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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11. 대민(주일낮)
안전의 통로(잠7:1-5) 대민성결교회 이석민 목사
[1] 내 아들아 내 말을 지키며 내 계명을 간직하라 [2] 내 계명을 지켜 살며 내 법을 네 눈동자처럼 지키라 [3] 이것을 네 손가락에 매며 이것을 네 마음판에 새기라 [4] 지혜에게 너는 내 누이라 하며 명철에게 너는 내 친족이라 하라 [5] 그리하면 이것이 너를 지켜서 음녀에게, 말로 호리는 이방 여인에게 빠지지 않게 하리라
역사상 모든 사람은 각종 자연 재해와 사회적 악과 부조리에 노출되어 위협을 느끼면서 살아왔고 결코 피할 수 없는 죽음이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삶을 안전하게 보존하고 지상에서의 복과 사후의 영원한 평안을 보장받기 위해 우주를 움직이는 힘의 근원을 찾고자 하였습니다. 그 결과 우주와 삶의 근원에 대한 문제를 다룬 신화와 설화가 생겨나고 다양한 종교가 발생하였습니다.
성도 된 우리가 안전한 삶을 살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잠언3장3-4절에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위해 주신 하나님의 명령이며 이 명령이 인자와 진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인자와 진리를 삶 속에서 떠나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음 판에 새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삶 속에서 늘 경험하며 살아갈 수 있는 길이며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가장 안전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명령을 따라 살아가라고 하는 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진심입니다.
분문에서 계명을 ‘간직하라’ ‘지키라’ ‘새기라’ 하였습니다.
즉 계명인 하나님의 말씀을 간직하고 지키며 새기는 것이 안전한 통로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간직하고 지키며 새기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이 최고의 지혜입니다.
옛날의 성도들이 안전한 삶을 누렸던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미덕이나 은혜가 충만하여 외면적으로 빛나는 용모를 지녔으나 결코 겸손한 태도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를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길은 사람의 길과 다르기 때문에 사람의 지식과 지혜로 하나님의 길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다”(고전 1:25)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길인 하나님의 방법과 자세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안전한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에 대하여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잠 16:9)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의 통치자가 하나님이시므로 이 삶의 틀에서 가장 지혜로운 길은 세계 통치자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길이며, 안전한 길입니다. 하나님께 우리 삶을 맡기는 것이 안전의 통로입니다
1.계명에 주의해야 합니다.(1-3)
“내 아들아 내 말을 지키며 내 계명을 간직하라 내 계명을 지켜 살며 내 법을 네 눈동자처럼 지키라 이것을 네 손가락에 매며 이것을 네 마음판에 새기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으로서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있는 민족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 행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이처럼 언약적 관계가 잘 형성되어 있어야지 하나님도 그들과 함께 계시면서 그들을 형통케 해주십니다.
하나님은 율법이라는 계명을 통하여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 안에서 생활할 것인가에 대한 표준을 마련해 주고 계십니다. 성경은 캐논(cannon)이라는 말에서 유래된 것으로 '갈대'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갈대는 고대에 물건을 재는 자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의 생활을 가름하는 표준이 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계명이라고 하면 구약의 십계명을 생각하게 됩니다. 율법을 요약하고 또 요약하면서 가장 핵심적인 명령으로 정리한 것이 십계명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계명이 있다면 십계명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행위”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우리의 마땅한 “사랑”의 반응이며, “율법”은 그 “사랑”의 바른 표현 방법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아들을 아낌 없이 내어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를 풍성하게 맛본 자들이며 그래서 우리의 사랑을 하나님께 표현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우리로 어떻게 하나님께 우리의 사랑을 표현할 수 있을지 구체적인 방법을 설명해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거나 읽을 때에도 깨달음이 오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때 더욱 더 큰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곧 지혜의 근본이라 그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좋은 지각이 있나니, 하나님의 계명은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눈을 밝게 해준다고 했습니다(시 111:10, 19:7-8).
분문 2절에 “내 계명을 지켜 살며 내 법을 네 눈동자처럼 지키라 ”
여기서 “네 눈동자처럼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그 의미는 눈동자의 중요성처럼 지키라는 뜻입니다.
눈은 전체가 다 중요합니다. 그러나 눈동자는 마치 카메라의 렌즈와 같아서 제일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법은 우리 인생의 눈동자입니다. 그래서 제일 중요하고 제일 소중한 것입니다.
