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울대 폐지론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건전한 서울대학생들에 '선배지위'점유권에 기한 부당이익반환청구권이 형성된다고 주장했다가, 우파 내부에서 뭔가 서울대 밥그릇 지위를 탐하는 논리로 몰아가는 것을 당한 적 있었다. 그들이 몽고주의 몇 개의 공식을 주장하며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선량하게 서울대 폐지론을 비판하려 했는데, 궁극적으로는 서울대 밥그릇 주의를 노린다고 '평등권'은 좌익이나 하는 소리라고 하니, 자유민주주의 철학의 기초도 모르는 식의 삼천포 논리에 황당했다.
나는 일관되게 도구주의적 시각에 공격적이다. 친북좌파 주사파 새끼들에게도 공식 몇가지 쥔 논리에 눈물 나보았다면, 결국은 김정일 정권이 붕괴되기 전까지는 '대항차원'의 필수불가결의 얼마만큼의 존재성을 부인 못한다는 사실을 안다. 대학가 좌파들도 지식 쪼가리 몇 개 들고서 심판하러 으르렁 대는 게 현실이다.
우파는 의당 좌파의 이러한 현실을 비판하고, 우파도 그러한 요소를 털어냈었어야만 옳았다. 그러나, 우파는 친북좌파들의 사악함에 대해서 개정요구도 잘 하지 못하고, 우파도 대항차원의 필수불가결의 상식논리를 이용하는 듯 한 느낌도 난다. 강박논리가 적은 국보법의 개정안을 위해서는 좌파들의 심리 상태에 대한 전체적이고 총체적인 비판을 통해서 완전히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어야 한다.
지금의 경우에서도, 1980년대 후반에 주사파들에 징그럽게 당해본 기억의 비운동권이라면, 당할 기회가 없이 대학을 유유히 빠져 나가고 별개의 문화를 가진 우파들과 기성세대만 아는 경우에 접해 있다. 주사파들이 대학사회에서 싹 물러나길 바라며 아파하며 보았던 체험을 비춰 본다면, 홍진표위원과 진중권씨의 이철우에 대한 주장은 옳을 가능성이 높다.
솔직한 말로 '한껀 하려고'한 바탕은 아닐 것으로 확신한다. 그것은 이철우씨가 더 잘 알 것으로 본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안난다고, 국민의 긴급 사안을 심의하는 국회에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국보법 폐지란 문제는 있다. 안개모 소속에 이미 국보법에 미지근 파인 이철우씨를 문제 삼았던 것은, 서울대 좌파들의 권력자를 피해서 한총련 전대협만 문제 삼던 관성과 비슷한 차원으로 보일 것이다.
국보법을 사수해야 한다는 절박성과 약자적 인식의 결합이 느껴진다. 원희룡씨보다는 더 한나라당 코드로 서 있되 우파에 불만은 남은 입장을 공격했다는 것은, 왜 국보법 폐지에 위장전향의혹자의 쎄고 쎈 인사들을 피해갔는가의 문제를 질문케한다.
개정안 입장자는 국보법의 전통에서 원론에 대한 계승과, 악습에 대한 개정의 한정상속의 입장이 강하다. 열린당의 입장은 계승 부정론으로 국헌 문란의 의도가 느껴진다.
진정으로 홍진표위원과 진중권씨의 삐리들에겐 운동권의 핵심 주동이 삐리들을 사기 쳐 먹는 게 당연지사였다는 주장이 옳앗다면, 세뇌된 대중들에 계몽과 각성 프로그램이 중요햇고, 사이버에서도 윽박지르기식의 언어는 좌익의 윽박에 대항 차원에는 실익이 없는 것이라 본다. 과거의 습관은 우파에 권력이 있을 때에조차도, 다른 길이 있다면 다른 길을 선택하는 차원임이 옳았다.
핵심주동이 삐리를 사기쳐 먹는 것이 당연지사임을 몰랐고, 그것이 진실임에도 민주화운동을 중심하는 주체가 지식사기 세력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사기언어에 현혹된 상황의 참여를 악의적이며 고의적인 것으로 몰아붙이는 어법은, 정말 핵심 주동인물들에 그래 그거야 하는 면죄부 차원의 말할 기회를 준다.
그리고, 한 가지 진정하게 물어봐야 될 것이 있다.
