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듦에 대하여
- 박철
제주어람에선가 두 딸과 모처럼 외식을 하는 저녁 큰애한테 니는 결혼 안
하니 하고 파적 삼아 묻자 아빠 철들면, 하고 간결하게 답했고 안 간다는 얘
기네, 하고 작은애가 곁에서 거들며 둘이 킥킥거렸다.
몇 해가 흘러 큰애가 결혼을 하겠다고 사윗감을 인사시킨다기에 나 아직 철
안들었는데? 했더니 그니까, 기다리단 안 될 것 같아서, 하며 지들끼리 또 웃
었다.
그 애가 결혼을 해 딸을 낳았다. 졸지에 할아버지가 된 것이다. 가끔 보는 해
맑은 어린것이 나에게 리액션이 여간 좋은 게 아닌데 큰애가 여봐 여봐 좋아
한다 좋아한다, 하고 반기니 둘째가 거들기를 얘는 할아버지 철든 다음에 태
어났잖아, 그러며 또 지들끼리 히히거렸다.
-박철의 새 시집 ‘대지의 있는 힘’(문학동네시인선 220)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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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이 든다는 것은 나이를 먹는다는 게 아니라 사리분별력이 생겼다는 말이잖아요
화자는 두 딸들에게서 철이 들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었으니 다방면에 세대차가 있었다는 말이지요
나이가 차도록 결혼을 하지 않는 딸내미들은 철들지 않은 아버지 탓을 합니다
그러다가 결혼상대를 만났고 아버지 성에 차지 않았지만 저희들끼리 아이낳고 잘 삽니다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해서 리액션 좋은 손주를 안겨주니 할아버지 마음도 사르르 녹습니다
결국 아버지의 철듦은 저희들의 삶을 이해하고 수용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부모 자식 사이에 생기는 의견 차이는 나이든 사람의 포용성에 달려 있다는 말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