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고 했던가요. 여러 가지로 부족한 사람이 너무 오래 대통령님 일을 거들었습니다.
대통령님 퇴임하셔서 봉하마을로 내려가신 처음 몇 달을 빼고 거의 7년 반, 그저 황송한 마음으로 줄곧 ‘그 분 일’을 해 왔습니다. 2002년 선거에 합류해서 인수위, 청와대에서의 5년, 봉하에서의 마지막 보좌. 어쩌면 거기까지가 제 소임이었다는 생각도 합니다.
황망 중에 대통령님을 잃고 실컷 울 겨를도 없이 봉하에 계속 머무르며 영결식, 안장식을 모시고 나니 재단 창립준비를 하라는 ‘어른’들의 당부를 받았습니다. 서울로 올라와 정신없이 재단설립 작업을 한 이후 결국 1주기 행사를 치르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살아계신 동안이나 서거하신 이후에나 그 분 곁에 머물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겐 영광이기도 했지만, 욕되게 해드리지 않아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늘 고통이기도 했습니다. 힘들었지만 기쁨이었던 그 세월, 하루하루가 앨범의 사진처럼 심장과 뇌리에 또렷이 박혀 있습니다.
하지만 영광과 고통의 그 순간들이 이제 보면 모두 속절없어 보입니다. 허망하게 주군을 잃은 참모에게 보람과 성과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만큼 대통령님 빈자리가 절통하기만 합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대통령님으로부터 과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대통령님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대통령님에게 부끄럽지 않은 참모가 되기 위해, 지금껏 후회 없이 싸웠고 원 없이 일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역할은 여기까지인 것 같아 재단 사무처장직을 사임했습니다.
<노무현재단>은 설립 10개월 만에, 국내는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전례를 찾기 힘든 역동적이고 강력한 전직 대통령 재단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전적으로 대통령님의 힘, 시민의 힘으로 말입니다. 이제 내실을 다지면서 보다 폭넓은 방향으로 재단의 미래를 꾸려갈 후임자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문재인 이사장 직무대행께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지금껏 저는 대통령님에게도 여사님에게도, 청와대 선후배들이나 주변 분들에게도 늘 ‘양비’로 불렸습니다. ‘양비’. 양정철비서관의 약칭인 이 표현을 저는 좋아합니다. 대통령 노무현의 비서관임이 자랑스러워 그렇습니다.
대통령님 서거 전 농반진반으로 이렇게 말씀드렸던 적이 있습니다. “저는 평생 ‘양비’입니다. 임명권자인 대통령님이 저의 비서관 직위를 해제해 주지 않으시고, 퇴임 후에도 계속 ‘양비’라 부르시니 평생 비서관으로 지내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아무 말씀 없이 그윽하게 웃으시던 분이 끝내 저를 비서관에서 자르지 않고 저 세상으로 떠나셨으니, 결국 평생 비서관으로 살아가는 수밖에요.
이제 재단 사무처장에서 물러나면 지난 8년 여 만에 처음으로 ‘노무현’ 존함이 들어가지 않는 혼자의 타이틀로 혼자의 세상을 만나게 되겠지요. 두렵습니다.
하지만 마음속에 묻은 주군을 모시고 늘 ‘양비’로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0. 8
양정철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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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양비로 건강하고 행복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