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개혁, 신앙개혁
(요 2:13-22)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세상에 험한 말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인터넷에서는 차별, 증오, 혐오, 폭력적인 말들이 난무합니다. 아이들도 그 영향을 받아서 학교에서 또는 또래들과 지내면서 험한 말들을 합니다.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말들이 익명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개인 방송을 통해 공공연하게 내뱉어지고 있습니다. 특정한 사람들만 그런 말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폭력적 언어가 광장에서 울려 퍼지고, 국회에서 뱉어집니다. 그리고 지금은 교회 안에서도 폭력, 증오, 차별의 언어가 마치 ‘진리, 정의’의 언어인 것처럼 외쳐지고 있습니다.
이런 폭력과 파괴, 죽임의 언어들을 들을 때마다 불쾌합니다. 금지할 수 있는 법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한편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삶이 행복할까? 그런 말을 하면서 자란 아이들이 선하고, 정의롭고,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할 수 있을까? 상대를 조롱하고, 모욕하면서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과연 국민을 위한 정책과 법을 만들 수 있을까? 자기들은 옳은 일 한다고 하지만 국민 입장에서는 의문이 생기는 것입니다. 모든 이들을 위한 ‘공동선’이 아닌 자기의 이익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겁하고 비열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인간의 가치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익명에 숨어 폭력과 증오를 쏟아내는 사람들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사회에 유익함은 줄 수 없습니다. 오히려 갈등과 대결을 부추겨 분열을 일으킬 뿐입니다.
이런 폭력과 증오, 차별로 나타나는 죽임의 말들이 교회 안에 스며들고 있습니다. 지키고자 하는 가치가 모든 이가 공감하는 공동선이 아니라, 자기 생각과 신념을 강화하는 것이고, 자기 이익을 위한 것입니다. 광장에서 큰 소리를 내면 자기가 큰 인물이 된 것처럼 과시할 수 있고, 영향력이 큰 사람인 것을 드러내고 싶을 것입니다.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교회나 교세가 성장할 수도 있고, 세력이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죽임의 언어, 폭력과 증오의 언어로 얻는 것은 생명이 아닙니다. 오히려 생명과 평화, 정의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정치인들, 종교인들이 온갖 험한 말을 쏟아내면서 국가와 국민을 위한 일이라고 선동하지만, 그들은 결코 국민과 국가를 위해 옳은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지 못합니다. 선동하여 교회를 이용하고, 국민을 이용하는 것뿐입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 선동하는 것입니다.
정치인은 정치적 이익을 위해 말하고 행동한다고 하지만, 교회는 개인이나 자기 교회의 이익을 위해 일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신성모독이며, 교회나 교회 지도자라고 볼 수 없습니다. 교회를, 하나님을 이용하는 그릇된 생각과 행동을 주님은 바로잡으십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가셔서 성전을 깨끗하게 하신 ‘성전 정화 사건’ 이야기입니다. 유월절에는 온 이스라엘의 남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전국에서 몰려오기 때문에 사람이 많이 모입니다. 예배를 드릴 때 희생제물을 드리고, 성전세를 바치기도 합니다. 희생제물과 헌금에는 까다로운 규정이 있습니다. 흠 없는 제물이어야 하고, 로마 식민지에서 사용하는 화폐가 아닌 히브리 화폐로 헌금을 바쳐야 합니다.
