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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 호수 남쵸
여행을 하다 보면 아니 삶을 살다보면 뜻하지 않은 행운을 만나는 경우가 있다.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면 좋겠지만 내 생애에는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어떻든 행운이란 좋은 거니까.
내가 남쵸 호수를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애당초 할 수 없었다. 해발 오천 미터가 넘는 고원지대라는 것 말고도 지금이 바로 년 중 가장 추운 시기라는 것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랏싸에 도착하자마자 남쵸 호수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혹시라는 것은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행사 에이전시들의 입에서는 노우~ 만 연이어 나왔다.
그동안 나는 에베레스트와 오지, 유적을 여행하면서 티벳의 고원 적응이 조금씩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두통도 심하지 않았고 어지간한 추위도 견딜 수 있다. 다만 조금만 바삐 걸어도 호흡이 거칠어진다. 물론 호텔 계단을 오르는 일에도 말이다.
여기 티벳에서는 뛰는 것은 말과 개뿐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니까 사람은 뛰어서는 안 되고 뛸 수도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이 느릿한 걸음이다. 그것이 여유로워 보일 때도 있지만 가끔은 답답해 보이기도 하다. 아마도 빨리 빨리 문화에 젖어 있는 한국인만의 습성 때문이리라.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여행에서 돌아 온 나는 시내 곳곳을 천천히 배회하며 티벳 사람들의 삶의 자리를 돌아보고 있었다. 수유차 라는 그들의 전통차를 마셔 보기도 하고 병원의 여의사들과 맥주를 마시며 티벳의 미래를 함께 아파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그날은 광명이라는 티벳 전통 찻집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 찻집은 보통 우리 찻집과는 다르다. 오 십 여 평 되는 넓은 내부에 목로주점처럼 길다란 나무 의자와 나무 테이블이 전부였다. 그저 누구라도 와서 아무데나 앉아 차와 간단한 디벳 식사를 하는 곳이다. 돈도 정한 것이 없다. 테이블 위에 5각이든 1원이든 올려놓고 자기의 양심껏 차를
차를 마시다 가면 된다. 그래서 테이블 마다 지폐들이 가득히 쌓여 있는 데 그것은 나중에 종업원이 한꺼번에 걷어간다. 물론 중국 화폐에서 가장 낮은 몇 각에 불과한 작은 돈들이다.
그 찻집에서 차를 마시고 있을 때였다. 내가 티벳에서 처음으로 만난 한국인, 그는 사진 작가였는데 아주 멋진 여성이었다. 물론 멋지다는 것은 외모에 한정된 이야기다. 그가 현지인 여행 에이전시와 같이 차를 마시러 왔다가 나를 보더니 반갑게 인사를 하며 남쵸 호수에 대해 소중한 정보를 준 것이다. 그녀 역시 남쵸 호수를 찍었으면 했지만 시기적으로 부적절한 것을 알고는 마음을 접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남쵸 호수를 갈 수 있다는 말이다.
남쵸 호수에 가는 길에는 아직 눈이 많이 남아 있긴 하지만 사륜구동 지프차는 능히 갈 수 있을 만큼 중국 군인들이 길을 닦아 놓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쵸 호수로 가는 허가를 얻어 냈다고 하면서 나에게 의사를 타진하는 것이다. 물론 나야 대환영이다. 이런 것을 두고 천재일우라고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앞서 내가 말한 삶의 행운이 바로 이것이다.
남쵸 호수 여행은 이렇게 해서 얻어졌다.
티벳에서 남쵸 호수가 지니고 있는 의미는 절대적이다. 남쵸 호수는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세계에서 그리 흔하지 않은 염호다. 그 말은 그러니까 몇 만 년 전, 지금의 지구가 바다였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호수라는 거다. 또 한 크기도 대단하다. 길이로 70키로 미터 넓이로는 30키로 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호수가 바로 하늘 아래에 있는 것이다.
티벳의 모든 사람들은 여기 남쵸에 와서 순례하기를 염원한다. 그것은 마치 인도의 힌두교도들이 갠지스 강에 와서 한번 목욕하기를 원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인지 내가 남쵸 호수를 찾아가는 날도 엄동설한이었음에도 간간히 순례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티벳에서의 순례자들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의 고통은 참아낸다.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 3보 1배를 하는 데, 그 절이라는 것은 우리가 아는 그런 절이 아니라 오체투지라는 절을 한다. 이는 코와 얼굴 가슴 배 즉 신체의 앞부분 모두를 땅에 대고 조아리며 자신을 신 앞에 낮추는 티벳인의 절 형식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일보일배를 하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배경을 알고 나니 더욱 더 보고 싶었던 호수였다. 그 호수로 향한 날, 그 날 나는 일찍 일어났다. 이번엔 아예 호텔 직원으로부터 깨워 달라는 부탁을 하지 않았다. 그냥 내 힘으로 일어나리라 다짐 한 것이다.
