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곤마대고원(崑麻大高原).
대곤륜의 최고봉 곤마대산(崑麻大山)의 정상은 도끼로 허리를 끊어버린 듯 광활한 평지를 이루고 있어 곤마대고원이라 불린다.
구름 위에 광야가 펼쳐진 듯 장엄하기까지 한 그 곤마대고원의 경관 위에 휘영청 팔월의 대보름 달이 파랗게 빛의 폭우를 쏟아붓고 있었다.
곤마대고원의 중앙에는 거대한 산정호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 호수의 중앙에는 하나의 웅장한 저택(邸宅)이 웅크리고 있었다.
높이 일백 장 넓이가 무려 오천 평, 둥근 지붕을 덮고 있는 것은 박꽃처럼 하얗게 핀 수십만 장의 백색기와(白瓦).
그 시리도록 아름다운 백색기와의 정면에는 세로 오 장 가로 십 장에 달하는 보라빛 자수정 현판이 걸려 있었는데 현판에는 <백마성> 이라는 황금빛 글씨가 웅휘로운 위엄을 발산하며 오연하게 달빛을 받고 있다.
- 백마성.
보름달빛에 파랗게 빛나는 이 환상같은 백색의 원형 저택이야말로 십팔만사천백와마루의 상징과도 같은 건축 백마성, 그 위대한 성채였던 것이다.
헌데 기이하지 않은가? 지금 이 아름다운 백마성의 주위에는 푸른 달빛보다도 더욱 차디찬 살기가 숨이 턱턱 막혀 올 듯 위압적인 공기 속에 가득차 있었다.
고원의 밤을 불타게 하는 팔월의 무더위 때문만은 결코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수천 종의 병장기로 완전히 무장한 채 겹겹으로 백마성을 포위하듯 경계하고 있는 흑포무인들의 인의 장막에서 뿜어지는 위압이었던 것이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만월이 가장 그 빛을 떨쳐내는 팔월 십오야의 자시 정각. 웅장한 백마성의 내성에는 수천 개의 횃불들이 햇살처럼 불붙고 있었다. 외벽과는 대조적으로 검은 빛 대리석이 장중한 위엄을 바라며 외장(外裝)되어 있는 오천여 평의 공간.
횃불에 비쳐 보이는 흑단의 바닥 한 가운데에는 거대한 한 마리 푸른 독수리의 문형이 수백 평에 걸쳐 부조되어 있고 그 푸른 독수리 위에는 전자체 글귀가 전평을 가로지르며 붉은 빛으로 음각되어 있었다.
<천하제일 십팔만백와마루.>
<천하제일성 백마성.>
그리고 푸른 독수리의 문장이 새겨진 바닥에서 정확히 동쪽의 상단에는 작은 동산만큼이나 거대한 두 개의 황금빛 태사의가 상하로 세워져 있었다.
아래쪽 태사의 좌우로는 엄청나게 큰 의전용 원형 탁자와 일백 석을 헤아리는 의석들이 타원형으로 놓여져 있었으며 위쪽의 조금 작아 보이는 태사의의 좌우 또한 중형의 의석 수천 석이 원형 탁자와 일백 의석을 포위하듯 둥글게 설치되어 있었다.
헌데 횃불만이 고요히 타는 이 웅장한 백마성의 내성은 인적이 끊어지기라도 한 것일까? 죽음같은 침묵과 무덤 속같은 적막만이 삭막하게 가라앉아 있지 않은가.
분명 그 일천을 헤아리는 의석 위에는 적황녹청자(赤黃綠靑紫)등 다섯 빛깔의 장포를 걸친 무인들이 언제부턴가 빠짐없이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흡사 일천 개의 영전을 모신 납골당을 연상케 하는 칙칙한 침묵이 중인들의 얼굴 위에 내려앉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그렇게 흘렀을까?
둥둥둥!
웅장한 북소리가 침묵의 벽을 산산이 깨뜨리며 울려퍼졌다. 그리고 누군가의 우렁찬 음성이 벼락치듯 중인들의 귓전을 때렸다.
"태대각께서 드십니다!"
그그긍!
착석해 있던 중인들의 신형이 반사적으로 기립되었다.
두 개의 태사의가 놓여 있던 후면의 검은 대리석벽이 천천히 굉음과 함께 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석벽 속에서 한 명의 자포를 걸친 은발노인을 대동한 채 천천히 걸어나오고 있는 인물은 바로 만세제일신마 곤오풍우가 아닌가.
그의 모습이 장내로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천상의 하늘! 태대각(太大閣)을 뵙습니다!"
일천 명의 무인들의 입에서 한 사람의 음성인 듯 우렁찬 대갈이 터져 나왔다.
곤오풍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그들의 환호에 답하며 천천히 태사의 앞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헌데 지금 가슴에 푸른 독수리 문장이 수놓아진 희디흰 전포(戰袍)를 걸치고 붉은 곤룡의 수실을 단 설백의 패검을 비껴 찬 곤오풍우의 모습은 사흘 전 곤륜칠층봉소석탑의 오층 석전에서와는 완연히 다른 기도를 서리서리 내뿜고 있었다.
칼날을 베어 문 듯 곧게 다문 입술에서 풍기는 냉기는 하늘이라도 두 쪽 낼 듯 결연한 의지의 빛이었다.
