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어제는 예로부터 전해오는 이곳 전통 새해명절 ‘노루스’를 맞아 집집마다 정성스레 음식을 준비하고 가족들을 맞으며 온 나라에 양고기 향이 가득했습니다. 그렇게도 간절히 기다리던 봄을 환영하는 이곳의 전통에 저도 익숙해져 갑니다. 이번 겨울은 예년에 비해 따뜻할 거라던 예상과 달리 폭설과 한파가 몰아쳤었습니다. 석탄구입이 어려워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고 제한 송전이 이루어 지면서 시간을 기다려 가면서 세탁과 청소를 해야 하기도 했지요. 한파 여파로 차량수리도 길어지면서 겨우내 발품을 팔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기다리던 봄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겨우내 날씨 때문에 힘든 일들이 많았지만 감사하게도 노동허가와 비자 갱신이 이루어졌습니다. 코로나 시기 상승한 물가가 반영되면서 행정 비용과 매달 내는 세금이 엄청 늘어났지만 또 한 해를 이 땅에서 살아가게 되어 감사합니다. 그리고 연말에 있었던 여러 모임들 통해서도 아버지의 은혜를 나누며 함께 감사와 기쁨을 누렸습니다. 특히 고아원 아이들과의 송년회에서 고아원을 퇴임하는 선생님 인사도 겸하고 인애가 한국으로 떠나기 전 친구들에게 준비한 선물을 나누며 눈물의 이별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달에 KAHYAH 지부 설립도 잘 마쳤습니다. 물론 실제로 일을 한 분들은 따로 있고 저는 숟가락만 얹었지만 그래도 기쁨은 함께입니다. 끝날 줄 모르던 차량 수리는 계속 이어진 한파로 정말 힘들게 진행되었는데 일단 운행이 가능해져서 먼저 출고했습니다. 우선 사용하면서 나머지 수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수리기간이 하필 제일 추운 두 달이어서 참 막막했는데 차량이 필요할 때마다 선뜻 열쇠를 내어주는 친구들이 있어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저희 가족에 이번 겨울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아들 지성이는 아신대 국제개발학과에 진학했습니다. 한국에 3 년간 살면서 가치관의 혼란도 있었고 상대적인 비교와 경쟁으로 힘들어 하기도 했는데 그래도 세상의 흐름에 휩쓸려 가지 않고 이겨낸 것이 참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달에는 딸 인애가 한국에 새로 정착했습니다. 검정고시와 대학입시를 준비할 예정인데 누나네 머물며 사촌언니와 잘 지내고 있다니 그 역시 너무나 감사하지요. 집을 나서 도서관에 가는 길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는 인애의 말에 한동안 마음이 먹먹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참 외롭고 힘들었구나. 아이들의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지만, 그리고 다시 선택한다고 해도 이렇게 하겠지만 마음으로는 미안하기 그지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번 겨울에 있었던 가장 큰 감사는 저희가 우리 마을을 떠나기로 한 결정입니다. 몇 년동안 주인과 이 집의 사용에 관해 이야기가 오고 갔었고 몇 번의 변곡점이 있었지만 이 곳을 떠나 토크막으로 이사가는 것이 아버지의 인도하심이라 생각되었습니다. 지나온 시간들의 인도하심과 사람들과 맺은 관계들을 객관적으로 생각하면 떠나는 것이 옳은 결정인가 자문해 보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농사는 저희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23 년전 러시아 연해주에서 아버지께서 맡겨 주신 일이고 그 일을 하면서 알게 된 소중한 가치들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주신 동산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서 가꾸며 돌보며 살아가는 우리의 삶의 의미들, 도시의 소비문화에서 벗어나 아버지께서 주신 것에 감사하며 살아가면서도 다른 사람들을 섬길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생물 종 다양성을 유지하면서도 농업이 가능하고 환경을 파괴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며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이 쉽지는 않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알게 된 사회적 농업. 그런 삶의 모습이 결코 우리가 전하는 메시지와 어긋나지 않으며 오히려 그 진정성을 더욱 분명히 한다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제 도시로 이사를 가면 그런 삶이 가능할까? 그리고 현실적으로 농사일을 하는 상황에서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새로운 밭을 일구어 간다는 것이 시간이 걸리는 일인지라…… 게다가 비닐하우스와 농업회사를 이전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행정적 소요가 많은 이 나라에서는 쉽지는 않은 일이기도 합니다. 경제적으로도 주인과 적당한 선에서 합의를 보는 것이 이사를 가는 것보다 훨씬 유리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사를 가기로 결정한 이유는 먼저는 그동안 가까워진 현지인 사역자들과의 관계 때문입니다. 