그리고 눈의 중심은 눈동자입니다. 눈동자에 상처를 입으면, 눈 전체뿐만 아니라 몸도 장애를 가집니다. 그러므로 눈동자를 보호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눈동자와 같습니다. 말씀에 의해 내 영혼과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영원한 천국을 봅니다. 말씀을 보호하고 지키는 것은 나를 지키는 것입니다. 내 영혼을 지키는 것입니다. 영원한 천국을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눈동자보다 귀한 말씀을 가졌습니다.
본문3절에 “이것을 네 손가락에 매며 이것을 네 마음판에 새기라”
여기서 손가락에 맨다는 것은 항상 휴대한다는 뜻입니다. 중요하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휴대하여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을 손목에 매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신 6:8). 그들은 축제 때에 이 명령을 지킵니다. 작은 두루마리 모형을 끈으로 묶어 손목에 매답니다.
성경이 곁을 떠나면 안 됩니다. 사실은 성경이 떠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떠납니다. 교훈이 사람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교훈을 떠납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먼저 하나님을 떠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말씀을 곁에 두고 항상 휴대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말씀의 사람으로 살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을 에 마음판에 새기라 하였습니다.
성경은 기록된 말씀입니다. 종이와 서판에 기록되었습니다. 성경은 우리 마음 판에도 쓰여져야 합니다. 종이에 새겨진 것은 지워질 수 있습니다. 서판에 새겨진 것도 파손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판에 새기면 지워지거나 파손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마음판에 새겨져야 합니다. 잠언은 특히 마음판에 새기라는 권고를 합니다(잠 3:3).
단순히 성경책 자체를 휴대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에 담겨져야 합니다. 마음에 담겨지면 항상 휴대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사람으로부터 분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음판에 새겨진 말씀은 우리 마음의 중심을 잡아줍니다. 우리 마음을 바르게 움직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해 줍니다. 말씀을 마음판에 새기시기를 바랍니다.
잠언 16장20절에 “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씀’은 하나님의 율례와 계명을 가리키며, '주의하는 자'는 '신중하게 행동하는 자'란 뜻인 바, 이는 하나님의 명령을 신중하게 듣고 수용하여 전심을 다해 실천하는자를 가리킵니다.
세상을 의지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는 사람에게 복이 임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게 된다고 하십니다.
성도는 세상의 어떠한 유혹과 핍박이 있더라도 흔들리지 말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과 믿음 가운데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켜 행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불의를 행치 말고 주의 도를 행하며 그것을 근실히 지키고 우리의 길을 굳게 정하고 그의 모든 계명에 주의하고 그의 의로운 판단을 배워야 합니다. 그것이 성도의 신앙생활의 목표이며, 온전한 성도의 모습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사랑의 계명을 지켜 하나님의 성품을 증거할 때에 믿지 않는 자들이 성도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발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하나님의 계명에 주의하여 하나님 말씀에 인도를 받아 안전의 통로로 가시기를 바랍니다.
2.지혜와 명철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4)
“지혜에게 너는 내 누이라 하며 명철에게 너는 내 친족이라 하라”
지혜란 분별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명철이란 이해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말을 하지만 말을 못 알아듣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도무지 말이 안 통해”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명철이 없기에 말이 이해가 안 되고 말이 안 통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사는 지혜와 명철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지혜'는 사건을 해결하는 능력이라 할 수 있고, '명철'은 예리하고 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땅의 짐승이나 공중의 새도 모르는 땅 속 깊은 곳에서 귀한 보석들을 발견하여 사용하는 지혜와 명철이 있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와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 알거나 준비하지 못합니다. 인생의 궁극적은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합니다.
인생에 임하는 재앙과 고난의 원인과 해결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풀지 못합니다. 그것을 알고 해결하는 참된 지식과 지혜와 명철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잠언4장7절에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네가 얻은 모든 것을 가지고 명철을 얻을지니라
우리가 얻는 모든 것으로 지혜와 명철을 얻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오늘 돈이나 시간 또는 명예나 건강 등 무엇을 얻든지 성경은 그 모든 것으로 지혜와 명철을 얻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혜는 제일이며 가장 중요한 것이며 모든 것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가장 소중한 것을 주어서라도 지혜와 명철을 얻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보다 지혜와 명철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욥기28장28절에 ”또 사람에게 말씀하셨도다 보라 주를 경외함이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니라“
“주를 경외함이 지혜요”라고 합니다. 지혜는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경외한다는 말은 두려워하고 존경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곧 지혜입니다.
