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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년무림문헌통고 부편(副篇) 천하칠패쟁비록(天下七覇爭比錄).>
자연스럽게 펼쳐진 오천년무림문헌통고의 맨 끝장에 날아갈 듯 웅휘로운 황금빛 글씨가 새롭게 그의 시야를 메워 왔다.
'천하칠패라, 이건 또 뭐지?'
자천릉은 호기심을 느끼며 얄팍하게 남은 몇 장을 들춰보기 시작했다.
<부편의 편찬에 부침.
오천 년 무림사! 그 장구한 피의 역사가 흘러가고 또 흘러오는 동안 당금처럼 기라성같은 초절정의 무인들이 한꺼번에 출현한 시대는 맹세코 없었다.
그들 개개인의 능력은 오천 년 무림사에 명멸해 간 그 어떤 무인들보다도 강하고 뛰어났다. 시대의 차이를 두고 탄생했더라면 그들은 한 시대를 질타하며 무림사의 도도한 흐름을 역류시킬 수도 있었으리라.
해서 그들 중 구름 위에 뜬 태양처럼 단연 걸출한 칠 인을 뽑아 천하칠패라 칭하고 제자들의 귀감을 삼아 여기 부편으로 소개하는 것이다.
아울러 다음에 기록하는 순서는 무학의 고하와 능력의 우열을 따지지 않고 편자의 임의를 따라 수록한 것임을 첨가하여 명시해 둔다.>
"흠, 오천 년 무림사 동안 그 어떤 무인보다 강하다고 평가받은 칠 인이라."
자천릉이 탄성을 터뜨리다 문득 고개를 갸웃했다.
"헌데 기이하군. 만통은 황금만루에서 육 인의 초강자라고 했는데?"
그는 시선을 책으로 가까이 했다.
"일곱이든 여섯이든, 어쨌든 초강자라고 했으니 읽어나 보자."
팔랑!
자천릉은 한 장을 넘기다 가볍게 탄성을 흘렸다.
"역시 곤오풍우가 가장 먼저 기록되어 있군."
<천하칠패 제일패(第一覇): 십팔만사천백와마루 제 사십 일 대 태대각 만세제일신마 곤오풍우.
... 후략 ...>
그러나 역시 곤오풍우에 대해서는 간단하게 서술되어 있었다.
자천릉은 다음 장을 넘겼다.
<천하칠패 제이패: 대소림사의 수석장로 천세미륵 자장대사.>
"천세미륵? 들은 적이 있다. 언젠가 혈왕사가 묻혀 있던 비석을 바라보며 뇌까리던 돌할아범의 독백 속에서."
<나이: 백 사십 사 세.
신분: 현 소림의 최고 배분인 자자배(慈字配)의 유일한 생존자. 현 총정십대문파의 실질적인 영수.
이력: 대원 말엽 한 명문거족의 첩의 몸에서 태어나 탄생직후부터 불문 소림에 의탁됨. 나이 칠 세에 당시 소림장문 현공의 계를 받고 나이 십 이 세에 달마역근경이 소림의 일반제자들에게 지나치게 난해함을 비판하며 속(續) 달마역근경을 펴냄. 나이 십 육 세에 이천 년 소림의 불문율을 깨고 제 삼십 칠 대 장문인에 취임. 허나 취임 이 개월 만에 장문인의 지위가 불법과 무예의 도를 가린다하여 사양하고 산문(山門)을 나옴.
그후 일갑자 동안 천하 구만여 개의 사찰들과 총정십대문파, 변황과 새외의 오대문파 등을 유전(流轉)하며 숱한 비기들을 습득하고 일만여 회의 구결비무(口訣比武)를 치렀다고 알려져 있음. 기록되는 시각까지 단 한 차례의 살계도 범하지 않음.
무공정도: 추측불가. 다만 내공수위는 현세최고이리라고 짐작됨.>
"흠! 어쩐지 꼭 한 번은 부딪치게 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스님이군."
자천릉은 나직한 탄성을 흘리며 다시 한 장을 넘겨갔다.
<천하칠패 제삼패: 초왕사성의 제 삼십 구 대 성주, 뇌도(雷刀) 신농궁(神農宮).
