 최소한의 부분적 허구는 인정해야 된다고 본다. 가령 한 편의 수필에 있어서 뼈대가 되는 사건이나 사실 자체를 허구화시켜 사실인 양 내보여서는 안 되겠지만 지엽적이거나 구성적 동기부여라면 허용되어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을 수필가 이철호 씨가「수필창작에 있어서의 구성과 그 전개」란 글에서 밝힌 바도 있는데 나도 상당부분 공감을 한 바 있다.
수필은 비록 '사실'에 충실한다 해도 100% 사실위주의 글이어야만 하는 일기문이나 르뽀르타쥬 그리고 다큐멘터리와는 다른 만큼 '사실의 문학'이란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이상 '선의의 거짓말'이란 말이 있듯이 '선의의 허구'는 용인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필가는 사실의 충실한 기록자도 아니며, 단순한 작문가가 아니라 수필이라는 집을 창조적으로 지어내는 예술가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Ⅲ. 참신한 주제 찾기를 위한 10가지 착상법
훌륭한 수필가가 되려면 일차적으로 풍부한 인생경험과 폭넓은 독서를 통해 다양한 교양체험을 쌓아야 하는 것이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다. 그리고 이런 바탕 위에 7가지의 자질이나 능력도 소유해야 할 것이다. 상상력. 연상력. 직감력. 분석력. 추리력. 창조력. 유머 감각. 위트 정신이 바로 그것들이다. 이런 바탕과 자질이 겸비되어 있어야 다음 10가지의 착상법을 능수능란하게 운용할 수 있을 것이다.
1) 가설(假說)에 입각한 착상
가령 석굴암에서 동해를 바라보는 대불(大佛)의 모습을 보고 다음과 같은 가설을 세워 볼 수 있다. 왜 대불은 가냘픈 심성질(心性質)이 아니고 비만형의 영양질(營養質)일까? 만약 대불이 심성질이라면? 이런 가설에서 우리는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그 당시의 유행적이고 전형적인 불상의 체형이 비만형이라면 후덕하고 인자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인가?
둘째 그것을 조각한 석공의 모습도 상상해 볼 수 있다. 천민계급이던 석공이 빼빼하다고 가정해 보자. 그 석공이 평소 자기도 비만형이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졌다면 그 욕망이 그 조각에 반영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가설을 통해 상상과 추리를 해 나가다 보면 거기에 걸맞는 참신한 주제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2) 유사(類似) 착상
자연계를 잘 살펴보면 그럴듯한 사례가 얼마든지 있다. 자연계 이외에도 습관이나 사고방식이 다른 유럽의 예 또는 다른 소재에서 유사성을 찾아볼 수 있다. 가령 공작과 노고지리의 대비를 통해 인간의 어떤 특성을 유추해 낼 수도 있다. 공작은 깃털이 아름답지만 날 수도 없고, 노래도 할 줄 모르는 반면 노고지리는 깃털은 볼품이 없지만 하늘을 자유롭게 날면서 멋진 노래를 한다는 사실을 통해 사람도 신이 부여한 각자 나름의 능력의 한계와 그 장점이 있기 마련이라는 점을 유추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가령 문명의 한 현상을 맥루한이란 학자는 '인체 확장설'로 설명하면서 <눈-망원경. 다리-비행기. 귀- 음파탐지기> 등으로 확장되었다고 했는데, 이 이야기도 결국은 유추발상에서 나온 아이디어라고 하겠다.
3) 대비(對比) 착상
세계의 4대 성인들의 공통점을 비교법을 통해 찾아보아도 흥미로운 수필적 접근이 가능할 것이고, 반대로 대조법을 통해서 찾아도 좋을 것이다. 또 아시아에서는 톱을 당기면서 나무를 자르는데 미국에서는 톱니가 반대방향으로 되어 있어서 밀어내면서 나무를 자른다는 사실과 더불어 스푼을 사용하는 데도 미국에서는 밀어내면서 떠올리는데 우리는 앞으로 당기면서 떠먹는다. 이런 차이점을 대비하여 두 나라 사람들의 사고방식의 차이점을 도출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4) 의문을 품어보는 착상
왜 예수의 제자는 12명인가에 의문을 가져볼 수도 있다. 상식적으로는 유대민족의 12지파의 대표로 한정시켰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만약 정대표, 부대표를 두었다면 24명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또 왜 여자는 한 사람도 없을까란 의문을 품어본다면 흥미로운 수필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5) 역(逆) 사고의 착상
기존의 개념이나 가치를 정 반대로 생각해보는 착상법이다. 수필의 묘미가 역설에도 있는 만큼 이런 착상법의 훈련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가령 자가용의 편리성 때문에 요즘은 자가용 홍수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거꾸로 자가용의 불편이나 위험에 초점을 맞추면 '무 자가용 상팔자'란 수필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또 '돈이 많으면 좋다' 라는 황금만능시대의 병폐를 꼬집고 강도나 도둑의 침입에 불안해하는 걱정으로부터의 해방을 말하는 '돈 없음의 행복'이란 글도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이런 역사고 방식으로 이미 '흥부 격하론'이나 '놀부 변호론'이란 수필이 나왔으며, 소크라테스의 악처를 위하여 '크산티페 변호론'이 나오기도 했다.