새벽 여섯 시, 일어나기는 다섯 시에 일어나 더 이상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대로 잠이 들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제 밤에 준비해 놓은 중국 라면을 끓여 먹고 나가니 바깥은 여전히 칠흑이다. 일행이 모두 다섯 명이라고 들었는데 한 명도 나와 있지 않았다. 그러나 조금 더 기다리니 드디어 일행들이 모이는데 한 사람이 더 늘어 여섯 명이었다.
네 시간에 거쳐 달린 지프차가 드디어 남쵸 호숫가에 다다랐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이정표 하나를 보여주었다. 호수의 이름과 해발이 기록된 비석이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오 분 정도 더 진행하자 바로 호수가 보였다. 눈으로 덮인 너른 벌판, 그곳이 바로 남쵸 호수였다.
눈이 아직 채 녹지 않아 사륜구동 지프차로서도 엉금엉금 기어야만 했다. 어떤 때는 갓길로 빠져드는 것을 어렵사리 멈춰 서기도 하고 어떤 길에서는 아예 일행이 내리기도 했다. 그렇게 하면서 찾아 온 호수, 비록 호수가 담고 있는 짙푸른 물을 볼 수는 없었지만 얼음과 사면으로 둘러싸인 눈 쌓인 산만으로도 그 감동은 충분했다.
얼음이 두껍다는 것을 알기는 했지만 그래도 혹시 싶어 조심스럽게 두드리며 호수 안으로 들어갔다. 가끔씩 쩡쩡 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렇다. 겨울 호수에서는 가끔씩 그런 소리가 난다. 어렸을 때 우리는 그것을 얼음이 조여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떤 애는 호수가 우는 것이라고도 했다. 그런 소리를 들으며 가급적 조금이라도 더 호수 가운데로 가고 싶어 했다.
그 때, 얼굴을 가린 여자 세 명이 멀리서부터 우리에게로 오는 것이 보였다. 쉽게 보아도 이 마을의 여인들이라는 것을 알았는데 처음엔 그저 구걸이나 하러 온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 것은 우리들의 자만심이었다. 그들은 구걸을 하러 온 사람이 아니라 이 마을에 사는 아가씨들이었다. 그러니까 이방의 우리가 나타나자 그들도 반가워서 찾아 온 것 같다.
영어로도 말이 통하지 않고 중국어로도 통하지 않았다. 그저 표정과 손짓, 그리고 눈짓으로 우리는 대화를 나누며 그들과 가슴을 통하였다. 눈이 아주 맑은 아가씨가 있었다. 동그란 눈에 쌍꺼풀이 유난히 자연스러운 스무 살도 안 되어 보이는 아가씨였다. 미모의 사진작가여자는 그 아가씨의 눈빛에 빠져 들듯이 아주 가까이서 그들의 눈빛을 담았다. 쑥스러워 하면서도 거부하는 기색이 전혀 나타내지 않았다. 아마 저 멀리 한국이라는 땅에서 온 이방인들을 반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비록 짜디 짠 염호의 맛을 보지 못했고, 터키석만큼 새파란 물을 볼 수도 없었지만 얼음 속으로 깊이 감춘 태초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다시 왔던 길로 서둘러야 했다.
티벳의 하루하루가 쌓이면서 이젠 조금씩 고도에 대한 적응도 되어 간다. 어제부터 두통은 사라졌고 호흡하기도 조금 편했다. 호텔의 계단을 오르는데도 숨이 차지 않았고 조금 빠르게 걸어도 이젠 괜찮다.
이런 것이 사람인가 보다. 환경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적응력이 뛰어났기에 결국 지상의 왕으로 인간이 군림하는 지도 모른다. 물론 그 지상의 왕이 스스로를 망가트려가며 자기들이 살고 있는 이 지상을 황폐화 시키고는 있지만 말이다. 어떻든 내가 티벳에 와서 지독스러운 추위와 고산증을 이겨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 스스로가 대단하게 생각이 든다. 하기야 나만 해 내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제 남은 것은 31일에 출발하는 카알라일 여행이다. 이는 티벳 여행자들이 모두 동경하는 코스로서 장장 2천키로 미터에 이르는 대장정의 오지 여행이다. 그 여정 속에는 에베레스트를 바로 비껴가기도 하고, 아직도 조장을 치루는 티벳의 성스러운 사원도 지난다. 그런가 하면 외지인이라고는 평생 몇 번 밖에 보지 못한 채 죽어간다는 오지 마을도 있다. 티벳이라는 나라가 오지인데 거기서도 또 오지라고 하면 얼마나 험준한 곳일까?
