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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파 첫 관측 논문의 ‘그림1’에 대한 10000자 해설
중력파 첫 관측 보고한 PRL 논문의 데이터와 그림 따라잡기
» 중력장의 출렁임인 중력파가 전파되는 현상을 눈으로 볼 수 있게 시각화한 그림. 출처/ NASA
과학 기술 논문에는 글과 함께 그림 또는 표가 실립니다. 연구 방법, 과정, 그리고 결과를 그림과 표에 함축적으로 설명하고 정리합니다. 그래서 그림과 표만 잘 이해해도 논문의 중요한 부분을 이해하는 셈이 됩니다. 이번에 발표된 중력파 첫 관측 논문도 마찬가지입니다.
논문의 그림과 표를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과학계에서도 자신이 연구하는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의 논문을 보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번 논문과 같은 역사적 논문은 그냥 지나치기에 너무 아쉽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통해 논문에서 가장 중요한 그림을 물리학계에 있지는 않지만 물리학에 큰 관심을 기울이는 독자들이 조금이나마 더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보고자 합니다. 논문 내용의 깊은 곳까지 다루지 않지만, 전문가가 아닌 독자가 논문 속의 그림을 이해하려는 시도 자체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중력파 연구 눈문은 <피지컬 리뷰 레터스(Physical Review Letters: 이하 PRL)>라는 물리학계의 최고 권위지에 실렸습니다.[1] 물리학자라면 한번 쯤은 논문을 내보고 싶어하는 물리학 저널입니다. 원래 이 저널의 논문은 유료 구독자만 볼 수 있으나 이번 논문의 경우는 누구나 무료로 자유롭게 볼 수 있도록 공개열람(open access)형식으로 인터넷에 공개했습니다. 워낙 역사적인 연구 결과일 뿐 아니라 비과학인의 관심도 큰 연구이기 때문에 특별히 내린 조처로 보입니다. 관심 있는 사람은 누구나 아래 링크를 통해 논문을 피디에프(pdf) 파일로 내려받아 볼 수 있습니다.
☞ 논문 구경하기 http://journals.aps.org/prl/pdf/10.1103/PhysRevLett.116.061102
논 문 그림 설명에는 “FIG.1”, “FIG. 2”와 같은 표시가 달려 있습니다. “FIG.”는 figure의 준말, 즉 그림을 의미합니다. 표는 “TABLE”로 표시됩니다. 논문에 나오는 그림과 표는 모두 중요하지만, 그중에는 좀 더 중요한 그림이 있게 마련입니다. 이번 논문에서는 “FIG. 1” 즉 “그림1”이 그런 그림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아래 그림). 뉴스로 전해들은 중력파와 관련된 관측 결과가 이 그림에 많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도 “그림1”을 중심으로 가능하면 기초적인 개념과 함께 설명하려고 합니다.
이 글을 쓰는 데에는 PRL 논문뿐 아니라,[1] 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의 보도자료,[2] 그리고 이번에 중력파를 관측한 라이고(LIGO: Laser Interferometer GravitationalWave Observatory: 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관측소)의 웹페이지에 공개된 데이터와 데이터 처리 코드도 함께 참조했습니다.[3][4]
» 중력파를 처음 검출해 보고한 '피지컬 리뷰 레터스' 논문의 그림1. 출처/ PRL
두 곳의 라이고에서 관측된 중력파
“시공간의 출렁임인 중력파로 인해 거리가 상대적으로 늘었다 줄었다 하는 일종의 떨림을 측정했다”는 것이 이번 논문의 핵심 내용입니다. 이 내용이 PRL 논문의 그림1에 담겨 있습니다.