결국 대학가의 주사파와 인터넷 상에서의 좌파들이 하는 폭력성 비슷하게, 친북좌파의 조직이론과 침투이론과 대중화 이론에 대해서 수사측이 친북좌파 핵심 주동 빼면 비밀로 묻힌 것을 다 몰랐고, 얼마간 끼워 맞추었다 치자.
좌파의 주장을 다 옳다 쳐도, 국보법자체의 폐지론으로 논리를 끄는 것은 불성립이다. 국가안보란 현실 앞에서, 친북좌파보다도 더 정확한 규명을 수사측이 검증되는 속에서 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열린당에서 국보법 폐지파로 작동하는 가짜 전향 세력들이 북한 공산당의 대한민국 파괴전략에 대해서, 개정안으로 승부가 되도록 하는 대안을 내세웠어야했다.
대중들이 '간첩'이란 단어를 통해서 대한민국을 파괴하는 적대세력의 존재에 대해서 인식하지 못하도록, 심리적 방어장벽을 만드는 거에서 심리적 방어장벽을 공격해야 마땅하다. 국보법 수사자는 친북좌파 핵심주동만큼 친북좌파 이론을 모를 수 있다. 범죄에 대한 범죄수사가 범죄인만큼 수사자가 범죄에 해박하지 못한 차원에서 잘못이 남듯이, 국보법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잘못된 수사가 있다고 범죄에 대한 경찰이 없어져야 된다는 논리는 성립이 될까?
입력 : 2004.12.12 11:49 13' / 수정 : 2004.12.12 13:24 36'
▲ 민병두 의원
열린우리당 민병두 의원(비례대표)이 지난 10일 자신의 홈페이지(www.bdmin.net)에 “타인의 쓰라린 상처를 이용하여 ‘한 건’하려는 의도였다면 일계급 특진을 위해 모진 고문을 일삼았던 ‘고문기계’들의 광기와 무엇이 다른가”라고 이철우 의원 노동당 가입 논란을 제기한 한나라당 의원들을 비난했다.
민 의원은 ‘1987년 국가안전기획부 지하1층 139호실의 기억은 나에게’라는 제목을 글에서 지난 1980년대 ‘학림 사건’ 등으로 두 차례 구속되면서 고문 당한 경험을 소개하며 “안기부 수사관들은 나를 발가벗겨 두 책상 사이에 통닭구이처럼 올려 놓은 뒤 발바닥을 몇시간이고 팼다. 그들은 혹시나 ‘한 건’할까 싶어 듣고 싶은 말을 들을 때까지, 아니면 못들은 분이 풀릴 때까지 패고 또 팼다”라고 말했다.
민 의원은 이어 이철우 의원 사건과 관련 “이는 명백한 간첩 조작 사건”이라며 “국회의원의 면책특권 뒤에 숨어 한나라당 공안세력이 백색테러를 저질렀을 때, 지나간 시절의 기억을 떠올릴 수 밖에 없어 마음속으로 울고 또 울었다”고 밝혔다.
끝으로 민 의원은 “간첩 운운하는 그들은, 국민을 위한다는 그들은 지금까지 살면서 아픈 시대에 대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얼마나 고민했는가 묻고 싶다”고 말했다.
■ 민병두 의원 글 전문
1987년 국가안전기획부 지하 1층 139호실의 기억은 나에게..
올리아나 팔라치라는 전설적 기자가 있다. 아라파트, 마오쩌뚱 등을 서방 세계에서 가장 먼저 인터뷰한 여인이다. 그녀가 쓴 책 중에 ‘A Man’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1970년대 그리스에서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다가 암살당한 한 남자의 이야기다.
이 남자는 독재자 대통령을 폭탄테러로 권자에서 몰아내려 했다. 하지만 아주 극미한 계산의 차이로 실패했다. 이 남자는 온갖 고문을 당했다. 동료들이 국외로 탈출하는 시간을 벌 수 있도록 성명, 생년 월일을 묻는 인정 신문조차 응하지 않았다.
