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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식일학교 장년교과 보충교재(예언의 신 인용구들)
“내 생애가 언제 끝나든 상관없이, 내 저술들은 끊임없이 말할 것이며, 그것들의 역할은 세월이 지속되는 한 계속될 것이다. …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이 말씀들은 계속 살아서 백성들에게 말할 것이다.”(편지 371, 1907)
(1) 이 자료는 대총회 안교부가 매기마다 안교 장년교과와 함께 매일의 공부 내용과 연결하여 새로운 통찰력과 신선한 관점을 얻도록 돕기 위해 관련 예언의 신 구절들을 모은 보충교재(Ellen G. White Notes for the Sabbath School Lessons)를 한글판으로 바꾼 것입니다. (한글번역본이 없는 경우는 게시자가 번역함)
(2) [활용방법] 매일의 교과를 공부한 후, 그날에 해당하는 부분을 연결하여 묵상하면 큰 유익이 됩니다.
<2026년 제2기 – 하나님과 함께 자라가는 삶>
장년교과 보충교재 제3과 교만 대 겸손
<4월 11일/안, 서론>
◎ 사단은 하나님과 동등해지고자 한 그의 야망 때문에 타락했다. 그는 피조물로서 자신의 한계 때문에 제외된 하나님의 회의와 목적에 참여하여 무한하신 분의 지혜를 깨닫고자 욕망했다. 이 야망적인 자존심 때문에 그는 반역을 일으켰고, 동일한 방법으로 그는 인류를 멸망시키고자 노력한다.
죄는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덮는 그룹인 루스벨은 하늘에서 첫째가 되기를 원했다. 그는 천사들을 제어하여 그들을 창조주로부터 떠나게 하고 그들의 존경을 자신이 받으려 했다. 그리하여 그는 자아를 높이려는 욕망을 그분 탓으로 돌림으로 하나님을 그릇 나타냈다. 그는 자신의 악한 특성을 애정이 깊은 창조주께 씌우려고 하였다.
루스벨이 진실로 지극히 높은 자와 같이 되기를 바랐다면 하늘에 있는 자신의 지정된 자리를 결코 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극히 높은 자의 정신은 이기심 없는 봉사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루스벨이 원한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지 그분의 품성은 아니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위하여 가장 높은 지위를 구하였으니, 그의 정신에 자극되어 움직이는 자마다 그와 같은 일을 행할 것이다.
교만과 야심에 빠지게 되면 언제나 그 생애를 망치게 되는데 이는 아무런 부족도 느끼지 않는 마음, 곧 교만이 무한한 하늘의 축복에 마음을 닫는 까닭이다.
심령의 교만함은 품성의 두려운 특질이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 이것은 가정에서, 교회에서, 그리고 국가에서도 사실이다. (말씀과 능력, 68)
◎ 오늘 자비의 음성이 그대의 귓전에 울리고 있다. 오늘 하늘의 초청이 그대에게 들린다. 오늘 하늘에서는 모든 것이 오라고 하신다.
