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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난적(斯文亂賊)
유교를 어지럽히는 도적이라는 뜻으로, 교리에 어긋나는 언동으로 유교를 어지럽히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斯 : 이 사(斤/8)
文 : 글월 문(文/0)
亂 : 어지러울 란(乙/12)
賊 : 도적 적(貝/6)
출전 : 논어(論語) 자한(子罕)
유가의 입장에서 본 이단 학문의 총칭이다. 유교에서 교리를 어지럽히고 사상에 어긋나는 언행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서, 사문(斯文)을 어지럽히는 적(敵), 이단적인 언사로 유교를 어지럽히거나 유학(儒學)의 본류를 어그러뜨리는 글을 쓰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여기서 文(문)은 유교 등의 정파를 뜻한다. 꼭 유교가 아니라도 요즈음은 고루 쓰인다. 정파에서 갈라져 나와서 기존 정파의 요소들을 일부 수용하지만 대항하는 집단이다. 정파 입장에서는 반역이고 도둑인 것이다.
원래 유교 반대자를 비난하는 말이었으나 조선 중엽 이후 당쟁이 격렬해지면서 부터 그 뜻이 매우 배타적이 되어 유교의 교리 자체를 반대하지 않더라도 그 교리의 해석을 주자(朱子)의 방법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았다.
당시 중국에서 성행하던 육상산(陸象山), 왕양명(王陽明)의 심학(心學) 같은 것도 조선시대에는 용납되지 않았다. 숙종(肅宗) 때의 대학자인 윤휴가 유교 경전을 주자를 따라서 해석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해석했다 하여 사문난적이라는 비난을 받은 것은 좋은 예이다.
공자가 광(匡) 지방에서 위태로운 처지에 빠졌을 때 말했다. “문왕(文王)은 이미 세상을 떠나셨지만 그가 남긴 문화는 나에게 있지 않은가. 하늘이 장차 이 문화를 없애신다면 후세 사람들이 이 문화를 향유하지 못할 것이다. 하늘이 장차 이 문화를 없애려 하지 않는다면 광(匡) 지방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하겠느냐?”
이처럼 사문(斯文)에는 이 문화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공자가 말한 문화란 유가의 이념 아래 계승된 경험의 총화(總和)를 가리킨 것이다. 따라서 사문(斯文) 하면 곧 유가 자체를 일컫는 말이 된다.
그런 문화를 어지럽히고 해친다는 말은 곧 유가에 대한 도전을 뜻하며, 유가의 이념을 수용하지 않으려는 모든 세력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 하면 이단이란 말과 일치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문난적(斯文亂賊)은 꼭 이단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같은 유가내에서도 통용된다. 공자의 적통을 이어받지 않은 유가 학설을 주장하는 것도 곧 이단과 동일한 취급을 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유가사상(儒家思想)과 맞물려 대단히 복잡하게 전개된 상황이기 때문에 여기서 길게 논의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예를 들어 대신하기로 한다.
조선조(朝鮮朝) 중기 때의 학자인 윤휴(尹鑴)는 경학자로서 유가 경전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논어를 읽다가 이상한 구절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향당편(鄕黨篇) 나오는 한 구절이었다.
廐焚. 子退朝, 曰; 傷人乎? 不問馬.
마구간에 불이 났다. 공자께서 조정에서 돌아오셔서 묻기를, “사람이 다쳤느냐?” 하시고, 말(馬)에 대해서는 묻지 않으셨다.
이를 정통 유학자들은 공자의 인본주의(人本主義) 정신이 드러난 구절이라고 해석하였다. 그러나 윤휴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 사랑방도 아닌 마구간에 불이 났는데 말(馬)의 안위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는 것을 인(仁)을 주장한 공자로서 지닐 태도가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말(馬)도 하나의 생명체인데 어찌 말(馬)에 대해서 그렇게 냉담할 수 있을 것인가? 그 결과 윤휴는 원문의 구두가 잘못되었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廐焚. 子退朝, 曰; 傷, 人乎不, 問馬.
