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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스 히딩크 감독은 고집불통이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준비하면서 대표팀 명단에 한국 축구의 간판 스타인 홍명보를 넣지 않았다. 여론이 들끓었지만 히딩크 감독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는 월드컵을 3개월 앞둔 마지막 전지훈련에 비로소 홍명보를 불렀다. 33세 노장의 눈빛은 형형했고, 체력은 넘쳤다. 히딩크 감독은 자서전 '마이 웨이'에서 "홍명보는 초인적 노력으로 내 주문을 능가하는 체력을 만들어 자신의 네 번째 월드컵 출전을 화려하게 장식했다"고 밝혔다.
전·현직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인 히딩크와 홍명보는 닮은꼴이다. 강력한 카리스마와 외풍(外風)에 흔들리지 않는 뚝심을 가졌다. 게다가 복잡한 인연으로 얽힌 사이다. 스승과 제자로 만났고, 러시아 프로팀 안지에서는 코칭 스태프로 함께 일했다. 히딩크는 월드컵을 1년 앞두고 프랑스·체코에 5대0으로 패하며 '오대영'이란 별명이 붙었다. 하지만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걸었고, 결국 월드컵 4강 신화를 만들어냈다. 홍명보 감독은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어린 선수들을 기용했다가 동메달에 그치며 비난 여론에 시달렸다. 그러나 2년 뒤 그때 멤버들을 중심으로 진용을 꾸려 런던올림픽 동메달을 따냈다.
작년 말 한 여론조사에서 80%가 넘는 국민이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이 브라질월드컵에서 16강 이상의 성적을 낼 것'이라고 답했다. 기대와 달리 홍명보호(號)의 여정(旅程)은 순탄치 않았다. 대표팀은 지난 1월 멕시코와 치른 평가전에서 0대4로 패했다. 팀의 중심을 잡아줄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던 박지성은 홍명보호에 승선하지 못하고 14일 은퇴를 선언했다.
주위 여건도 2002년 월드컵 때와는 사뭇 다르다. 히딩크 감독은 준비할 시간이 충분했다.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전폭적 지원을 받았다. 그에 비해 홍명보호는 손발을 맞출 시간도 많지 않다. 역대 대표팀 가운데 FIFA(국제축구연맹) 랭킹이 가장 낮고, 선수들도 가장 어리다.
다행스러운 건 홍명보 감독에겐 독특한 리더십이 있고, 그게 통하고 있다는 점이다. 체력 담당인 이케다 세이고 코치가 일본 축구 팬들의 비난에도 런던올림픽에 이어 '주군(主君)' 홍명보 감독을 보좌한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홍 감독은 박주영 선발과 관련한 외부의 비판에 대해 "내가 원칙을 깬 것이 맞다"고 인정했다. 그는 남은 시간 동안 팀을 발전시키는 데만 집중하겠다고 했다. 선수들의 감독에 대한 신뢰와 충성도는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는 평가다.
요즘 우리 사회는 침울하다.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각종 사고가 잇따르면서 곳곳에 퍼져 있던 부조리와 적폐(積弊)가 드러났다. 정부까지 우왕좌왕하는 통에 국민 전체가 무기력·분노·불신 등이 가득한 터널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2014 브라질월드컵이 올해 대한민국에 남은 마지막 국운(國運) 상승 기회"라고 말한다. 홍명보호가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2002년의 히딩크 감독이나 IMF 외환 위기 때 프로 골퍼 박세리가 그랬던 것 못지않게 국민에게 큰 힘을 줄 수 있다는 뜻이다. 부디 홍명보 감독이 히딩크를 넘어서는 '히딩크 2.0 리더십'으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주길 기대해 본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