모든 것이 준비되었으니, 오라. 원하는 자는 와서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지금 우리가 필요한 것은 어린아이와 같은 단순함이다. 교만과 허영과 어리석은 모든 일을 버리는 것을 보기를 원한다. 우리는 심판을 염두에 두고 있다. 남녀들은 인간이 기대야 할 어떤 인간의 힘보다도 더 큰 힘을 원할 것이다. 그들은 여호와의 강한 팔을 의지해야만 한다. 우리는 사람의 행위가 시험받고 검증될 그 날을 염두에 두고 있으며, 여러분이 그날을 준비하기를 바란다. … 그대에게 세상의 교만, 삶의 교만과 허영, 그리고 어리석음을 버리라고 간곡히 호소한다. 예수님은 그대를 사랑하신다. 예수님은 그대를 불쌍히 여기신다. 그분은 천사들의 무리를 보내어 그대를 섬기게 하신다. 지금 온 하늘이 그대를 위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데, 그대는 그대 자신에게 관심을 두지 않겠는가?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마치 주제넘은 행동인 양 두려워하는 듯하다. 그들은 주님께 우리를 가르쳐 달라고 기도하면서도, 정작 하나님의 약속된 말씀을 신뢰하며 우리가 그분께 가르침을 받았음을 믿는 일은 두려워한다. 우리가 겸손하게, 배우고자 하는 마음과 갈망하는 정신으로 하늘 아버지께 나아간다면,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 약속을 이행하실 것을 의심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할 때에 우리의 할 일은 우리가 그분의 뜻을 행하면 우리는 그분의 인도를 받고 지도를 받으며 축복을 받으리라는 것을 믿는 것이다. … 그리스도 바로 그분께서 오늘날의 하나님의 백성들을 인도하고 계시며 어디서 어떻게 일할 것인가를 보여주고 계신다. (아들과 딸, 67)
<4월 12일/일, 교만의 움켜쥔 손아귀>
◎ 교만과 혈기만큼 교회의 권능을 약화시키는 것은 없다. …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사랑과 겸손의 모본을 주셨으며 또한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서로 사랑하라고 그분의 추종자들에게 명하셨다.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서 다른 사람을 우리 자신보다 낫게 여겨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품성의 결함에 관해서는 가혹해야 하고 또한 자신들의 오류와 잘못을 분별하는 데는 민감해야 하며 자신의 결점보다도 남의 결점을 적게 여겨야만 할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일들을 바라보는 일에 특별한 관심을 느껴야만 하는바 곧 그것들을 탐내지도 말 것이며 그들의 흠을 찾지도 말 것이며 거짓 빛 가운데서 그들에게 말하거나 나타내지도 말 것이며 도리어 우리의 형제들과 그리고 우리가 거래하는 모든 사람에게 만사에 있어서 엄격한 공정을 기할 것이다. 조그마한 유익을 얻기 위하여 혹은 우월감이나 탁월함을 보이기 위하여 자신의 이기적인 유익을 위한 계획을 세우는 정신은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정신은 그분의 추종자들이 자신들의 성공과 유익을 위하여서 관심을 가질 뿐 아니라 그들의 형제들의 성공과 유익을 위하여도 같은 관심을 갖도록 인도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될 것이다. …
예수님만이 높임을 받으셔야 한다. 우리 중에 누가 재능을 가졌거나 성공을 거둔 것은 우리 스스로 그것들을 만든 것이 아니요, 이것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분의 봉사사업에 지혜롭게 사용하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거룩한 위탁물이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자산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왜 높임을 받아야 하는가? 왜 우리가 결점 많은 우리 자신에 주목해야 하는가? 우리가 재능이나 지혜를 가진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지혜의 근원이신 분에게서 받은 것이다. …
재능에 대한 자만심, 지성에 대한 자만심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진 마음속에는 존재할 수 없다. …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히 예수님을 경배하고, 절대로, 절대로 조금이라도 자신을 높이지 말자. … 우리 삶의 모든 동기가 그리스도를 섬기며 영화롭게 하고, 세상 사람들을 축복해 주는 것이라면, 가장 암울한 의무의 길조차도 밝은 길, 곧 주님께서 구원하신 자들이 걸어가도록 준비된 길이 될 것이다. (그분을 알기 위하여, 176)
◎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자들은 우리가 마지막 날의 위험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온 세상이 하나님 앞에서 심판받고 있습니다. … 누구도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는 유한한 인간을 안내자로 삼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필멸의 존재들 뒤에 계시며, 모든 이에게 선한 일을 행할 수 있는 지혜와 지식을 주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기꺼이 도우시며,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신다.
주님께서 풍성한 은사를 베푸시는 자들을 교만과 자만심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보호해야 한다. 영향력이 크고 사람들이 기꺼이 따르는 사람은 다른 동역자들이 끊임없이 기도하고 권면해야 한다. 그들이 그 사람이 교만과 자만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 (승리하시는 그리스도, 158)
<4월 13일/월, 자신을 알라>
◎ 그대는 자신의 실수와 범죄가 너무 중대해서 주님께서 그대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며, 그대를 축복하거나 구원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 그대가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대의 눈에는 그대의 결점이 더욱 크게 보일 것이다. 그 까닭은 그대의 영적시야가 더욱 밝아짐에 따라 그대의 불완전함이 주님의 완전하심과 분명하게 대조되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낙심하지 말라. 이것은 사단의 기만적인 힘이 약해진 증거이며, 하나님 성령의 생생한 감화력이 그대를 일깨우고 있고, 그대의 무관심과 안일함이 사라지고 있는 증거이다.