시편111편10절에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어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훌륭한 지각을 가진 자이니 여호와를 찬양함이 영원히 계속되리로다”라고 합니다. 경외는 신앙의 첫걸음이며 동시에 신앙의 마침입니다.
그리고 “악을 떠남이 명철이니라”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악이란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입니다. 악은 우리와 멀리 있지 않습니다. 가장 가까이 있습니다. 악은 우리와 한 지붕 아래에 있습니다. 악은 보잘 것 없는 데다 언제나 인간적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악과 쉽게 친해질 수 있고 쉽게 빠질 수 있습니다. 악은 때로 가장 친근한 우리 이웃처럼 다가옵니다. 그래서 악을 떠나는 의지가있어야 합니다. 악을 떠나는 의지가 명철입니다.
생명을 돌보는 인간(송봉모 저)]이라는 책에 나오는 자라와 거북이의 대화가 있습니다.
거북이는 자라에게 사소한 것을 소중히 여기며 살라 했습니다. 그러자 자라가 사소한 것은 작은 것인데 큰 것을 소중히 여겨야 하지 않냐고 반문했습니다. 거북이가 고개를 흔들며 말합니다. ‘내가 오래 살면서보니 정작 중요한 것은 사소한 것이었네. 사소한 일을 잘 챙기는 것이 잘 사는 길이야. 사소한 일에 분명하면 큰 일에도 분명하지. 사소한 일에 부실한 이는 큰일에도 부실하다네.’
오늘 하루가 평범하다고 생각합니까? 평범한 생활을 즐기는 것에서 작은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매일 매일의 반복된 삶에서 주변의 사소한 것에 감사하며 감탄할 수 있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귀히 보십니다.
오늘도 찬란한 태양이 우리를 반겨줍니다. 아름다운 하늘과 변함없이 서 있는 나무들이 우리를 응원합니다. 거북이처럼 느리지만 초조함을 모르고 사소한 것을 중히 여기는 지혜로 오늘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유순하고 한가로운 동물인 거북이가 장수하는 반면, 사나운 맹수는 오래 살지 못합니다. 사람도 예외는 아닙니다. 화를 잘 내고 성급한 사람보다는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명철로 사는 여유로운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에서 솔로몬은 그의 아들이 그의 말과 명령과 법을 친근히 하라고 교훈합니다.
그는 아들에게 그의 말을 지키며 그의 명령을 간직하라고 말합니다. 또 그는 그의 명령을 지켜 살며 그의 법을 그의 눈동자처럼 지키라고 말하며 그것을 기념 반지처럼 그의 손가락에 매며 그의 마음판에 새기라고 말합니다. 또 그는 지혜와 명철을 ‘내 누이’ ‘내 친족’이라고 부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친근히 해야 합니다.
욥기12장12절에 “늙은 자에게는 지혜가 있고 장수하는 자에게는 명철이 있느니라”
나이가 들어가면서 지혜와 통찰력이 더해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진정한 지혜와 명철은 하나님께만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 된 우리가 성공적으로 복을 누리는 삶을 위해서는 결국 바른 길을 알고 따라갈 수 있는 힘이 필요한데, 그것이 지혜와 명철이며, 그 지혜와 명철은 하나님을 경외함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지혜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복은 온 세상으로 퍼져나가 모든 이들이 누려야 하는 복입니다. 그 복 자체가 추구해야 할 최종점은 아니며 그 복이 가져다 주는 하나님이 의도하신 삶을 우리는 누려야 합니다.
지혜와 명철을 가까이 하는 것이 안전의 통로입니다.
3.이방 여인에게 빠지지 않아야 합니다.(5)
“그리하면 이것이 너를 지켜서 음녀에게, 말로 호리는 이방 여인에게 빠지지 않게 하리라”
솔로몬은 사탄의 강력한 유혹과 속임수로부터 보호해 주는 것이 바로 지혜라고 말했습니다.