잠 안재우기, 성고문, 전기 고문, 집단구타등을 당했다. “선한 경찰” 역할을 하는 경찰관이 그가 가장 지칠때면 나타나 회유를 했다. 회유도 고문의 하나였다. 끝내 이 남자는 단 한마디의 진술도 하지 않았다. 사형선고를 받고는 교도소를 두번이나 탈출했다. 나중에 이 남자를 위한 무덤형 교도소가 지어졌다. 국제적 사면 압력속에 사형은 유보되었다.
무덤속에 살던 이 남자는 올리아나의 시집을 읽고 또 읽었다. 이 남자에게 올리아나는 유일한 위안이었다.
민주화가 되어 특별 사면으로 남자가 세상속으로 나온 뒤 올리아나와 결혼했다.
올리아나는 세상의 수없이 많은 전사들과 인터뷰를 했다. 한번은 베트콩 소녀를 만났다.
다음날 아침이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소녀는 올리비아가 준 담배를 피우면서 새벽까지 그녀가 당한 고문을 털어 놓았다. 어떤 고문도 통하지 않자 고문관은 마지막 고문을 한다. 자랑스럽게 전사로서 법정에 서게 해 줄수도 있다. 그렇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할 수도 있다. 니가 원하는 것은 이 길이겠지만 협조를 하지 않는 너에게 그런 영예를 주는 것은 달갑지 않다. 트럭으로 깔아 죽일 것이다. 그러면 너는 전사로서 기억되지 않는다.
이말에 소녀는 굴복했다. 마지막 고문에 무너진 것이다.
남미의 해방 전선에서 활동했던 한 수사도 인터뷰를 했다. 수사는 끝내 동맥을 끊어 자살을 기도 했다. 그제서야 고문은 멈춰졌다. 카톨릭 수사로서 교회에서 절대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자살을 꾀했던 것이다. 고문에 무너진 것이었다.
하지만 올리아나가 만난 “그 남자”는 절대 고문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 남자” 만이 남자였던 것이다.
1981년 남영동 대공 분실에서..
1981년 학림사건에 의해 구속 수감되었을 때 읽었던 올리아나 남편에 대한 추모적 전기의 인상깊은 장면들이다.
학림 사건은 전국 민주학생연맹, 전국 민주노동자 연맹의 세칭이다. 광주학살이후 침체된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활기를 불어 넣고자 결성된 조직이다.
국가 보안법상 반국가단체구성죄, 집회시위법 위반죄등으로 기소되었다.
나도 당시에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 서울시경 옥인동 대공분실에서 두달 가까이 수사를 받았다. 고문경찰관 이근안등이 수사를 지휘했다.
당시로서는 죽음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었다. 수많은 선배와 동료들이 고문을 당했다. 고문기술자로 악명높은 이근안은 선데이 서울을 보면서 전기고문의 볼트수를 올렸다 내렸다고 한다. 발톱고문 손톱고문을 당한 선배도 있다. 발가벗겨진채 물고문을 당한 선배도 있다. 나는 이 사건의 말미에 체포되었지만 역시 온갖 구타와 잠안재우기들의 고문을 당하고 동료들의 소재지를 댔다
고문은 사람을 파괴한다. 정신과 육체를 파괴한다. 모든 것을 파괴한다. 특히 조직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은 더 큰 고통을 갖고 평생을 산다.
그렇게 분리되어 각자의 밀실에서 고문을 당하다가 처음으로 동지들은 법정에서 만나게 된다. 민망함, 아쉬움, 죄책감, 좌절감, 배신감등이 교차한다.
그런 표정들을 우리는 찰나에 읽을 수 있다. 법정에서 서로 대화할 수 없지만 그 눈에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그런데 고문관들은 아무런 마음의 동요도 없다. 무엇을 먹고 들어왔는지 이쑤시게로 이빨을 쑤시면서 또 때리고 때린다.
고문관들은 맨 처음에 광기로 우리들을 제압한다. 무학여고 정문 앞 약속장소에 도착했을 때였다. 이근안이 웃으면서 포장을 뜯지 않은 아이스크림으로 나를 가르키며 웃었다.
이를 신호로 앞뒤에서 거한들이 나를 덮쳤다.
차에 실렸다. 그 다음부터는 심리전과 고문이 계속 된다.
“이 빨갱이 새끼 . 너 이제 죽었어” 라며 사정없이 때리기 시작한다. 수 없이 날아드는 뭉동이 앞에 어디를 방어해야 할지 모른다.