나이: 구십 칠 세.
신분: 초왕사성을 세운 살인광도(殺人光刀) 신농비륵(神農鄙勒)의 오십 일 대 손. 사파연합체인 연사의 수뇌.
이력: 초왕사성에서 태어나 십 세까지의 소년기를 황야에 버려져 후계자 교육을 거침. 본성 복귀 오 년만에 오 대째 타가문에서 지배해 오던 초왕사성의 성주에 오름. 백일잔치에서 아홉 자루의 칼을 움켜쥐었다고 하는 일화를 가진 타고난 칼의 승부사로 항상 스스로 칼에 관한 한 고금제일로 불리우며 초왕사성의 역대 성주들 중 가장 빠른 쾌도를 구사. 확인된 바는 없으나 일설에는 허공에서 내리치는 번개를 잘랐다고 전함.>
"초왕사성이라, 천하에 이런 문파도 있었던가?"
그가 어찌 알 것인가. 삼천 년 동안 끊임없이 십팔만사천백와마루의 아성에 도전해 온 그 투혼의 단체를. 그리고 바야흐로 세대교체의 격동기를 맞으며 신세대의 기수로 자천릉을 지목하기도 했던 곳이 바로 초왕사성이었음을.
네 번째 장을 넘기던 자천릉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천하칠패 제사패: 십팔만사천백와마루의 태대각계 소속, 화성의 제 사십 일 대 성주, 꽃바람.>
"응? 십왕의 서열 삼 위로 끼어 있던 그 꽃바람이라는 자가 천하칠패 중에 들어있군."
십왕 서열 이위(二位)의 비사벌도 감히 거론되지 못하는 천하칠패의 쟁비록에 신비의 고수 꽃바람이 네 번째로 실려 있었다.
<나이: 불명. 성별: 불명.
신분: 집안 내력은 물론 용모와 이름조차 알려져 있지 않음.
이력: 제 사십 일 대 태대각과 더불어 십팔만사천백와마루에 입루.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은 단지 나타날 때 지독히도 짙은 꽃향기가 난다는 것 뿐. 당금 태대각의 친동생, 절친한 친우, 하인 등 수많은 설이 난무하나 확인된 바는 없으며 다만 친구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짐작됨.
무학수위: 단 한 번, 대원말엽 라마교의 제 십 육 대 달라이대라마 대천법왕 사륵탄과의 관산벌(關山伐) 싸움을 통해 세상에 알려짐. 싸움이 일백 초쯤 경과했을 때 사륵탄의 우장이 그의 가슴을 강타하여 오장육부가 파열됐으나 수세에 몰리자마자 처음보다 오히려 내공이 급증해 결국 사륵탄을 생포했음.
그것으로 짐작하건데 그는 내공과는 다른 차원의 잠재능력, 곧 일종의 초상감각을 타고난 것이 아닌가 여겨짐.>
"꽃바람이 염력의 소유자라고!"
자천릉의 눈빛이 처음으로 크게 흔들렸다.
형체도 없이 한 줄기 꽃의 회오리바람으로 인간의 생명을 빼앗는 신비인인 그가 선천적인 염력술사일지도 모른단 말인가?
"호, 이제 꼭 만나 볼 사람이 둘로 늘었군."
자천릉은 묘한 미소를 띄며 다음 장을 넘겼다.
"달그림자? 훗, 이 천하칠패라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신비한 척 냄새만 피우는 자들이군."
<천하칠패 제오패: 유리유사하(琉璃流砂河), 약칭 유리궁(琉璃宮)의 궁주, 달그림자.
나이: 미상, 성별: 미상.
신분: 불투명. 단지 사막 한가운데서 줄타기가 그의 유일한 취미로 알려져 있음으로 보아 육천마을 중 천재촌 출신이 아닌가 추측될 뿐임.
이력: 대막의 신기루, 사막의 바람, 바람의 아들 등으로 불리우는 살아있는 대막의 신. 홀연 대막을 움직이는 유사하 속에 유리궁을 짓고 대상과 유랑극단을 이끌며 신기루처럼 대막을 지배해 왔음.