분문5절에 “그리하면 이것이 너를 지켜서 음녀에게,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 빠지지 않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지킨다’는 말은 ‘구원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혜가 보호막과 방패 그리고 높고 튼튼한 울타리가 되어 악한 계집의 사악한 공격으로부터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줍니다.
잠언에서 말하고 있는 지혜는 단순히 인간적인 지식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속에서 나오는 주의 능력으로서의 지혜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지혜가 음녀로부터 우리를 보호한다는 것은, 주와 함께 하려고 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직접 보호하시고 지켜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잠언2장16절에 “지혜가 또 너를 음녀에게서,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서 구원하리니”
지혜는 하나님의 진리에 입각한 신령한 지혜이기 때문에 그 지혜가 음녀에게서,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서 구해 줍니다. 또 세상에 빠지지 않게 해 줍니다. 지혜를 소유한 자는 음녀의 길이 멸망할 것을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에 음녀에게 빠지지 않습니다.
사실 우리가 보편적으로 말할 때에 믿지 않는 사람들과도 잘 지내면서 믿음만 지키면 되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믿지 않는 자들과 사귀면서 믿음을 지키기 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유혹에 넘어가기가 더 쉽습니다.
그들은 죄를 벗하고 사는 자들이요, 따라서 우리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한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들에게 오히려 빠져 넘어가기가 더 쉽습니다.
그래서 음녀의 유혹은 이방인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방인들, 즉 믿지 않는 주위의 사람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음녀와 이방 계집에게 빠지는 것은 영적으로 성도가 세상에 빠지는 것을 뜻한다.
야고보서 4장4절에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지혜와 명철을 늘 가까이 하여 그와 같이 살면 그것이 음녀에게와 이방 계집에게 빠지지 않게 해줍니다. 항상 하나님 앞에서 살고 영이 깨어서 영적 세계에서 살면 음녀가 그 사람을 아무리 꾀어도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죄와 죄의 결과를 분명히 알고, 또 보고 있기 때문에 저주와 멸망의 길을 걷지 않습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할 때에 "내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 앞에 득죄하리이까”하고 유혹을 이겼습니다.
잠언에는 지혜 여인과 음녀가 대칭되어 나타납니다.
지혜 여인에게 내 마음이 가 있으면 그 지혜가 나를 지켜 음녀, 즉 이방 여인의 아첨에 빠지지 않게 한다고 말합니다.
음녀는 '아첨하는 말로 유혹하는 이방 여인'입니다. '이방'이라는 뜻은 거짓 종교를 나타내는 용어로서 잠언이 쓰이던 당시 바알이나 아스다롯 신을 의미합니다. 즉, 음녀는 우상 신전에서 음행하던 창기들입니다. 음녀는 음행의 죄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을 거짓 신에게 인도하여 믿음을 파괴합니다.
잠언은 눈을 지키는 것과 음녀를 멀리하는 것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즉, 성도가 눈을 지키지 못할 때 그 마음이 결국 세상에 속게 되어 이방 신들에게로 갑니다.
이를 지혜 여인이 알고 주의 백성을 지키고자 절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잠언7장에서 내리는 결론은 우리 마음을 우상 신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지혜를 의지하여 우리의 '눈'을 보호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의 말을 들으며 사느냐가 참 중요합니다. 죄악으로 유혹하고 욕망을 부추기며,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말을 듣고 살아간다면 그는 분명 패망의 길로 걸어갑니다.
음녀의 말은 듣기에는 달콤하지만, 그 말은 마치 교묘하게 발라 놓은 독과 같아서 그 길을 따라가는 자는 큰 고통을 당하게 되고, 깊은 괴로움에 빠집니다. 음란한 삶은 결국 사람을 망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권면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하게 여기며, 그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가는 자들은 생명의 길로 걸어갑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보호하시고 평강을 주시는 복된 길입니다.
.타락한 여자, 음란에 잡힌 여자는 더욱 성적 매력을 느끼게 하고 매혹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 입술을 부드럽고 남자의 피를 끓게 하지만 결국은 파멸입니다. 인격의 파멸, 가정의 파멸, 사업의 파멸을 가져오고 영혼의 파멸까지 가져옵니다.
이방 여인에게 빠지지 않는 것이 안전의 통로입니다.
1.계명에 주의해야 합니다.(1-3)
2.지혜와 명철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4)
3.이방 여인에게 빠지지 않아야 합니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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