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매도(觀梅島) 다도해 국립공원/ 관매도 이야기(1)
(위 그림은 관매도 8경 중 3경 꽁돌)
30여 년 전 서울 장위동에서 살 때 순댓국 단골집에 점심 먹으러 갔다가 관매도가 고향인 곱사등이 청년을 만나서 아름다운 관매도를 소개 받은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제주도, 거문도 다음 세 번째로 크다는 진도(珍島)에서는 물론, 국립공원 다도해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섬 중에 하나가 관매도(觀梅島)라는 것이다.
“홍도(紅島)가 관매도(觀梅島)에 와서 보면 그동안 다도해(多島海)에서 최고의 명승지로 자랑해 오던 얼굴이 부끄러워 스스로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말 것이다.”라고 진도의 토박이 노인들이 자랑할 만큼 관매도가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 관매도가 보고 싶어 몇 번이나 시도를 하다가도 실패하고 말았다.
그것은 무엇보다 교통 문제 때문이었다. 우리나라 전남 맨 끝에 있는 진도의 팽목항(彭木港)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는 섬인데다가, 인구도 640명(1994년) 내외로 이동하는 인원이 적어서 바다에 조금만 바람이 거세어도 배가 출항을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말처럼 남해고도인 관매도의 절경이 입소문 타고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하다가 매스컴의 총아 KBS TV에 ‘1박2일’에 소개 되면서부터 전 국민이 가보고 싶은 섬이 되어 격일이었던 출항이 평일에도 3회 이상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섬이 되었다.
*. 관매도(觀梅島) 가는 길
지도를 놓고 보면 한반도의 서남단 끝에 진도(珍島)가 있다.
그 진도에서 가장 가까운 대도시가 목포(木浦)다. 목포는 항구라서 자고로 진도(珍島)에는 항구가 꼭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항구(港口) 없는 섬의 신세로 이제까지 지내왔다. 그러다가 1980년에 와서야 자그마한 어촌이었던 서망리와 팽목리에 항구가 생겼다.
그 한적한 팽목항에서도 40km나 떨어진 곳에 관매도가 있다. 그 아래로 더 가면 추자도(楸子島)가 있을 뿐이니 관매도는 남해의 절해고도다.
절해고도(絶海孤島)란 먼 바다의 외딴 섬이란 뜻이다.
그런 외딴 섬 관매도의 그 아름다운 풍광(風光)이 전해 오다가 세상 사람들 앞에 나선 것이다.
그래서 관매도로 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불원천리(不遠千里)하고 전국에서 진도를 찾아오게 되었으니, 보배스런 섬이라는 진도(珍島) 중에 진도(珍島) 관매도(觀梅島)가 된 것이다.
서울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편리하게 관매도를 가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 동서울고속버스터미널 진도 행-(5:30) - 진도공용버스터미널 팽목 행-(1:10) - 팽목항 관매도 행 (2:10 )
° 용산역 KTX 목포행-(2:58) - 목포시외터미널 진도행 - 진도공용버스터미널 팽도행 - 팽도항 관매도 행
여행자에게는 시간이 돈이라는 생각에 KTX를 이용하였더니 용산서 목포까지 2시간 28분,/ 진도서 팽목항 1시간 10분/ 진도읍서 팽목항까지 50분/ 팽목항에서 관매도까지 2시간이 걸렸다.
팽목항에 도착하였으나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바다에는 뿌옇게 안개로 흐려 있고, 강풍으로 거센 파도가 일고 있어 출항이 금지 되는 바람에 팽목항에서 1박하여야 했다.
그러나 팽목항의 숙박 시설이 너무나 열악하여 망설였더니, 이런 마음을 눈치 챈 주인이 섭했던지 우리를 강제로 내쫓다시피 한다.
‘나쁜 사람들! 욕이 절로 난다.“100-1=0”도 모르는 장사치들! 백번 잘하다가도 한번만 잘못하면 나무아미타불의 세계가 장사라는 것도 모르는가?’