논문 그림1의 맨위에는 라이고가 설치되어 있는 두 곳의 위치를 알려줍니다. 왼쪽에 있는 그래프들은 미국 북서부 워싱턴 주의 핸포드(Hanford)에 있는 관측소에서 관측한 결과이고, 오른쪽에 있는 그래프들은 동남부 루이지애나 주의 리빙스턴(Livingston)에 있는 관측소에서 관측한 결과입니다. 두 관측소 모두 ㄱ자 모양을 하고 있고, 위치와 설치 방향을 표시한 미국 지도가 논문 그림3의 왼쪽에 있습니다.
» PRL 논문의 '그림1'에서 제일 윗 부분은 라이고 관측소가 있는 두 곳을 알려준다.
먼저 논문
그림1 맨위의 그래프 두개를 보겠습니다. 두 그래프에 나타난 곡선이 상당히 비슷합니다. 이 점을 보이기 위해 오른쪽 그래프에서는 두
그래프를 겹쳐서 비교하고 있습니다. 옅은 붉은색 곡선이 왼쪽 그래프에서 온 곡선입니다. 먼저 오른쪽 그래프의 빨간 곡선을 위아래로 뒤집은 다음에
왼쪽으로 살짝 옮겨 놓았습니다. 이 부분도 중요한데 조금 뒤에서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왼쪽 그래프와 오른쪽 그래프가 상당히 비슷하다는 말은, 두 곳에서 사실상 같은 현상을 관측했음을 의미합니다. 이 부분이 관측 결과를 훨씬 더 신뢰할 수 있게 만드는 부분입니다. 한 쪽 그래프만 설명해도 다른 쪽 그래프를 이해할 수 있으므로, 이 글에서는 왼쪽 그래프를 위주로 설명하려고 합니다.
PRL 논문 그림1의 그래프는 무엇을 기록한 것일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래프의 가로 방향과 세로 방향이 각각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파악하는 일입니다.
그래프의 가로 방향은 시간의 흐름을 나타낸다
가로 방향이 무엇인지는 그래프의 맨밑 중간에 가로로 써 있습니다. 논문의 그림1을 보면 왼쪽 그래프 맨밑 중간과 오른쪽 그래프 맨밑 중간에 각각 “Time (s)”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래프의 가로 방향의 Time은 우리말 해석 그대로 ‘시간’을 의미합니다. 왼쪽 오른쪽 각각 4개의 그래프가 있으니, 네 개의 그래프 모두 가로 방향은 시간을 나타냅니다. 보통은 오른쪽으로 갈수록 시간의 양이 커집니다. 즉 시간이 흐르는 방향이 오른쪽 방향입니다.
» 그래프의 가로 방향이 나타내는 것은 시간(Time)이다. 시간의 단위는 '초'이다.
Time 옆의 괄호 안에는 “s”라는 시간 단위가 쓰여 있습니다. 영어로 ‘초’를 의미하는 second의 첫 자를 따서 s를 썼습니다. 논문의 그림 설명에 의하면, 2015년 9월 14일 협정세계시(UTC: Universal Time Coordinated 국제사회가 사용하는 과학적 시간의 표준)으로 09시 50분 45초를 기준으로 얼마 만큼 시간이 더 흘렀는지를 나타냅니다.
아래 그림은 가로 방향이 시간인 그래프를 어떻게 그리는지를 알려줍니다. 위 아래로 움직이는 위치 변화를 그대로 그리는 단순한 예를 들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그래프에서 가로 위치는 점점 오른쪽으로 움직입니다. 그래프에 그릴려고 하는 움직임은 세로 방향으로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합니다. 이것을 감안해 아래 그림과 같이 시간을 따라 오른쪽으로 옮겨가며 세로 방향으로 위치 변화를 그리면 가로 방향이 시간인 그래프가 완성됩니다. 논문 그림1의 위에 있는 세 개의 그래프는 이와 같은 방법으로 그립니다.
» 시간 흐름에 따라, 오른쪽으로 옮겨가며 위치 변화를 세로에 그리는 그래프.
