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병원과 인연이 된 것은 순전히 은사스님의 덕이다. 은사스님께서 오래 전부터 병원포교에 남다른 뜻을 두시고 경찰병원법당을 만드셨기에 자연스레 은사스님을 시봉하면서 병원포교에 발을 들여 놓게 되었다.
중앙승가대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복지관 운영에 관심도 많았지만, 은사스님의 뜻을 받들어 이일을 사명으로 삼게 된 것이다.
국립경찰병원 법당은 서울시 송파구 가락본동 58번지로 기숙사 건물 별관 103호에 있다. 법당은 병원 본 건물과 조금 떨어져 있어 환우들이 찾아오기에 불편한 점이 있다. 그래도 젊은 전 의경들이 자주 와서 도서를 빌려 간다.
경찰병원에는 6.7층에는 경찰관과 일반 환자, 5층에는 전경과 의경이 입원하고 있다.
요즘 불교계에서 청년 포교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는데, 경찰병원은 젊은 전경과 의경들이 많이 입원하고 있어 포교의 황금어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들은 혈기 왕성한 20대의 청춘이나 건강이 좋지 않아 입원하고 더러는 시위 진압에 나갔다가 부상을 입거나 훈련도중 부상으로 입원을 하기도 한다. 한창 때 인지라, 전 의경들은 치료회복도 일반 환자보다 빨라서 경미한 질병의 환자인 경우는 일주일 정도 지나면 퇴원을 하곤 한다.
몸은 아프나, 그들은 아직 젊기에 여가시간에 독서를 하거나, TV 시청을 많이 한다. 병실에 들어가면 침상에 연꽃이 달린 환자들을 우선적으로 살피게 된다. 불자임을 당당하게 드러내고 합장주를 손에 하고 있는 전 의경 들을 보면 참으로 대견하고 고마운 마음까지 든다. 어떤 전의경은 합장주를 나누어 주면 어머니께 드리고 싶다며 한개 더 달라고 하기도 하고, 여동생과 여자 친구에게 선물한다고 세 개를 달라고 떼를 쓰기도 한다. 웃으면서 덤으로 주면 입이 귀에 걸리도록 좋아한다.
경찰병원에서 병상 포교하면서 늘상 느끼는 것은 전. 의경들이 참 순수하다는 점이다. 병실에 올라가면 자기 몫의 음료수를 권하기도 하고 애인한테 온 편지를 슬쩍 자랑도 하고, 부대에서 힘들었던 얘기도 털어놓으며, 자문을 구하기도 한다. 때로는 그와 반대로 답답함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법당에서 "스님편지" 란 유인물을 돌리다 보면 가끔 타종교인 전의경은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심한 거부감을 나타내기도 한다. 젊은 전의경이 닫힌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는 것이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 것이다. 보지 않더라도 예의상 받아도 될 터인데 경계의 눈빛으로 대할 때는 병실을 나오는 발걸음이 무거울 때도 있다. 그래도 다음날 찾아가서 그 녀석 이름을 부르며 반갑게 아는 체 하면, 얼떨떨하면서도 싫지 않은 표정이다.
그런 전 의경들이 시간이 흐르다보면 오히려 인사도 잘하고 스님편지도 꼬박꼬박 챙겨서 받아본다. 이럴 때 많은 보람을 느끼게 된다. 목에는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서 복도에서 마주치면 "스님!" 하면서 재롱을 피우듯 응석 하는 것을 보면 귀엽다는 생각마져 드는 것이다.
그래서 병원포교는 힘이 들지만, 전 의경들이 기다린다는 생각을 하면 1시간여 걸리는 대중교통편도 지루하지 않고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도 즐거운 마음으로 가게 된다.
입원했던 전의경이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해서 맡은바 복무를 마치고 제대 후 찾아 왔을 때는 그 기쁨 또한 이루 말 할 수 없다. 더러는 병이 나아서 퇴원했다가 다른 전우의 간병인으로 다시 병원에 입원해서 우연히 병실에서 마주치면 "아직도 계세요?" 하면서 반가워한다.
세월은 유수 같이 흘러서 그간 병원법당과 인연 맺은 지도 10여년이다. 그간 스쳐 지나간 그리운 얼굴들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들이 불교와 스님들을 좋아하는 마음을 변함없이 가져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최근에는 불교법당 불사를 해서 새롭게 책장을 정비하였다. 누구든 와서 언제든 책을 빌릴 수 있게 구비를 해두었다. 매번 새 책을 구입하는 일이 경제적으로 어렵긴 하지만 뜻있는 몇 분이 조금씩 도와주셔서 신간도서를 구입하고 있다. 나에게는 몇 가지 바램이 있다.