그 자신의 죗된 것을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마음에는 예수님에 대한 깊은 사랑이 머물 자리가 없다. 은혜로 말미암아 변화되는 영혼은 그분의 거룩한 품성을 감탄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자신의 도덕적 결함을 보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아름다움과 탁월함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 높이 평가할 것이 적어질수록, 우리는 구주의 무한한 순결함과 아름다움에 더 큰 존경심을 갖게 될 것이다. 우리 자신의 죄스러움을 바라보는 것은 우리를 사해주실 수 있는 그분께로 달려가게 한다. …
하나님은 유한한 인간이 서로를 대하는 방식과 같이 우리를 대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의 생각은 자비와 사랑, 그리고 가장 부드러운 긍휼이시다.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그분은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 같이 없이하였으니”라고 말씀하신다. …
시련과 유혹과 낙심에 빠진 자들아, 위를 바라보라. 위를 바라보는 것은 언제나 안전하지만,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은 치명적이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땅이 흔들리고 요동치며, 그 무엇도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그대 위의 하늘은 고요하고 견고하며, 그곳을 오르는 모든 자에게는 신성한 도우심이 있다. 무한하신 분의 손길이 하늘의 성벽 너머로 뻗어 그대의 손을 강하게 붙잡으려 하신다. 강하신 조력자께서 가장 잘못을 저지르고 가장 죄 많은 자라도 믿음으로 그분을 바라보면 축복하고 일으켜 세우고 격려하시기 위해 가까이 계신다. 그러나 죄인은 반드시 위를 바라보아야 한다. (높은 부르심, 27)
◎ 하나님께서는… 그들[이스라엘 백성]에게 순종을 조건으로 큰 축복을 약속하시면서 그분의 율법을 주셨다.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 19:5~6). 백성은 그들의 마음의 죄악과 그리스도 없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고 선뜻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다. 자신들의 의를 세울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그들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출 24:7)라고 선언하였다. 그들은 엄청난 위엄 중에 율법이 선포되는 것을 목격하고 산 앞에서 무서워 떨었다. 그러고는 불과 몇 주일이 지나지 않아 그들이 하나님과 세운 언약을 깨뜨리고 새긴 우상을 경배하려고 엎드렸다. 그들은 그들이 깨어버린 언약을 통해 하나님의 은총을 바랄 수 없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들은 자신들의 죄악과 용서의 필요를 깨닫게 되었고 그들은 아브라함과의 언약에 나타나 있고 희생 제물로 예표된 구주의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말씀과 능력, 78)
<4월 14일/화, 겸손한 종 모세>
◎ 미디안의 광야에서 모세는 양치기로 40년을 보냈다. 인생의 사명과 영원히 단절된 듯이 보였던 그는 그 사명의 성취에 꼭 필요한 훈련을 받고 있었다.
