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블릿이 아이들 수업 역량 키웠어요”
최호섭 | 2013.12.01
‘스마트 교육’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마 많은 분들이 기대 반, 걱정 반의 시선으로 바라보실 듯 합니다. 스마트 교육에 대해 머리와 생각이 따로 노는 이유는 이것이겠죠. 책을 보고 종이 노트에 적어 가며 공부해야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오고 잊혀지지 않는다고 배워 왔고, 또 몸으로 익혀 왔기 때문일 겁니다.
또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그 동안 컴퓨터나 인터넷 등 IT 기기들이 학습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아니, ‘학습’은 사실 부모님들을 설득하기 위해 기업과 학생들 사이에 암묵적으로 합의된 핑계였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교육용 PC, 교육용 PMP, 교육용 게임기로 얼마나 부모님들을 속여왔는지 아는 세대죠.
부산 용수초등학교의 허두랑 선생님은 부산 지역에서는 이른바 ‘스타 쌤’이라고 합니다. 학생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지만, 다른 선생님들이 태블릿을 이용한 수업 방법을 부러워하고 일부러 찾아와서 배울 정도라네요. 업계에 소문이 자자해서 이번에 부산교육박람회까지 가는 전제 조건 중 하나가 허두랑 선생님을 직접 뵙는 것이었습니다. 이날도 허두랑 선생님은 스마트 기기를 활용한 교수법에 대해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했습니다. 강의실이 가득 차서 조금 늦은 선생님들은 서서 수업을 들어야 할 정도였습니다.
이날 허두랑 선생님이 설명한 스마트 교육의 방법은 ‘플립트 클래스(flipped class)’입니다. 이건 앱도 아니고, 태블릿 이용 방법도 아닙니다. 학생들과 늘 접하는 선생님들만 할 수 있는 교육 방법의 변화입니다. 그럼 왜 수업이 뒤집혔다는 이름을 붙였을까요? 이건 미국의 화학교사 조너선 버그만과 아론 샘즈가 만든 수업 방법인데, 예습과 복습 그리고 수업의 개념을 확 뒤집었습니다.
전통적인 교실의 모습이라고 하면 선생님이 앞에서 칠판 가루를 날려가며 수업을 합니다. 열심히 듣고 이해하는 학생도 있지만 대충 듣는 학생이나 못 알아듣는 학생, 심지어 조는 친구들도 있지요. 예습을 해오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봐야 입만 아플 겁니다.
플립트 클래스는 아예 반복되는 강의식 수업은 미리 영상 콘텐츠로 만들어 학생들이 집에서 PC나 태블릿으로 보고 오도록 합니다. 수업 시간에는 과정을 기반으로 토론이나 실험을 하거나 실습, 역할극 등 체험 학습 위주로 운영이 됩니다. 허두랑 선생님은 이 방식을 고민해서 우리네 교실에서 쓸 수 있도록 고쳤습니다.
사전 학습 자료는 ‘익스플레인 에브리씽’으로 직접 만들거나 이미 교육부에서 만든 사이버 학습 자료를 이용합니다. 수업 시간에는 중요한 내용만 빠르게 리뷰하고 간단한 쪽지 시험을 봅니다. ‘소크라티브’ 같은 앱을 이용하면 학생들이 답을 입력하는 동시에 누가 정답인지, 오답인지 확인됩니다. 기본을 이해한 학생들은 곧바로 체험 학습 과정으로 넘어갑니다. 과학 실험을 한다면 곧장 실험도구를 꾸릴 수 있습니다. 수학의 경우 곧바로 수학 익힘책을 풉니다. 잘 못 풀거나 어려워하는 아이들은 선생님이 짚어줍니다. 선생님으로서는 진도를 따라오기 어려워하는 아이들에게 조금 더 신경 쓸 수 있게 됩니다.
사회 시간에 법에 대해 배울 때도 기본적인 학습은 사전에 해 오기 때문에 수업시간에는 학생들끼리 역할을 나누어 롤플레잉 게임처럼 실제로 법을 만드는 과정을 체험합니다. 이런 식으로 학생들이 정한 학급 헌법을 제정했고 이를 법무부에서 만들어주는 학급 헌법 프로그램을 통해 법무부 인증을 받아 교실에 걸어두기도 했습니다.
기가 막히지 않은가요? 발표가 끝난 뒤에 허두랑 선생님을 따로 만났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공부하는 2명의 학생들도 함께 찾아왔습니다. 인터뷰 자리를 정리하면서 아이들에게 슬쩍 재미있냐고 물어봤습니다. “재미있어요”라는 허탈한 답이 돌아오긴 했지만 인터뷰 내내 자기가 만든 결과물을 자랑하기도 하고 어떻게 만들었는지 설명하고 직접 이것저것 보여주려고도 하더군요. 정말 ‘척척’ 쓰는 모습이 감탄스러웠습니다.