나의 여행 목적은 사람이다.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만나는 과정이 내 여행의 전부다. 누구든 좋다. 사람의 이름을 두르고 있다면 설령 그가 나환자, 천민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곧 쓰러져 죽어 갈 병든 사람이라 해도 말이다.
이제 그 험준하다는 곳을 네 사람이서 출발하는 거다. 일본의 여자 사진작가, 그리고 한국의 나와 또 다른 키 큰 미남형의 사진작가, 또 한 사람은 캐나다의 산악인이다. 그러니까 일종의 다국적군을 형성하여 마침내 대장정에 도전하는 거다. 우리가 잠을 자는 곳은 주로 사원이다. 호텔이니 여관이니 하는 것은 그나마 사람들이 붐비는 도시의 이야기 일 뿐, 아마도 우리의 여정 2주 동안 만나는 사람이라 해도 몇 명이 되지 않을 거다.
경비가 만만치 않다. 그러나 이번에도 나는 행운이었다. 직업 사진작가인 한국인 작가와 일본 사진작가가 2주 동안의 비용을 모두 내고 자동차를 전세 낸 것, 그러니까 나와 캐나다의 산악인은 운 좋게도 덤으로 얻어 타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그냥 탈 수는 없다. 백 오십 만 원이라는 거액을 들여 전세를 내었으니 그의 일부라도 부담해야 한다. 그래서 나에게 부담 된 것이 우리 돈 20만원, 그러니까 20만원으로 2주 동안의 티벳 오지 여행을 하게 된 것이다.
지금은 1월 28일 밤, 낮에 잠시 인터넷을 접속하여 한국의 소식을 들었다. 빨래도 했다. 그런데 빨래도 잘 마르지 않아 전체를 하지 못하고 소매와 목 깃 부분만 비누칠해서 빨았다. 지난 1월 6일 한국을 떠나오면서 한 번도 빨지 않고 입은 옷이다. 양말과 수건도 빨았는데 바지는 빨지 못했다. 이것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내일은 랏싸에서 가까운 마을로 산책을 떠날 생각이다. 로컬 버스를 타고 말이다. 그리고 그 다음 날은 긴 여정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 공동 욕탕에서 목욕도 해야 한다. 중국에서는 아직 공중목욕탕을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얼마나 더러울까? 하기야 중국의 화장실을 보면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지금은 조금 나아졌다고는 하는데 아직도 시골로 가면 여전히 최악이다. 더 이상 중국의 화장실은 이야기하기도 싫다.
추신;이제 모레 2주간의 일정으로 티벳의 오지 마을 여행을 떠납니다.조금은 두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러 님들의 격려와 사랑의 힘을 입어 용기를 냈습니다.그곳에선 접속이 어려우니 후에 카투만두에 도착이 되는 대로 연락드리겟습니다. 평안 하십시요. 안녕히
첫댓글 글 잘 읽었습니다. 뭐니뭐니 해도 건강이 있고나서 나머지가 필요한 것이지요. 한돌님 스스로 자신의 건강을 잘 챙기셔서 목적지에 가셔서 뜻있는 일 많이 하시고, 가끔씩 글로 서로 인사 나누기를 기대합니다.
한돌님 의 남쵸 호수를 이렇게 공짜로 보고있습니다 행운이 많아 좋았고요. 얼음 조심 하세요 깨지면 저 출동하러 갑니다. 저는30만원 내겠습니다 태워줄려나요? 글구 여행중 심심한 중년여성 있으면 저하고 연결해주세요. 즉 국제미팅 한번해 보자고요. 그래요 아무나 할수없는 여행 가슴에 가득채워 건강히 돌아 오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스릴감느끼면서 잘 읽었습니다. 목적의식이나 여행자체에대한 강한 의지없이는 감히 못할것 같습니다..
추위와 고산증 환경에 적응 잘 이겨내셨다니........... 긴 여정을 준비하시는 한돌님 건강하세요.
여행할때의 느낌을 써주시니까 함께 여행하는 기분이네요.늘 건강하시길..
한돌님 덕분에 저도 여행을 함꼐하는것 같습니다. 긴 여정에 몸건강하세요.
한돌님이 여행중에도 (여러 악조건 속에서)사진을 찍어 보내왔답니다 ,,,곧 사진방에 올리겠습니다 ,,긴 힘든 여정 속에서도 울님들 위해 님이 보낸 기행문 잘 읽고 갑니다
한돌님 긴~여행 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