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1번째 편지 - 대화에서의 지장, 용장, 덕장, 운장
지난 주말 골프연습장에서 우연히 목격한 어느 부부의 모습입니다.
“여보, 골프 스윙할 때 탑에서 잠깐 쉬었다가 쳐 보세요. 훨씬 힘 넣기가 좋아요.” “여보, 그냥 막 공을 치지 말고 빈 스윙을 몇 번 하고 스윙해 보세요.” “여보, 탑에서 멈추지 않고 바로 내려오잖아요.”
남편은 아내에게 끊임없이 코치를 합니다. 그러나 아내는 대꾸하지 않고 건성으로 듣는 것 같습니다. 남편은 화가 난 기색이 역력합니다.
이런 모습은 연습장뿐만 아니라 필드에서도 더러 목격하는 모습입니다. 남편은 아내의 매 샷에 대해 코치를 하고 아내는 아무 말 하지 않고 그 잔소리를 참아냅니다. 저도 가끔은 그런 모습입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왜 남편들은 아내에게 끊임없이 코칭을 할까요? 2010년 뉴욕타임스는 남자(man)들이 여자들에게 설명(explain)하는 것을 의미하는 신조어 mansplain을 올해의 단어로 꼽을 정도로 남자가 여자에게 설명하는 문화는 세계적인 모양입니다.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는 그녀의 자발적 노예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때는 남자가 여자에게 질문을 하고 그녀의 말을 경청합니다. 사랑은 상대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기 때문입니다.
그녀와 헤어져 집에 와서도 궁금해 바로 전화를 걸어 잘 들어갔는지 묻습니다. 그 무렵 가장 많이 쓰는 말은 “뭐 해.” 입니다. 노예는 의견이 없습니다. 다만 주인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궁금할 뿐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랑은 30개월의 유효기간이 있습니다.
유효기간이 끝나면 남자는 여자를 지배하려 듭니다. 그때는 그녀에 대한 궁금증은 사라지고 지시만 늘어날 뿐입니다. 그녀를 위한다는 명분을 가지고 있지만 지시의 본질은 지배입니다.
남자들이 직장에서 상급자가 되면 이 지배 욕망은 점점 커져 상대방을 궁금해하기보다는 상대방에게 지시하려 합니다.
임원은 직원에 대해, 교수는 학생에 대해, 검사는 피의자에 대해 지배 관계를 유지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오랜 세월 이런 지위를 유지한 사람은 예외 없이 말이 많습니다. 저도 그런 유형의 사람입니다.
저는 이 문제를 곰곰이 생각해 손자병법에 나오는 장수 유형인 지장, 용장, 덕장, 운장에 비유해 보았습니다.
대화법에 있어 첫째, 지장은 “상대방을 잘 연구하여 그가 원하는 것을 질문하는 사람”입니다.
누구나 자신이 아는 바를 이야기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상대방이 스스로 알아서 질문해 준다면 이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요?
검사 시절 어느 아침 부장검사께서 지청장에게 밑도 끝도 없이 “축하드립니다.” 하고 인사를 하였습니다. 평검사인 저는 어리둥절하였습니다. 지청장께서는 “뭘, 그런 걸 가지고.” 하였습니다. 알고 보니 지청장의 모교 출신 학생이 예비고사 수석을 차지한 것이었습니다. 부장검사는 이를 알고 축하한 것이었습니다. 대화의 지장이던 그 부장검사는 승승장구해 청와대 민정수석, 체육청소년부 장관 등 요직을 두루 역임하셨습니다.
둘째, 용장은 “상대방 말에 자신이 토를 달거나 첨언하려는 욕망을 억누르는 힘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제 아들은 저에게 한 번도 아빠에게서 칭찬받은 적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억울하였습니다. 아들을 평생 자랑스럽게 생각하였는데 이게 무슨 말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내의 설명을 듣고 나니 수긍이 갔습니다. 아들이 무슨 문제에 대해 저에게 설명을 하면 저는 늘 제 의견을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그 문제는 이런 점도 있지.” 늘 아들에게 보충 설명을 해 준 것입니다. 저는 그래야 아들과 대화가 이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내의 설명은 그것이 아들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대화에 있어 용장이 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저는 아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식의 대화를 해왔습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에게 의도하지 않은 상처를 주었을 것 같습니다.
셋째, 덕장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아량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저는 검찰에서 이 점만은 지키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래서 검찰 간부들에게 강의할 때 이 점을 강조하여 이야기하였습니다.
“여러분이 흔히 하는 실수는 부하는 특정 페이지를 보고하는데 답답해 다음 페이지를 미리 넘겨보는 것입니다. 물론 부하 직원이 요령부득한 경우도 있겠지만 이렇게 되면 부하는 페이스를 잃고 제대로 보고하지 못합니다. 반드시 보고하는 부하와 같은 페이지를 보아주세요.”
넷째는 운장입니다. “상대방을 칭찬하여 그가 내가 원하는 것을 스스로 하게 만드는 사람”입니다.
행운은 저절로 오지 않습니다. 자신이 불러들여야 합니다. 유능한 특별검사로 이름을 날린 선배 한 분이 지청장 발령을 받았습니다. 취임하기 전날 30여 명 정도 되는 직원의 신상명세서를 미리 받아 공부를 하였답니다. 그리고 첫 대면에서 그들의 신상을 훤하게 다 꿰고 한 명 한 명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 청의 실적이 어땠을지는 말하지 않아도 상상이 됩니다. 직원들은 자신을 칭찬하는 지청장을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 최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이렇게 분석하고 나니 제가 무엇이 부족하였는지 알 것 같습니다. 제가 제일 부족했던 부분은 용장 부분이었습니다. 나머지는 더러 실천하기도 하였지만 용장 부분은 천성적으로 취약했던 것 같습니다.
상대방 말에 첨언하려는 욕망을 억누르는 힘을 길러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가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3.5.2. 조근호 드림
첫댓글 MI (Motivation Interview). 상담을 자주합니다. 비슷한게 많아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