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전에 가족을 태우고 유럽여행시 영국의 카디프에서 도버해협을 지나 벨지움의 브루헤에 도착했었다.
도시는 중세도시답게 고색창연 하였고 거리는 깨끗하였다. 도시 가운데로 운하가 뚫여있어 배들이 지나다니고
곳곳에 영도다리처럼 도개교가 설치돼 있었다. 도로가에는 붉은색의 꽃들이 바람이 춤을 추고 있었는데
나는 생전에 보지도 못했던 꽃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양귀비꽃이었다. 양귀비꽃이라면 우리나라에선 아편이라 하여
허가없인 재배하지 못하는 식물이 아닌가. 꽃양귀비는 개양귀비라 하여 아편과는 조금 다른 것으로 알고 있다.
수영천 고수부지에 해운대구청에서 꽃양귀비를 심어 지금 꽃이 한창이다. 나비 날개같이 넓적한 꽃잎이 검붉게 피어
바람에 펄럭이면 수 천 아니 수 만 마리의 나비가 한꺼번에 나는 듯하다.
우리가 아편으로 알고 있는 것은 영어의 opium을 발음대로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opium poppy 를 양귀비라 하는데 꽃이 아름다워 당나라 미인 양귀비에 비유하여 불리워 지고 있다.
아편은 민간요법으로 배가 아플 때 조금 먹으면 즉효약으로 쓰였다고 한다.
중독성이 있어 자주 쓰면 중독 되어 자신도 모르게 아편쟁이 되었다. 스트레스의 압박감에 시달린 일부 연예인들이나
의사들도 아편에 손댔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도 더러 있다. 얼마전 방송인 로버트 할리도 그런 케이스가 아닌가 싶다.
아편 하면 아편전쟁이 생각난다.
영국은 17세기 청나라와 무역을 하면서 엄청난 량의 차를 수입하면서 청나라에 지불하는 은이 한 때 28000톤에 달했다.
그러자 영국은 무역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인도에서 생산되는 아편을 수출하기 시작했다. 청나라에선 아편수입을 금지했지만
부패한 관료조직때문에 밀무역이 계속됐다. 이에 강격대응에 나선 청은 1839년 임칙서 주도로 광저우항에서 영국 상인들로부터
아편 2만상자를 몰수하여 불태워 버린다. 영국상인들이 가만이 당하고만 있을리 만무하다. 본국에 어필하여 군대를 일으켜
아편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영국군은 압도적인 해군력을 바탕으로 1842뇬 8월 난징함락 직전까지 몰아가자 청나라는 패배를 인정하고 막대한 전쟁배상금을 물고 광저우,샤먼,푸저우,닝보, 상하이 등 5개항구를 개항하고 영국과 청이 협의한 관세에 따라 물건을 팔고
사도록 했으나 실질적으로는 영국이 관세를 정했다.또한 홍콩 섬도 영국에 할양하여 1997년까지 영국이 지배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