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찾아서] 봄이 가장 먼저 오는 곳, 제주의 슬픈 역사를 지킨 팽나무 |
|
제주 성읍민속마을 입구에 서 있는 느티나무. |
[2013. 1. 28]
고작해야 15년이지만, 그 사이에 만났던 나무들에게는 눈에 띄는 큰 변화들이 있습니다. 에멜무지로 설핏 바라보아서야 드러나지 않는 작은 변화들이 대부분이지만, 때로는 도무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깊은 상처를 남기는 큰 변화도 적지 않습니다. 자연 속에 살아있는 생명체가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생로병사의 굴레이겠지요. 삶과 죽음을 넘나든 변화라면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언제까지나 늠름하게 우리 곁을 지켜줄 나무이리라 믿었건만 천재지변에 따라 창졸간에 목숨을 잃은 나무들을 찾을 때라면 더 그렇겠지요.
아주 드문 경우입니다만, 죽음에서 다시 의연히 일어나는 나무도 있습니다. 지난 해에는 경남 고성에서 그런 특별한 나무를 만난 적도 있습니다만, 그 나무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고 오늘은 안타깝게 그가 살아온 육백 년의 세월을 한 순간에 허공으로 흐트러 버리고 죽은 나무 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한 그루의 느티나무와 일곱 그루의 팽나무를 하나로 묶어 천연기념물 제161호로 지정한 ‘제주 성읍리 느티나무 및 팽나무 군’ 가운데 일관헌이라는 옛 관아건물 옆에 서 있던 한 그루의 팽나무가 그런 안타까운 나무입니다. |
|
2011년 태풍 무이파의 습격으로 쓰러지기 전, 늠름한 자태로 서 있는 일관헌 팽나무. |
오늘 편지의 처음 사진은 ‘제주 성읍리 느티나무 및 팽나무 군’ 가운데 한 그루인 느티나무입니다. 마을 어귀에 서 있는 근사한 나무이지요. 그리고 바로 위 사진의 오른쪽 큰 나무가 이제 다시 볼 수 없는 일관헌 팽나무입니다. 제주민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나무이지요. 제주의 참혹한 역사 가운데 하나인 4.3 항쟁의 역사가 알알이 기록된 나무입니다. 4.3항쟁 당시 일관헌이 경찰서 건물로 쓰이는 바람에 경찰과 항쟁군의 전투가 이곳에서 흔히 벌어졌습니다. 그때 나무는 양측이 주고받은 총알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습니다. 나무에는 그래서 총탄 자국이 여럿 남아있었습니다. 오랜 제주 고난의 역사가 그대로 들어있는 셈이었지요.
그 나무가 쓰러진 건 지난 2011년 여름 태풍 무이파가 다가왔을 때입니다. 당시 나무의 굵은 줄기가 댕강 부러져나간 까닭에 다시 일으켜 세울 엄두를 낼 수 없었지요. 어쩔 수 없이 나무는 우리와 영영 이별하게 됐습니다. 당시 나무가 쓰러지면서 일관헌의 기와 지붕 일부도 훼손됐습니다. 그래서 제주도에서는 적지 않은 예산을 들여 일관헌을 복구하기로 하고 지금 한창 복구 공사를 진행 중입니다. 아마 얼마 있으면 일관헌은 옛 모습 그대로 복원을 마치겠지요. 그러나 쓰러진 팽나무는 영영 다시 볼 수 없다는 게 못내 안타까운 일입니다. |
|
쓰러진 일관헌 팽나무 앞에 의연하게 남은 또 한 그루의 팽나무. |
삶과 죽음을 안고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쌓입니다. 우리 곁에 머무르던 겨울도 천천히 우리 곁을 떠나고 화창한 봄이 다가오겠지요. 오늘은 날이 풀려서 오후에 기온이 영상으로 오른다고 합니다만, 볼을 스치는 아침 바람은 여전히 쌀쌀합니다. 오르고 내리는 기온의 차이가 지나치게 큰 듯하여 정신이 없습니다만, 봄은 어김없이 천천히 우리 곁으로 다가오겠지요. 봄 마중 채비로 내일은 다시 또 이 땅에 가장 먼저 봄이 다가오는 곳 제주로 떠나, 가만가만 다가오는 봄의 소리를 들으렵니다.
다녀와 다시 소식 전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고규홍(gohkh@solsup.com)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