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벽아래의 밀 밭. 아직 익지 않은 파란 밀들이 느지막이 저녁의 붉은 빛에 머리를 숙여있었다. 미풍에 흔들리는 여린 가지가 시원한 몸짓을 이루며 지평선 까지 손길을 내뻗었다. 주황 구름들이 이에 어울려 붉게 얼굴을 감추며 몸을 웅크렸다. 솨솨 바람이 밀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한 알 한 알 머금은 잔털이 부드럽게 아지랑이를 그리듯 서로에게 기대었다.
영원히 끝을 보여주지 않을 듯 펼쳐진 그 하늘 위를 손을 뻗은 남자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다 익은 보리의 따스함을 머금은 아릿한 미소였다. 황금빛 지금 가라앉는 해의 빛깔의 짙은 그 눈은 천진한 소년의 것 이였다. 부드럽게 휘어진 입 꼬리가 서서히 내려지면서 밭을 가로지르는 유일한 황색 길에서 바람을 맡듯 머리를 조금 젖혔다.
“당신으로부터 좋은 바람이 불어옵니다.”
“나는 가야만해!”
절박한 그 목소리에 남자는 웃었다. 비웃음이 아닌 아까전과 같이 자애로운 미소였다. 그 얼굴을 바라본 남자가 한 번 더 외쳤다. 갈색 머리에 흐르는 땀 을 떨어뜨리며 온몸으로 호소했다.
“황! 나는 가야해 돌아가야만 해.”
“당신은 자유로워요.”
“근대 왜 내 앞에 있는 거지? 벽을 열어줘 너만이 벽을 열수 있잖아.”
거친 숨을 뱉는 남자에게로 황은 걸어갔다. 이곳에 있는 길은 단 하나. 밀밭을 가로지는 그의 검은 옷깃과 머리칼이 자유롭게 날렸다. 시선을 내린 그 눈엔 길을 잃은 남자가 절규 하고 있었다.
“잊었나요. 벽을 열고 온 것은 저가 아니고 당신입니다 아르칸.”
“나는 열수 없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저 빈 하늘에 뭐가 있다는 거지? 지긋 지긋한 밀뿐인 여기서 나보고 어떡하라는 거야!”
“절망은 사람의 눈과 귀를 가립니다. 왜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까?”
“난, 난 이곳에서부터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고 있어 그런데 막은 것은 너잖아 황! 왜 그런 얼굴로 나를 보고 있는 거지 넌 나를 죽이려 했고 지금은 나를 이곳 까지 내몰았어. 이런 내가 너를 원망 아님 어떤 것을 가지라는 거야!”
아르칸은 격한 외침을 황에게 보냈고 눈을 감았다. 눈물이 났다. 자기 빼고 평화로운 이곳이 야속했고 자신 앞의 소년의 목을 비틀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들끓는 감정이 그의 앞에 오만하게 서있는 금색 눈동자를 볼 때면 모든 것을 녹이듯 눈물이 먼저 쏟아졌다. 다시 한 번 미풍이 불어옴을 느끼자 어깨에서 약한 온기가 느껴졌다.
“미안합니다. 나와 이곳의 모든 이들이 당신을 몰아세웠군요. 미안합니다.”
“……”
황은 미소를 거두고 아르칸을 내려 보았다. 칸이 이를 물고 고개를 숙여 눈물을 삼켰다. 하늘은 조금 더 붉은 빛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황의 반대편에서 몰려오는 매들의 소리에 아르칸은 고개를 들었다. 그의 흐느낌은 몰려오는 검은 파도로 인해 삼켜졌다. 경직된 어깨가 부들거리면서 숨을 몰아쉬었다. 길 잃은 갈색 눈이 덜덜 떨며 황을 바라보았다.
“아르칸.”
마치 꿈을 꾸는 아이를 달래 듯 한 따스한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가 바로 앞에서 들리자 아르칸은 작은 그 몸을 붙잡고 싶었다. 덜덜 떨리는 얼굴을 그림자로 가린 황이 온전히 홀로 다른 세계를 속삭이듯 다시 한 번 더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 시간을 멈춰 새울 듯 바람과 함께 목소리가 들렸다.
“아르칸 나와 함께 돌아가요.”
“……나 이곳이 아닌 벽, 벽 너.”
“나와 함께 벽 너머로, 당신이 왔었던 그곳으로 함께.”
거대한 매를 타고 온 ‘하얀 토끼’ 들이 망토를 펄럭이며 황에게 칼을 들이 밀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웃고 있었다. 나지막한 소년의 목소리에 아르칸은 고개를 끄덕이며 편안함을 느꼈다. 저주하고 저주했지만 그의 앞에선 모든 것들이 잠자듯 부드럽고 조용해졌다. 그리고 벽이 열렸다. 하얀 토끼들이 매의 부리를 앞세워 황을 잡아채듯 다가왔지만 황은 오롯이 아르칸에게 하늘을 가리키며 그의 시선을 옮기게 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천공에 벽이 생기고 열렸다. 푸른 벽, 인간의 욕심에 생긴 금. 맛 물리며 하늘을 갈라놓은 벽이 만개하듯 공간을 열었다.