달빛을 반사하면 지옥의 환상을 일으키는 귀면탈을 쓰고 다녀 달그림자라 불리울 뿐 누구도 그의 진정한 얼굴과 신분을 알지 못함.
무학수위: 미상. 텅빈 사막의 공간 속에 내공의 힘으로 줄을 매고 외줄타기를 하는 것으로 보아 천세미륵에 비견되는 내공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추측됨.
또한 사막의 거친 대상들과 무질서한 유랑극단을 일사불란하게 통솔하는 능력으로 짐작할 때 용병과 조직에도 일가의 성취를 이룬 자일 가능성이 높음.>
"놀랍군! 달그림자라는 이 자도 육천마을 출신일지도 모른다니."
이제 인간 이하의 비인간들만이 모여 산다는 그 버림받은 천인들의 집단은 십왕을 거쳐 천하칠패쟁비록의 다섯 번째 장에까지 오르고 있었다.
'훗! 조만간에 이 천하칠패쟁비록은 팔패쟁비록으로 바뀌겠지. 육천마을 중 해란주 출신의 만황 자천릉이 기록되어야 할 테니까!'
다소 교만해 보이는 미소를 흘리며 다시 한 장을 넘기던 자천릉의 눈빛이 은은히 반짝였다. 천하칠패쟁비록의 여섯 번째 장에는 실로 뜻밖의 이름이 적혀 있었던 것이다.
<천하칠패 제육패: 부나비도의 천치의성 사공역.
나이: 백 십 칠 세. 성별: 남.
신분: 대원 중엽 문(文)의 명가였던 사공제일가의 장손.
이력: 나이 십 팔 세에 대원삼대예시(大元三大藝試), 곧 문시(文試), 화시(畵試), 율시(律試)를 모두 급제. 허나 모든 보장된 권세와 영화를 뿌리치고 나환자의 섬 부나비도에 뛰어들어 의생(醫生)으로 일생을 보내 어둠의 성자라 칭해짐. 불치의 병을 치료하면서 특수하게 발달한 의학지식으로 부터 인체와 자연 그리고 우주에 대한 체계화된 무론(武論)을 정립.
... 중략....
무학수위: 추측불가. 다만 독(毒)도 약도 아닌 특이한 의가용초기예(醫家用草技藝)로 그 방면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성취를 이루었다고 알려짐.>
"이 사람은 중할아버지가 죽어가면서 반드시 만나 보라고 했던 분이 아닌가? 헌데 나의 신체를 완성시켜 줄 천하제일의라던 사람이 천하칠패에 들 정도로 상당한 무인이었다니."
자천릉은 놀람의 표정을 지으며 마지막 장을 향해 손을 가져갔다. 순간 그의 시야를 가득 메워오는 한 사람의 위대한 이름이 있었다.
<천하칠패 제칠패: 관부제일고수 자륭극.>
"아버님이 천하칠패의 일인으로 꼽히고 있으셨단 말인가!"
자천릉의 두 눈에 순간적으로 놀람같기도 하고 기쁨같기도 한 기이한 빛이 빠르게 스쳐가고 있었다.
"후후후, 매일처럼 낚시질이나 하고 조그마한 린아의 고집에도 항상 지고야마는 분이 이토록 대단한 분인 줄은 몰랐군."
회상에 잠기는 듯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언젠가 내가 청도항에 닿았을 때 아버님도 중원으로 떠나셨는데, 지금쯤 어디에 계실까? 그리고 린아는...."
아버지와 아들을 둘러싼 운명의 회오리. 해란주의 깊은 어둠에서 시작되어 마침내 전 천하를 휘감아 버리려 하고 있는 그 거대한 피의 회오리를 자천릉은 아직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이: 불명. 약 오십 세를 넘은 것으로 짐작됨.
성별: 남. 신분: 불명.
이력: 대명 제 삼 대 황제 영락제의 지기로 연왕반정을 막후에서 주재하면서 세인들에게 알려짐. 반정을 주재하는 과정에서 관부십팔반무예를 새롭게 창시하고 일체의 병략과 대계를 일신으로 관장하는 등 일세의 재사로서 은밀히 알려졌고 개국일등공신으로 왕호를 하사 받았으나 사양하고 스스로 해란주에 들어간 인물.
