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6월29일
비 오는 반곡지
오늘 복숭아 땄어, 가는 길에 주고 가려고 하는데, 집에 있으면 전화해 줘. 복숭아나무 심는다고 했을 때나 주말마다 시골에 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냥 웃으면서 들어주었는데 복숭아를 수확하고 나눔을 하는 친구가 달리 보였다. 작업복을 입고 차 안에서 웃는 친구의 모습이 무척 편안해 보였다. 평상시 모습하고는 달랐다. 훨씬 젊어 보이고 생기도 있고 친구를 만나면서 새로운 모습을 보았다. 비에 옷이 다 젖어서 친구가 좋아하는 커피도 다음으로 미루었다.
복숭아를 한 바구니 내려놓고 갔다. 복숭아나무를 키우기는 했구나! 하면서 피식 웃었다. 어제는 시인 후배가 황도를 놓고 갔는데 오늘은 친구가 복숭아 신비랑 신선 털복숭아라고 일일이 이름을 알려주고 갔다. 친구에게 주고 싶어서 함께 나눠 먹고 싶어서 비와 땀에 흠뻑 젖은 모습으로 일부러 와준 친구를 보면서 새삼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었다. 부자다, 나는.
복숭아를 서너 개 씻어서 먹어보니 달콤하고 푸릇푸릇했다. 설사 맛이 덜해도 그냥 맛있을 판인데 정말 어떻게 이런 맛을 머금고 있을까? 신기하고 대견했다. 엊그제 그토록 곱게 꽃이 피더니 벌써 열매를 나눠주고 있다. 부지런한 복숭아나무다. 내가 사는 곳은 복사꽃을 유명한 고장인데 이곳에 살면서 복사꽃에 반해서 살았다. 어려서부터 먹고 자란 이곳 사람들은 봄을 기다리는 이유 중 하나가 복숭아가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다. 조금씩 맛을 알아가는 중이다.
장마가 시작되었다. 늦은 오후부터 장대 같은 비가 쏟아졌다, 다이소에서 쇼핑하는 것도 재미있다. 신기한 물건이 많아서 구경하는 것만으로 즐겁다. 소소한 물건을 사면서 바구니에 담아오는 행복은 가끔은 삶의 충전이 된다. 눈썹 그리는 연필도 사고 주방 기구랑 손수건을 샀다. 냉방 티셔츠도 샀다. 작업실에서 그림만 그리는 아들에게 시원한 티셔츠를 선물하고 싶었다. 엄마가 항상 응원하고 있음을 전해주고 싶다.
비 오는 날에는 댐이나 호수나 저수지가 떠오른다. 내 기억에 저장된 풍경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다. 오늘은 반곡지를 갔다. 올봄에는 반곡지의 복사꽃을 사진으로만 보았다. 초록이 발효하는 한여름의 반곡지는 비에 젖어서 수척해 보였다. 늙은 버드나무가 여름을 나는 것이 힘든가보다. 반곡지도 변해간다. 미술관처럼 아름다운 카페가 반곡지를 지키고 있다. 로맨틱한 불빛이 하나둘 켜지는 카페에는 사람보다 진한 나뭇잎 냄새가 가득하다. 우산을 써도 옷이 다 젖었다. 그래서 기분이 더 좋았다. 신발도 젖도 머리도 젖고 옷도 젖고 내 마음도 초록빛으로 물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