모세가 배운 것 중에는 잊어야 할 것이 많았다. 양어머니의 애정, 왕의 손자라는 지위, 곳곳에 만연한 방탕, 정교하고 기이하고 이상야릇한 거짓 종교, 화려한 우상 숭배, 거대한 건물과 조각, 이 모든 것은 그의 사고방식 형성에 깊은 인상을 남겼고 습관과 품성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 세월이 지나고 환경이 바뀌고 하나님과 친교를 나누어야 이 영향들이 제거될 수 있었다. 오류를 걷어 내고 진리를 받아들이기 위해 모세는 일생에 걸쳐 몸부림쳐야 하지만 그 투쟁이 너무 극심해 인간의 힘으로 버거울 때는 하나님이 그의 도움이 되셨다. …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려는 사람은 자신의 약점과 결점을 깨달아야 한다. 자기에게 일어나야 할 커다란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해야 한다. … 도달할 수 있는 위치에 이르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자기 스스로 해내도록 하나님이 힘을 주신 일을 하나님이 해 주시도록 마냥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
모세는 방벽과 같은 산들에 홀로 갇혀 하나님과 함께 있었다. 이집트의 웅장한 신전들, 우상, 거짓말들에 그는 더 이상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변함없이 장엄한 언덕들 한가운데서 그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위엄을 바라보았고 그에 비하면 이집트의 신들은 얼마나 무력하고 보잘것없는지를 깨달았다. 이곳에서 그의 교만과 자부심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엄격하고 단순한 광야 생활에서 이집트의 안락함과 사치의 흔적은 자취를 감추었다. 모세는 끈기 있고 경건하고 겸손하고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민 12:3)였다. 그러면서도 야곱의 능하신 하나님을 굳게 신뢰했다. (투쟁, 86)
◎ 모세는 세상의 위인들 중에서 더욱 뛰어난 자리를 차지하고 당대에 가장 영광스러운 나라의 궁정에서 빛을 발하고 그 나라의 권세의 홀을 휘두르기에 적합한 사람이었다. 그의 훌륭한 지력은 그로 하여금 각 시대의 위인들보다 더욱 뛰어나게 했다. 역사가요, 시인이요, 철학자요, 군대 장관이요, 입법자로서 그와 견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온 세계가 자기 앞에 있었으나 그는 부와 존귀와 명성을 얻을 수 있는 가망성을 거절하였다. …
겸손하게 순종하는 하나님의 종들에게 주어질 최후의 보상에 관하여 가르침을 받은 모세에게는 세속적 이익은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바로의 장엄한 궁전과 왕의 보좌가 모세를 유인하고 있었다. 그러나 모세는 그 궁정 안에 사람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만드는 죄악적인 쾌락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호화찬란한 궁전 저편 곧 군주의 왕관 저편에 있는, 죄로 물들지 않은 나라에서 지극히 높으신 분의 성도가 받게 될 지극히 높은 영광을 바라보았다. 그는 믿음으로 하늘의 왕께서 승리자의 머리에 씌워주실 불멸의 왕관을 바라보았다. (투쟁, 81)
<4월 15일/수, 가장 큰 죄>
◎ 마음의 변화는 성령님의 강력한 작용을 통해서만 올 수 있는 새로 남으로 표현되었다. … 교만과 자기 사랑은 하나님의 성령을 거스른다. 선천적인 여러 가지 영혼의 경향은 자존심과 자랑을 그리스도의 온유와 겸손으로 바꾸기를 반대한다. 그러나 우리가 영생의 길을 걷기를 바란다면, 겸손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우리 모두 하늘 아버지께 향하여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 51:10)라고 탄원할 것이다. 우리가 거룩한 빛을 받고 하늘 천사들과 협력하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죄의 더러움에서 해방되고 “거듭나게” 된다. (말씀과 능력, 137)
◎ 야고보와 요한이 그들의 어머니를 통하여 저희가 그리스도의 왕국에서 최고 영광의 지위를 차지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리스도께서 그분 나라의 성질에 관하여 거듭거듭 가르치셨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여전히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분의 보좌와 왕권을 취할 메시아에 대한 소망을 품고 있었다. …
그러나 구주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시고 또 내가 받는 그 침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그들은 시련과 고통을 지적하시는 그분의 신비스러운 말씀들을 회상하였으나 자신 있게 “할 수 있나이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들은 주님께 일어나게 될 모든 일에 동참하여 그들의 충성심을 증거하는 것이 최고의 영광이라고 여겼다.