하릴없이 없이 우리 부부는 근처의 이 집 저 집을 헤매다가 50분 거리의 진도 읍내로 되돌아가야만 했다. 성수기가 아니라서 팽목리의 민박은 거의 다 빈집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여행길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도 오히려 특별한 만남도 있는 것이어서 읍내 가는 버스에서 진도 읍내 수산시장에서 횟집을 경영하는 팽목리에 사는 그곳 주민을 만나는 행운을 얻었다.
그의 상가는 노량시장처럼 아래층 어시장에서 회를 파는 가개로 위층에서 양념을 사 먹는 곳이어서, 주인의 호의로 서울의 반값에 농어를 사고 서비스로 주는 도미로 식도락을 즐길 수 있었다.
‘주인은 돈 먹고 살지? 허나 손님은 서비스를 먹고사는 거야’ 하면서-.
여기 오는 길에 오늘은 출항을 할 수 없는 날씨라는 확인을 하고 목포에서 점심을 아점(아침 점심) 겸해서 먹으려고 목포시장에서 전통한정식 집을 찾아 갔었다.
한상에 6만원인데 1만원만 더 보태면 한국산 큰 갈치구이와 세발낚시까지 나온다 하여 난생처음 큰맘 먹고 시켰다.
전라도 특유의 푸짐한 반찬과 안주 그리고 음식 맛을 평소에 신뢰하여 오던 사람이기 때문에 식도락에 투자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랬더니 홍어, 묵은김치, 돼지 구이의 3합에다가 전복회, 검붉은 빛이 도는 쇠고기 육회, 새하얀 빛이 감도는 갑오징어 회, 밥 비벼 먹으라는 꽃게장 등에다가 특별 주문한 산 세발낚지와 갈치 토막 등이 우리 부부를 행복하게 하였다.
여행은 잘 보고, 잘 먹고, 잘 자는 3박자가 갖추어야 한다더니 찾아간 모텔도 장급 수준이어서 우리는 행복한 잠을 청할 수 있게 하였다.
여행의 둘째 날 아침, 팽목으로 다시 나오니 전날 항구에 자욱하던 안개는 씻은 듯이 걷혀 있고 약간의 파도가 일고 있을 뿐이었다.
9시 50분에 드디어 배는 16대의 차와 승객을 싣고 팽목항을 떠난다.
배는 관매도로 직항하지 않고 몇 개의 섬을 거쳐 가고 있었지만, 초행길의 나그네에게는 이 섬 저 섬 구경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바라던 즐거운 일이다.
조도 어류포항을 지나서 배는 하조도와 상조도를 잇는 조도대교를 밑을 지나고 있다.
조도(鳥島)는 페리를 타고 팽목항에서 4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넓이가 57.1㎢의 섬으로 여의도보다 약간 적은 5.73㎢의 관매도보다 열 배 이상의 큰 섬이다.
섬 이름 ‘鳥島(조도)’는 주변에 작은 섬들이 새때처럼 떠 있다 해서 생긴 이름이다.
조도는 이 주변 섬들의 어미섬 격으로 면소재지여서 다른 섬에서는 폐교된 초·중학교는 물론 고등학교가 있어 주변 섬사람들에게는 생활공간이 되는 섬이다.
이곳 관광은 배 시간에 맞추어 기다리고 있는 중형 버스를 타고 구경해 볼 수도 있지만 승용차가 없으면 아주 불편한 모양이다.
외지에서 승용차를 몰고 온 사람들은 이곳에 내려서 하조도 남단의 신전해수욕장이나 하조도의 자랑인 등대를 보고, 환상적인 연도교(連島橋)인 조도대교(鳥島大橋)를 지나 도리산전망대에 올라 아름다운 다도해(多島海)를 구경을 하고 이곳에 차를 세워 두고 관매도로 간다.
관매도는 걸어다는 섬이지 차를 타고 다니는 섬이 아니기 때문이다. 차는 관매도를 구경하고 오는 길에 배에 싣고 가는 것이다.
페리호는 조도에 이어 - 라베도- 관사도 - 소마도- 모도- 대마도를 둘러 관매도로 간다.