그래프의 세로 방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왼쪽에 세로 방향으로 써 있는 표기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위에 있는 세 개의 그래프는
세로 방향이 Strain, 즉 해석하면 “변형률”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맨밑의 그래프는 세로 방향이 Frequency, 즉 해석하면
“진동수(또는 주파수)”를 나타냅니다. 가로 방향의 의미에 비해 그 뜻을 헤아리기가 쉽지 않은 단어입니다.
변형률(Strain)은 거리차이를 나타낸다
먼저 맨 위에 나와 있는 Strain(변형률)이라는 단어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그럴려면 먼저 라이고(LIGO)의 작동 과정을 간단하게라도 이해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 라이고 관측 장비의 기본 구조. 라이고에서는 한 빛이 두 개의 빛으로 나뉘어져 길이는 같고 방향은 직각인 관을 날아갔다가 돌아옵니다. 그런 다음 합쳐진 빛을 간섭 현상이란 걸로 측정해서 각각의 빛이 날아간 두 거리가 같은지, 차이가 있으면 시간에 따라 그 차이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측정합니다. 간섭현상 측정 방법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설명은 사이언스온의 2월 17일자 글 “중력파 대체 어떻게 검출했나?”에 나와 있습니다.
☞ “중력파 대체 어떻게 검출했나?”
시공간의
출렁임인 중력파가 지나가면 두 거리가 방향에 따라 다르게 변합니다. 아주 미세하긴 하지만 거리 차이가 생기는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변하는
이 거리 차이를 측정해서 중력파를 관측합니다. 거리 차이를 라이고의 길이로 나눈 값이 Strain(변형률)입니다. 다시 말하면 ‘라이고의 크기에
대한 거리차이의 비율’입니다. 사실상 라이고에서 두 방향의 거리 차이라고 보면 됩니다.
0보다 큰 양수일 때 어떤 한 쪽 방향이 상대적으로 길어진 것이면, 0보다 작은 음수일 때는 반대로 더 짧아진 것입니다.
» 세로 방향의 Strain(변형률)은 라이고 측정한 두 방향의 거리차이로 볼 수 있다. ‘Strain(변형률) = 거리차이’라고 보면 그래프를 이해하기가 한결 쉬워집니다. 그래프는 세로로 -1에서 1까지 범위에서 움직입니다. Strain의 단위 (10-21)와 LIGO의 길이인 4km를 고려하면 그래프에서 세로 방향에 있는 숫자 1은 4x10-18 m에 해당합니다. 원자 크기의 1억분의 1 또는 머리카락 굵기의 25조분의 1에 해당하는 길이입니다.
변형률이 변하는 최대 범위가 대략 -1에서 1 사이, 즉 2이니까, 실제 원자 크기의 5000만 분의 1 또는 머리카락 굵기의 25조분의 2만큼까지 길이 차이가 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엄청나게 작은 거리의 차이의 변화를 잰 것으로부터, 라이고의 측정 위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시 그림1의 오른쪽 그래프에서 두 곳의 측정 결과를 비교한 부분을 보겠습니다. 왼쪽의 빨간 곡선을 위아래로 뒤집은 다음 왼쪽으로 살짝 옮겼다고 설명했는데, 왼쪽으로 옮겼다는 점이 중요한 부분입니다. 핸포드 라이고의 관측 결과가 나중에 관측됐기 때문에 더 먼저 관측된 리빙스턴 라이고의 관측 결과의 시간으로 맞추기 위해 핸포드 라이고의 결과를 앞으로 당겼다고 보면 됩니다.
시간을 당긴 정도는 10 ms입니다. 초를 의미하는 s 앞에 1000분의 1을 의미하는 m (mili:밀리)를 붙인 ms는 1000분의 1초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10 ms는 100분의 1초입니다. 두 관측소에서 100분의 1초의 시간 차이를 두고 관측된 것입니다. 두 곳이 약 3000km 떨어져 있고 중력파가 빛의 속도로 퍼져나간다는 점이 이렇게 시간 차이가 생긴 이유입니다.