수업시간에 태블릿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먼저 물었습니다. 허두랑 선생님은 뭔가 여쭈어보기만 하면 자꾸만 이것저것 보여주셨습니다. 그 이야기는 학생들의 모든 과정들이 인터넷에 기록으로 남고 있다는 얘기지요. 어떤 것을 만들까요? 허두랑 선생님은 “뭘 생각하든 그 이상의 것을 볼 것”이라고 운을 띄웠습니다.
프로젝트를 던져주면 아이들끼리 조를 짜서 역할을 나누어 기획하고 토론하고 제작, 편집까지 스스로 합니다. 선생님이 도구를 가르쳐 주기는 했지만 아이들이 더 잘 다룬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영상을 직접 찍고, 아이무비로 편집하고, 키노트까지 만들어 발표합니다. 발표하라고 하면 쭈뼛대던 게 우리의 모습이라면 이 아이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발표를 합니다. 자기가 만든 발표 자료는 에어플레이로 교실 프로젝터에 무선으로 띄워서 상세하게 설명합니다. 발표는 하고 싶지만 앞에 나서기가 창피한 아이들은 자리에 앉아서 발표해도 된다네요.
게임은 하지 않을까요? 물론 아이들이 게임을 하고 싶어하는 건 사실이지만 아이패드에 앱을 깔 권한은 없다보니 깔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이들에게 주어진 아이패드에 깔린 게임이 하나 있긴 있다고 합니다. 그건 바로 ‘마인크래프트’입니다. 아마 어떤 학부모들은 깜짝 놀랄 이름일 겁니다.
“이걸 꼭 게임으로만 해석할 건 아닙니다. 미술 시간에 ‘내가 살고 싶은 마을 만들기’라는 주제를 스케치북 대신 ‘마인크래프트’로 풀고 싶은 아이들도 있습니다. 여러 조원들이 협업해서 마을을 꾸미는 프로젝트를 던져 주었습니다.”
한 달정도 걸려 만든 결과물은 기가 막힙니다. 종이와 크레파스, 물감 대신 컴퓨터를 더 능숙하게 쓰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마인크래프트’조차 그런 창의력을 보여주기 위한 저작 도구일 뿐입니다.
그럼 이런 교육이 실제 어떻게 도움이 될까요? 아마 도움이 안 된다면 부모님들이 가만 있지 않을 겁니다. 허두랑 선생님이 운영하는 클래스팅에 들어가보면 학부모들이 아이들의 과제를 보고 아주 만족스러워하는 댓글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존경받는 선생님인 것이지요. 조심스럽게 성적을 물어보니 이번학기에 6학년 10개 반 중에서 1등을 했다고 합니다.
“현행 교육 과정을 진행하면서 그 안에서 아이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끌어내야 하기 때문에 분명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성적만큼이나 중요한 실습 과정을 보장하기 위해 플립트 클래스를 운영하는 겁니다. 유럽에 대한 수업을 한다고 하면 기존에는 30분 동안 설명하고 나면 남은 10분동안 아이들이 토론하고 발표하는 데 턱도 없습니다. 이걸 뒤집어서 10분 설명하고 30분을 아이들에게 돌려주는 겁니다.”
수업에 태블릿은 얼마나 쓰는지도 물었습니다. 아직 디지털 교과서처럼 전적으로 태블릿에 의존해서 수업하진 않는다고 합니다. 교과서만으로도 수업하는 과정도 있고, 기기 없이 토론만으로도 진행합니다. 목적이 확실하기 때문에 기계에 종속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아이패드는 학생들의 저작도구와 조사도구로 쓰도록 합니다. 그걸 늘 강조합니다. 앱을 보면서 공부하는 참고서 역할보다는, 아이들이 직접 조사하고 연구한 내용들을 좋은 결과물로 뽑아낼 수 있는 저작도구입니다.
그래서 허두랑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키워주려는 건 뭘까요? 단순히 암기식 성적은 절대 아니라고 합니다. 허 선생님은 ‘역량’이라고 강조합니다.
“결국 이런 학습의 과정들이 아이들에게 좀 더 생각하고, 협업하고, 표현할 수 있는 역량으로 쌓이게 됩니다. 21세기 역량으로 강조되는 것들이지요. 의사소통, 창의적 비판능력, 협업 같은 것 말입니다. 이 아이들은 단순히 지식 소비자가 아니라 지식 프로슈머입니다.”
이것말고도 할 얘기가 정말 많습니다. 문집을 만들어 아이북스 스토어에 올리고, 환경보호 키노트를 만들고, 직접 길거리에 나가 캠페인도 합니다. 허두랑 선생님이 운영하는 블로그와 유튜브 채널에 들어가면 학생들이 뭘 하고 있는지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무엇을 기대하셨든, 그 이상의 것들을 보시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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