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갈때마다 움식때문에 고생이 많았다. 일본음식 특유의 그 닝닝하고 달착지근한 맛에 질려 마침내 거식증(拒食症) 비슷한 지경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식사문제로 한참 고전하던 여름방학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음식대결을 벌이는데 거기에 우리나라 비빔냉면이, 그것도 아주 리얼 무쌍하게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한국에 있을 때는 매워서 잘 먹지 않던 비빔냉면이, 특히 그 시뻘건 고추장이, 보는 것만으로 황홀했다. 비빔냉면과 대결을 벌인 음식은 멀건 국물에 담긴 중국의 냉채국수였는데 일본 심사위원들의 판정결과는 비빔냉면의 5대0 완패였다. 그 말도 안 되는 편파판정에 나는 애국적 분노를 느꼈다.
자기나라 음식에 자부심을 갖지 않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간장 한 숟가락 안 넣고 순전히 설탕으로만 피라미를 졸여 먹는 일본인들도 자기네 음식이 최고라고 할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네 식탁을 보면 겁부터 집어먹는 외국인들의 평가는 아랑곳 하지 않고 맵고 짜고 뜨거운 국물을 훌훌 마셔대면서 ‘어, 거 참 시원하다’를 연발한다. 그리고 어쩌다가 외국 뉴스에 우리 음식에 단골로 들어가는 고추 마늘 소금 따위가 몸 어디에 그렇게 좋다는 보도가 나오면, 더구나 과학적 근거까지 제시되면, 우리는 거 보라는 듯 어깨를 죽 펴고 늠름해진다. 역시 우리 것이 최고인 것이다.
한국음식을 대표하는 것은 고추다. 일본인들에게는 ‘고추=한국’이므로 고추가 한국에서 전래한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아메리카가 원산지인 고추는 임란 직전에 일본 구마모토 지역을 거쳐서 우리나라로 들어왔다. 고추는 일본에서는 본토까지 진출하지 못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들어오자마자 조선 팔도 식탁을 죄다 벌겋게 물들였다. 심지어 소주에다 고춧가루를 타 먹는 음주 관행까지 생겨나 그걸 마시고 죽는 사람까지 나오는 바람에 이를 금지해야 한다는 상소가 올라오기도 한다. 감기 걸린 사람한테 소주에다 고춧가루 확 타서 마시면 감기가 똑 떨어진다는 무식하기 짝이 없는 처방도 다 내력이 있는 것이다. 붉은 색이 잡귀를 쫓는다는 민간신앙도 고추에 대한 집착에 일조했다는 분석도 있다.
요즘 너도 나도 입에 올리는 말이 ‘세계화’인데, 우리의 자부심과는 반대로 매운 맛 나는 우리 음식들은 세계화되기가 결코 쉽지 않다. 김치나 라면이 세계화에 성공했다고 하나, 그 정도의 성공이라면 중국과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태국이나 베트남 음식들 중에도 적지 않을 것이다. 우리 음식의 맵고 짠 맛은 세계인의 보편적 입맛과 한참 동떨어져 있다. 한 때 수출용 김치를 외국인들의 입맛에 맞추려는 노력을 두고 김치의 정체성을 잃는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된 적이 있지만, 우리끼리만 먹자는 것이 아니라 수출을 목표로 한다면 당연히 세계인들의 입맛과 타협해야 한다.
세계화가 아니더라도 나는 모든 음식을 뻘겋게 도배해 버리는 한국의 요리방법을 지지할 수 없다. 매운 맛과 짠 맛은 음식에 사용되는 식 재료 하나하나의 고유한 맛들을 다 죽여 버린다. 고추장을 풀어도 식 재료에 따라 다른 맛이 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차이보다는 사멸되는 맛들이 너무 많다. 특히 나같이 미각이 발달하지 못한 사람은 매운탕 속에서 쏘가리와 빠가사리를 맛으로 구별해 내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값싼 양식메기 매운탕을 먹고 만다. 추어탕이 매우면 거기다 잡어(雜魚)를 갈아 넣어도 그만이다. 식당 하시는 분들께 죄송한 말이지만 고춧가루나 고추장에만 의존하지 말고 요리를 좀 더 성의 있게 해 주시기 부탁드린다. 펄펄 끓는 매운탕 속에서 양식 메기와 같은 취급을 당한 쏘가리가 자존심이 상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