그리스도께서는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고 내가 받는 그 침례를 너희가 받으리”리라고 선언하셨다. … 야고보와 요한은 주님의 고통에 동참하게 될 것이었다. 전자는 칼에 의한 신속한 죽임을 당할 운명이었고 후자는 수고와 비난과 박해 중에 다른 모든 제자보다 가장 오랫동안 주님을 따를 것이었다. 예수께서 계속하여 말씀하셨다.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라고 하셨다. …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지위가 정실을 통하여 획득되지 않는다. 이것은 얻는 것도 아니요 독단적인 증여를 통하여 받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품성의 결과이다. 면류관과 보좌는 달성한 상태의 증거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한 자아 정복의 증거이다. …
그리스도께 가장 가까이 서는 사람은 그분의 자아 희생의 사랑 곧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는 사랑(고전 13:4~5) 즉 우리 주님을 움직인 것처럼 제자를 움직여 모든 사람에게 주고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죽기까지 살고, 수고하고, 희생하는 사랑의 정신을 가장 깊이 마신 사람이 될 것이다. (투쟁, 314)
<4월 16일/목, 그를 보라>
◎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보는 대신 그들 자신을 보기 때문에 영적으로 약하다. … 그리스도는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든 힘과 행복을 얻을 수 있는 위대한 보고이시다. 그런데 우리는 왜 그분의 이런 풍부함에서 우리의 눈을 돌려서 우리의 연약함을 한탄하는가? 우리는 왜 그분께서 언제나 우리를 도우실 준비가 되어 계시다는 사실을 잊는가? 우리의 무능함을 이야기함으로 우리는 그분을 욕되게 한다.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대신 끊임없이 예수님을 바라보고, 날마다 그분을 더욱 닮아가며, 그분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고, 그분의 자비와 도움을 더 잘 받아들이고,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을 더욱 잘 받도록 준비하자. 이렇게 그분과 교제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그분의 능력 안에서 더욱 강해지고,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과 축복이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강해지도록 모든 것을 마련해 주셨다. 그분은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는데, 성령의 역할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모든 약속을 기억하게 하셔서 우리가 평안과 용서의 기쁨을 누리게 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구주께 시선을 고정하고 그분의 능력을 믿기만 한다면, 우리는 안전함으로 충만할 것인데, 이는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의 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유혹이 그대를 덮칠 때, 근심과 혼란이 그대를 에워쌀 때, 괴로움과 낙심으로 절망에 빠지기 직전일 때, 오, 바라보라. 믿음의 눈으로 마지막으로 빛을 보았던 곳을 바라보라. 그러면 그대를 둘러싼 어둠이 그분의 영광의 밝은 빛에 사라지게 될 것이다. 죄가 그대의 영혼을 지배하려 하고 양심을 짓누를 때, 불신이 마음을 흐리게 할 때, 구세주께 나아가라. 그분의 은혜는 죄를 제압하기에 충분하다. 그분은 우리를 용서하시고 하나님 안에서 기쁨을 누리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정신이 확대되기를 바라신다. 또한 주님께서는 그분의 은혜를 우리에게 부어 주려고 하신다. …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하늘 아버지와 하나이신 것처럼 주님과 하나가 되어야 하며 하늘 아버지께서는 그분의 아들을 사랑하시는 것처럼 우리를 사랑하실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것과 같은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모든 위기를 이겨낼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앞과 뒤를 지켜주시고, 사방에서 우리를 보호해 주실 것이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259)
◎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롭게 되고, 잘못된 습관과 악한 성향의 노예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많은 일을 행하셨다.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힘쓰지 않겠는가? 여러분은 자칭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며 “우리는 저들을 믿지 않습니다. 저들의 삶이 그리스도인의 본보기라면, 우리는 원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 주변 사람들을 보지 말라. 대신 유일하고 완벽한 본보기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바라보라. 그분을 바라볼 때, 여러분은 그분의 형상으로 변화될 것이다. (높은 부르심, 29)
<4월 17일/금, 더 깊은 연구>
◎ “참된 부(富)” (투쟁과 용기, 194).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은 사람을 부하게 하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잠언 10:22).
모든 사람 중에 틀림없이 솔로몬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솔로몬의 그 인기와 풍성한 영광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사람에게 보이려고 인공적으로 화려 찬란하게 꾸며 놓은 환경에 둘리어 있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의 선망의 대상이 된 그 사람이야말로 가장 불쌍히 여김을 받아야 할 사람이다. 그의 모습은 절망으로 어둡다. 모든 욕망의 방종과 그 이기적인 만족을 통하여 행복을 추구했던 헛되이 보낸 그의 삶을 그가 돌이켜 볼 때, 그를 두르고 있었던 그 모든 영광은 고통과 고뇌에 가득찬 그의 생각의 헛수고에 불과하였다.
