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삼성(三星)의 창업주(創業主)인 호암(湖巖) 이병철(李秉喆)
| 시 | 일 | 월 | 년 |
| 편재 | 일간 | 비견 | 식신 |
| 壬 | 戊 | 戊 | 庚 |
| 戌 | 申 | 寅 | 戌 |
| 비견 | 식신 | 편관 | 비견 |
| 77 | 67 | 57 | 47 | 37 | 27 | 17 | 7 |
| 丙 | 乙 | 甲 | 癸 | 壬 | 辛 | 庚 | 己 |
| 戌 | 酉 | 申 | 未 | 午 | 巳 | 辰 | 卯 |
1 인물에 대한 평가
이병철은 1910년(庚戌年) 경상남도(慶尙南道) 의령군(宜寧郡)의 비교적 유복(裕福)한 지주(地主) 가문에서 출생(出生)하여 어린 시절 서당(書堂)에서 한학(漢學)을 수학(修學)하고 이후 근대 교육(近代敎育)을 병행(竝行)하였다. 청년기에는 일본(日本) 와세다 대학(早稻田大學)에서 정치경제(政治經濟)를 수학(修學)하였고 귀국 이후에는 운수업(運輸業), 정미업(精米業), 부동산업(不動産業) 등 다양한 경제 활동을 시도(試圖)하며 실물경제(實物經濟)에 대한 경험을 축적(蓄積)하였다. 1936년(丙子年) 마산(馬山)에서 협동정미소(協同精米所)를 설립(設立)하며 본격적(本格的) 경영(經營) 활동을 개시(開始)하였으나 초기(初期) 토지(土地) 투자(投資) 실패(失敗) 등으로 시행착오(試行錯誤)를 겪었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은 이후 사업 확장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이어 1938년(戊寅年) 대구(大邱)에 삼성상회(三星商會)를 설립(設立)하여 청과물(靑果物)·건어물(乾魚物) 유통(流通) 및 대외(對外) 무역(貿易)을 전개(展開)하며 사업(事業)의 기반(基盤)을 확립(確立)하였다. 이후 1948년(戊子年) 삼성물산공사(三星物産公司)를 중심으로 근대적(近代的) 상사(商社) 체계를 구축(構築)하며 기업(企業)의 조직적(組織的) 성장을 이루었다. 전후(戰後) 복구기(復舊期)인 1950년대에는 제일제당(第一製糖)과 제일모직(第一毛織)을 설립(設立)하여 식품(食品) 및 섬유(纖維) 산업의 국산화(國産化)를 추진(推進)함으로써 수입 의존 구조를 개선하였다. 이어 1969년(己酉年) 삼성전자공업(三星電子工業), 1974년(甲寅年) 삼성중공업(三星重工業) 등을 설립하며 전자(電子) 및 중화학(重化學) 산업 발전에 선도적 역할을 수행하여 한국 산업구조의 고도화에 기여하였다. 후반기에는 반도체(半導體) 산업 진출을 선언하며 첨단 기술 산업에 도전하였고 동시에 문화·예술 및 사회 환원에 힘쓰며 기업가로서의 생애를 마무리하였다.
2 이병철(李秉喆) 회장(會長)의 명조 분석
(1) 일출동산(日出東山)의 상(象)
무토(戊土)는 만물(萬物)을 무성(茂盛)하게 하는 대지이며 하늘에서는 노을이 된다. 노을은 정해진 체(體)가 없어서 차일이현(借日以現)하므로 태양을 빌려서 출현한다. 그러므로 태양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무토(戊土) 노을의 존재 역시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만큼 무토(戊土)와 병화(丙火)의 만남은 귀한 것이 된다. 그러므로 넓은 들판에 태양이 떠 있는 형상은 성정(性情)이 매우 화려하고 아름답다.
이 명조(命造)에서 가장 오묘(奧妙)한 것은 천간(天干)에 없는 병화(丙火)와 갑목(甲木)을 지지(地支) 암충암합(暗沖暗合)의 원리(原理)에 찾는 것이다. 곧 무토(戊土) 노을이 빛을 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태양인 병화(丙火)를 빌려야 하는 숙명(宿命)을 지니는데 월지(月支) 인목(寅木) 속에 간직된 병화(丙火)가 일지(日支) 신금(申金)과의 충기(衝起)를 통해 하늘로 솟구치게 된다. 이는 마치 구름에 가려졌던 태양이 강한 바람에 의해 구름이 걷히며 찬란(燦爛)한 빛을 무토(戊土) 대지(大地) 위에 쏟아붓는 것과 같은데 이로써 무토(戊土)는 노을의 기상(氣象)을 완성(完成)한다.
(2) 하수상영(霞水相映)의 상(象)
무토(戊土)가 노을로서의 자태(姿態)를 완성함에 있어 수기(水氣)를 보는 것은 필수적(必須的)인 요건(要件)이 된다. 노을은 홀로 존재할 때보다 물에 투영(投影)될 때 그 광채(光彩)가 더욱 선명(鮮明)해지기 때문이다. 이를 하수상영(霞水相映)이라 일컬으며 노을과 물이 서로를 비추어 화려(華麗)한 문채(文彩)를 이루는 경우에 이를 상격(上格)으로 간주(看主)한다.
특히 계수(癸水)를 보는 것이 오묘(奧妙)하다. 계수(癸水)는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과 같기 때문이다. 비가 그친 뒤 대지(大地)와 공기(空氣)가 정화(淨化)된 상태에서 나타나는 노을은 그 어느 때보다 선명(鮮明)하고 아름다운 법이다. 이러한 형상(形象)은 문명(文明)의 광채(光彩)를 상징(象徵)하며 세상(世上)을 밝게 비추는 지혜(知慧)와 덕망(德望)을 갖춘 귀격(貴格)의 모습으로 본 것이다.
