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영학회 융합학술대회 연사로 나선 박종규 KSS해운 고문
원본보기
"많은 사장들이 직원들에게 주인의식을 가지라고만 했지, 제대로 주인 대접을 해준 적은 없었습니다. 직원이 주식회사 주인이 되려면 주주처럼 대우받는 방향으로 기업이 변해야 합니다."
직원이 주인인 회사, KSS해운은 2014년 국내 최초로 주주배당처럼 직원들에게도 순이익 일부를 나눠주는 '이익공유제(성과공유제)'를 도입했다. 실적이 좋으면 직원들에게 더 많은 이익이 돌아가지만 회사가 어려우면 감원 대신 임금 총액을 줄인다. 이에 대해 박종규 KSS해운 고문은 "이익공유제를 도입하면 직원들이 자율적으로 일하면서 효율적인 회사 운영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KSS해운은 오너 경영이 일반적인 국내 상황에서 1995년부터 일찍이 소유와 경영을 분리한 전문경영인 체제가 확립되고 원칙을 앞세운 투명경영을 실천한 회사로 유명하다. 창립자면서 국내 경영계에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준 주인공이 바로 박 고문이다.
매일경제 비즈타임스는 지난 21일 강원도 정선 하이원리조트에서 열린 '제21회 한국경영학회 융합학술대회'에서 박 고문을 만났다. 박 고문은 한국마케팅학회가 KSS해운 등과 함께 한국경영학회 융합학술대회에서 발족한 '지속가능경영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정선을 방문했다. 인터뷰 내내 그는 직원 자율성의 중요성과 종업원 이익공유제의 효과를 거듭 강조했다.
박 고문은 1969년 KSS해운(옛 코리아케미칼캐리어스)을 세울 당시부터 업계 관행처럼 퍼져 있던 리베이트(불법 보상금)와 뇌물, 밀수 행위 등을 근절하기 위해 원칙을 세웠다. 원칙을 지키기 위해 투명한 회계처리와 공정거래라는 한길만 초지일관 걸었다. 선원들의 밀수 행위를 철저히 막는 대신 상여금으로 보상하며 50년간 안전에만 집중한 끝에 큰 사고 한 번 없었다. 정도경영을 바탕으로 초기부터 해외 고객을 집중 공략해 현재 매출 70%가 해외에서 나온다.
'임직원 자율성이 오늘날 KSS해운을 있게 한 가장 중요한 가치'라는 것이 박 고문의 신념이다. 그는 "회사 이익이 임직원 자신의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라고 여기면 마음에 들지 않는 상사와도 함께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다"며 "종업원들에게 배당을 준다는 관념 자체가 없는 주주자본주의가 이대로 지속되면 갈수록 사회 빈부격차는 커지고, 직원 자율성은 없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요도에 따른 일의 구분이 있을 뿐 자율적으로 일하는 기업문화에서 상사의 일방적인 명령은 필요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상명하복만 강조하는 조직에서는 뛰어난 부하도 상사 수준을 뛰어넘지 못하고 그저 복종해야 하기 때문이다.
KSS해운에 있어 임직원이 가진 자율성은 이익공유제로부터 나온다. 2014년 이전까지 지급하던 상여금이 기본급의 600%라면, 이익공유제 도입 이후부터는 상여금 중 400% 몫은 임금으로 편입해 연간 고정소득을 올리고, 나머지 200%는 종업원 이익배당금에 연동해 지급한다. 이익공유제를 실시한 지난 5년 동안 실질적인 상여금은 1146%까지도 도달했을 정도. 박 고문은 "이익공유제 아래서는 이익이 남으면 종업원이 혜택을 보지만 적자가 나 배당이 줄어드는 위험도 직원이 부담하게 된다"며 "이익과 위험을 회사와 나눠 짊어진 직원들은 성과를 내기 위해 열정적으로 일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익잉여금을 직원들과 나누면서 실적도 한 단계 높게 도약했다. 업력 50년간 KSS해운은 연평균 영업이익률을 10% 이상 기록해왔는데, 특히 이익공유제 도입 이후 5년 동안 영업이익률이 20%대를 돌파했다. KSS해운의 주력 사업은 화학물질과 액화석유가스(LPG)를 운송하는 서비스로 동북아시아 일대 주요 업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지난해 전 세계 해운경기가 침체한 가운데서도 매출 2025억원에 영업이익 471억원을 기록했다. 현금배당도 22년째 실시 중이다.