번영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각 시대를 통하여 부와 명예에는 항상 겸손과 영성을 해칠 위험이 따랐다. 옮기기 어려운 컵은 빈 컵이 아니라 균형을 잡고 조심스럽게 옮겨야 할 가득 찬 컵이다. 고통과 역경이 슬픔을 가져올 수 있으나 영적 생애에 가장 위험한 것은 번영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지 아니하는 한, 그들이 진리로 성화되지 아니하는 한, 번영은 확실히 그들을 오만으로 기울어지게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가르쳐 주시고 발걸음마다 인도해 주시도록 하나님을 의지하는 겸손의 골짜기에는 비교적 안전이 있다. 그러나 말하자면 높은 봉우리에 선 사람들과 저희 지위로 인해 탁월한 지혜를 가졌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가장 큰 위험 중에 있다. 이러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면 분명히 실패할 것이다.
교만과 야심에 빠지게 되면 언제나 그 생애를 망치게 되는데 이는 아무런 부족도 느끼지 않는 마음 곧 교만이 무한한 하늘의 축복에 대하여 마음을 닫는 까닭이다. 자신을 영화롭게 하는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는 사람은 비록 자기의 능력으로 가장 확실한 부와 가장 만족을 주는 기쁨을 얻었다 할지라도 자신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부족함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무슨 일이든지 행하는 사람은 “여호와께서 복을 주심으로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잠 10:22)신다는 약속의 성취를 알게 될 것이다.
솔로몬의 모든 죄악과 과도함은 그가 지혜를 얻기 위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멈추고 그분 앞에서 겸손히 행하지 않은 큰 실수에서 비롯되었다.
◎ “십자가를 통한 평안” (말씀과 능력, 103).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롬 8:1)
죄인들이 열렬히 십자가를 바라보도록 인도한다면, 그들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구주를 충분히 바라볼 수 있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긍휼과 죄의 흉악함의 깊이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대의 양심이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각성될 때, 그대는 죄의 악함과 죄의 세력과 범죄와 죄의 쓰라림이 무엇임을 얼마만큼 깨닫게 될 때 죄를 매우 미워하게 될 것이다. … 그대는 사유함을 받아 깨끗하여지고 죄에서 해방되기를 갈망할 것이다. 하나님과 화목하고 그분을 닮아가는 것 – 그대가 그것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대가 필요한 것은 평안 곧 마음 가운데 하늘의 사유와 안정과 사랑을 얻는 것이다. 이것은 돈으로 살 수 없고 지력으로도 얻을 수 없고 지혜로도 구할 수 없으니 그대 자신의 노력으로는 그것을 도무지 얻기를 바랄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돈 없이 값없이”(사 55:1) 한 선물로 제공하신다. …
하나님께 나아가서 그분이 그대의 죄를 씻어 버리시고 그대에게 새 마음을 주시기를 구하라. 그리고 그가 허락하셨으니 그렇게 하실 것을 믿으라. … 예수께로 나아가 깨끗이 씻음을 받고 부끄러움이나 후회가 없이 율법 앞에 설 수 있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다.
십자가 밑에서 죄인이 그를 구원하기 위하여 돌아가신 그분을 쳐다볼 때, 그는 충만한 기쁨으로 기뻐할 수 있을 것인데 이는 그의 죄가 사함을 받은 까닭이다. 죄인이 십자가 곁에 믿음으로 무릎을 꿇을 때, 그는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에 도달한 것이다.
하나님께 그분의 사랑하시는 아들을 선물로 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하고 그분이 그대를 위하여 죽으신 것이 헛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성령께서 오늘 그대를 부르신다. 전심을 다해 예수께로 나아오면 그대는 그분의 축복을 누릴 수 있다.
그대가 그 약속들을 읽을 때, 그것들이 말로 할 수 없는 사랑과 긍휼을 표현임을 기억하라. … 그렇다. 오직 하나님께서 그대를 돕는 분이심을 믿으라. 그분은 인간 속에 그분의 도덕적 형상을 회복시키기를 원하신다. 그대가 자복하고 회개함으로 그분에게 가까이 나아갈 때 그분은 자비와 용서로 그대에게 가까이 오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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