그밖에 알려진 것은 전무하며...
... 중략...
무학수의: 측량불가.>
자천릉은 부친에 대한 장황한 기술을 음미하듯 천천히 읽어내려가다 흠칫 눈을 빛냈다. 천하칠패에 대한 기록은 그것으로 끝나고 그들에 대한 기록자 나름의 평가가 간결한 필치로 정리된 채 덧붙여져 있었던 것이다.
<동시대에 출현한 일곱 줄기의 위대한 별들. 그들은 단 한 번도 서로 충돌한 적이 없기에 아직 그들에 대한 고하와 우열은 누구도 논하지 못한다.
허나 본루에 수집된 자료를 토대로 분석하건대 만일 그들을 차례로 싸우게 한다면 먼저 곤오풍우 태대각과 천세미륵, 그리고 자륭극 등 삼 인이 남게 되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그들 삼 인 간에 최종적인 평가를 내린다면 천세미륵은 내공과 초식 응용 면에서는 최고라 할 것이나 지모와 실전무예에 있어 다른 이 인에게 조금 떨어진다 하지 않을 수 없고, 곤오풍우 태대각은 내공과 초식, 지모로 말한다면 중간에 해당하나 실전무예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탁월한 역량을 지니고 있으며, 자륭극은 내공과 초식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어 우선 가장 말석에 두나 지모에 있어 최고이고 실전무예로는 중
간에 해당한다 할 것이다. 따라서 이 분석을 종합하면 곤오풍우 태대각이 일 위이고, 그 뒤로 천세미륵, 자륭극의 순서로 냉정하게 등위를 매길수 있으리라.>
"제길! 말마따나 냉정하긴 냉정한 분석이군. 이대로라면 승점을 매겨도 곤오풍우가 아홉, 천세미륵이 여덟, 그리고 아버님이 칠점(七點)에 해당하니까."
헌데 기술자가 내린 최후의 판단은 의외의 결과를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최종적인 판단으로는 자륭극을 머리에 놓고 싶다. 왜냐하면 자륭극에 대해 알려진 바가 적어 내공과 초식, 그리고 실전무예에 있어 진정한 성취정도를 따질 수가 없음에도 그는 천하칠패에 들 수 밖에 없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의 하나 한림사가, 즉 은림사숙의 숨겨진 힘을 이어받은 자가 출현한다면 우리의 모든 분석은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함을 주지해 두는 바이다.
아울러 첨가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자륭극이라는 인물을 일 위로 올려놓고 싶은 이유에는 추측컨대 그의 정체가 바로....>
기이하게도 거기에서 글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고 있었다. 누군가에 의해 책장의 끝부분이 찢겨져 나가 있는 것이었다.
"응? 왜 하필 여기서 책이 찢어졌지?"
자천릉의 눈에 기묘한 의혹의 빛이 떠올랐다.
헌데 바로 그 때였다.
"그 자는 이미 세상에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본좌가 그 장을 찢었다."
천 근 바위가 지면을 후려쳤는가? 태산이 천둥소리로 진동하는 듯 무섭도록 육중하고 창노한 음성이 돌연 실내에 울렸다.
자천릉의 얼굴이 심장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돌연 하얗게 굳어졌다.
'나, 나는 분명히 들었다! 저 우렁찬 음성이... 아버님이 세상에 계시지 않다고 말하는 것을! 그렇다면?'
자천릉의 뇌리에 표현할 수 없는 불길한 예감이 스치고 예감이 스쳤다 싶었을 때 자천릉의 몸은 허공을 가르며 이미 육층의 문전에 다다르고 있었다.
자천릉이 서 있는 육층의 입구의 풍경은 오층과 판에 박은 듯 똑같았다. 다른 것이 있다면 여기에는 자단 대신 백색 융단이 깔려 있고 한쪽 벽에 무려 십여 장에 걸쳐 거대한 푸른 독수리가 양각되어 있다는 점 뿐이었다.
