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잎 그 에스프리
崔 秉 昌
그대여, 노오란 은행잎을
금빛 눈으로 바라보지 못한 사람은
은행잎이
은행나무의 손바닥인걸 알지 못합니다
수많은 날들의 온유한 빛을 모아서
한 때의 푸른 날들로 펼쳐놓았다가
어느 가을 날
사랑하지 않고는 행복할 수가 없어
아낌없이 내어주는 몸을 떠나
뿌리의 꽃으로
홀로 설 수밖에 없는 고독한 사랑,
살아있는 시간들을 위하여
사랑하는 서느라운 손을 위하여
다시 부는 청정한 바람 앞에
신비로운 빛깔로 흘러내리는
노오란 부대낌을 텍했는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익숙한 채로
생명의 긴장을 끊임없이 내려놓는다지만
노오란 손은 그저 잠재된 채
홀로 밟히는 작은 적정(寂精)만으로
생명을 담고 가는
그저 작디작은 손일 뿐입니다
그대여, 손과
손들이 밀리고 겹치어
노오랗게 어우러져 있습니다
가을빛이 맑은 것은 햇살 때문이 아니라
그것은 질펀하게 깔리는 은행잎
그 작디작은 손바닥만큼의 금빛 무늬였으니
정작 날카로운 빗금하나 부딫쳐올지라도
손을 휘젓거나 흔들지도 않을
겸손한 경이로움을
어찌 다 알 수 있겠습니까마는
우리는 정작 어디쯤에서
활활 몸을 털어 금빛 수(繡)를 내어야 할까요
그대여, 노오란 은행잎을
금빛 눈으로 바라보지 못한 사람은
은행잎이
은행나무의 손바닥인걸 알지 못합니다.
<1999. 11.>
<시작노트>
은행잎들이 노랗게 대지 위에 쌓여갑니다.
더불어 아름다운 음악이 절정처럼 노오랗게 흐르는데
노오란 손의 의미는 참으로 따스한 시간이 됩니다
가슴 밑바닥에서 지극한 몸짓으로 손에 손에 눈을 그려 넣은
<칼릴 지브란>의 그림을 펼쳐보듯 비속했던 자아도 영혼의
눈을 뜨고 있는데, 흔들리는 문화와 문명은 최후의 죄절도
무색하게 살아있는 <에테르>도 무력하게 만들고 있으니,
그렇습니다, 사랑할 시간 그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리니
남아있는 존재와 인식을 더욱 충만토록 애써야 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