6) 상식을 뒤엎어서 생각해보는 착상
이는 역사고의 착상과 비슷하다 하겠는데 상식 선에서 노상 사물이나 어떤 현상을 바라다보면 신선한 착상은 절대로 떠오르지 않는다.따라서 상식을 뒤엎어서 다시 생각해보는 노력을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7) 고정관념에서 탈피해보는 착상
고정관념에 사로잡히면 새로운 것을 창안해낼 수 없다. 가령 가을에 관한 수필을 쓴다고 하자. 고정관념에 매달리면 '슬픈 계절' '천고마비의 계절' '결실의 계절' '독서의 계절' 중에서 어느 하나를 택하기 마련이고 그러면 진부해지기 쉽다. 그러나 반대로 '기쁨과 희망의 계절'에 초점을 맞추면 오히려 참신한 착상이란 평을 받게 될 것이다.
8) 관점(觀點)을 바꾸어보는 착상
사물을 관찰할 때 정면관찰과 측면. 후면. 수직. 수평. 입체관찰이 있을 수 있듯이 어떤 소재를 택하여 합당한 주제를 도출해내기 위해서는 관점을 바꾸어서 다각적이고 다양한 관찰이 필요할 것이다. 한 우물을 계속 깊게만 파는 것이 수직적 사고라면 동시에 여러 개의 우물을 파는 것은 수평적 사고라고 하겠다. 그런 방식이 오히려 물을 얻을 수 있는 확률을 높일 수도 있다.
9)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란 착상
낡은 지식이나 낡았다고 생각되는 전통사고나 사상 그리고 낡았다 싶은 민속이나 풍속에서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도 있다. 가령 분만시 총각의 붉은 머리댕기를 복부에 얹어 놓으면 순산한다는 속신을 단순히 속신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심리적 무통분만설과도 관계가 있다고 보는 해석이 그 예일 수도 있다.
10) 하이브리드(Hybrid)에 의한 착상
이런 사고법은 이것 저것 서로 다른 이질(異質)의 것들을 서로 결합시켜 보는 사고법을 말한다. 발상의 전환을 위해서는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것에다 전혀 관계가 없거나 혹은 인연이 먼 서로 다른 것들을 끌어들여 둘러 맞추다 보면 새로운 착상이 떠오를 수 있는 것이다.
끝으로 위에서 열거해 본 10가지의 착상법으로 비록 참신한 주제가 설정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너무 기발하거나 괴벽스러워 보편타당성을 얻지 못한다면 주제로서 가치성이 없다 하겠다. 참신한 주제일수록 가치성․시대(시기)적인 필요성․보편타당성․독창성․개성미가 있어야 함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하겠다.
Ⅳ. 끝맺음을 하면서
지금까지 나는 수필창작과정에서 부딪칠 만한 몇 가지의 ‘벽’(취약점이나 애로사랑) 문제를 언급해 보았고 또 미비하나마 그 극복방법도 언급해 보았다. 만약 오늘의 수필작단이 이를 말끔히 극복만 할 수 있다면 수필계는 거듭 날 수 있을 것이고 또 질적으로 한 차원 높이 도약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만 된다면 지금까지 언급해 온 ‘내부의 벽’은 말할 것도 없겠지만 수필발전에 저해(장애)요인이 되고 있는 ‘외부의 벽’도 쉽게 허물어질 것이다. 바꾸어 말해 아직도 문단 일각에서는 수필을 잡문시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점도 쉽게 없어질 것이고 또 한편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다고 수필을 얕잡아 보는 도전적인 자세에도 수정이 있게 될 것이다.
격조 높고 품위 있는 수필생산을 위해 모든 수필가들은 전력투구해야 할 것이다.
(제3회 대표에세이동인회 세미나 주제발표문, 1990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