마구간에 불이 났다. 공자께서 조정에서 돌아오셔서 묻기를, “사람이 다쳤느냐, 아니냐?” 하시고 다음에 말(馬)에 대해서 물으셨다.
이렇게 한 글자를 달리 끊어 읽자 인명(人命)을 중시하면서 동시에 인의정신(人義精神)이 미물인 말(馬)에까지 미친 공자의 덕성이 요연하게 드러났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경전을 신성시해서 함부로 변경하지 않았던 고루한 유학자들로부터 큰 물의를 일으켜 한때 그는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는 비난을 듣게 되었던 것이다.
뒷날 윤휴(尹鑴)는 사사(賜死)되었는데, 꼭 이 일 때문은 아니었지만 유학의 정통에 도전하는 일을 얼마나 큰 죄악으로 여겼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후기의 정치사상적인 풍토와 관련하여 당시의 집권층이었던 노론계열에서 정적인 남인(南人), 소론계열을 정치적으로 탄압하는 명분으로 쓰였다.
즉 조선 후기의 정국을 주도하게 된 노론계열은 주자(朱子) 성리학(性理學)을 그 인식의 기반으로 삼고 있었는데, 이들과 정치적으로 대립하고 있던 남인(南人)이나 소론(少論)의 경우 주자(朱子)와 다른 견해를 갖거나 양명학(陽明學), 노장학(老莊學) 등 유교와는 다른 사상체계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때 노론(老論)은 남인(南人), 소론(少論)을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아 탄압했다.
숙종(肅宗) 때 송시열(宋時烈)과 대립했던 윤휴(尹鑴)와 박세당(朴世堂)이 각각 중용주해(中庸註解), 사변록(思辨錄) 등을 지어 주자(朱子)와는 다른 독자적인 경전 해석을 내놓았는데, 송시열이 이들을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고 격렬히 비난했던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조선에 수용된 양명학이 양주음왕(陽朱陰王)의 형태로 연구되었던 것도 그러한 사상적 탄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이 조선의 사상계는 주자학(朱子學) 이외의 다른 학문을 배척함으로써 근대적 사상의 싹을 억누르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진전되고 있던 사회, 경제적 변동은 주자학(朱子學) 체계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으므로, 양명학(陽明學)이나 서학(西學) 등 외래학문의 영향을 흡수하는 가운데 주자힉 내부에서부터 근대적 사상의 싹으로서의 실학이 자라나고 있었다.
사문난적(斯文亂賊)
유교(儒敎)를 어지럽히는 도적이라는 뜻으로, 교리(敎理)에 어긋나는 언동(言動)으로 유교(儒敎)를 어지럽히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이 성어는 우리나라에서만 통용되는 말로, 논어(論語) 자한(子罕)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공자(孔子)가 광(匡) 땅에서 위태로운 처지에 빠졌을 때 말하였다. “문왕(文王)이 이미 돌아가셨지만, 그가 남긴 문화(文)가 나에게 있지 않겠는가? 만일 하늘이 장차 이 문화를 없애려 하셨다면 뒤에 죽은 사람이 이 문화에 참여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하늘이 이 문화를 없애려 하지 않으셨으니 광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하겠는가?”
子畏於匡, 曰, 文王旣沒, 文不在玆乎. 天之將喪斯文也, 後死者不得與於斯文也. 天之未喪斯文也, 匡人其如予何.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광 지역을 지날 때 사람들이 공자를 양호(陽虎)로 오인하고 해치려고 했다.
공자는 이런 위기 속에서도 문왕과 주공(周公)이 남긴 학문과 사상을 자신이 이어받아 천명이 자기에게 있으므로 결코 위험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는데, 여기에서 사문(斯文)이 유래했다.
난적(亂賊)은 반란을 일으키는 신하와 부모에게 패역한 자식이란 뜻의 난신적자(亂臣賊子)를 말한다.