이 친구들을 생각하면 저희 가정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항상 그 부분이 아쉬웠습니다. 제가 특별히 하는 것은 없지만 그래도 종종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고민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각자 소속이 다르고 섬기는 일들이 다르다 보니 조금 더 가까이 있어서 이동시간과 대기하는 시간들을 줄여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국에 저희가 떠난 뒤에 이 땅에서 계속 예배하고 섬기고 살아갈 그들에게 더 집중하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일의 본분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이유는 현재 살고 있는 마을에서는 기본적인 삶의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는 점입니다. 농사일 외에 다른 사역들이 없다면 큰 어려움은 없는데 점점 하는 일이 늘어나면서 이 부분이 짐으로 다가왔습니다. 전기나 물이 끊어지는 상황에서는 대비해 놓은 대로 어떻게든 버티면 되는데 겨울철 난방은 제가 직접 장작과 석탄을 시간에 맞춰 넣어줘야 하기에 대안이 없습니다. 물론 가끔 아내에게 맡기고 며칠씩 사역을 나가기도 했지만 예외적이고 누군가는 항상 집에 있어야 한다는 점은 변함없습니다. 그나마 전기로 난방을 일부 보조할 수 있었는데 몇 년 전부터 난방을 목적으로 전력을 사용하는 것 자체를 금지해버려서 사실상 대안이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세번째는 작년말 안경사역 팀이 해체되어서 안경사역이 정상화되기까지 여러가지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있습니다. 현지인들과 하고 있는 안경사역을 위한 교육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집중해야 하구요. 이센 선생님과 함께 안경제작에 필요한 장비들과 교육 및 사역을 위한 공간도 마련해야 합니다. 현재 여기 살면서는 이런 일들을 담당하기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제 토크막으로 나가서 농사일에 대한 비중을 일부 줄이고 현지인 사역자들과 나누는 시간을 넉넉히 하려고 합니다. 저희 가정이 살면서 안경사역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 집을 얼마전 토크막에서 찾았습니다. 현재 가계약을 했고 조만간 명의이전 서류절차를 진행하고 상하수도와 난방시설을 보완하는 공사를 하고 6 월경 입주할 예정입니다. 안경사역 공간은 먼저 준비되면 바로 사용할 예정이구요. 그리고 동시에 저희가 이사가는 곳에서 가까운 또 다른 시골마을에 텃밭을 얻어서 농장을 이전할 예정입니다. 고아원아이들과 아디스네 회사 사람들이 언제나 와서 땀도 흘리고 밭도 일구며 삶을 나누고 갈 수 있는 농장을 유지할 예정입니다. 지금까지 가꾸어온 소중한 가치들이 계속 자라고 열매 맺어가는 것을 이어가야지요.
지난 한 달여 이사갈 곳을 찾으러 다니며 참 많은 생각을 합니다. 악베심 마을에 집을 짓다 3 년째 중단된 루슬란, 모임할 공간이 부족해서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려다 포기한 아디스, 매년 이사를 다니고 있는 울란, 도시임에도 상하수도와 난방시설이 없는 수많은 개인주택들. 이런 환경에서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이 참 부끄럽고 미안합니다. 그 옛날 허름한 말구유에 오신 분을 따라 살아간다는 우리가 너무나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은 끝없는 욕망의 노예이기 때문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밭과 집을 다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두고 길을 떠났던 바나바를 기억합니다. 그의 발자취를 따라, 그리고 머리 둘 곳이 없었던 그 아들을 따라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아가는 자임을 기억하며 저희 앞에 놓인 일들을 헤쳐가기를 소망합니다.
은혜 가운데 모두 항상 평안하시길……
단기 기도제목
1. 이사와 농장이전 등 여러 재정지출 상황에서 현지인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도록.
2. 5 월말 뉴욕과 타슈켄트에서 안경사역의 선생님들이 오셔서 교육과 실습이 예정되어 있는데 잘 준비할 수 있도록.
3. 농장을 이전할 곳을 잘 선정할 수 있도록.
4. 주택명의이전 절차와 보완공사가 잘 이루어 지도록.
5. 차량 수리가 잘 마무리되도록.
중장기 기도제목
1. 안경사역의 방향을 올바로 세워가도록.
2. 함께 농사일을 해나갈 사람을 잘 선정할 수 있도록.
3. 현지인들과 함께 하는 모임 가운데 인도하심을.
4. 더불어 사는 사람들 현지 지부와 한글 수업을 잘 진행할 수 있도록.
개인과 가정 기도제목
1. 뇌경색 치료후 검사를 앞두고 있는 어머님의 건강을 위해.
2. 지성이의 대학생활 가운데 그 인생의 부르심을 발견할 수 있도록.
3. 한국생활에 인애가 잘 적응할 수 있도록.
4.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언어연수 중인 매형 최겨레 ㅅㄱ사의 건강과 앞으로의 사역을 위해,
그리고 한국에 남아 있는 가족들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