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서 더 크라운을 보고나서 영국 왕실
가계도에 관심이 생겨 관련 내용을 계속 찾아보고
있습니다.
한가지 특징이 근대 이후 영국 왕가들 결혼 상대가
대부분 독일지역 소국 왕실이나 명문가더군요.
덴마크와도 통혼이 있는거 같구요.
이상하리만치 남부유럽이나 프랑스와는 통혼이
없던데 아래가 제가 나름 유추해본 이유입니다.
혹시 다른 이유가 있을까요?
관련 문헌을 찾기가 힘들어서요 ㅎㅎ
독일지역, 덴마크
1.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외에는 소국들로
쪼개져있어 이해관계가 적어 통혼에 부담없음.
2. 같은 게르만인
3. 프로이센이나 오스트리아는 같은 열강이라 왕실결혼으로 엮이기 부담.
프랑스
1. 왕실끼리 묶이기엔 역사적 라이벌국가라 부담.
2. 레볼루숑으로 귀족가문이 씨가마름.
스페인,포르투갈,이태리
1. 민족이 다름.
2. 나름 큰 국가들이라 결혼으로 엮이기 부담.
이외 발칸쪽 왕국들
1. 격이 안맞음.
첫댓글 개신교 귀족 가문이 대부분 독일에 있어서유
그리고 조지 1세 이후부터 독일계 왕가기도 하고요
프랑스, 스페인, 오구리는 다 가톨릭이라..
오호 종교를 생각 못했네요.
영국은 성공회인데 가톨릭보다는 개신교를 같은 계열로 보나요?
@동쪽퍼렁이 조지 1세의 경우도 가톨릭 신자를 배제하고서 순위를 매겼을 때 1순위였던지라.. 스튜어트 왕가를 거치면서 그렇게 되었슴다..
@동쪽퍼렁이 성공회도 어쨌든 개신교라서요…
국제정치쪽으로 해석을 좀 해보면..
영국의 외교정책은 offshore balancer, 즉 대륙의 사건에 휘말리지 않고 독립된 상태를 유지하다가, 영국의 존속을 위협할 만한 잠재적 패권국이 등장하면 이에 개입해 세력균형을 맞추는 균형자로서의 역할이 중심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세력균형행위의 '유연성'으로, 특정 강대국의 행위에 연루되지 않고 행동의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국은 프랑스나 오스트리아, 스페인과 같은 강대국들과의 관계에서 경직된 형태의 동맹이나 여타 행위를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고, 왕실간의 결혼 역시 이러한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겠습니다. 한편으로 독일은 1870년 이전까지 분열된 상태로 남아있었기에 패권국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가장 적어, 이러한 유연성을 훼손하지 않는 가장 안전한 결혼 상대로 여겨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당시 이태리나 발칸반도쪽도 분열되어 있었는데 이쪽은 윗분 말씀대로 종교가 주된 이유가 됬을까요?
@동쪽퍼렁이 정확한 시기에 따라 다르겠으나, 18세기를 기준으로 한다면 발칸은 아직 오스만 치하에 있을 시기이고,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와 스페인,교황령, 프랑스 등의 영향력이 충돌하는 지역이었기에 독일에 비해선 덜 매력적이었을 거라고 봅니다. 이에 더해 독일에 비해 독립 공국들이 적기도 했고, 종교는 물론 문화도 너무 이질적이었으니까요. 이런 여러 요인들이 겹쳐서 그런 결과를 낳은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19세기로 가면 독일계 왕정들이 발칸으로 확산되면서 그쪽과도 통혼이 이루어지고, 마찬가지로 독일귀족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던 러시아 황실과도 통혼이 이루어집니다. 반면 프랑스, 이탈리아 등과는 통혼이 적었는데, 여기엔 분명 종교문화적 차이도 영향을 미쳤을 거라 봅니다.
당시 독일이 유럽의 2짱인 오스트리아, 프랑스 사이에있다 보니 겐세이 목적도 있을듯요
프랑스 견제 목적으로 독일을 주목한것도 있고 같은 개신교에 신성로마제국 붕괴전에는 제후국들도 사실상 왕국대우를 받아서 영국 자신들과 비슷한 격으로 취급했습니다.
의미가 크게 없을듯.. 종교 문제가 있다고 해도 통혼으로 왕실끼리 혼인하는게 하나의 관례이자 대국보단 그래도 독일제후국이 그나마 외세의 힘도 약하니 독일과 통혼이 많겠죠.. 영국뿐 아니라 프랑스 이베리아를 뺀 지역의 경우 다 독일 제후 왕조가 왕실을 개창 하거나 통혼하지 않았습니까. 북유럽도 엄밀히 독일제후 였고 동유럽 남유럽도 그 뿌리가 독일을 바탕으로 하죠.. 종교는 그 왕실에 외척 혹은 제위를 받으면 개종하기에 종교 문제는 아닌듯... 개신교가 카톨릭으로 개종 하고 카톨릭이 정교회로 개종 하는게 정통인데..
그것 보단 강혼 방지로 통치자 가문은 통치가 가문으로 결혼 해야 한다는 강박이 더 큰것 같군요.. 대체로 통치가 가문끼리 통혼하고 왕조가 바뀌거나 아예 통치자 방계가 외국 왕조로 계승되니까 귀천상혼 문제가 더 타당할듯.. 영국도 왕조 중간에 왕위를 위해서 강혼한 예는 있어도 왕조 바뀔때는 대부분 통치가 가문으로 왕조 바꿨으니 귀천상혼에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해도 영국도 그시대의 절대적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종교개혁 시기 종파는 오늘날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이상으로 중요한 간극이었고, 영국은 종파에 따른 분열이 가장 극심한 국가였습니다.
의회가 국왕과 왕족을 교황주의자라 헐뜯고 내전에 공직 취임 제한까지 있었으니, 적어도 영국에서는 종교가 가장 큰 원인이라 봐야할 겁니다.
@이름짓기귀찮아 영국에선 그런 경향이 있죠 의회가 신교도 왕가만 영국왕조로 개창 할 수 있다 하지만 왕위계승이 아닐 경우 영국 왕실도 카톨릭이나 정교회 왕조와 통혼 했습니다. 의회에 의해서 개신교 왕조만 영국왕이 될수 있었지만 일반적 왕실혼엔 종교가 고려대상이 된 예는 있긴 하지만 절대적이지 않았다고 봅니다.
중세로 가면 루이 8세와 혼인한 카스티야의 블랑슈가 존 왕의 동생이고, 에드워드 2세와 혼인한 프랑스의 이사벨라가 필리프 4세의 딸입니다. 근세에 메리 1세는 스페인의 펠리페 2세와 혼인했죠.
국혼은 외교관계와 밀접한 관련을 맺는데, 유로파 시기인 16~17세기에는 종파에 따라 동맹관계가 결정됐으니 두 요소가 함께 작용했다 봐야할 겁니다. 오히려 대신 반독감정이 정점에 달한 1차대전 때는 가문명까지 바꿔야 했고요
빅토리아 여왕 자녀들이 독일공국이나 덴마크로 시집을 갔는데 그 후 외손녀들이 러시아 황가로 시집간다고할 때마다 빅토리아 여왕이 러시아는 정치적으로 불안한 나라라 별로 안좋아했다고 하더라구요. 아마 나라 정세까지 생각해서 시집을 간게 아닐까 싶네요.
윗 분들 말씀들도 모두 맞다고 보고, 하노버 왕가 초대 국왕인 조지 1세가 영국과는 사실상 관계가 없던 쌩독일인이였던 것도 작용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