송(宋)나라 때 나타난 주자학(朱子學, 성리학.性理學)이 고려 말에 한반도에 전래되어 조선의 건국이념이 된 후, 주자학은 조선의 문화, 사상, 정치 등 사회 전반을 지배하게 되었다.
당시 명(明)나라 때에 대륙에서는 주자학의 지나친 철리주의(哲理主義)에 반대하여 지행합일(知行合一)을 강조하는 양명학(陽明學)이 등장했다.
이 양명학이 조선에 들어와 당시 강화도에 유배되어 있던 일부 몰락한 종친들에게 받아들여져 강화학파(江華學派)가 형성되었고, 그들의 학풍은 주자학에 도전하는 새로운 학문으로 부상하게 된다.
성리학자들은 이런 양명학자들을 유학을 어지럽히는 무리들로 규정했는데, 여기에서 사문난적이 유래했다. 이 말은 중국에서는 사용되지 않고 우리나라에서만 사용된다.
사문난적(斯文亂賊)
조선왕조실록에서
[정의]
유교의 학설과 도리를 어지럽히는 사람을 비난하여 일컫는 말이다.
[개설]
사문(斯文)은 논어(論語) 자한(子罕)에 공자가 '문왕(文王)이 이미 별세하였으니, 문(文)이 이 몸에 있지 않겠는가. 하늘이 장차 이 문(斯文)을 없애려 하였다면 뒤에 죽는 내가 이 문에 참여할 수 없었을 것이다(文王旣沒, 文不在玆乎, 天之將喪斯文也. 後死者不得與於斯文也)'라고 한 데서 비롯한 말이다.
공자가 양호(陽虎)로 오인 받아 광(匡) 땅의 사람들에게 포위되었을 때, '하늘이 사문을 없애려고 하지 않으시니 광 땅의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말한 것이다.
이후 사문(斯文)은 유도(儒道)를 가리키거나 유학자를 지칭하는 말로 널리 쓰였고, 사문난적(斯文亂賊)은 사문 즉 유도를 어지럽히거나 유학자를 비난하는 경우 쓰이게 되었다.
특히 조선후기에는 집권층인 노론에 의해서 남인이나 소론을 정치적으로 탄압하는 명분으로 쓰였다.
노론 계열은 주자성리학을 묵수하고 강화하면서, 양명학, 노장학뿐만 아니라 주자의 해석에 반대하거나 다른 견해를 제시하는 경우에도 이단시하고 사문난적으로 탄압하였다.
[내용 및 특징]
사문난적은 특히 성리학이 발달한 조선후기에 정적을 비난하는 말로 자주 사용되었다. 노론의 영수 송시열은 주자의 '중용장구'를 개정한 남인 학자 윤휴를 사문난적으로 몰았다.
(숙종실록 13년 2월 4일)
사문난적으로 규정되면 그의 후손이나 친구들도 불리한 처벌을 받았다. 예컨대 1839년(헌종 5)에 윤경규(尹敬圭)를 혜릉참봉(惠陵參奉)에 제수하자, 성균관의 유생들이 주자와 송시열을 모신 영양(英陽)의 운곡서원(雲谷書院)을 훼철(毁撤)하였던 윤광안(尹光顔)의 아들이라고 하여 반대하였다.
(헌종실록 5년 2월 18일)
또한 1851년(철종 2)에는 영의정을 지낸 권돈인(權敦仁)이 사문난적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는데, 정이천의 '역전(易傳)', 주자의 '소학(小學)', '근사록(近思錄)'을 비판하여 사문난적으로 규정된 송능상(宋能相)을 옹호하였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철종실록(哲宗實錄) 2년 9월 9일)
고종 대에는 천주교 등 서학을 옹호하는 경우 사문난적이라고 비판받기도 하였다.
1881년(고종 18) 수신사(修信使) 김홍집(金弘集)이 황준헌(黃遵憲)의 '사의조선책략(私擬朝鮮策略)'을 가지고 들어오자, 이만손(李晩孫) 등 영남 유생 1만여 명이 그 책의 내용을 조목조목 들어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다.
