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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06.07 11:07
http://newsplu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6/07/2013060701042.html
우리는 누구인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고인돌을 보유했던 선사시대, 광활한 대지 위에 고구려의 거대한 숨결을 보여주는 유적들과 벽화에 나타난 고구려인의 기상, 돌과 금·은을 자유자재로 표현한 신라의 위대한 유산들, 일본을 오늘에까지 이르게 한 백제와 가야의 문명전파,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한 고려인의 지혜,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아름다운 한글과 그 시대의 첨단과학을 구가했던 조선시대, 이 땅을 지켜내고자 목숨을 아끼지 않은 독립지사들의 정신 등은 우리 선조가 그 시대에 갖고 있는 모든 역량을 다하여 만들어온 우리의 역사이다.
이렇듯 찬란한 역사를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선조들이 각 분야에서 투철한 직업의식을 가지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왕, 관료, 생산집단 모두가 각자의 임무를 충실히 한 것이며 지금도 우리는 각자 자신의 직업에서 소임을 다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부터 일을 하였을까
4만 년 전부터 오늘날 인류와 거의 같은 두뇌용적과 체질상의 특징을 가진 진정한 의미의 현생 인류가 출현하였다. 구석기 시대는 구석기인의 생활도구인 석기의 종류나 가공기술에 따라 전기(400만~10만 년 전), 중기(10만~4만 년 전), 후기(4만~1만 년 전) 등 3시기로 분류된다(국립중앙박물관,1997). 전기는 한 개의 큰 석기를 가지고 여러 용도에 썼으나, 중기에는 큰 돌을 떼어 낸 격지돌을 가지고 잔손질을 하여 크기가 작아지면서 한 개의 석기가 하나의 쓰임새를 가지게 되었다.
후기는 쐐기를 이용하여 같은 형태의 여러 가지 돌날격지를 만드는 데까지 발달하였다(교육부, 1999).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 한탄강 강변의 황토대지에 형성된 전곡리유적은 10만 년 전의 유적이며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전형적인 주먹도끼가 발견된 곳(경기도박물관, 1998)므로 우리나라는 구석기 중기부터 식량을 위한 채집과 사냥을 위하여 돌과 짐승뼈를 사용했고 이동생활을 하면서 강가나 막집, 동굴에서 살았다.
우리나라의 신석기는 9000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신석기인은 이동하며 생활했던 형태에서 벗어나 한 곳에 터전을 마련하여 움집을 짓고 원시공동체적 생활을 했고, 사냥과 농경생활, 고기잡이 등 주요한 생산활동을 공동으로 했다. 신석기인들의 움집은 거주, 보온, 조리, 난방, 저장 등의 기능을 기본적으로 갖춘 최초의 주택개념의 형태를 만들었고, 한반도 최고最古의 신석기 집터 유적인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오산리 집터에서는 이음식 낚시축, 톱, 칼 등이 출토되었으며(국립중앙박물관, 2000), 정교하게 제작된 길이 13.1㎝의 돌바늘은 간석기 제작기술의 극치를 보여준다(한국생활사박물관 편찬위원회, 2000). 특히 간석기 제작을 위해 신석기인들은 이미 일에 대한 직무를 분석하여 부분갈기, 갈기, 정교하게 갈기 등을 분류하여 이에 맞는 도구를 준비하였고 이러한 일들을 분업화하였음이 움집 집터에서 발견되었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는 생활을 유지하기 위하여 구석기부터 일을 하였다.
농공상의 직업발달사
인간 역사에서 가장 큰 혁명은 신석기시대의 토기를 구워내는데 있다고 본다. 신석기인들이 9000년 전부터 토기를 사용함으로써 음식의 저장과 보존을 가능케 하여 정착생활이 가능해지면서 인구팽창을 가져와 국가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오늘의 인간을 있게 한 시발점이 되었다. 이때부터 농업이 발달하게 되었으며 2300년 전에 철기가 출현하면서부터 더욱 발달하게 되었는데, 이는 철기로 농기구를 만들어 사용하면서 땅을 더욱 깊이 갈게 되고 노동력을 철기에 의존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농업형태는 1900년대까지 지속되었다가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부터 컴퓨터로 원하는 농작물의 조건을 만들어 언제든 원하는 농작물을 대량으로 생산하게 되었다.
엄밀히 추적하기 어렵지만, 우리나라 공업의 발달과 공장의 출현은 대량생산을 가능케 한 거푸집의 출현이 계기가 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3000년 전에 청동기시대에 나타났는데 청동기시대에는 사유재산과 계급이 나타난 시대이기도 하다. 청동은 구리를 기본으로한 구리합금의 한 종류로서 인류가 발견한 최초의 합금이다.