솨솨하는 밀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죽음의 절망이라던가, 격한 감정 같은 것들이 흩어지는 소리 같기도 했다. 아르칸은 열린 벽 너머를 걸어가며 다시 한 번 더 그 소리에 귀 기울었다. 그것은 황의 목소리를 닮았다. 아님 어쩌면 황의 목소리였을지도 모른다.
그의 외침이 저러하듯 솨솨 거리며 이 경계선에서 울렸다. 이기심의 근원인 푸른 벽 에서.
01.
시끄러워야할 시간의 펍이 고요했다. 뿌옇게 때 낀 유리창밖엔 이미 희미한 가로등의 빛만이 인도를 비추고 있었다. 탁탁 날벌레들이 요란스레 달려들지만 무참하게 떨어져 지나가는 이에게 밟힌다.
딸랑 숨소리만 들리는 술집에 어린 청년은 들어가도 낡은 흑백 티브이에 시선을 때지 않은 사람들이 익숙한 듯 그냥 제자리를 찾고 시선을 돌렸다. 누런 달빛의 아지랑이는 이런 조잡한 거리도 아름답게 품는다. 설사 이 모든 것이 거짓이라 해도 어떠랴.
“나온다!”
흘끗 시선을 돌린 쪽은 주인장이 겨우 안테나를 세운 고물딱지주변의 사람이 외친 소리였다. 지지직거리는 잡음과 웅성대는 소리는 이내 곧 조용해지고 낭랑한 아나운서의 모습이 거무죽죽하게 나왔다.
[중앙 엘펀지구 동남쪽 이스트 낙가우사유지 숲에서 반정부주의 반란군 ‘하얀 토끼’가 또 한 번 의 쿠데타를 일으키며 바티칸 성군 타도를 강행했으며 무력 대치 속에 정부군 50여명을 사살함에 따라 외각지구 자치 지역에서도 민간인들의 모방 범행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이에 하얀 토끼에서 계속된 정부의 회견 요청에 결국 승낙을 의사를 건넨 중앙 정부는……]
화면이 다시 한 번 지지직거렸지만 주위의 점점 거칠어진 숨소리가 마침내 터지며 여기저기 환호성을 질렀다.
“이얏호! 젠장 미친 이런 승낙이라니, 그 정부가 승낙이라니!”
“와하하하 그 개새끼들 드디어 꼬랑지를 내리구만.”
“낙가우에서 시도 한 것이 옳은 판단 이였어, 정부군 중에서 제독의 외동 조카인 소령의 관할 군사유지에서 누가 일을 낼 줄 알았겠나.”
티브이를 끄고 누런 전등을 하나씩 킨 펍 안은 아까전보다 밝아져 있었다. 젊은 남자는 그들을 보며 히죽 올라간 입 꼬리를 열며 미지근한 맥주를 마셨다. 숨 막히는 긴장감이 단번에 활기로 뒤바뀜 하면서 이 가난한 동내를 울렸다.
“안토니오! 어디 갔나 싶었는데 여기 있었잖아, 괜히 더러운 아저씨들 사이에 끼는 게 아니 였는데.”
“아, 틀렌 찾고 있는 줄 몰랐지.”
“꽤 좋은 성사 인 것 같지 않아? 여기저기서 들뜨고 있어.”
“그래 하지만 ‘토끼’들의 목적은 아직 이야. 아무리 방방 뛰어 봤자 지금까지 바티칸 군부가 반응을 보인적도 정부가 이를 언급한 것도 아니야. 야직 그들은 중앙의 관심을 확실히 돌려 놓지 못했어.”
“헤에, 그들의 눈길을 받을 만한 어떤 자극이 필요한 말이지?”
“그래, 하지만 외각 지구에선 그들은 신과 같은 무조건 적인 지배만 있어 바티칸이 무엇인지 무엇을 하는지 중앙을 가기 전엔 몰라 여긴 있어봤자 제국군의 말단뿐이니깐.”
“이런 촌구석 이야 뭐.”
틀렌의 실없는 맞장구에 안토니오는 맥 빠진 웃음을 늘여 놓았다. 지금은 그냥 이 상황을 만끽하자. 극북의 사막이 대부분인 이곳엔 단비라곤 저 소식뿐이니. 2주 후에 ‘하얀 토끼’들이 이곳에 온다. 적당히 버림받고 있는 외각 중에서 가장 밀려난 곳.
그땐…… 망설이지 않고 그들과 손을 잡으리. 말단 군인장교는 토끼들이 잡아먹을 터이다.
창밖에 가로등을 바라보았다. 그 안을 가득 매운 자잘한 날벌레 중 커다란 날개를 가진 나방이 툭 하고 튕겨졌다가 낡은 자전거에 깔리면서 바스라 졌다. 달과 가로등은 엇비슷한 빛을 내뿜지만 다일 수 있는 것은 저 더러워 빠진 가로등 이였다. 달을 보고 몸을 날리는 것들은 바보 천치일 뿐이다 차라리 부서지더라도 닿을 수 있는 곳에 손을 뻗으리. 같잖은 영웅심이 아닌 현실을 직시하는 자신에겐 이것이 현실 이였다.
예비 통금 시간을 알리는 벨 소리가 인적 드문 거리에 울려 퍼졌다. 개새끼의 울음소리였다.
* * *
“안토니오! 무슨 얼굴이 그렇게 심각하냐?”