*. 관매도 이야기
어디를 가나 그 섬에 대한 가장 많은 정보를 구할 수 있는 곳이 선착장(船着場)이다.
그러나 오늘은 비수기여서 매물도 매표소는 배 쪽에 그 업무를 모두 맡기고 굳게 닫쳐 있어서 유인물은 구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그곳에는 선박 운임표, 자전거의 요금, 관매도 지도, 관매8경 사진 들이 있어 하나하나 빠짐없이 디카에 담았다.
이들은 여행이 끝나고 귀가해서 쓸 여행기의 소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그중 관매도 큰 지도 아래 붉은 보단이 있어 꾸욱- 눌러 보았더니 예쁜 여자의 아나운스멘트가 시작된다.
-관매도란 이름은 옛날에는 '볼매도'라 하던 것을 제주도로 귀양 가던 조(趙) 선비가 이곳에 들려 관매 해변에 매화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것을 보고 볼 ‘관(觀)’, 매화 ‘매(梅)’라 하여 관매도(觀梅島)라고 불렸답니다.
관매도에서 지형· 지질의 경관이 우수한 곳을 ‘관매 8경’ 으로 지정하였는데 거기에 독립문바위와 구성바위를 더하여 ‘관매10경’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이 외에도 천연기념물 제212호인 후박나무 2구루와 관호마을에 두레박 우물, 마을 돌담길 등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관매도에는 3개의 마을이 있는데 관매마을(1구), 관호마을(2구), 장산마을(3구)이 그것입니다.
이 세 마을은 ‘전국 국립공원 최초의 명품마을’로 지정 되어 그 가치가 빛나고 있습니다.
선착장에 올라서 왼쪽 해변 쪽으로 가면 이 섬에서는 가장 큰 관매마을과 장편마을이 나오고, 오른쪽으로 가면 관호마을인데 아기자기한 꽁돌· 돌묘와 하늘다리를 가는 길입니다.
*. 돈대산(墩臺山) 산행
우리 부부는 관매마을에 민박을 정하여 짐을 맡겨 놓고 선착장으로 다시 나와서 ‘돈대산 1.2km’ 의 이정표가 있는 나무 층계를 따라 정상을 향한다.
낯선 고장에 갔을 때 그 고장의 진면목(眞面目)을 가장 잘 보는 길은 그 고장의 산을 오르는 것이다.
그 고장 전체를 굽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섬 여행에서는 더욱 그러하였다.
아내는 나보다 앞서 산을 잘도 탄다. 정상인보다 체중이 적게 나가서인 것 같은데 몸이 약해서 지구력이 없는 것이 안타깝다.
우리 국토 중 서남쪽의 가장 끝 섬 관매도에 아내와 함께 온 것은 다른 여러 가지 이유도 있었지만 며칠 전 일산 삼성생명의 벽에서 본 멋진 글귀 탓이기도 하다. ‘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자.’
부부는 혼자 가는 사람이 아니라 인생길을 함께 가는 사람이요, 함께 멀리 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높이 오르는 새가 멀리 본다는 말 같이 산은 평범한 산이지만, 굽어보는 경치는 오를수록 비범(非凡)을 더해 간다.
그게 아쉬워 뒤돌아보고 카메라에 담기를 탐하다 보니 아내와 자꾸 멀어만 간다.
기록한다는 것은 한번 사는 인생이 아니다. 한번 가본 여행이 아니다. 꼭꼭 숨어버릴 추억의 창을 노크하는 것이 글이요, 그림이기 때문이다. 뒤돌아 보면, 다시 뒤돌아 보면,
관매도 해변을 향하여 몰려오는 저 하얀 파도!
그림 같이 붉고 파란 기와지붕의 관호마을 앞의 호수 같은 바다!
볼 ‘觀(관)’, 호수 ‘湖(호)’ 아, 그래서 관호마을(觀湖村)이었구나! 그 어원도 저절로 깨닫게 한다.
내일 가보려는 꽁돌과 하늘다리가 있는 저 바위, 그 끝에 있는 그림 같은 아름다운 하얀 등대!