특히 아연을 섞는 것은 우리나라 특유의 합금술로서 주조시 유연성에 도움을 주며 잘 부식되지 않는 효과가 있다. 거푸집은 처음에 돌이나 진흙에 만들려는 모양을 새겨서 두 개 맞붙여 녹인 청동을 부어넣는 직접적인 방법을 사용하였으나 나중에는 밀랍거푸집을 만들어 사용하였다(전상운, 2001). 거푸집은 청동검, 청동칼, 청동도끼, 청동창, 청동끌, 화살촉, 낚시, 단추 등에 다양하게 사용하였다. 신라시대는 생산품에 공장명까지 기재한 라벨을 붙여 수출할 정도로 공장이 발달되었다. 1800년대 후반에 발달한 산업혁명은 세계의 공업화를 불러왔지만, 우리나라는 1950년에 경제개발을 시작하면서 급속한 공업화를 가져와 세계와 겨루게 되었다.
또한 가야의 철은 매우 우수하여 세계에 수출하였다. 신라는 명품을 만들어 상품화하여 교역하였으며, 특히 장보고 무역상선의 중국, 일본, 한국과의 교역활동은 그 당시 상업의 발달수준을 가늠케 한다. 백제는 일본과의 교류를 활발히 하여 지식과 기술을 전수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송나라를 중심으로 대외무역이 크게 발달하였는데 벽란도는 국제무역항으로 번성하여 해상활동이 활발했음을 보여준다. 고려시대 청자를 실은 배가 태안군 근흥면 마도 앞바다에서 침몰된 마도 1·2호선을 보아도 고려의 해상활동을 짐작할 수 있다. 상업은 물물교환에서 시작되었고 이러한 형식은 조선시대까지도 이어졌다.
그러나 대규모 상단을 꾸려 교역한 상업의 형태는 2000년 전부터 나타난다. 고구려는 수레가 다닐 수 있는 다리도 만들고 제륜신이라 하여 수레산업을 신격화하였으며 지금으로 보면 물류시스템을 첨단화하여 국가의 부를 꾀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보부상들이 발달하여 전국을 다니면서 무게나 부피가 크고 값이 비교적 낮은 상품을 지게에 짊어지고 다니거나, 부피가 작고 가벼우며 비교적 비싼 상품을 보자기에 싸서 들고 다니거나 하는 방법으로 상업이 발달하였다.
또한 객주도 발달하였는데, 객주는 각처에서 모여드는 상인을 위하여 물품을 보관하거나, 숙식을 제공하거나, 위탁판매 등을 해주었다. 특히 외교관들은 인삼과 같은 우리나라 특산품을 중국에 가져가 파는 등의 교역을 하였다. 현대에 와서 우리나라는 동북아 물류시스템의 중심이 되고자 하고 있으며, 세계 5대 무역항을 갖고 있는 국가가 되었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에서 직업들과 농공상은 수천 년부터 발달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른다. 우리는 미래를 내다보며 선조들이 물려준 유산들을 후손들에게 어떻게 전수할지를 고민하면서 살아야 할 것이다.
글. 김병숙 ((사)한국직업상담협회 이사장) 사진. 문화재청, 농업박물관, 이미지투데이
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동아일보 http://news.donga.com/3/all/20130618/55930702/1
서경덕 성신여대 교양학부 교수
지난달 한 방송사에서 청소년들의 역사인식 수준을 알아보기 위해 길거리에서 인터뷰한 장면이 인터넷상에서 큰 논란이 되었다. ‘3·1절’에 대해 학생들에게 묻자 ‘삼점일절’이라는 답이 나온 것이다. ‘야스쿠니신사’에 대해 또 물었더니 ‘야스쿠니 젠틀맨?’이라고 되물었다. 정말 황당한 대답이다.
4년 전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을 기념해 대학생 연합 동아리 ‘생존경쟁’팀과 함께 전국 및 해외를 돌며 국내외 약 3만 명의 손도장으로 만든 ‘안중근 의사 대형 손도장 걸개그림’(가로 30m, 세로 50m)을 제작하여 광화문 일대를 장식한 적이 있었다. 그때 한 대학생이 안중근 의사를 윤봉길 의사와 착각해 ‘도시락 폭탄’을 던진 사람이라며 옆 친구와 얘기하는 것을 보고 정말 당황할 수밖에 없었던 기억이 난다.