“아니…… 뭐 좀 생각할게 있어서.”
“뭐 그만 얼빠진 채로 창밖만 보지 말고 정신 좀 차려 다음시간이 신체검사라고.”
안토니오는 창밖을 바라보는 눈을 거두었다. 중앙에서 거리가 꽤 되는 율칸 외각 지구. 그가 다니는 별 볼일 없는 사관학교였다.
그는 자신을 기다리는 친구에게 나직하게 웃으며 일어섰다.
“중앙에 충실한 예비 강아지로서 맡은바 충실히 따라야겠지.”
중얼거리는 그 소리에 소년은 눈썹을 치켜 올렸다.
“뭔 헛소리야.”
“아니, 빨리 가자고.”
안토니오는 자리에 일어섰다. 17살 1년 후면 정부군으로 편입된다. 이런 외각 사관학교라면 장교는커녕 중앙 군부에 편입할 가능성도 희박하지만 이곳에 다니는 것에 큰 목적은 없었다. 단지 중앙 진출의 틈새를 비집을 일말의 가능성에 매달리는 것 밖에 안대지만 자신은 구석에 쳐발린 체로 희생될 생각은 없었다. 군인이 된다면 최대한 그들을 조롱할 것이고 이대로 도망친다면 ‘토끼’가 되어 사냥꾼들에게 도망 다니거나 그들을 물어야지.
‘그때까지만 역겨운 이곳에 있을 뿐이다.’
학생의 추억 따윈 공화국에 버림받은 외각인 이들에겐 사치였다. 그나마 진출이 가능한 국립 사관학교에 입학해도 달라지는 것은 극소수의 행운아들 뿐. 뭐 어떠랴 1주후엔 이 정나미 떨어지는 곳엔 발도 디디지 않을 것이다. 정부의 냄새나는 그림자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안토니오 너는 극북지방에서 뽑혀 올라왔지.”
“작은 지구니 쓸 만한 남자애들은 별로 없으니깐 강재 집병이니 뽑혀 올라왔다 보기엔 무리지.”
“헤헤 뭐 중앙에서 던 먼 지구 애들도 너랑 같은 반응. 뭔 선생들이 학생 대가리에 총구멍이나 박는 군인이 뭐냐면서 엄청 욕 하는걸 들었거든. 새끼들 쫄아선 아무 말 못할 땐 언제고 임시 방학만 지나면 저렇게 빠릿해 진단 말이지.”
“넌…… 아픈탈 시티에서 왔으니깐 외각 사정을 모르는 게 뻔해 그곳엔 군인이 죄다 깡패새끼니깐.”
“그건 뭐 할 말없고 나는 지진아여서 여기 왔으니깐. 아버지도 참 잔인해 나를 여기까지 밀어 놓고 군인이 되라 하시는걸 보니.”
“얼마나 부진아였으면 시티에서 쫒겨나 여기서 고생 질이냐.”
“하하 친구 그런 모진 소린 하지 말개나 내가 중앙에 소속되기만 해도 넌 임마 황금 밧줄 잡은 거라고 기대해!”
“밧줄이건 똥줄이건 빨리 가기나 하자 늦으면 기합 받을지도 몰라.”
“아까까지만 해도 멍하던 놈이 쳇! 간다 간다고!”
낡은 시멘트 벽 아래로 왁스가 덕지덕지 칠해진 나무판위를 뛰어가자 삐걱 거리는 소음이 둘이 지나간 자리를 매웠다.
운동장은 교실 관과 떨어진 특별관이라 마른 운동장을 가로 질러 가야만 했다. 닳은 실내용 신발을 비적 거리며 끌고 담 쪽으로 걸어갔다. 꽤 울창하게 심겨진 고목들의 그들 아래로만 지나가던 안토니오가 우뚝 멈춰선 친구에게 시선을 옮겼다.
“뭐야 알렉 갑자기 왜 멈춰서 서는.”
“아니 저거……교문에.”
“교문?”
고개를 들자 황야 같이 메마른 운동장에 미세한 소음이 점점 커지면서 이곳에선 볼 수 없는 고가의 차들이 하나씩 매캐한 황색 바람을 일으키며 들어왔다. 사관학교가 극 편의 외각이 아니라 해도 시티가 아닌 만큼 상황은 엇비슷했다. 가끔 지구마다 중앙 관찰 군들이 오긴 했지만 군부에서 지급된 군용차량만 왔다갔다 하는걸 봤을 뿐 저런 고급차야 볼래야 볼 수가 없었다. 까만 중형차들이 하나씩 들어오자 마지막으론 크림색 매끄러운 차가 교문을 통과했다. 예정된 방문인 듯 경비원이 그들이 지나온 교문을 닫고 급히 무전을 드는 것을 지켜보았다.
“알렉 저 차는 어디 꺼지? 정부 관찰 공무원인가 아니면 군부의……알렉?”
“맙소사……”
“너 왜 갑자기 넋을 놓곤.”
안토니오의 중얼거림에 알렉은 차례대로 차에서 내려온 사람들을 멍하니 보다가 안토니오를 끌로 재빨리 그늘로 뛰어가 몸을 숙였다. 조금 거칠어진 그의 상태에 눈썹을 찡그렸다가 알렉이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입을 열었다.
