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의 눈] 하느님의 선물, ‘오늘’ / 안봉환 신부
발행일2022-12-25 [제3324호, 23면]
올 초에 세운 11월 본당의 활동 계획은 김장김치를 판매하는 수익 사업에 역점을 두었다. 코로나19 상황에도 불구하고 성당 건립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대내외 방문판매 활동으로 본당 상황이 어수선한 가운데서도 몇 달 전부터 사목회는 김장김치를 판매하기 위한 세부 계획을 차분하게 진행해왔다. 여성부는 두세 달 전부터 고랭지 배추 생산자와 사전 계약하고, 교구 주보에 김장김치 판매 홍보를 하여 관심있는 분들로부터 주문을 받아왔다. 11월 초부터 20일까지 사목회는 세 주간에 걸쳐 진행될 김장에 관한 업무를 제단체들과 심도있게 논의하여 요일과 시간에 따른 역할을 분담했다.
본당 형제들의 협조를 크게 받지 못한 작년에는 애꿎게도 나이 드신 자매들을 중심으로 진안에서 수확한 고랭지 배추 4000 포기를 구매하여 힘들게 절임김치를 만들어 판매했는데 예상치 않게 소소한 수익을 올렸다. 올해에는 작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담해진 여성부장의 폭탄선언(?)에 따라 장수에서 수확한 고랭지 배추 5000 포기를 구매하여 형제들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아 김장을 해서 판매하기로 했다. 한편으로 김장하는 데 형제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줄까 하는 걱정과 다른 한편으로 그렇게 땀 흘려 담근 김장김치가 제대로 판매될까 하는 두려움이 크게 앞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일은 하느님의 뜻에 맡기고 사목회가 추진하는 사업에 두 팔을 걷어붙이고 함께하기로 했다. 그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모든 걱정과 두려움은 기우에 불과했다.
‘코로나19 핑계를 대며 성당에 나오지 않던 형제자매들도 하나둘 나오더라. 꽃향기에 취한 벌떼처럼 모여든 신자들이 마당에 모여 떠들고 웃으며 재밌게 김장을 하는 모습이 주위 아파트 주민들까지도 감동시켰나보다. 사무실 전화가 북새통을 이루고 지나가던 행인들도 다가와 맛을 보더니 즉석에서 김장김치를 사들고 간다. 어떤 형제들은 친척과 친구, 지인들에게 맛좋은 김장김치를 사 달라고 전화로 홍보하고, 어떤 자매님들은 근처 아파트 관리실에 달려가 김장 판매 안내 방송을 해 달라고 부탁하고 본당 수녀님은 홍보지를 들고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락내리락 하고 왔단다. 본당 신자들이 함께하여 땀과 수고로 얻은 열매는 1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단다….’
인간의 시간은 하느님의 창조 행위로 말미암아 시작되었다.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창세 1,1) 하지만 시간을 초월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시간 이전에 존재해 계시고 인간의 척도로써 측정할 수 없는 어떤 기간, 곧 ‘항상’ 또는 ‘세세 대대에’ 살아 계신다. 인간은 한시적인 시간 안에 살고(“저의 세월 기울어 가는 그림자 같고”(시편 102,12)), 하느님께서는 영원 안에 사신다.(“정녕 천 년도 당신 눈에는 지나간 어제 같고 야경의 한때와도 같습니다.”(시편 90,4)) 인류의 역사는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는 단 한 번의 성격을 띤 사건들로 점철되어 있고 지나간 과거의 사건은 기억 속에 남아 있을 뿐이다.
인간이 셈하는 어제나 오늘 그리고 내일은 하느님께 변함없는 시간에 불과하고 단지 ‘오늘’일 뿐이다. 시작이며 마침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도 오늘도 또 영원히 같은 분이십니다.”(히브 13,8)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에 개입하셔서 세상의 역사를 거룩한 역사로 만드시는 분이므로 이제 이 시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은 하느님의 계획에 속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구원 계획을 단계적으로 실현하시려고 전적으로 인간의 협력을 필요로 하신다. 매일 은혜로운 시간을 선물로 받고 있는 우리는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계획에 어떻게 협력하고 있는가.
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전주교구 문정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