2000년대 들어서 주변국들의 역사 왜곡은 더욱더 심해져 가고 있다.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우리의 고구려와 발해 역사를 자신의 역사로 편입하려 하고 있다. 일본은 독도 도발을 더욱더 거세게 진행 중이다. 이에 맞서 필자는 지난 10여 년간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워싱턴포스트 등 세계적인 유력지에 일본과 중국 정부의 역사왜곡과 관련한 광고 캠페인을 전개하며 세계적인 여론을 환기하고자 노력해 왔다.
하지만 동북공정과 독도 문제의 가장 큰 적(敵)은 중국 정부와 일본 정부가 아니라 우리들의 ‘무관심’이었다. “독도가 어느 나라 땅이냐?”고 청소년들에게 물으면 하나같이 “대한민국 땅”이라고 대답한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왜 우리 땅이냐?”라고 물으면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명확하게 대답하질 못한다. 이것은 독도에 관한 역사적인 교육을 학생들에게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일까?
2005년부터 대입 수험생의 과목 부담을 덜어 준다는 목적 아래 한국사를 필수과목이 아닌 선택과목으로 바꿨다. 그것도 문과에만 해당하는 것이고 이과는 선택할 수조차 없도록 개정했다. 또한 한국사를 입시에서 필수과목으로 지정한 대학은 서울대뿐이어서 서울대에 갈 게 아니라면 그마저도 공부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현재 독일은 고등학교 교과에서 전체 수업 비중의 20%를 역사수업에 치중하고 있다. 빌리 브란트 전 독일 총리가 폴란드에서 나치에 희생된 폴란드 유대인을 향해 무릎 꿇고 진심어린 사죄를 하는 모습부터 지금까지 독일은 지속적인 사죄와 보상을 해오고 있다. 이처럼 올바른 역사교육이 다음 세대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지면서 독일은 세계인들의 존경받는 나라로 다시금 우뚝 설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고등학교 전체 수업 비중의 5%만 역사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2009년 교육부는 우리 역사를 한 학기 또는 한 학년에 몰아서 공부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른바 집중이수제를 실시한 것이다. 역사공부를 잠시 몰아서 하니 우리 청소년들이 한국사를 제대로 알 리가 없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을 바꿔보고자 5일부터 한국사의 대학수학능력시험 필수과목 선정을 위한 ‘100만 명 서명운동’을 온오프라인에서 벌이고 있다. 단지 우리 청소년들만 잘못했다고 탓할 순 없다. 이런 현실을 만든 우리 어른들이 더 큰 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과거가 없다면 현재도 없고 미래도 없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올바른 역사 교육이다. 글로벌 시대를 맞아 다른 선진국들은 자국의 역사뿐만이 아니라 세계사까지 교육을 강화한다고 들었다. 기본적인 우리의 역사교육을 바로잡아 다가오는 미래에 더 강한 국가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을 탓하기만 할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 역사를 제대로 알고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의 영토와 역사는 우리 스스로가 지켜나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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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강산의 하느님, 부처님
하느님은 이 나라 모든 민족의 하느님이시다. 요즈음은 어떻게 된 것인지 애국가 1절 가사조차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고, 이 나라 이 민족의 상징인 태극기 하나 제대로 그리는 사람이 없다. 애국가 속에도, 이 나라 깃 발 안에도, 우리의 하느님이 실존해 계시고 우주의 원리가 잠재되어 있다. 그 안에는 이 나라의 국운과 미래가 모두 들어있다.
태호복희씨나 신농씨, 또 [황제내경] 같은 동서양의 최고를 자랑하는 경전까지 들먹이며 동양의 최고 점술이요, 의술이요, 사주요 하면서 백발백중 천하도사에 명의라고 호언장담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 왔고 또한 보고 있다. 그러나 중극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은 이 나라 한국과 기후, 풍토가 다르고 물이 다르다. 아무리 우수한 동서양의 점술도 우리 나라의 정통 우주의 원리만도 못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나라 이 땅에서 자란 한 민족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외국산 조기조차도 이 나라의 조기가 더 좋다는 것을 알고, 배에다 노란 물감 칠하고 이 나라 조기로 둔갑하여 제사상에 오르지 않던가.
사주, 점술, 의술을 초월한 의통에도 우리것이 있다. 각계 각 분야에서도 우리의 근본 바탕이 있다. 우리의 것을 무시하고 어려운 문자 뒤져 무엇을 찾겠다는 건가? 깨치자. 바로 깨쳐 바로 보자. 내가 깨치고 우리가 깨쳐 이 민족 모두가 깨치자. 21세기. 이것만은 우리의 세기가 되어야 한다.세상의 어떤 민족의 신(神)들이 초광력과 같은, 신비의 현상을 나타내 눈앞에 보이셨는가?