그리고 칠 척 거구에 유난히 넓어 보이는 어깨 위로 백발을 보기좋게 늘어뜨린 채 푸른 독수리를 직시하며 등을 돌리고 있는 백발노인이 보였다.
끝이 없는 평원, 드넓은 일망무제의 황야를 바라보는 느낌이 이러할까? 단지 등을 돌리고 서 있을 뿐임에도 텅 빈 육층의 실내가 가득차 버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노인의 등 뒤에서 뿜어지는 무형의 기운은 실로 엄청나서 흡사 일천여 평의 실내가 푸른 독수리와 노인의 거대한 그림자만으로 가득히 메워져 있는 것만 같았다.
"그대는 뭐라고 말했는가? 반복하라!"
자천릉의 입에서 싸늘한 일갈이 터져 나왔다. 그러자 육중한 음성이 쩌렁하게 울려 나왔다.
"놈! 용이 미꾸라지 새끼를 낳았구나."
자천릉의 검미가 꿈틀거리며 한 손이 서서히 천뢰금부와 벽은월을 잡아갔다.
"두 번째로 말한다. 방금 전 그대의 말을 반복하라."
"원한다면 몇 번이든 반복해 줄 수는 있다. 허나 너는 먼저 말투를 고쳐라!"
백발노인은 천년 거암처럼 우뚝 선 채 자천릉을 돌아보지도 않고 말을 받고 있었다.
자천릉의 얼굴에 싸늘한 살기가 스쳤다.
"이제 듣고 싶지 않다. 대신 그대는 죽는다."
번쩍!
자천릉의 양손이 어느새 천뢰금부와 벽은월을 나누어 쥐며 그대로 백발노인의 산악같은 등을 찍어가고 있었다.
"놈!"
노인이 천천히 몸을 돌림과 동시에 마악 노인의 등을 찍으려던 자천릉의 신형은 돌연 무형의 벽에 부딪친 듯 주르르 퉁겨져 밀려나고 있었다.
자천릉의 눈이 경악으로 크게 떠졌다.
'강하다! 아주 어렸을 때, 바다에 빠지는 나의 손을 건져 올리던 중할아버지의 주름진 손에서 처음 느꼈던 그 강인한 힘만큼이나!'
자천릉의 가슴 속으로 한 줄기 서늘한 느낌이 스쳐갔다.
백발노인이 입을 열었다.
"너는 약하다. 허나 본루의 주인으로서 본루의 제자인 네가 아직 본루의 사정에 밝지 않음을 감안하여 목숨을 부지시켜 준다."
찰나 자천릉의 입에서 거의 반사적인 물음이 튀어나왔다.
"그대가... 곤오풍우?"
백발노인이 잠시 자천릉을 주시하더니 입을 열었다.
"네가 천릉인가? 만장석굴에서 나오는 시간이 조금 지체됐구나."
자천릉의 얼굴이 석고처럼 굳어졌다.
'부정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자가 곤오풍우임에 확실하단 말인가?'
백발노인의 모습은 실로 엄청난 신위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대는 추운 겨울날 한 마리 독수리를 머리에 인 채 희디흰 눈 위에 솟아있는 천년거목을 본 적이 있는가? 그 푸른 독수리가 앉아 있는 천년거암을 본 적이 있는가? 없다면 지금 이 백포노인을 보라.
불타는 붉은 눈썹아래, 등골을 꿰뚫을 듯 맑은 정광을 발하는 고리눈, 사자의 콧날에 칼날을 베어 문 듯 강직한 입술, 그리고 너무하다 싶을 만큼 굵고 강렬한 얼굴의 선 등, 사내로 태어나 강하다고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그 얼굴 속에 있었다.
거기에 다시 억년 연륜의 깊이가 웅장한 혼으로 더하여 우러나는 그의 채취는 문자 그대로 천년거목이요, 천년거암이었다.
그렇다. 이 사람이야말로 오천 년 무림사가 낳은 사상 최강의 초마인이요, 하늘없는 땅 십팔만사천백와마루의 주인이며 이 세대 가장 위대한 무인으로 숭앙되는 곤오풍우, 바로 그였던 것이다.
첫댓글 즐독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잘보고 있습니다~~~~
잘~보고 갑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즐독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