군복을 입은 그들은 군화발로 사정없이 사람을 짓이긴다. 사람을 내던지기도 한다.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진술서를 쓰고 또 쓰게 한다.
국가 전복을 목적으로 한 반국가 단체 구성죄로 일어날 수 없을때까지 패고 또 팬다. 그때 이후 나의 몸의 좌우가 조금씩 어긋나고 자세가 불편해지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고통을 당하곤 했다.
이런 고문관들도 그들끼리는 무척 인간적이다.
서로의 아들 딸의 진학 문제에 대해 관심을 주고 받기도 하고 빨갱이를 잡는다고 매일 늦게 들어가다 보니까 애들 볼 시간도 없다고 푸념한다.
나도 우리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스러운 아들인데……
지금은 민주화가 되어 그 어두웠던 시대를 기억하지 못한다. 당시만 해도 집회 시위 법 위반으로 호적에 빨간줄만 가도 미래가 없던 시절이었다. 취직은 불가능했고 끊임없는 감시의 눈이 쫓아다녔다.
당시 나는 남영동 대공 분실, 그 건물 벽돌 사이 난 틈으로 밖을 내다보며 이제 멀어져갈 세상, 나를 잊어버릴 세상에 한 기억을 머리속에 남겨두려고 무수히 노력했다. 새벽 지나가는 기차의 굉음 소리가 잠을 깨웠지만 그 소리도 아름다웠다. 전철역에서 서성거리는 단발머리에 단화를 신은 소녀들은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그때만해도 나는 15년은 복역해야 출소할수 있을것으로 생각했다. 밖에서 치열하게 전개 되는 민주화 운동 덕분에 나는 예상외로 작은 형을 받고 1983년 12월 23일 김대중씨가 특별 사면으로 나올 때 세상속으로 나올수 있었다.
사람의 심리는 묘하다. 그후 남영동에 가보고 싶었다. 두려웠지만 어느날 전철을 타고 일부러 남영역에 내려서 과거의 어느 한시간 벌레처럼 짓밟혔던 나의 과거 한 시간이 머물러 있었을 대공분실 4층의 어느방을 처다본 기억이 있다. 시간이 지났지만 공포의 강도는 다르지 않았다. 여전히 그 건물이 살아있는 괴물이 되어 나를 덮칠 것 같았고 그 건물속의 무서운 인간들이 나를 알아보고 금새라도 쫓아 올 것 같았다.
87년 국가 안전 기획부 지하 1층 139호실….
첫번째 출소후에도 민주화 운동을 그만두지 않은 나는 87년 1월 다시 CA그룹이라는 반국가 단체 구성죄로 국가 안전 기획부로 잡혀갔다. 잡히기 얼마전 동생으로부터 메모가 전달 되었다. 동생은 치안본부 대공분실에 잡혀 있었다. “형 절대 잡히면 안돼. 말도 못하게 고문을 해, 동맥을 끊었더니 더 이상 고문을 안해. 잡히더라도 약을 갖고 다녀. 차라리 죽는게 나아. 절대 잡히면 안돼”
동생이 당했을 말못할 고문은 상상하고도 남았다.
그런 공포와 충격 속에 있던 어느날 식은땀을 흘리며 잠을 설치고 난 아침.. 안기부 수사관 30명이 나를 기다렸다.
안기부 수사관들의 살기(殺氣)는 치안 본부 대공분실 수사관의 살기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아마 지하 1층 139호실로 끌려갔던 것 같다. 발가벗겨놓고 두 책상 사이에 통닭구이처럼 올려 놓은 뒤 발바닥을 몇시간이고 팼다. 울고있으면 혀집어 넣으라고 하며 잠시 패기를 멈췄다. 김대중씨와의 관계를 물었다. 논리적으로 볼 때 전혀 내가 김대중씨와 연관이 있을리가 없지만 그들의 목표는 크게 “한건”하는 것이었다. 벌써 한달여전부터 수사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김대중씨와 연결하는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분명했지만 그들은 혹시나 한건할까 싶어 듣고싶은 말을 들을때까지 아니면 못들은 분이 풀릴때까지 패고 또 팼다.