마주 보기만 해도 심장이 터져 버릴 듯 송곳처럼 솟구치는 눈빛과 패검을 움켜쥔 두터운 손에서 폭사되는 살벌하도록 패도적인 기세는 흡사 십만 기의 적군을 단신으로 참한 채 적장을 향해 뚜벅뚜벅 다가가고 있는 불패전의 대원수를 연상케 했다.
육중한 위압을 뿌리며 태사의에 깊숙히 앉은 곤오풍우를 향해 집중된 중인들의 시선에는 한결같은 의혹의 빛이 긴장 속에 은은히 떠오르고 있었다.
그때 곤오풍우를 수행하던 은발의 자포노인이 곤오풍우가 착석한 태사의 위의 탁자에 올라섰다.
오 척 단신의 깡마른 체구였지만 누구에게도 결코 그가 왜소하다는 느낌을 갖지 않게 하는 강렬한 인상을 지닌 노인이었다.
적어도 칠순은 넘어 보이는 나이임에도 한 점의 주름도 없이 불그레한 홍조를 띠고 있는, 전형적인 전제군주의 체취를 은발노인은 가지고 있었다.
숙연한 자세로 탁자에 올라선 은발노인은 천천히 은빛 흑추를 들어 탁자 위를 무겁게 두드렸다.
"본루의 위대한 율법이 정한 바에 따라 본로 대곤륜태조천장주 기성 백악도도 용등택은 지엄하신 태대각의 천명을 받들어 백마를 위시한 여러분들의 위대한 무혼을 모시고 제 구십 팔 차 백마회를 개정하는 바입니다."
삼천 년간 단 아흔 일곱 차례 개정됐고 개정될 때마다 무수한 신화와 사연들을 피와 주검 위에 뿌려놓았던 백마회의가 또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그럼 먼저."
오늘의 의장인 용등택은 서두를 꺼내다 문득 한 곳에 시선이 굳어지며 곤오풍우를 슬쩍 바라보았다.
"태대각."
곤오풍우가 알고 있다는 듯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용등택의 시선은 다시 정면의 한 사람에게 꽂혀졌다.
"사대주! 만화무대의 산하단체인 천요만방의 부방주의 자리는 왜 비어 있소이까?"
용등택의 시선이 향한 원형탁자의 한 복판에는 만화왕자 주희빈이 금성의 시립을 받으며 좌우에 신주팔흉을 거느린 채 앉아 있었다.
사 년의 연륜이 그에게 더욱 매력적인 아름다움과 노련한 중량감을 더해 준 듯 지금 주희빈의 모습은 확실히 그때보다 강하고 아름다우며 또 거대해 보였다.
주희빈은 용등택의 물음을 받자 등 뒤의 금성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돌렸다.
"천요만방의 부방주?"
"예. 그, 자천릉이 아니... 자부방주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하, 그 친구가 오지 않았던가?"
"예. 관례대로 전달을 했습니다만."
금성이 만면에 곤혹스런 표정을 떠올렸다. 곤오풍우가 등대하고 백마회의가 개정되고 있는 이 마당에 서열 백 육 위에 불과한 자천릉은 아직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백마회의의 삼천 년 의사록에 단 한 번도 기록되지 않았던 실로 불의의 사태였다.
주희빈의 입가에 머금은 미소가 더욱 화사해졌다.
"흠, 그래. 그 친구는 오지 않고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예. 조금 전까지만 해도 천요만방의 주방에 있다는 보고를 전해 들었습니다만."
"주방? 하하, 재미있군. 나보다 더 재미있는 친구야! 곤륜칠층봉소석탑에서 출관한 자에게 천요만방의 부방주같은 하급직책을 준 태대각이나, 그것을 서슴없이 받아들이는 친구나, 그렇지 않은가, 금성?"
놀랍게도 주희빈은 백마회의의 의장이자 천장원주이기도 한 용등택의 물음 따위는 아예 잊어버리기라도 했다는 듯 태연히 미소하며 금성을 돌아보고 있었다.
"하하, 그래. 주방에서 무엇을 하고 있지?"
"예. 자부방주는 직접 요리를 만들고 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사흘 주야를 촌각도 쉬지않고."
"하하하, 맞아, 맞아! 그 괴팍한 친구는 요리가 취미라고 했었지."
주희빈이 짐짓 유쾌한 듯 대소를 터뜨렸다. 은은한 노기가 서린 용등택의 음성이 주희빈의 웃음소리를 끊었다.
"사대주! 잊으시면 안되오 대곤륜일천무성좌에 소속해 있는 일천 인 중 그 누구도 본 백마의회에 불참할 권한은 없소!"
허나 주희빈은 더욱 고혹적인 미소를 머금은 채 상단을 향해 가볍게 목례를 취하였다.
"하하하, 원주님! 송구스러운 일이오. 하지만 그는 지금 아마도 백마성에 들어오고 있을 것이오. 천요만방의 부방주라는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자 여러분께 대접할 훌륭한 요리를 준비해 들고서 말이요."
그 순간이었다. 돌연 곤오풍우와 용등택이 입장했던 석벽이 다시 열리며 백건에 흰 장의를 걸친 수십 명의 요리사들이 두 손에 황홀하리만큼 먹음직스런 향내를 풍기는 거대한 쟁반을 받쳐 든 채 주춤주춤 걸어나오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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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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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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