“그래서 시티 출신인 네가 좀 말해보지 나는 촌놈이라서 저런 차도 저런 인간들도 처음 보는데.”
그의 이죽거림에도 알렉은 심각한 얼굴을 풀지 않았다. 그리고 침을 한번 삼키곤 안토니오의 얼굴에 들이밀며 떨리는 목소리를 숨기지 못한 체 그와 눈을 마주쳐왔다.
“바티칸이다.”
떵 하니 누가 뒷목을 치는 느낌 이였다. 안토니오가 얇게 뜨던 눈이 커다래지면서 입을 열려 하자 알렉은 집게손가락을 입에 가져다대고 쉿 그에게 경고를 줬다. 안토니오는 자신도 모르게 벌어진 목구멍을 막고 소리를 죽여 그를 노려봤다.
“무슨 거지 깽깽이 같은 헛소리야 이딴 곳에 바티칸이 올 리가 없잖아! 군부라 해도 믿을까 말까한데 바티칸? 너 아무리 시티 출신이라 해도 바티칸은 본적이라도 있냐?”
“나도 지금 뭐가 뭔지 모르겠거든? 근데 저건 분명 바티칸이다.”
“……어째서!”
“앞에 5대는 분명 정부군인데 뒤에 마지막 차는 바티칸이야. 아까 나오는 기사 옷에 바티칸 문장의 타이가 메져있었어.”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바티칸은 중앙에만 있는 거 아니였어? 시티엔 없을 거 아냐.”
“물론 바티칸 본부가 중앙에 있긴 하다만…… 난 딱 한번 가본 적 있거든 중앙 정부 청사에. 물론 아버지를 따라 서지만 그때 바티칸 성군을 봤어 아버지가 말해줬거든 ‘저들이 총독각하의 머리위에 앉아 있는 자들이다.’ 라고 그때도 부서진 은빛 십자 문양은 타이를 매고 있었지 우리 아버지는 세금 징수원이야 나름 중앙이랑 친분 있던 사람이라고. 아마 그때 아버지 담당 시티 시장의 문제로 정부까지 갈 때 나도 대려 가주셨거든.”
“그럼……”
“그래 저 검은 차에 탄 놈들은 확실히 중앙 정부군이 확실해 너도 알다시피 근데 저들이 장교라는 게 문제고 저기 크림색 차 기사가 바티칸 성군 이라는 게 믿을 수 없다 이거지.”
“그럼 저들이 무슨 일로 이딴 촌구석에 온 거란 말이야?”
“나야 알 리가 있나? 경비원이 막지 않는걸 봐선 윗분들이 아시는 일인 것 같고…… 알 길이 없군, 기껏해야 중앙에 비해 덜떨어진 애새끼들이랑 말단 군인들밖에 없는 학교에 왜 중앙에서 내려온 거냐고. 졸업 시즌도 아니라 군부 편입일도 아닐 텐데.”
“우리한데 공포 하지 않은 걸 봐선 윗분들 일 아닐까?”
“그럴 수도 있겠다만 우리한테 알릴필요 없다거나 아님 어차피 애새끼들은 모르니깐 지들끼리 멋대로 우리들에게 개입하겠다는 건지도 모르지.”
알렉의 말에 안토니오는 멍하니 운동장을 바라보았다. 알 수 없는 열기가 온몸으로 뻗쳐 감을 느꼈다.
그사이 다음 시간을 알리는 잡음 섞인 벨이 울리자 알렉이 멍한 안토니오를 불러 세웠다.
"우선 아무것도 모르니 빨리 체육관에 가자.”
알렉이 무릎에 가득 묻은 흙을 털고 먼저 일어나 달려갔다. 하지만 안토니오는 그를 뒤따라 뛰면서도 크림색 차에 눈을 때지 못했다. 그러자 바티칸이라고 말하던 알렉이 지목한 기사가 뒷문을 열머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곳에 검은 머리의 남자가 나오자 안토니오는 흠칫 몸을 떨었다. 하지만 자신을 잡아끄는 알렉의 손길에 이네 시선을 옮기고 멀리서 왁왁 거리는 양호선생에게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이상한 한기가 느껴졌다. 그 시리도록 검은 것이 자신의 머릿속을 검게 만드는 것 같았다. 얼굴 같은 것은 덩치 큰 군인들에 막혀 보지 못했지만 그 까만 머리털은 각인되듯 새겨졌다.
1주후 주말이 오면 극북의 자신의 고향으로 간다. 그리고 2주전부터 기다리던 ‘하얀 토끼’ 들을 만나 그쪽으로 편입 할 것을 다짐했다. 정부를 타도하고 그릇된 권위의 최종 목표인 바티칸을 철폐하기 위해서. 하지만 마냥 아지랑이 같던 그 끝이 이렇게 눈앞에 있었다. 불같은 파괴 욕이 온몸을 지배했다. 사관학교라 해도 군법을 따른다. 학교로 돌아오지 않으면 탈영으로 강조돼 자신과 자신의 가족은 총살에 직면한다. 하지만 그것 따윈 관계없다 극 지구 에선 이미 토끼들과 손잡은 자들이 하나둘씩 외각을 떠나 황무지로 간다.