진정으로 '직원이 주인인 회사'를 만들기 위해 박 고문은 KSS해운을 창업할 당시부터 사주조합을 만들었다. 창업 이전 해운공사에서 과장으로 일하던 시절부터 꿈꾸던 종업원지주제를 실천하기 위해서였다. 노조 활동마저 전부 '불법'으로 인식되던 그 당시 한국에서 종업원지주제는 혁명적인 시도였다.
박 고문은 자신의 롤모델인 유일한 유한양행 창업주처럼 기업을 사회의 공기(公器)로 만들고자 한다. 1995년 사장직을 내려놓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당시에도 퇴직금의 대부분을 사주조합에 보다 더 많은 직원들을 참여하게 하는 데 사용했다. 그는 "우리 회사 주식을 단 1주도 갖지 않은 직원은 없다"며 "직원들이 애사심을 기반으로 회사 주식까지 갖고 있다면 금상첨화"라고 말했다. 애사심은 자판기에 동전 넣으면 물건 나오듯이 생기는 게 아니고, 단순히 회사 주식을 산다고 생기지도 않는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박 고문은 "종업원지주제는 어디까지나 이익공유제로 직원을 진정한 회사의 주인으로 만들 때 빛이 더 강해진다"고 말했다.
이익공유제가 직원이 주인인 회사를 만든 토대였다면 박 고문은 전문경영인 체제로 오랫동안 지속가능한 기업을 만들고자 했다. KSS해운은 1995년 장두찬 사장이 대표이사를 맡으면서 본격적인 전문경영인 체제가 확립됐다. 현재는 신입사원에서부터 성장해온 이대성 사장이 4대 대표이사다. 박 고문은 2000년대 초부터 고문으로 물러나 현업에서 손을 뗐다.
아들이 세 명 있지만 경영권 상속은 없다는 신념을 지키고 있다. 이 역시 유일한 창업주가 남긴 말인 "기업의 소유주는 사회다. 단지 그 관리를 개인이 할 뿐이다"를 실천하는 차원이다. 박 고문의 세 아들은 각기 자신의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내가 2대 사장으로 지명한 장두찬 사장은 나한테 반대를 가장 많이 한 사람이어서 전문경영인으로 삼았다"며 "많은 오너들이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반대 의견을 낸 직원을 해고하기도 하는데, 그러면 회사가 발전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소신을 따라 직을 걸고 반대 의견을 냈다는 건 회사를 위한 애사심의 발로라는 것이 박 고문의 생각이다.
자칫 '주인 없는 회사'이자 '사공이 많은 배'가 될 위험이 있는 전문경영인 체제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KSS해운은 강력한 사외이사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전문경영인 1인의 장기 독재를 막고자 정관에 사장은 3번까지만 연임 가능하며 9년 이상은 불가하다고 못 박았다. 차기 사장을 정할 때는 박 고문이 추천한 1인과 사주조합이 추천한 1인, 대표이사, 사외이사 등으로 구성된 사장추천위원회가 추천된 복수 후보 중에서 결정한다. 사내이사 구성도 기존 사외이사진의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오너 마음대로 사외이사를 '거수기'로 임명할 수 없다. 박 고문은 "애초부터 모르던 인재를 일일이 검토한 끝에 사외이사로 선임하고 있고, 사외이사들 간에도 원래부터 서로 모르던 사이"라며 "사외이사진이 내 의견을 따르지 않아도 되기에 오히려 나도 마음 놓고 경영 전체를 맡길 수 있었다"고 밝혔다.
2019년 상반기 기준으로 박 고문은 여전히 KSS해운 지분 17.63%를 보유한 최대주주지만 경영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겠다는 소신을 지켜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