나는 같이 잡혀온 아내도 나와 같은 고문을 당하고 있지 않을까 혼란스러웠다. 며칠 뒤 고문 수사관이 “너희 집은 정말 지독하다. 니 어머니도 아들 며느리 내 놓으라며 안기부 정문을 발로 차더라, 그래서 중부 경찰서에서 연행해갔다.” 고 태연하게 말했다.
심리전인줄 뻔히 알았지만 둔기로 머리를 한대 얻어 맞은듯 했다.
나한테 어떤 어머니던가? 6남매를 키우며 그 모진 세월을 인내하셨고 두 아들이 투옥, 수배, 투옥을 반복하는 동안, 찬 마루 바닥에서 자는 아들을 생각해 아랫목에 불도 안넣으시고 주무셨던 어머니…매일같이 일곱 여덟시간을 아들을 위한 기도로 사시는 어머니가 아닌가? 나에게는 그토록 성스러운 어머니가 고문관의 입에서 “지독하다”는 표현으로 모욕되다니..어머니에 대한 죄송함은 날카로운 송곳이 되어 내 심장을 찔렀다. 그리고 자기 자식들 이야기는 저렇게 다정하게 하면서 남의 자식들을 밤낮으로 때리고 짓밟는 것을 업으로 삼는 그들이 정말 사람인가 싶었다.
독재 정권은 보통의 사람들의 생각도 의식도 마비시킨다. 1987년 6월 항쟁은 내가 복역중이던 서울 구치소안에서도 이어졌다. 나 역시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결국 지하 징벌방으로 격리 수용 되었다. 분노에 가득찬 나는 그 방에 들어가자마자 변기통을 차버렸다. 1평밖에 안되는 벌방에 변들이 사방으로 ?y어졌다. 하지만 교도관들은 방을 옮겨주지도 않았고 치워주지도 않았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지난 8일 열린우리당의 이철우 의원이 “ 북한 노동당에 가입했고, 지금도 간첩으로 활동 중이다” 고 주장했다. 이는 명백한 간첩 조작 사건이다.
하지만 이철우 의원은 의연했다. 92년 그 간첩조작사건으로 아버지를 잃은 그였지만…또 이번 간첩 조작 사건으로 가족들이 겪을 정신적인 고통을 염려하면서도 의연했다.
그는 독재 시대에 분단시대에 성경에서 해답을 찾기도 하고 마르크스의 책에서 답을 모색하기도 했지만 그 모든 것은 시대적 고민의 산물이었다고 담담하게 답했다.
지금은 간첩이라는 단어가 주는 섬??함이 많이 약해졌다고 하지만 아직 그 위력은 대단하다.
식구중 한 사람이 간첩죄로 몰리면 일가 친척이 모두 망가지고 친척끼리도 남남이 된다.
그런데 아무런 사실 확인 없이 국회의원의 직책이 주는 면책 특권 뒤에 숨어 한나라당 공안세력이 이 같은 백색테러를 저질렀을 때 나는 지나간 시절의 기억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가까스로 덮어두었던 기억속의 생채기가 부어올라 마음속으로 울고 또 울었다.
묻고 싶다.
간첩 운운하는 그들은 국민을 위한다는 그들은 지금까지 살면서 아픈 시대에 대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얼마나 고민했는가? 아픔을 겪어본 사람만이 상처가 주는 고통을 제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쉽게 간첩 운운하는 것…그에 대해 열린 우리당 의원들이 너무 아파하는 것은 그런 이유다. 타인의 쓰라린 상처를 이용하여 “한건”하려는 의도였다면 일계급 특진을 위해 모진 고문을 일삼았던 “고문기계”들의 광끼와 무엇이 다른가?
첫댓글 대한민국 국민의 권리를 위해서 하는 국가안보관련 수사임에도, 늘 권력자의 이익을 위한 논리로 바꿔서 설명됩니다. 친북좌익의 국가해체적 의지는 도구주의적 시각에 대한 부정이미지 형성으로 숨기고, 자기는 무조건 선량햇다고 합니다.
이철우는 벌금 200만원 이상이 유력시되는 인물입니다. 주사파들의 조국인 북한에 적대적이며 대한민국 친화적인 국보법 사수운동을 선택하고, 뉴라이트에 동화되는 게 쉬울 듯 예측됩니다. 그것을 이용한 친북좌파의 민병두식 말장난은 얼마나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