악법을 피해 자유를 짓누르는 중앙의 권력에 도망쳐. 모두 사냥꾼을 무는 ‘토끼’되어 다수의 힘을 외칠 것이다.
‘바티칸!’
안토니오는 속으로 외치며 거친 숨소리를 내뱉으며 양호 선생의 우악스런 손길에 떠밀러 체육관으로 들어갔다. 그 안의 냄새는 더럽고 습하고 쾌쾌했다. 정부의 그늘진 곳의 냄새였다.
체육관 안은 어수선 했다. 몇몇 소수의 양호 선생들을 빼곤 교관들이 없었다. 이를 눈치 챈 알렉은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의 반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안토니오를 끌고 다가갔다. 애들은 마침 이라는 듯이 떠들어 대다가 알렉을 보곤 화색을 지었다.
“이봐 알렉 늦게 왔네? 근데 왜 교관들이 안보이냐 종친지 꽤 댔다만.”
그의 말에 잠시 옆의 안토니오 쪽으로 눈을 굴리던 알렉이 실없이 웃으며 글쎄 라 웅얼거리곤 다른 영양가 없는 대화를 주도해갔다. 실없는 그 소리에 안토니오는 가벼운 한숨을 쉬다가 뒤에서 툭툭치는 손길에 고개를 슬쩍 돌렸다. 같은 반 여자애였다.
“이보게 안토니오 저 밖의 삐까뻔떡한 금속들은 무엇인가?”
‘……일났군.'
“그대 불손한 눈깔로 이 몸을 내려다보면 엉덩이를 차버리고 싶으니 내말 좀 무시하지 말게나.”
‘……일났어.’
“야 똥깡아지야!”
이상한 어투로 자신을 노려다 보는 여자애한테 안토니오는 손을 휘휘 저이며 거부의사를 밝혔다.
“내가 알 리가 있냐.”
“하지만 방금 그대는 늦게 왔지 않은가? 어서 그 주둥이를 놀려보지 그러나.”
‘말 참 이쁘게 한다.’
입을 꾹 다문 체 그가 다시 자신에게서 고개를 휙 돌리자 살 풋 내리 감은 눈동자로 그를 보다 길게 뻗은 그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뻑 소리가 울리자 그제서 안토니오도 다른 아이들도 그녀의 쪽으로 시선이 옮겨지자 드디어 만족스럽다는 웃음을 걸고 눈을 치켜떴다.
“자 안토니오여 아까 알렉이랑 보고 온 것을 이 몸에게 고해라.”
“저! 저! 씨팔!”
안토니오가 자신의 정강이를 부여잡고 쾅쾅 뛰자 알렉이 흠칫 몸을 떨다가 억지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치켜 든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오늘 따라 진이 빠지긴 매한가지였다.
“에, 저 멕그널양 밖엔 그냥……음.”
삽시간에 모여든 시선들에 알렉이 조금 머뭇거리자 멕그널이 안토니오를 찬 자신의 오른발을 살짝 흔들며 알렉을 노려보았다. 뒤에서 욕 짓거리를 하는 그의 목소리가 들리자 하하 어설프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뭐 그냥 번쩍 거리는 차들이던데?”
“차아? 흠 개새끼들이 똥이나 누자고 온 것은 아닐 터이고 타고 온 게 번쩍 번쩍은 더더욱 아닐 터이니…… 이상한 일이 아니겠나.”
“에, 뭐 우리들이랑은 별 상관없을 듯 해 멕그널양.”
“하지만 교관들의 부제는 이상하다 그 똥개새끼들이 갑자기 아무 공고 없이 간 것도 그렇고 저것 봐라 양호 선생들이 턱없이 부족한 숫자에 검사 기기가 없다. 이상하지 않은가?”
‘이야……이거 뭐 미친놈들이 천제라는 말이 맞을지도.’
실없는 생각이나 하며 당혹스러운 미소를 짓는 알렉이 주위를 휙휙 둘러보며 정확히 지적하는 멕그널을 보다가 점점 웅성거리는 주위에 난감함을 느끼자 겨우 씩씩 거리는 안토니오를 바라보았다. 눈 까지 벌겋게 된 그는 멕그널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다가 이내 숨을 풋 쉬며 알렉에게 다가갔다.
“시티에 사는 이자식도 모르는 일이야 네가 그렇게 대가릴 굴러 봐도 나오는 건 없어.”
‘안토니오도 유치한 구석이 다 있구먼.’
가시 돋친 말투에 알렉이 킥 거렸지만 드는 이네 안토니오는 노려보기만 할뿐 고개를 팩 돌렸다.
“흥 안토니오여 아무리 교관들이 개새끼들의 말단 이라 해도 일단 중앙 ‘어른’들이 오면 일주일 전부터 공고해왔다. 아무리 지네들끼리 사정이라 해도 쓸 때 없는 위신 세운답시고 이리 저리 긁어모아 인사시키지 않았나? 지금 상황은 대가리를 굴리지 않아도 나오는 게 수두륵 하네, 멍청이.”
뿌득 이빨 가는 소리가 날카롭게 들렸지만 멕그널의 주장에 더 이상 대꾸는 없었다. 그녀의 말이 끝나고 웅성거림이 커지긴 했지만 더 이상의 언쟁은 양호 선생의 시선만 끌 것을 안 안토니오와 멕그널을 입을 다문 체 서로를 노려보며 으르렁 거렸다.
