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부작위任眞不作爲
스승의 가르침을 삶으로 증명했다는 앞서의 서술이 수사적 표현만은 아니다. 원교는 ‘임진부작위任眞不作爲’, 즉 본래 제 모습에 충실할 뿐 꾸미지 않는다는 정신을 그의 글씨와 삶의 원칙으로 삼았다. 꾸미는 것을 지독히도 경계하며, 글씨의 대상이 되는 세계의 마음을 청하기도 했다고 한다. 원교는 글씨를 쓸 때 가객에게 노래를 청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 노래가 우조면 쓸쓸한 분위기로, 노래가 평조에 이르면 그에 어울리는 글씨가 쓰였다고도 한다. 자신을 먼저 내세우지 않고 대상에 집중한 결과다. 꾸미지 않는 것이 ‘부작의不作意’이고,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이 ‘부자기 不自欺’이며, 이 둘을 모아야 ‘부작위不作爲’를 이룰수 있다는 가르침을 원교는 평생을 통해 터득하고자 했다. 하곡 정재두의 가르침도 다르지 않앗다. “자신을 단속해야 하네, 안과 바깥에 흩어져 따로 놀지 않는 바에야 안과 바깥이 일치할 테니 스스럼없이 내실을 다질 수 있을 것이네. 마땅히 글씨도 그러하겠지. 삿된 가획과 같은 유혹을 뿌리치는 것”(118쪽), 원교가 평생을 두고 실행하려던 스승의 정신이었다.
-정강철 소설<원교>, 348p 해설 중에서..
스승은 순리와 편안함을 뜻하는 '순녕順寧'은 살아서 순리를 따라 매사에 임해야 죽어서도 편하다는 뜻이라고 했다. 곤궁한 처지에 불만을 갖지 말고 세상의 편견과 고통을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원교의 삶에서 순리에 따라 편안했던 순간은 길지 않았다. '둥그재'와 '내도재'를 오가면서 글씨와 예술에 취했던 시간이 유일앴다. 반대로 고통과 유배의 시간은 길엇다. 순리가 무엇인지 알기 어려운 시간들이었다.
’사달舍達‘은 불안과 잡념을 버리고 아무리 어려운 지경에 이르러도 달관하려는 의지라고 말했다. 먹고사는 일의 어려움에 불안해하지 말고 정치의 칼날에 세상 밖으로 밀려난다고 해서 원망하고 탓하지 말라는 뜻이다. 하지만 노론이 득세한 시대의 순리가 그와 맞지 않으니 어떻게 달관할 수 있겠는가. 순녕을 따르자니 사달을 버리지 못하고, 사달을 버리지 못하니 순녕에 임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순리를 거스르거나 자신을 드러내려고 애쓴 것도 아니었다. 불안과 잡념 때문에 초조해하거나 조급해하지 않았다. 벼슬의 화려함을 부러워하지도 않았다. 즉 사달을 실천했으나 순녕이 따르지도 않았으니 순녕사달은 어렵고 모순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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