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의 세계 / 이토록
나는 이제
몸 없이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얼마 남지 않았다
나비가 날고 있다
내 넋은 망설임 없이 무덤을 파헤친다
나를 떠나 누가 간다
살얼음이 사라지듯
육탈은 뼈에 남은 어제의 환영일 뿐
몸 없이 살아가는 법을
몸으로 배워야 한다
부재로만 살아가는 세계가 올 것이다
죽어서 올 것이다
꽃으로 태어났던
향기가 망설임 없이 그 몸을 버리러 간다
얼마 남지 않았다
꽃잎이 지고 있다
몸 없이 가야 할 그곳을 알 것 같다
이전의 나를 다 써버린 이후의 어디쯤
빨간색 물감 / 이토록
이 등신은
짜고 짜도 붉은색만 고집한다
장미가 되겠다고 혀를 깨문 유월 염천
사랑이
피로 물들어
눈동자에 고일 때
아, 등신은
제 몸에 불을 질러 타오른다
휘발유 빈 통들이 비명에 나뒹군다
바닥에
온점 하나만
시뻘겋게 찍어두고
산수국 헛꽃이 푸르게 지듯 / 이토록
사랑이여
그 끝에는 아무것도 없답니다
간신히
꽃잎 한 장 남았을 늦은 날에
우리가,
한 뼘인 그곳에 못 갈듯
영 못 갈듯
ㅡ 시집《이후의 세계》가히 2024
카페 게시글
시조 감상
이후의 세계/ 빨간 색 물감/ 산수국 헛꽃이 푸르게 지듯/ 이토록
정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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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2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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