하지만 곧 아이들은 흥미를 잃었는지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갔고 오랜만에 주어진 자유 시간을 만끽하길 바빴다. 옆에서 멕그널이 잠시 씰룩거리긴 했지만 그녀도 잠시 후엔 입을 다물고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알렉도 그녀의 주위에 안토니오를 이끌고 엉덩이를 붙였다.
“뭐, 더 이상 할 일도 없으니 아까 들은 이야기나 해줄게.”
“아까 그놈이랑 한 시답잖은 말이나 할 거면 다물어.”
“까칠하게 굴지 마 안토니오 제법 들을 만 하다고 네 고향 쪽인 극 북 지구 이야기야.”
“그곳 이야기면 뻔하지.”
“아니아니, 그렇게 첫말부터 찬불 뿌리지 말라고 나중에 한 번 더 말해 달라기 만 해봐.…… 흠흠 임시 방학 이후 이번 졸업반 선배가 탈영했어.”
“헤에, 졸업반이 탈영이라니 특이한 이야기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멕그널이 흥미가 생겼다는 듯이 제복 모자를 무릎에 두고 엉덩이를 끌어 당겼다.
“맞아 군부 편입날도 며칠 남지 않은 시즌에 탈영이라니 미친놈이지 방학 자원 봉사 날 때 교관들이 하는 이야길 들어보니 그 미친놈 때문에 탈영 신고가 내려졌어. 근데 그 부모가 죽지 않았다는 거지. 가족 중에서 탈영자가 있으면 당연히 시즌이 끝나면 총살형으로 죽게 돼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거야.”
“……지저분한 외각 미친놈이 필요하단 소리군.”
알렉이 숨을 고를 동안 안토니오가 작게 중얼거렸다. 톡톡 바닥에 싸구려 왁스가 손에 묻었지만 상관없다는 듯 두드리던 손을 멈추곤 멕그널이 씩 웃었다.
“‘하얀 토끼’ 이다.”
“뭔 뜬금없는 소리야 멕그널양? 하얀 토끼라니 접점이 없는 이야긴 인거 같다만.”
멕그널의 말에 알렉이 반문하자 안토니오도 무료하던 눈을 급하게 치켜떴다. 하지만 열띤 시선에도 태평히 모자를 뱅뱅 돌리던 그녀가 녹색 눈으로 밖을 바라보았다.
“나도 최외각 지역에 사는 인간으로써 하얀 토끼들의 결맹 소식을 들은 바이다. 50지구 이상 버려진 불모지에서 그들은 단비나 다름없지. 하지만 시티나 중앙으로 들어서면 그들은 이야기가 달라짐은 진리일터이다. 하지만 이 결맹은 눈감고 야옹 할 정도로 정부가 손을 놓고 있다는 것에 걸린다. 정부는 빌어먹게도 똑똑하고 교활하지 이이야기는 의외로 깁이 관련된 일이 지도 모른다. 미친놈은 자신도 모른 체 미끼가 된 것이지.”
“저……멕그널양 용량 초과. 쉽게 좀 말해줘 시간은 많고 밥 먹은 지도 얼마 안 지났으니깐 응?”
“왜 갑자기 미끼라는 게 튀어 나와.”
그들의 불평에 멕그널이 한심하다는 눈으로 콧방귀를 뀌다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
“병신들 아냐 이거. 이 몸이 친히 풀어주지. 첫째 미친놈은 최외각 즉 50지구 이상의 불모지 출신이다. 둘째 불모지 인간들에게 ‘하얀 토끼’는 단비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제안하는 결맹엔 발가벗고 나선다. 마지막 미친놈은 영탈했고 하얀 토끼와 손을 잡았다. 결과는 하나로 나온다. 훤히 정부의 손에 놀아난 미친놈은 자신도 모른 체 정부의 충실한 미끼가 된 거지. 1주일 전에 낙가우 쿠데타 이후 정부는 너무 쉽게 그들과 교섭을 발표했다. 모가지에 뭔가 걸린 것 같지 않아? 너무 쉽게 손을 잡아준 거라 느끼지 않아?”
“……눈속임 이라는 거야?”
“빙고 알렉, 아무리 말단 이라 해도 지구 별 군청이 있다. 간접적인 정보만으로 정부가 토끼들의 결맹을 모를 리가 없지. 지금 까지 눈감아 주다가 드디어 입을 벌린 것이다. 미친놈은 혈기 왕성한 애송이 당연히 토끼와 놀아났을 태고 국가는 미친놈의 발자국을 따라 토벌을 시작하겠지.”
“……사관학교 애송이라면 더 쉽겠지. 그것도 최외각의 강제 선별로 뽑힌 알려진 놈이라면 더 쉬울 거고 개다가.”
“그래 탈영이라는 명분하게 군부는 50지구이상 외각에서 시청의 허가 없이 무력을 행사 할 수 있다.”
멕그널이 말을 맺고 안토니오를 바라보았다. 스스로 놀란 듯 거만한 눈 이였지만 곧 수그러든 그녀의 시선에 안토니오는 이를 버득 거렸다.
“한 번에 쓸겠단 이 말이군.”