고개를 돌리면 장산마을 산록의 화려한 노란 유채꽃밭! 그리고 수석 같은 저 섬 섬 섬 들-.
그것들을 모두 카메라에 담아가고 싶은 욕심은 감탄으로 이어지며, 전신의 흐르는 땀이 감동의 눈물 같았다.
이런 순간 나는 세상의 어느 누구보다 행복하고 찬란하다.
이러구러 돈대산 정상에 이르렀다.
정상에는 정상석 대신 나무 널판에 쓴 ‘돈대산 219 m’가 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과 삼각점이 전부다.
나는 관매도 도민(島民)에게 몇 가지 묻고 싶다.
3구나 된다는 마을이 이 소중한 산에 정상석 하나 세울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하단 말인가? 가난 중에 가난이 마음의 가난이라던데-.
산 이름도 잘못된 것 같다.
‘돈대(墩臺)’라는 낱말은 산 이름으로는 부적격한 단어로 고유명사가 아닌 보통명사다.
돈대(墩臺)라는 말은 ‘약간 높직하고 평평한 땅(ground; heights.)을 뜻하는 말로 수원성 돈대, 강화 갑곶동대 등이 그 예다. 우리가 지나쳐 온 조도의 도리산의 돈대(통신탑)와는 그 의미가 사뭇 다르다.
관매산이란 좋은 이름을 제쳐두고 왜 구태어 ‘돈대산’라 이름하였을까?
다음으로 묻고 싶은 것이 돈대산의 높이다.
모든 서적을 조사해 보면 산 높이가 219m로 나오는데 어찌하여 관매도 일대의 모든 지도에는 33.1로 표기하고 있는가.추측컨데 이곳 어느 분이 고도계의 사용법도 제대로 모르는 분의 과신한 착각 같다. 잘못은 빨리 수정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니 유념할 일이다.
*. 관매제1경 관매도 해변
배를 타고 관매도가 보이기 시작할 무렵 우리가 맨 먼저 보게 되는 것이 활처럼 휜 2.2km의 고운 백사장과 숲이다.
이곳이 관매 8경 중 제1경 관매도 해변이다.
선착장에서 그 백사장에 이끌려 관매마을 쪽을 행하다 보니 백사장 뒤에 울창한 송림이 멋있다.
- 이곳에 사는 마을 처녀가 모래를 세 말씩이나 먹어야 시집을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바람이 대단했던 이 고장에, 삼국시절인 1,600여 년 전 방풍, 방사림을 목적으로 관매마을 사람들이 조성했다는 해송숲이다.
1,200여m의 해안가 모래사장 뒤에 이 삼 백년 수령의 4만 구루의 해송이 폭 200m의 숲을 이루어 넓게 서식하고 있다.
그 소나무를 자세히 보니 풍란(風蘭)이 함께 기생하고 있다.
그 해안가를 거닐다가 숲길에 들어섰더니 짙은 솔향이 몸을 감싸는데 이색적인 이정표가 각종 체험으로 이끈다.
피튼티드길, 습지관찰로, 파도소리길, 한소리 마당길, 장단 맞춤 길 등이어서 한창 촬영에 바쁜데, 어디서인가 대고(大鼓) 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어서 운라(雲鑼), 편경(編磬)과 편종(編鐘) 소리가 차례로 들려온다.
앞서간 아내가 장단맞춤길에서 울려보는 국악기 소리들이었다.
그래서 그 숲길 이름도 장단 맞춤 길인 모양이다.
아름다움도 동반자가 있는가. 이 숲은 지금은 폐교된 초 중학교 앞에 마을의 성황림인 수령(壽齡) 800년의 온갖 풍상을 겪고 자란 천연기념물 212호 후박나무를 지키고 있다.
이 해송 숲은 2010년 제 11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인 ‘아름다운 생명상’ 을 수상한 곳이다.
100m 이상을 나가도 수심이 1.5m밖에 되지 않는다는 천혜의 해수욕장에 막 해가 지고 있다.
붉은 노을을 이끌고 하루가 지고 있는 것이다.
The sun also rise! 태양은 또 다시 뜬다는데 이렇게 나는 늙어만 가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