책에서 주장하는 바도 문제일 뿐더러 그 책의 저자인 황준헌이 자진해서 예수를 믿는 사문난적의 앞잡이기 때문이라는 것도 한 이유였다.
(고종실록 18년 2월 26일)
이후로도 한용석(韓容奭)이나 유지영(柳智永)이 송시열의 이름을 부르고 명예를 훼손하였다고 하여 사문난적으로 몰리기도 하였다.
(고종실록 26년 8월 30일)
이처럼 조선후기는 성리학이 교조화 되고 노론이 권력을 잡으면서 정자나 주자, 심지어는 송시열을 비판하는 경우에도 사문난적으로 규정하고 성토하였던 것이다.
숙종실록 18권, 숙종 13년 2월 4일 임자 2번째기사 1687년 청 강희(康熙) 26년
봉조하 송시열이 나라를 다스리는 올바른 도리와 경계를 상소하다
(...)
불행히도 윤휴(尹鑴)란 사람이 당초부터 이황, 이이의 말을 배척하고 문간공(文簡公) 성혼(成渾)은 들어서 말하지 않았으며, 성설(成說)054) 을 저술하여 신(臣)에게 보냈기에 신이 깜짝 놀라며 책망하니, 하늘을 쳐다보고 웃으며 신더러 무엇을 알겠느냐고 했었습니다.
이미 주자의 주설(註說)을 옳지 않다 하여 반드시 자기의 소견대로 바꾸어 놓았고, 중용(中庸)에 대해서는 장구(章句)를 없애버리고 자신이 새로 주(註)를 만들어 그의 무리들에게 주었습니다.
旣以朱子註說爲不是, 必以己見易之, 至於中庸, 則掃去章句而自爲新註, 以授其徒.
또 그가 종말에는 자신의 말을 저술하여 자신을 공자(孔子)에게 비하고 염구(冉求)를 주자로 쳐놓아, 그가 시종 패류(悖謬)한 짓 하기를 이에 이르도록 했으니, 세상의 도의(道義)에 해가 됨이 심하였습니다.
한때의 소위 고명하다는 사람들이 그에게 중독(中毒)되었고, 윤증의 아비 윤선거(尹宣擧)가 더욱 심한 사람입니다.
윤선거는 곧 문간공(文簡公)의 외손(外孫)이어서 그 학문이 반드시 올바를 것인데도 지금 이러하므로, 그를 본받아 윤휴에게 투합하는 사람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으니, 바로 고영(顧榮)과 하순(賀循)이 진(晋)나라로 돌아가자 강동(江東) 사람들이 마음을 돌리지 않을 수 없게 된 것 과 같은 일입니다.
신(臣)이 처음에는 자신을 망각하고 윤휴를 배척하다가 이제 와서는 또한 윤휴를 놓아두고 윤선거를 배척했습니다. 성내에 다투는 신(臣)의 성질로 그 말이 맞지 않으면 어찌 과격하게만 되었을 뿐이겠습니까?
윤휴는 곧 사문난적(斯文亂賊)이고, 공(公)은 곧 당여(黨與)로서 주자를 배반한 사람이다. 춘추(春秋)의 법에 난신적자(亂臣賊子)를 다스리려면 반드시 먼저 당여부터 다스렸으니, 왕자(王者)가 나오게 된다면 마땅히 공이 윤휴보다 먼저 법에 걸리게 될 것이라고 했었습니다.
鑴是斯文之亂賊, 而公乃黨助而背朱子, 春秋之法, 治亂賊, 必先治黨與, 有王者作, 則公當先鑴而伏法矣.
(...)