“정부에 손에 모두가 놀아난 것이다. 국빈도 토끼도. 시즌이 끝나고 여러 외각 지구의 사관학교에서 이러한 탈영 미친놈들이 많을 것이다. 시즌이 끝나고 기간도 명분도 확실하게 매겨졌지. 탈영은 중죄야 군부 놈들이 미쳐 날뛰어도 누구도 제제를 가하지 못해.”
알렉도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인 안토니오를 응시했다. 그는 50지구이상의 최외각 출신 이였다. 알렉은 잠시 머뭇거리다 그의 어깨에 손을 집었다.
“아직……확실 한건 없잖아? 아무리 멕그널 이라 해도 핀트가 나갈 수도 있어 안토니오 우리들은 애송이 이니깐.”
“뭐 그 말은 인정 하니라. 이 몸이 천제라 해도 교활한 정부의 속을 어찌 알겠는가.”
그들의 어처구니없는 변명에 안토니오는 이죽거리고 싶었지만 지금 그의 머리는 엉킬 때로 엉켜 있었다. 빛이 사그라드는 느낌 이였다. 한 가닥의 가로등에 온몸을 날리기도 전에 불이 꺼진 기분 이였다. 하지만……
“그럼 나 같은 새끼들한테 나오는 답은 하나야…… 하얀 토끼에게 가겠어. 더 이상 이 빌어먹은 정부 엿 먹일 놈들 밑에 사는 건…….”
“안……토니오?”
“끝이야.”
쾅! 그의 말이 끝나고 체육관의 철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곳엔 이 나라를 지배하는 정부의 개, 군인들이 즐비했다. 그들을 바라보는 안토니오의 눈에 불이 켜졌다. 최악의 빈민 지대 정보, 부, 인구 최악의 슬럼지대. 같은 땅위에 갈라지는 시티와 외각지구.
자유와 억압 그 속에 발버둥치는 먹이 피라미드의 최하층인 자신. 우리들의 마지막 가로등 그곳에 토끼가 뛰어다니는 푸른 초원의 낙원. 모든 땅이 비옥한 푸른 밀이 한들거리는 잃어버린 과거. 근 반세기 비약적인 세계의 발전은 밀과 토끼를 죽였다. 어떠한 것이 매개체인 지 원동력인지 우리는 모른다. 하지만 아련한 기억속의 낙원을 위하여. 자신들의 푸른 초원과 어린 밀들이 나부끼는 저녁노을의 그곳을 위하여.
메마른 입술에 짠맛이 났다. 눈이 뜨끈해 졌다. 소년의 눈에 푸른 불이 붙었다. 절망 속에 보이는 초록의 낙원. 시작이자 정점인 그곳을 향하여.
제 1지구 중앙 엘펀. 그곳을 향하여 끝을 위한 황폐한 천국, 하얀 털이 타들어 갈지라도 거짓된 그곳을 태우리. 우리들이 가진 불꽃으로 그들을.
독제의 정점 검은 신의 추앙 자 바티칸, 진실을 알아야만했다. 그들이 가린 초록 진실을.
철근으로 얽힌 거짓은 여린 빗물로 녹여 마침내 죽은 땅을 적실 것이다.
“제군들, 정렬!”
교관 이였다. 철문을 바짝 재끼자 밖의 빛이 음습한 이곳구석까지 비춰왔다. 살짝 눈을 찌푸린 안토니오가 무슨 일로 군복을 차려입은 교관들이 바짝 긴장 한 것이 느껴졌다. 학생들이 잠시 어수선하다 교관의 불호령에 재빨리 자신들의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잠시 후 교관들이 열려진 문 옆으로 행렬을 가다듬고 길을 텄다.
그곳엔 검은 머리의 남자가 서있었다.
옆에서 알렉이 부르는 것을 무시한 채 고개를 움직일 생각을 못했다. 검은 차에 내렸던 정부군이 지저분한 교관들의 카키색 군복이 아닌 검정 일색의 제복을 늘어뜨리고 그 남자의 휘하에 둘러싸고 있었다.
“뭐야 저 남자 안토니오?”
“아까……크림색 차에서 내린 남자야.”
그의 말에 눈을 가늘게 뜬 알렉이 살피듯 눈을 굴리면서 손을 저었다.
“부서진 십자가는 없지만 내 털 나고 시티에서도 못 본 좋은 슈트를 입은 오빤데?”
장난스런 그의 이죽거림에도 안토니오는 그에게선 시선을 돌리지 못했다. 교관들이 경례를 하던 간에 성큼성큼 이쪽을 가로 질러 오는 남자는 가는 담배를 입에 물고 정렬한 아이들을 대충 휙휙 훑어보고 있었다. 어깨까지 굽슬 거리는 검은 머리가 엉성하게 반 묶인 채로 이리저리 날렸다.
“미인.”
멕그널이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중얼거리다 안토니오의 허리를 찔렀다.
“아까 그대가 본 것이 저것이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안토니오가 멕그널의 손을 쳤다. 쳇 소리가 났지만 그는 무신경 하게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체육관은 물먹은 강아지처럼 조용했다. 휘휘 앞으로 나가며 주위를 둘러보는 남자와 그 뒤를 따르는 중앙 정부군의 일렬 된 발자국 소리 뿐 이였다.