경찰관이나, 전 의경, 또는 일반 환자들이 경찰병원에 입원했을 때만이라도 불교를 가까이 친근하게 접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가장 큰 바램이다. 그리고 타종교일지라도 불교나 스님에게 거부감을 가지지 않게 하려는 노력도 해나가고 있다.
병고로 인해 가장 심신이 나약할 때 따뜻한 손길을 나누는 일은 미뤄져서는 아니 된다. 생노병사의 무상이 그대로 와 닿는 병원! 신생아실에는 최근에 탄생한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6층 병실에는 나이 드신 노인들이 공동 간병실에서 함께 치료를 받고 계신 모습도 보게 된다. 그 중에는 곱게 나이를 드신 분도 계시나 이미 치매가 드셔서 상대를 알아보지 못하시는 노인 분도 계시다.
또 병환이 심한 환자분들 경우에는 복수가 차거나 황달현상으로 차마 곁에서 바라보기에도 가슴 아픈 경우가 많다. 말기 환자의 경우에는 의식도 희미해지고 결국 마지막 임종을 병실에서 맞이한다. 그러니 이곳에서는 생노병사의 무상을 한꺼번에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환자들은 병으로 몸과 함께 마음도 지치고 약해진다.
더구나 병원에서 나을 가망이 없다는 진단이 나올 때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인 것이다. 그럴 때 그동안 가지고 있던 종교를 바꾸게 되기도 한다. 그 종교를 믿으면 반드시 낫는다고 하니 환자 입장에서 개종까지도 결심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불교계는 과연 불자들의 고통 속으로 얼마나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가?
몇 십년을 절에 다니다가 병이 들어도 병문안 오는 도반과 스님이 없다면 이대로의 신행생활이 문제점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재적 사찰에서 신도회를 결성해서 신도님들 가정사의 애로를 교류 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이 시급한 일이라고 보아진다.
임종과 관련된 경우도 마찬가지다. 영안실에 염불을 가보면 타종교의 경우 문상을 온 교인들이 한마음으로 둘러 앉아 기도하는 모습을 볼 때 우리 불자들도 저렇게 동참하는 마음들을 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부러운 마음도 든다.
정든 가족을 잃고 슬픔에 빠진 유가족에게 이 보다 더 좋은 위로가 어디 있겠는가! 돌아가신 고인을 위해서 기도를 해주는데... 앞으로는 그동안의 포교에서 앞으로 더 한발 나아간 포교전략을 세워야 하리라 본다.
사찰의 주지스님과 소임자, 그리고 신도회 임원, 신도님들이 다함께 시대적인 현실포교의 문제점을 인식해야 한다. 그래서 열린 마음으로 중생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현장으로 나서지 않으면 불교의 미래는 밝다고만 할 수 없다. 고통 받는 중생의 생노병사의 아픔을 함께 해주지 않으면 평생을 믿어온 불심조차도 흔들리는 것이다.
그렇기에 환자포교의 중요성은 날이 갈수록 더 강조되어진다. 이제 더 이상 늦추어서는 안 된다. 함께 나누는 불교, 동참하는 불교만이 미래를 엮어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앞으로 2, 3년 후에는 병실에서도, 영안실에서도 염불소리와 찬불가소리가 울려 퍼지게 되기를 바란다.
경찰병원 법당에는 변윤연 회장을 비롯하여 30여명의 봉사자들이 매주 월, 수, 금 병실을 방문하여 도서를 대여하고 있다. 벌써 10여 년간 변함없이 하고 계신다. 늘 그분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잊을 수가 없다.
앞으로 자원 봉사활동에도 많은 불자들이 동참해 주시면 좋겠다. 그리고 경찰병원에는 직원불자회(회장: 원형섭)가 조직되어 일주일에 한 번씩 신행활동을 하고 있다. 병원포교를 하는데 있어 직원불자회가 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다.
경찰병원에는 종교실이 다양하게 있어서 수시로 목사님, 신부님, 수녀님, 스님들을 대할 수 있다. 경찰병원은 다른 병원과 달리 불교, 기독교, 천주교, 세종교의 성직자가 화합하여 잘 지내고 있다. 지금은 두 달에 한 번씩 공양하며 병원 원장님과 병원 관계자분들과 함께 간담회를 갖고 있다. 특히, 매년 신년 새 달력을 제작해서 병실에 거는 일도 서로 의논해서 한다. 한해씩 돌아가며 제작 책임을 맡아 병실에 걸고, 비용은 세종교가 분담하여 낸다. 이제는 병실에 거는 달력 때문에 서로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도 없고 입원환자들도 세종교가 함께 들어 있는 달력을 보고는 감동을 받았다는 분들도 계시다.
앞으로의 세상은 서로 화합하며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오늘도 연향은 아픈 환자의 병상에서도 그 향기가 은은히 퍼져 나간다. 좀 더 많은 병원에 불교실이 만들어져서 아픈 불자환자에게 정신적 위안처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