▶️ 斯(이 사/천할 사)는 ❶형성문자이나 회의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뜻을 나타내는 날 근(斤; 도끼)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其(기, 사)로 이루어졌다. 斤(근; 도끼)으로 잘라 버리다의 뜻이 있다. 음(音)이 此(차)와 통하여, 지시대명사로 빌어 쓴다. ❷회의문자로 斯자는 ‘이’나 ‘이것’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斯자는 其(그 기)자와 斤(도끼 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其자는 대나무를 잘라 엮어 만든 바구니를 그린 것이다. 여기에 斤자가 더해진 斯자는 본래 대나무를 잘라 바구니를 만든다는 뜻을 표현했었다. 그러나 후에 ‘이것’이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면서 본래의 의미는 더는 쓰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 斯(사)는 ①이, 이것 ②잠시(暫時), 잠깐 ③죄다, 모두 ④쪼개다, 가르다 ⑤떠나다, 떨어지다 ⑥희다, 하얗다 ⑦다하다 ⑧떨어지다 ⑨천(賤)하다 ⑩낮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어떠한 일에 관계되는 그 사회를 사계(斯界), 이 세상을 사세(斯世), 이 백성을 사민(斯民), 이 사업 또는 그 일을 사업(斯業), 이 학문이나 그 학문을 사학(斯學), 빨리 또는 속히를 사속(斯速), 이러함을 여사(如斯), 이러 이러하게를 이르는 말을 여사여사(如斯如斯), 어느 사이인지도 모르는 동안이라는 말을 어사지간(於斯之間), 그때를 한창으로 한다는 말을 어사위성(於斯爲盛), 그것으로 만족한다는 말을 어사족의(於斯足矣), 새가 높이 날 때는 바람은 그 밑에 있다는 뜻으로 높은 곳에 오름을 이르는 말을 풍사재하(風斯在下), 유교를 어지럽히는 도적이라는 뜻으로 교리에 어긋나는 언동으로 유교를 어지럽히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사문난적(斯文亂賊), 난초같이 꽃다우니 군자의 지조를 비유한 말을 사란사형(似蘭斯馨) 등에 쓰인다.
▶️ 文(글월 문)은 ❶상형문자로 攵(문)의 본자(本字)이다. 사람 몸에 ×모양이나 心(심)자 꼴의 문신(文身)을 한 모양이다. 살갗에 바늘로 찔러 먹물이나 물감 등으로 글씨나 그림이나 무늬를 들이는 것을 문신이라 하고, 형벌로서 하는 수도 있지만 축하(祝賀)하는 표로도 하였다. 나중에 '무늬', '글자', '학문', '문화' 따위의 뜻에 쓰였다. ❷상형문자로 文자는 '글'이나 '문장'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文자는 양팔을 크게 벌린 사람을 그린 것이다. 그런데 文자의 갑골문을 보면 팔을 벌리고 있는 사람의 가슴에 어떠한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몸에 새긴 '문신'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文자의 본래 의미는 '몸에 새기다'였다. 그러나 文자는 시간이 지나면서 '문서'나 '서적'과 같이 글을 새겨 넣은 것과 관련된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文자가 이렇게 글자나 서적과 관계된 뜻으로 쓰이게 되면서 지금은 여기에 糸(실 사)자를 더한 紋(무늬 문)자가 '무늬'라는 뜻을 대신하게 되었다. 文자는 부수로 지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상용한자에서는 관련된 글자가 없다. 