이병철(李秉喆) 회장(會長)의 명조(命造)에서는 계수(癸水) 대신 임수(壬水)가 시간(時干)에 투출(透出)해 있다. 계수(癸水)가 비 온 뒤의 선명(鮮明)함을 담당한다면 임수(壬水)는 광활(廣闊)한 호수나 바다와 같아서 노을의 기운(氣運)을 더욱 웅장(雄壯)하고 깊이 있게 담아낸다. 인신충(寅申沖)으로 인해 솟구친 인중(寅中) 병화(丙火)의 기운(氣運)이 무토(戊土)를 노을로 만들고 이것이 임수(壬水)라는 대해(大海)에 비치는 형국(形局)은 대격(大格)의 풍모(風貌)와 일맥상통(一脈相通)한다.
(3) 시상편재일위격(時上偏財一位格)
무토(戊土) 일간(日干)이 시간(時干)에 임수(壬水) 편재(偏財)를 얻은 것을 시상편재일위격(時上偏財一位格)이라 말한다. 이 격(格)은 사주(四柱)의 다른 곳에 재성(財星)이 나타나지 않고 오직 시간(時干)에만 재성(財星)이 하나 있을 때 성립(成立)하는데 만약 격(格)이 성립이 될 경우에는 대부대귀(大富大貴)를 상징(象徵)한다. 이러한 임수(壬水) 편재(偏財)가 하수상영(霞水相映)의 물상(物象)과 결합(結合)하므로 임수(壬水)는 단순히 재물(財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노을의 문채(文彩)를 선명(鮮明)하게 드러내는 황홀한 장면을 연출하게 된다. 그러므로 하수상영이 된 시상(時上)의 편재(偏財)는 노년(老年)의 복록(福祿)과 자손(子孫)의 번창(繁昌)을 의미(意味)할 뿐만 아니라 일생(一生)을 통틀어 큰 재물(財物)을 운용(運用)하는 기업가(企業家)적 역량(力量)의 근간(根幹)이 된다.
3 사망(死亡) 배경(背景)
이 분은 병화(丙火)대운 중 정묘년(丁卯年)에 폐암(肺癌)으로 사망하였다. 그런데 병술(丙戌) 대운(大運)은 원국(元局)의 인목(寅木)과 술토(戌土)가 합작하여 화국(火局)을 형성(形成)하는 시기이다. 대운(大運) 천간(天干)의 병화(丙火)가 년간(年干)의 경금(庚金) 식신(食神)을 극(剋)한다. 경금(庚金)은 인체(人體)에서 대장(大腸)과 폐(肺)를 상징(象徵)한다. 따라서 화(火) 기운(氣運)에 의해 금(金)이 녹는 화다금용(火多金熔)의 형상(形象)이 폐암(肺癌)의 원인(原因)이 된다. 서거(逝去)한 1987년 정묘년(丁卯年)은 세운(歲運)의 정화(丁火)가 시간(時干)의 임수(壬水) 편재(偏財)를 정임합(丁壬合)으로 합거(合去)한다. 시상편재격에서 편재를 제거한다는 점에서 편재 임수(壬水)가 제 기능(機能)을 상실(喪失)함에 따라 수명(壽命)이 다하여 서거(逝去)하게 된 것으로 본다.
4 이병철(李秉喆) 회장(會長) 연혁(沿革)
1910년(庚戌年) 1세: 2월 12일 경상남도(慶尙南道) 의령군(宜寧郡)에서 출생(出生)한다.
1922년(壬戌年) 13세: 진주(晉州) 지수보통학교(智水普通學校)에 입학(入學)한다.
1926년(丙寅年) 17세: 박두을(朴杜乙) 여사(女士)와 혼인(婚姻)한다.
1929년(己巳年) 20세: 일본(日本) 와세다 대학(早稻田大學) 전문부(專門部) 정경학과(政經學科)에 입학(入學)한다.
1936년(丙子年) 27세: 마산(馬山)에서 협동정미소(協同精米所)를 설립(設立)하며 첫 사업(事業)을 시작(始作)한다.
1938년(戊寅年) 29세: 대구(大邱)에서 삼성상회(三星商會)를 설립(設立)한다.
1948년(戊子年) 39세: 삼성물산공사(三星物産公司)를 창립(創立)한다.
1953년(癸巳年) 44세: 제일제당(第一製糖)을 설립(設立)하여 수입(輸入) 대체(代替) 산업(産業)에 진출(進出)한다.
1954년(甲午年) 45세: 제일모직(第一毛織)을 설립(設立)한다.
1961년(辛丑年) 52세: 전국경제인연합회(全國經濟人聯合會) 초대(初代) 회장(會長)에 취임(就任)한다.
1963년(癸卯年) 54세: 동양방송(東洋放送,)을 설립(設立)한다.
1965년(乙巳年) 56세: 중앙일보(中央日報)를 창간(創刊)한다.
1969년(己酉年) 60세: 삼성전자공업(三星電子工業)을 설립(設立)한다.
1974년(甲寅年) 65세: 삼성석유화학(三星石油化學)과 삼성중공업(三星重工業)을 설립(設立)한다.
1977년(丁巳年) 68세: 삼성종합연수원(三星綜合硏修院)을 개관(開館)하며 인재(人才) 제일(第一) 경영(經營)을 강화(强化)한다.
1982년(壬戌年) 73세: 호암미술관(湖巖美術館)을 개관(開館)한다.
1983년(癸亥年) 74세: 2월 8일 도쿄 선언(宣言)을 통해 반도체(半導體) 산업(産業) 본격(本格) 진출(進出)을 발표(發表)한다.
1987년(丁卯年) 78세: 11월 19일 향년(享年) 78세로 서거(逝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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