우리 나라의 하느님은 서양의 예수님과 동양의 부처님을 모두 좋아 하신다. 다만 사랑과 자비가 근본 바탕이 되고 실현 될 때에 한 해서 말이다. 그 분 께서는 오직 하나, 이것을 원하신다. 마음을 맑게 하고 인정으로 사는 것, 바로 그것이다. 마음을 맑게 하기 위해서는 선도 있고 신앙도 있고 초광력도 있다. 그 어느 것도 좋다. 그분에게 향하는 순수하고 바른 길이라면…. 우리의 하느님은 모든 존재의 하느님이시고 성광이시기 때문이다.
이 책을 대하는 모든 분들과 그들의 가족과 그가 사랑하고 아끼는 선의의 사람들에게 초광력을 보낸다. 초광력은 이 나라에서부터 시작되는 영원무궁한 힘이다. 이 나라 하느님, 부처님 이제 우리가 모시고 이 힘 초광력을 우리모두 아끼고 사랑하며 가꾸어 나가야 한다.
출처 : '빛으로 오는 우주의 힘 초광력'(1996/7/10 초판 1쇄 P.60~62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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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은 숯이 아닌데도
두 눈을 뜨고 먹을 보자.
가슴을 열고 먹을 접하자.
먹은 숯이 아니다.
우리가 먹을 풀어 붓에 묻혔을 때
먹이 지닌 또 다른 가치가 드러난다.
그것으로 우리의 정신과 생활은 더욱 크고 풍요로워지며
새로운 미래를 펼칠 수 있다.
출처 향기와 빛명상이 있는 그림찻방 P.75
첫댓글 우리역사의 가치를 우리가 인정할 때 그 역사가 주는 교훈도 우리 것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에게 우리역사를 제대로 가르치도록 우리나라가 그렇게 변화되기를 기원합니다. <먹은 숯이 아닌데도>의 내용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고맙습니다, 서유종님.
우리 민족의 우수한 두뇌와 지혜의 산물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감사합니다. 서유종님,
정말 기가 막히는 대답을 하는 학생들을 저도 TV를 통해 본 적이 있습니다.
역사를 모르고, 모르니 스스로 왜곡하는 이런 현실에서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고 앞장서 노력하는 서경덕 교수님 같은 분들께 응원을 보냅니다.
[먹은 숯이 아닌데도]의 내용을 다시 한 번 곱새겨 봅니다.감사합니다.^^
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 이말씀에 큰공감이 갑니다...옛시절에는 우리의 긍지를 알리기 위해 태극기를 위울때까지 가르치던 시절이 있는가하며
애국가를 4절까지 외우도록 가르치던 때가 있었습니다 박서연님 말씀처럼 저도 TV를 통해 본적있습니다..아이들이 우리의 역사를 잘 모르고 나오는데로 예기하는것을요
참 씁썰하던것을요...우리의 역사를 바로 가르쳐 민족의 긍지를 심어줘야할것을 ...교육이바궜으면 하는바랍입니다 서유종님 귀한 말씀 올려주셨어 감사드립니다^^*
빛과함께 우리의 잘못된 역사관을 하루빨리 바로 잡을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서유종님.
서유종님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먹은 숯이 이닌데도>마음에 새겨봅니다.
감사합니다. 귀한글 너무너무 질 보았습니다.
그동안 우리 역사에 무관심하게 살아온 것에 참으로 부끄러운 생각이 듭니다.
중국과 일본만 탓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역사에 기본적인 지식을 습득하여 단단한 민족의 자긍심을 키워 맞대응 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감사합니다.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훌륭한민족이 될수있다는 귀한글 잘 읽고갑니다 유종님 오늘도 빛 안에서 행복하세요^^*
우리 민족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고 올바른 역사 인식을 지켜나가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TV를 보았습니다. 참 기가막혔지만 그 원인은 우리의 교육 현실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민족의 우수성을 젊은 세대에서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고 역사에 대하여 깊이 있는 교육도 부족한 현실입니다.
뿌리를 제대로 알아야 하는데 그 뿌리에 대한 교육부족으로 왜곡될 수 있음에 미래의 역사가 염려가 됩니다. 이제라도 교육으로 다시 우리역사가 후손들에게 바르게 전달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졸은 글 감사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