그래서 文(문)은 (1)문장(文章) (2)무(武)에 대하여 학문, 학예, 문학, 예술 등을 이르는 말 (3)어떤 명사 아래에 쓰이어 문서, 문장(글)이라는 뜻을 나타내는 말 (4)신발의 치수의 단위 (5)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글월, 문장(文章) ②어구(語句; 말의 마디나 구절), 글 ③글자 ④문서(文書) ⑤서적(書籍), 책 ⑥문체(文體)의 한 가지 ⑦채색(彩色), 빛깔 ⑧무늬 ⑨학문(學問)이나 예술(藝術) ⑩법도(法道), 예의(禮義) ⑪조리(條理) ⑫현상(現狀) ⑬산문(散文) ⑭결, 나뭇결 ⑮얼룩, 반점(半點) ⑯돈의 한 가지, 그 돈의 개수를 나타내는 말 ⑰신발의 치수의 단위 ⑱아름다운 외관(外觀) ⑲주문왕의 약칭(略稱) ⑳빛나다, 화려하다 ㉑아름답다, 선미(鮮美)하다 ㉒몸에 새기다 ㉓꾸미다 ㉔입묵(入墨)하다, 자자(刺字)하다 ㉕어지러워지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책 책(冊), 글 서(書), 글 장(章), 문서 적(籍),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호반 무(武), 말씀 언(言)이다. 용례로는 생각이나 느낌이나 사상 등을 글로 표현한 것을 문장(文章), 글자나 숫자 따위로 일정한 뜻을 나타낸 것을 문서(文書), 공적인 성격을 띤 문서나 서류를 문건(文件), 좋은 글을 가려서 뽑음을 문선(文選), 옛날의 제도나 문물을 아는 데에 증거로 되는 기록이나 서적을 문헌(文獻), 글의 성분들이 서로 맺고 있는 관계를 문맥(文脈), 글의 구절을 문구(文句), 글을 짜고 꾸미는 법칙을 문법(文法), 글을 볼 줄도 쓸 줄도 모름을 문맹(文盲), 살갗을 바늘로 찔러 먹물이나 다른 물색을 넣음 또는 그렇게 만든 몸을 문신(文身), 한 사람의 시문을 모아서 엮은 책을 문집(文集), 서재에 꼭 있어야 할 네 벗 즉 종이와 붓과 벼루와 먹을 일컫는 말을 문방사우(文房四友), 전문식과 무략을 다 갖추고 있음을 이르는 말을 문무겸전(文武兼全), 문화의 모든 산물이 서로 오고 감을 일컫는 말을 문물교류(文物交流), 남의 글이나 저술을 베껴 마치 제가 지은 것처럼 써먹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문필도적(文筆盜賊), 허물도 꾸미고 잘못도 꾸민다는 뜻으로 잘못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뉘우침도 없이 숨길 뿐 아니라 도리어 외면하고 도리어 잘난 체함을 일컫는 말을 문과식비(文過飾非), 까막눈인 사람들을 가르쳐 글 모르는 이가 없도록 하는 일을 일컫는 말을 문맹퇴치(文盲退治), 문장이 썩 잘 되어서 한 점도 가필할 필요가 없을 만큼 아름다움을 이르는 말을 문불가점(文不加點), 문도 번거롭고 예도 번거롭다는 뜻으로 규칙이나 예절이나 절차 따위가 번거롭고 까다로움을 일컫는 말을 번문욕례(繁文縟禮), 가난한 사람은 농사 짓느라고 여가가 없어 다만 삼동에 학문을 닦는다는 뜻으로 자기를 겸손히 이르는 말을 삼동문사(三冬文史), 유교를 어지럽히는 도적이라는 뜻으로 교리에 어긋나는 언동으로 유교를 어지럽히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사문난적(斯文亂賊), 어떤 일을 시작하기는 쉬우나 이룬 것을 지키기는 어렵다는 뜻을 이르는 말을 창업수문(創業守文), 용과 같이 위엄 있는 모양을 하고 있으나 실은 물고기라는 뜻으로 옳은 듯하나 실제는 그름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어질용문(魚質龍文) 등에 쓰인다.
