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의 명절 이헌 조미경
명절이 다가오면 10년차 베테랑 주부나
이제 막 결혼한 새댁이나 시댁 어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하는 시집 살이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다.
나의 경우 30년 이상을 두번의 명절과 제사, 김장
각종 집안 대소사에 불려 다녔다.
심지어는 시어머님께서 절대적으로 믿는
무속 신앙인 굿을 할때도 둘째 며느리인 나를 참석 시켜 당신의 체면 유지를 했다.
그런데 지난 7월5일 100세를 일기로 하늘로 소풍 떠나시고 난 후 이번 추석 명절은 굉장히 편안 하고 좋았지만 뭔가 아쉽고 미진함이 남았다.
시어머님 연세가 95세 일때 전국 노래자랑 예심을 신청을 하셨다. 신청자가 많아서 그리고 주소지가 서울이 아닌 과천이라 결국은
노래를 못하시고 말았는데 아쉬움이 크시다는 어머님. 노인대학에서 부채춤 장구 가요를 배우셔서 젊은이 못지않게 가창력이 좋으시고 욕심도 많으신 우리 어머님.명절이면 늘 힘들다 하시면서 자식들을 위해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싱싱한 수산물을 사 가지고 오여서 손수 손질을 하시는 어머님, 자식들은 늘 간소하게 차례를 지내자 말씀을 드리지만, 어머님께서는 자식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장만하시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셔서 장을 보셨다.
명절이면 올해는 힘이 부친다 말씀하시면서 내년부터는 우리들에게 직접 장을 봐서 차례상을 차리라 말씀하시는데
어떤 음식을 준비를 해서 차례상을 차려야 할지 며느리들이 서로 분담을 해서 음식 장만을 하면 되는데
어머님 눈에 찰지 모르지만 다들 나이가 있으니 잘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지만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에 차례상 차리는 일은
정말 힘든 일이다. 나의 경우는 어머님이 미리 장을 봐 놓으시면 재료를 가지고 음식 장만을 하는데, 내년부터는 직접 장을 봐서
차례상을 차리려면 미리미리 장을 봐야 하기에 정말 바빠질 것 같았다.
원래는 며느리들이 서로 모여서 상을 보고 음식을 장만하는 것이 순서인데 서로 사는 게 바빠 어머님께서 손수 장을 봐주셨는데
우리 어머님 항상 건강하셔서 지금처럼 음식 만드는데 진두지휘하는 것을 계속 보고 싶다는 소망이었다.
명절. 하루전 시어머님 계시는 과천에 도착, 앞치마를 걸치고 집안 청소를 마치면 비린내 나는 생선을 구울때면
머리가 지끈 거리고 피로감이 쌓였다. 내 집에서 집안일을 할땐 힘들지 않고 늘 하던 방식으로 일을 했다. 반대로
시댁에서 일을 하면 몸이 몇배는 피곤했는데, 이유는 음식 만드는 일을 빨리 끝내고 쉬고 싶었던 마음이 앞서서 였을 것이다.
명절 음식 중 손이 많이 가는 것은 오색 나물을 씻고 데치는 일은 가정 주부라면 늘상 하는 일이지만, 번거롭다.
명절이 힘든 것은 반찬 가짓수가 많다보니 일을 해도 해도 끝이 없었고 손에 물이 마르는 일이 없었다.
차례 음식 외에 밑반찬 만드는 일은 모두 나의 몫이었다.김치의 종류도 많은데 그것을 냉장고에서 모조리 꺼내어 간을 보고
예쁘게 접시에 셋팅 하는 것은 평상시 노동의 몇배가 된다. 또한 가족들 좋아하는 갈비찜을 재고 잡채 만들고
직접 쑨 메밀묵을 무치고 하는 일도 번거롭다. 하루 종일 부엌에서 동분 서주 하다 우리집으로 돌아오면 수저들 힘도 없다.
직업이 있는 며느리는 직장과 집안일 두가지를 잘하기는 힘들다.
올 추석 연휴는 다른 명절에 비해 길었다. 어머님이 계시지 않는 명절은 내 집에 편안하게 앉아서
운동도 하고 영화도 보고 좋았다. 그런데 결혼 생활 30년 이상을 보내면서 명절이 무척이나 싫었고 지긋지긋 해서
언제쯤 명절 증후군에서 벗어나나 손꼽아 기다려왔다. 남들은 명절이면 친정에 다녀오곤 하는데 나의 경우에는
단 한번도 명절을 친정 부모님과 보낸 적이 없어서 그랬을까. 젊을때는 시어머님이 참 야속했다. 친정이 지방이어서
마음먹고 찾아 뵙지 않으면 얼굴 보기도 힘들었다. 그런데 이제는 시어머님도 계시지 않고 친정 부모님도 계시지 않으니
허전하기만 했다. 집안일에 명절을 보내고 나면 온몸이 아팠다. 그렇게 시집살이를 하고 보니 이제 내 나이도 자식들이 장성해서
며느리 와 사위를 볼 나이가 되었다.
자식들을 일찍 출가 시킨 친구들은 손주 자랑 며느리 자랑에 여념이 없는데
나도 시어머님처럼 그런 시어머니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