남자는 중앙에 멈춰서는 길 개 빠진 검은색 모직 코트에 손을 넣곤 조금 삐딱한 얼굴로 담배를 뺐다 다시 물었다. 그리고 마주쳤다.
“거기 소년.”
황야에서 지독하게 만큼 본 태양의 색이였다. 모든 걸 말려 버리는 금색 원. 그것은 태양만큼이나 강렬했다.
몸이 어이없게도 뻣뻣해졌다. 스스로 겁먹은 거냐고 비꼬고 싶었지만 쿵떡 거리는 심장이 악동같이 발을 쿵쿵 굴렸다. 멕그널이 옆구리를 찌르지 않았더라면 영원히 입을 열지 못했을 것이다.
“충성!”
떨리는 턱주가리를 땅에 박고 싶었다. 중풍 걸린 노인네도 아닌데 달달 떨렸다. 하지만 그 누구도 안토니오를 비웃지 못했다. 자신의 주위의 알렉과 심지어 미친 멕그널도 우뚝 선 게 느껴졌으니깐.
경례를 하고 지끈 감고 싶은 눈을 남자의 턱 정도에 시선을 떨어뜨렸다. 외각 지역의 여자애들한데도 볼 수 없는 단정한 선이라 이상한 감상평이 비쭉 솟았지만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탓에 그마저도 하얗게 탈색 돼버렸다. 완전히 모두의 시전이 집중되었다. 자신은 정신나간 멕그널이 아니였다. 이런 상황 따윈 구겨서 그녀 입에 쑤셔 박고 싶을 만큼 부담스러웠다. 혹시 모르지 그녀라면 미인이랍시고 저 남자에게 달려들지도.
터질 것 같은 머리통이 열기를 꽉 채웠다. 그러다 갑자기 번쩍 정신을 차리자 코앞까지 들이민 얼굴 때문 이였다.
‘히익!’
“병신인가?”
‘……이 새끼가.’
으득 갑자기 머리를 때리는 말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입에서 튀어나갈 욕을 겨우 앙 문체 그를 살짝 올려다보았다. 키는 자신보다 조금 컸지만 덩치는 저 발정 난 곰 새끼들 같은 군인들에 비하자면 놀라울 정도로 호리했다. 나이는……확실히 자신보단 어려 보이진 않았지만 상당히 젊었다. 검은 장갑이 껴진 손으로 자신의 턱을 두어 번 치다 자신의 뒤의 정부군에게 입을 열었다.
“이 세 명이랑 아까 거기 두 명.”
남자는 거리낌 없이 그들에게 말하고 다 타든 담배꽁초를 아무렇게나 바닥에 던지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누굴까, 바티칸의 부서진 십자가를 가지지 않았고 군복도 입지 않았다. 공무원 이랍시곤 터무니없이 젊고 거만한 행동을 스스럼없듯이 했다. 사업가? 의사? 종가의 도련님?
안토니오는 끝없이 이어지는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자신을 부르는 교관의 명령에 뒤를 돌았다. 남자는 자신과 알렉 그리고 멕그널을 대충 훑곤 살 오른 돼지새끼를 고르듯 오만하겐 명령하곤 밖으로 나갔다.
기분? 재대로 구렸다.
알렉과 멕그널이 조잘거림은 그의 귓구멍에선 받아들이지 못했다. 무시당했다는 분노와 시티나 중앙의 ‘부르주아’ 임에 틀림없었다. 모든 걸 내려다보는 오만한 금색. 돼 먹지도 못한 교관 나부랭이가 아닌 무심한 듯 흘려 보는 그 잘난 면상을 생각하며 어금니를 으득 깨물었다.
그 남자가 말한 애새끼들은 흥분 한 듯 폴짝 거리며 턱을 들고 걸어 나갔다. 골 빠진 망할 놈들. 거칠게 발을 뻗은 안토니오가 운동장에 정렬된 차를 향해 침을 뱉었다. 피해의식이라 비하해도 이죽 거려 줄 수 있다. 가진 놈은 가지지 못한 놈을 모르고 가지지 못한 놈은 가지 놈을 증오한다. 빌어먹게도 이기적인 것이 자신이고 우리였다.
아까의 긴장감이 순식간에 분노와 증오로 바뀌어 스스로를 태웠다.
앞서 나간 남자를 따라 가본적도 없는 학교 교장 관에 발을 디뎠다. 그 남자가 원하는 건 무엇이고 그 남자 정체는 무엇일까? 아까 멕그널이 말한 정부의 토벌을 생각했다. 동시 다발적으로 뭔가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
반갑습니다.
방학이 끝나감을 느끼는 처자입니다.
sf보단 판타지에 가깝습니다. 의미가 있는 글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가볍지않은 글이 될것같습니다. 제목에서 부터 언급했듯 메인주인공은 황입니다.
안토니오도 주인공이지요.
배경은 차차 밝힐것이고 분위기는 독재정치에 기울어진 사회입니다.
깁니다. 재미있게 봐주셨으면 합니다. 초반 돌입부로 피해자인 안토니오의 주변으로 썼습니다. 부실하지만 조금이라도 배경을 느끼셨음 합니다.
첫댓글 와..넋놓고읽었어요..재밌어요..우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