▶️ 亂(어지러울 란/난)은 ❶형성문자로 乨(란), 乱(란), 釠(란)은 통자(通字), 乱(란)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새 을(乙=乚; 초목이 자라나는 모양)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란(실패에 감긴 실의 상하에 손을 대고 푸는 모양으로 일이 어지러움)으로 이루어졌다. 얽힌 것을 바로잡는 일로, 나중에 얽힌다는 뜻으로 쓰였다. ❷회의문자로 亂자는 '어지럽다'나 '손상시키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亂자는 실타래를 손으로 풀고 있는 모습과 乙(새 을)자가 결합한 것이다. (난)자는 엉킨 실타래를 손으로 풀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금문까지만 하더라도 '어지럽다'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소전에서는 여기에 乙자가 더해지면서 도구를 이용해 실타래를 푸는 모습을 표현하게 되었다. 그래서 亂(란)은 ①어지럽다 ②어지럽히다, 손상시키다 ③다스리다 ④음란하다, 간음하다 ⑤무도하다, 포악하다 ⑥물을 건너다 ⑦가득 차다, 널리 퍼지다 ⑧난리(亂離), 반란(叛亂) ⑨위해(危害), 재앙(災殃) ⑩음행(淫行), 음란(淫亂)한 행위 ⑪버릇없는 행동 ⑫풍류(風流), 악장(樂章) ⑬요지(要旨) ⑭함부로, 마구잡이로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다스릴 치(治), 다스릴 리(理)이다. 용례로는 전쟁이나 재해 등으로 세상이 소란하고 질서가 어지러워진 상태를 난리(亂離), 어지럽게 마구 추는 춤을 난무(亂舞), 총이나 활 따위를 함부로 쏘는 것을 난사(亂射), 이리저리 흩어져서 질서나 체계가 서지 않는 일을 난맥(亂脈), 질서없이 여기 저기서 마구 나서는 것을 난립(亂立), 몹시 거칠고 사나움을 난폭(亂暴), 어지러운 판국을 난국(亂局), 어지럽게 함부로 들어가는 것을 난입(亂入), 공기나 물의 불규칙한 흐름을 난류(亂流), 사물이 얽히고 뒤섞여 어지럽고 수선스러움을 난잡(亂雜), 질서를 어지럽히며 마구 행동하는 것 또는 그런 행동을 난동(亂動), 조화나 정상을 잃은 흐트러진 상태를 난조(亂調), 마구 때림을 난타(亂打), 어지러워 살기가 힘든 세상을 난세(亂世), 세상이 어지러운 때를 난시(亂時), 양편이 서로 뒤섞여서 어지럽게 싸움을 난투(亂鬪), 갈피를 잡을 수 없이 어지러움을 혼란(混亂), 시끄럽고 어지러움을 요란(搖亂), 뒤흔들어서 어지럽게 함을 교란(攪亂), 음탕하고 난잡함을 음란(淫亂), 야단스럽고 시끄러움을 소란(騷亂), 도덕이나 질서나 규칙 등이 어지러움을 문란(紊亂), 크게 어지러움이나 큰 난리를 대란(大亂), 마음이 어둡고 어지러움을 혼란(昏亂), 어수선하고 떠들썩함을 분란(紛亂), 왜인이 일으킨 난리를 왜란(倭亂), 사변으로 일어난 소란을 변란(變亂), 나라 안에서 정권을 차지하려고 싸움을 벌이는 난리나 반란을 내란(內亂), 나라를 어지럽게 하는 신하와 어버이를 해치는 자식 또는 불충한 무리를 일컫는 말을 난신적자(亂臣賊子), 한 오라기의 실도 흐트러지지 않았다는 뜻으로 질서나 체계 따위가 잘 잡혀 있어서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일사불란(一絲不亂), 같은 패 안에서 일어나는 싸움을 일컫는 말을 자중지란(自中之亂), 헝클어진 삼을 잘 드는 칼로 자른다는 뜻으로 복잡하게 얽힌 사물이나 비꼬인 문제들을 솜씨 있고 바르게 처리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쾌도난마(快刀亂麻), 마음이 번거롭고 뜻이 어지럽다는 뜻으로 의지가 뒤흔들려 마음이 안정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심번의란(心煩意亂) 등에 쓰인다.
