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속초시 설악동에서 시작되는 짧지만 감동적인 설악산 등산 코스가 있다. 바로 금강굴 코스다. 숲의 기운을 듬뿍 받으며 길을 이어가다 숲보다 더 푸른 계곡물에 감탄하고, 계곡 사이 기암절벽에 넋을 놓고 걷다 보면 금강굴에 오르는 전망대에 도달한다. 굴로 향하는 가파른 계단에서 아무리 식은땀을 흘려도 23.1㎡ 남짓한 금강굴에 이르면 그 성스러운 기운에 ‘인생사 새옹지마’를 깨달을 수밖에 없다. 고작 1시간 30분 만에 천년만년 이어져야 할 이 경이로움과 마주할 수 있음이 그저 감사하고 또 감동인 이유다.
소공원 입구에서 보이는 설악산 전경 [왼쪽/오른쪽]단풍 구경하는 사람들 / 신흥사 통일대불
경건한 마음의 시작, 신흥사
여정은 설악동 소공원 주차장에서 시작된다. 국립공원 입구 앞 매표소에서 입장료를 내고 안으로 들어서면 주차장에서부터 보이던 설악산의 위용에 한 발 더 다가서게 된다. 수많은 인파 가운데 신흥사 통일대불이 설악산 입산을 가장 먼저 반긴다. 이 청동 불상은 높이 14.6m에 좌대 높이 4.3m, 좌대 둘레 13m의 초대형 석가모니불이다. 민족통일의 비원을 안은 통일대불은 1987년 8월 공사를 시작해 1997년 10월에 완공되었다. 불상 뒤편에는 불상 내부에 조성된 내법원당이라 불리는 법당이 있다. 내부는 사진 촬영이 불가능하다. 경건한 마음으로 둘러보고 조용히 나오는 것이 좋다.
통일대불을 지나 직선 방향으로 길을 이어가면 신흥사로 들어서는 사천왕문에 도달한다. 속초 신흥사는 1984년 강원문화재자료 제7호로 지정된 사찰이다. 신라 진덕여왕 때 향성사(香城寺)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다가 화재로 소실된 후 선정사(禪定寺)라는 이름으로 재건되었다. 선정사는 천년의 시간을 버티다가 조선 중기인 1644년에 다시 소실되고 말았다. 당시 이를 안타까워하던 몇몇 스님들이 같은 꿈을 꾼 뒤 그 터에 사찰을 재건하고, 신의 계시로 창건했다는 뜻에서 신흥사(神興寺)라 부르게 되었다. 이후 영동 지방의 불교를 새로 일으킨다는 기원을 담아 1995년부터 ‘새로울 신(新)’을 넣은 신흥사(新興寺)로 고쳐 부르고 있다. 경내에는 통일신라시대 양식을 따르는 향성사지 삼층석탑과 조선시대 건축술을 보여주는 극락보전,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 경판, 보제루, 부도 등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
신흥사 전경 [왼쪽/오른쪽] 비선대 자연관찰로 입구 / 자연관찰로에서 만나는 굴참나무 안내판
전설이 흐르는 계곡, 와선대와 비선대
신흥사에서 돌아 나와 설악산의 주봉인 대청봉으로 향하는 다리를 건너면 비선대 자연관찰로에 들어선다. 널찍한 흙길 중간중간 숲의 생태를 설명해주는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참나무, 굴참나무, 소나무, 개옻나무, 산뽕나무 그리고 산죽이라고도 불리는 조릿대 등 다양한 식물들을 관찰할 수 있다.
신흥사로부터 2km, 왼편으로 흐르는 천불동계곡이 깊고 넓어질 때쯤 도달하는 곳이 와선대다. 옛날 마고라는 신선이 바둑과 거문고를 즐기며 너럭바위에 누워서 경치를 감상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하지만 전설 속 바위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시간과 계곡물이 흐르고 흘러 그 모습을 지웠기 때문이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청량한 계곡물이 옛이야기를 상상하게 해준다.
와선대 부근 식당 [왼쪽/오른쪽]와선대 풍경 / 비선대 쉼터
300m쯤 길을 이어가면 와선대에서 풍류를 즐기던 마고 신선이 하늘로 올라간 자리라는 비선대에 닿는다. 계곡물 아래 커다란 바위들과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기암절벽, 몇백 년 세월을 간직한 나무들이 한데 어울려 절경을 이루고 있다. 예부터 시인 묵객들이 즐겨 찾았던 곳이라 한다. '비선대(飛仙臺)'라는 글씨를 비롯해 암반 곳곳에 그들의 흔적이 새겨져 있다.
이어지는 길 언덕 위에는 작은 산장이 있다. 수십 년간 이곳을 지키며 숱한 산사람들의 쉼터이자 대피소가 되어준 곳이다. 비선대를 감상하며 간단한 식사를 하거나 잠시 다리쉼을 하며 신선놀음을 즐길 수 있다. 산장을 가로질러 비선대계곡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면 비선대 탐방안내소에 다다른다. 대청봉과 마등령으로 향하는 본격적인 등산로가 시작되는 곳이다. 여기부터 금강굴까지는 600m 남짓이지만, 경사가 매우 가파르므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왼쪽/오른쪽]비선대계곡 다리 / 비선대 탐방안내소에서 금강굴 가는 길 [왼쪽/오른쪽]금강굴이 있는 미륵봉 전경 / 금강굴 계단 앞 전망대
바위 속 신성한 공기, 금강굴
와선대와 비선대를 지나며 멀리 보이는 봉우리가 미륵봉이다. 미륵봉 중턱에 길이 18m, 면적 약 23.1㎡의 자연 석굴이 있다. 언제 형성된 굴인지는 전해지는 바가 없다. 다만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수도했다고 전해지며, 원효대사가 쓴 《금강삼매경론》에 따라 금강굴이라 불리게 되었다. 굴의 존재만으로도 신기한 현상이기에 민속학자들은 ‘금강유혈(金剛有穴)’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미륵봉 바로 코앞에 도달하면 갈래길이 나온다. 왼편은 마등령 방향이고, 오른편이 금강굴로 향하는 길이다. 한 차례 깔딱고개를 올라서면 천불동계곡이 내려다보이는 금강굴 입구 전망대가 나온다. 1시간 30분 만에 설악산의 모든 매력을 보여주는 듯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전망대 뒤로 절벽 위에 부교와 계단이 있다. 아래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하다. 마음을 다잡고 올라도 온몸에 긴장이 흐른다.
짧지만 어렵게 도착한 금강굴에는 소박한 불당이 마련되어 있다. 내부 촬영은 금하지만 바깥 방향으로의 촬영은 가능하다. 굴 입구에 마련된 나무의자에 앉아 잠시 머물러보는 것도 좋다.
내려오는 계단길은 올라갈 때와는 또 다른 모습으로 이곳까지의 수고를 위로한다. 천불동계곡이 흐르는 설악산의 풍채는 상상 그 이상의 감동을 안겨준다. 사다리조차 없었던 그 옛날, 이 거대한 바위 위 굴 속으로 어떻게 들어설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에 감탄이 배가된다.
[왼쪽/오른쪽]금강굴 안에서 바라본 풍경 / 금강굴 앞 설악산 전경
대청봉까지 등산할 요량이라면 금강굴을 보고 비선대 탐방안내소까지 다시 내려와야 한다. 설악산의 많은 등산로는 외길이기 때문에 다른 길로 들어서면 먼길을 돌아가거나 왔던 길을 다시 내려와야 하는 수고를 할 수 있다. 같은 길을 왕복하는 것이 아니라면 등산지도를 잘 살펴 길을 나서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