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은 기차마을로 유명하고 사찰로는 태안사와 도림사가 유명하다.
서산사는 하마비를 보러 곡성향교에 들리면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서산사에 들렀다.
커다란 관음전 내부에 다소곳이 나투신 관세음보살을 보니 아름답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관음보살이다.
자세히 보기 위해 전각 내부에 들어서니 화려한 보관이 눈에 들어 오고 손에 든 정병(보병)은 비스듬히 있어 의아해 하여 자세히 보기 된다.
보관에는 용과 봉황이 있고 가운데에는 아미타불인 화불이 검은 머리로 장식되어 있다.
보관의 테두리는 아래로 보발이 자연스럽게 흘러내리게 만들었다.
얼굴은 방형에 가까우며, 손은 가지런히 아래로하여 허벅지 부근에 올려져 있다.
손 모양이 아래나 몸에 붙어 있으면 석불로 보는 경우가 많은데 서산사 목조관세음은 그러한 생각을 깨어 버렸다.
허리 부분은 표현이 되지 않았지만 전체적인 모습은 그다지 크지 않으며, 고개를 앞으로 약간 숙인 것으로 보아 18세기 작품으로 생각된다.
조선후기에는 많은 불사를 하는데 그 중에 불상 제작에는 유파가 있을 정도로 많은 승려들이 있으며, 기록에는 전라도에서 활동한 진열의 작품으로 되어 있다,
전첵적인 모습이나 크기는 작으나 18세기 초의 작품으로는 상당히 잘 만든 작품으로
진열스님의 대표적인 것으로 생각되며, 전라도 곳곳에는 진열스님 계열의 불상 작품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독상으로 안치되어 있기에 협시불을 아닌 것으로 보이며, 원통전의 대표적인
보살로 만든 것으로 생각된다.
두번의 방문으로 많이 생각나는 목조관세음 보살이다......
다음백과
서산사 관음전의 주불로 봉안되어 있는데, 높은 꽃잎모양으로 둥글게 멋을 낸 보관을 쓰고 불단 위에 결가부좌하였다. 보관의 표면에는 화염, 봉황, 화문, 관대 등을 덧붙여 장식하였고, 보관의 중앙에는 화불을 표현하여 관음보살의 도상적인 특징을 나타냈다. 보관의 테두리 아래로는 보발을 가지런히 좌우로 빗어 보관의 턱을 이루었으며, 귀를 타고 내려온 보발은 어깨 위에서 둥글게 엮은 다음 다시 세 가닥으로 드리웠다. 귀는 둥근 귓바퀴에 귓구멍은 물방울처럼 늘어져 있고, 도톰한 귓불에는 아무런 장식을 더하지 않았다. 얼굴은 살이 통통하게 올랐으며, 이목구비도 부드럽고 원만하게 표현하였다. 정확하게 표현한 삼도에 비해 가슴의 쇄골선은 잘 드러내지 않았다.
천의는 불의(佛衣)와 같이 이중착의법이며, 오른쪽 어깨는 새 날개처럼 걸친 천의자락이 표현되었고, 복부에는 수평으로 입은 군의가 표현되었다. 상체의 주름은 윤곽을 따라 힘 있는 직선을 사용하여 간결하게 처리하였고, 무릎에는 다소 율동이 가미된 주름을 사용하여 변화를 주었다. 수인은 양손을 무릎 위에 두고 오른손은 손바닥을 아래로 향하게 하여 엄지와 중지를 맞대었고, 왼손은 관음보살을 상징하는 정병을 받쳐 들었다.
이 보살상은 17세기의 장대한 형태미를 가진 불상에 비해 전반적으로 아담한 형태이며 얼굴도 좀 더 부드럽고 귀여운 모습이어서 17세기 후반기의 개성과 대중성을 두루 확보한 모습에서 일단의 변화의 과정을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