희생제물을 자기가 생각할 때 흠이 없는 것으로 바치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이 인정한 제물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전 마당에 희생제물을 파는 상인과 돈을 환전해주는 환전상이 있어 제물과 헌금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신도들을 위해 편리한 제도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상인들과 제사장이 결탁을 해서 흠이 있는 제물도 흠이 없다고 하고 팔기도 합니다. 환전할 때 비싼 수수료를 받기도 합니다. 그래서 환전상은 많은 이익을 남길 수 있고, 이익의 일부를 제사장들과 나누는 것입니다. 이런 행위는 한마디로 말해 ‘종교적 타락’입니다. 하나님을 속이는 것입니다. 흠이 있는 제물을 드려 하나님을 조롱하고, 모욕하는 것입니다. 성전에서 상인과 제사장의 결탁으로 종교 권력은 강화되지만, 서민은 피해를 보고 교회와 신앙은 세속적으로 타락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속이고, 모욕하는 신앙을 예수님은 두고 볼 수 없습니다. 15절을 보면 예수님은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가짜’들을 쫓아내고, 상을 엎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다른 복음에서는 ‘강도의 소굴’이라는 표현을 합니다. 하나님의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는 비판입니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많은 손해를 보았을 것인데, 예수님의 분노가 커서 대들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겨우 하는 말이 ‘당신이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보여줄 수 있느냐?’고 물을 뿐입니다. 무슨 권위로 이런 행위를 하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제사장의 허락을 받았는데 당신은 대제사장의 권위보다 크냐고 묻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대답합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19절) 예루살렘 성전은 헤롯 왕이 46년 동안 지었다고 해서 헤롯 성전이라고 불렀습니다. 크고 화려하게 지은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허물고 사흘 만에 다시 세울 것이라고 말씀하시니 사람들이 비웃습니다. 아마 우리도 예수님의 말씀을 비웃을 수 있습니다.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런 오해가 가끔 등장합니다. 요한복음 3장에 니고데모와 대화하시면서 ‘사람이 거듭난다’는 것을 니고데모가 오해하고, 4장에서 사마리아 여인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에 대해 오해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면 사람들이 오해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설명하는 방식이 등장합니다. 물론 사람들의 오해는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다음에 풀리게 됩니다.
왜 사람들이 예수님 말씀을 오해할까요? 우리가 생각하는 신앙의 틀을 만들어 놓고 예수님의 말씀을 끼워 맞추려고 하기 때문에 오해를 합니다. 성전을 46년 동안 지었는데 어떻게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고 하느냐는 것은 우리 생각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성전, 돌로 지은 성전을 생각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나중에 어떻게 이해되었습니까? 21절에 설명합니다.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전을 ‘건물’로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을 만나는 곳’,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으로 말씀하십니다. 성전은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서 완성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건물로서 성전만 생각합니다. 자기 생각에 머물러 있습니다. ‘내 생각’에 나는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 명절마다 성전 순례를 하며 희생제물을 바치고 있다, 말씀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어쩌면 성전에서 장사를 하도록 허락한 제사장이나 장사꾼들도 하나님의 백성을 도와주고, 하나님을 정성껏 예배하는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쫓아내고 상을 엎어버립니다. 교회를 개혁한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을 만나 예배하는 곳, 만민이 기도하는 곳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새 성전을 내가 세우겠다고 하십니다. 당신이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을 통하여 예배하는 곳이 성전입니다.
그러나 지금 교회는 자기 생각으로 하나님을 이용하고 자기 생각과 말을 하나님의 것인 양 착각하면서 하나님의 권위를 스스로 자기 것으로 삼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러면서 잘 믿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예수님께서 한국 교회를 채찍질하며 무너뜨릴 수도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자기 생각을 주님의 생각인 줄 착각하는 교회는 사람의 생각만 하는 강도의 소굴일 뿐입니다. 주님께서 죽었다가 사흘 만에 살아날 것을 예고할 때 베드로가 가로막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네가 하나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한다’고 꾸짖으시며 ‘사탄아 물러가라’고 책망하십니다. 사람의 생각을 하나님의 뜻인 줄 아는 것이 사탄인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그리고 우리 자신이 사탄의 종이 되어 하나님의 일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렵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듣지 않고 내 생각대로 믿어버릴 때, 오해하고, 주님의 일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3:16) 예수님께서 세우신 새 성전은 예수님을 믿고 고백하는 우리 자신의 삶으로 지어져 가야 합니다.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있어 하나가 되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믿고 싶은 대로 믿고, 스스로 잘 믿는다고 착각하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신앙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말씀으로 새롭게 되어 생명을 살리고, 하나님의 뜻인 정의와 평화를 이루는 신앙,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온전한 믿음을 이루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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