▶️ 賊(도둑 적)은 ❶회의문자로 贼(적)은 간자(簡字), 戝(적)은 동자(同字)이다. 무기(武器)(戎)를 들고 재물(貝)을 훔치는 무리라는 데서 도둑을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賊자는 '도둑'이나 '역적'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賊자는 貝(조개 패)자와 戎(병기 융)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戎자는 갑옷과 창을 함께 그린 것으로 모든 병기를 망라하는 글자이다. 그러나 금문에 나온 賊자를 보면 貝자와 戈(창 과)자, 人(사람 인)자가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재물 앞에 창을 들고 있는 사람을 그린 것으로 무력으로 재물을 강탈했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賊자는 무기로 위협하며 재물을 강탈하는 '도둑'이나 '역적'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賊(적)은 ①도둑 ②도둑질 ③역적(逆賊) ④벌레의 이름(마디를 갉아먹는 해충) ⑤사악(邪惡)한 ⑥나쁜 ⑦도둑질하다 ⑧해(害)치다 ⑨학대(虐待)하다 ⑩그르치다 ⑪죽이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도적 구(寇), 도둑 도(盜)이다. 용례로는 해치려는 마음 또는 남의 물건을 도둑질하는 마음을 적심(賊心), 도적을 경계함 또는 도적이 일어날 기미가 보임을 적경(賊警), 도둑에게 재난을 당함을 적난(賊難), 도둑을 벌하는 법률을 적률(賊律), 도둑에게 당하는 변을 적변(賊變), 도둑의 괴수를 적수(賊首), 도둑질하는 버릇을 적습(賊習), 임금이나 부모에게 거역하는 불충이나 불효한 사람을 적자(賊子), 도적이 떼를 지어 모여 있는 곳을 적둔(賊屯), 도둑으로 생기는 근심을 적환(賊患), 도둑에게서 받은 피해를 적해(賊害), 바다를 다니며 배를 습격하여 재물을 빼앗는 도둑을 해적(海賊), 말을 타고 떼를 지어 다니는 도둑을 마적(馬賊), 산 속에 살며 지나가는 사람의 재물을 빼앗는 도적을 산적(山賊), 남의 재물을 마구 빼앗으며 행패를 부리고 돌아 다니는 무리를 화적(火賊), 밖으로부터 자기를 해롭게 하는 도적을 외적(外賊), 무장을 하고 떼를 지어 다니면서 살인과 약탈을 일삼는 도둑을 비적(匪賊), 강한 도적을 강적(强賊), 흉악한 도둑을 흉적(凶賊), 큰 도둑을 거적(巨賊), 과거에 급제하려고 옳지 못한 짓을 꾀하던 사람을 과적(科賊), 주로 집권자에게 반대하여 세상을 어지럽게 하는 도둑을 난적(亂賊), 어떤 나라나 사회 안에 있는 도둑이나 역적을 내적(內賊), 자질구레한 물건을 훔치는 도둑을 서적(鼠賊), 도둑이 도리어 몽둥이를 든다는 뜻으로 잘못한 사람이 도리어 잘 한 사람을 나무라는 경우를 이르는 말을 적반하장(賊反荷杖), 도둑이 나가고 난 후에야 문을 잠근다는 뜻으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을 적출관문(賊出關門), 역적은 백발이 되도록 오래 살 수 없다는 말을 적무백수(賊無白首), 나라를 어지럽게 하는 신하와 어버이를 해치는 자식 또는 불충한 무리를 일컫는 말을 난신적자(亂臣賊子), 간사한 신하와 불효한 자식을 일컫는 말을 간신적자(奸臣賊子), 문을 열고 도둑을 맞아들인다는 뜻으로 스스로 화를 불러들임을 이르는 말을 개문납적(開門納賊), 남의 시문을 표절하여 쓰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슬갑도적(膝甲盜賊), 남의 글이나 저술을 베껴 마치 제가 지은 것처럼 써먹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문필도적(文筆盜賊), 남의 재물을 마구 빼앗으며 행패를 부리고 돌아 다니는 무리를 일컫는 말을 명화도적(明火盜賊)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