거리차이 대신 변형률 사용하는 이유는?
실제 거리차이를 기록하면 좀 더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겠지만, 그렇게 한다면 같은 중력파로 발생한 거리차이가 관측소 크기에 따라 달라지는 단점이 있습니다. 더 긴 거리일수록 중력파로 인한 거리 변화가 더 커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관측 방법은 같지만 크기가 현재 라이고의 두 배인 8km 크기 관측소가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이 관측소에서 중력파에 의한 거리차이를 측정하면, 4km 크기의 현재 라이고에서 이뤄진 측정 결과보다 2배나 큰 거리차이의 결과가 나옵니다. 크기가 다른 두 관측소의 결과를 함께 그래프에 그린다면 한 쪽 결과를 두 배 더 크게 그려야 합니다. 이 때문에 두 결과를 비교하는 것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측정 대상 전체의 길이로 나눈 값인 변형률(Strain)을 사용하면 이런 단점이 없어집니다.
위에서 두 번째 그래프에서는 더 매끈한 곡선이 그려져 있습니다. 컴퓨터로 중력파에 의한 거리차이 변화를 시뮬레이션한 결과입니다.[1][2] 시뮬레이션은 이론이나 모델을 이용해 실제 일어나는 현상을 컴퓨터의 계산으로 흉내내는 것입니다. 컴퓨터로 하는 가상실험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시뮬레이션 결과가 맨 위의 실험 측정 그래프에 근접한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은 라이고의 측정 결과를 이론과 모델로 설명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곧 무엇 때문에 중력파가 생겼는지 알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번에 관측된 중력파는 약 13억 광년 떨어진 곳의 두 블랙홀이 충돌하면서 생긴 결과임이 밝혀졌습니다. 위에서 세 번째 그래프는 맨위 그래프의 측정 결과 데이터에서 두 번째 그래프의 시뮬레이션 데이터를 뺀 결과입니다.
논문 그림의 맨위와 두번째 그래프의 모양을 보면 일종의 떨림 또는 진동의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떨림 모양은 얼마나 빨리 떨리는지를 나타내는 ‘진동수’(frequency)와 얼마나 크게 떨리는지를 나타내는 ‘진폭’(amplitude)으로 이해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진동수’는 일정 시간에 반복되는 횟수
진동수(frequency)는 정해진 시간에 같은 모양이 얼마나 많이 반복되느냐를 의미합니다. 보통 1초에 몇 번 반복되는지를 나타내는 단위로는 Hz(헤르츠)를 씁니다. 1초에 똑같은 모양이 10번 반복되면 진동수가 10Hz, 100번 반복되면 100Hz입니다.
떨림이 만들어내는 대표적인 현상으로는 소리를 들 수 있습니다. 소리의 높낮이, 즉 ‘음높이’가 진동수에 따라 달라집니다. 진동수가 작은 소리는 저음이고 진동수가 큰 소리는 고음입니다. ‘도레미파솔라시도’ 각 음은 진동수의 또다른 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 옥타브, 예를 들면 어떤 도 음과 인접한 다른 도 음은 진동수에서 서로 정확히 2배 차이가 납니다.
얼마 만큼 크게 위아래로 움직이느냐도 중요합니다. 이를 ‘진폭’이라고 하는데 소리에서는 진폭이 클수록 소리의 크기, 즉 ‘음량’이 커집니다. 예를 들면 콘서트의 스피커에서 나오는 큰 음악 소리는 사람이 직접 내는 소리보다 더 큰데, 이는 스피커에서 나오는 떨림의 진폭이 크기 때문입니다.
떨리는 모양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모양인 사인파(sine wave)를 보겠습니다. 삼각함수의 사인함수 모양을 한, 가장 단순하고 부드러운 떨림 모양입니다. 아래 그림의 왼쪽에는 가로는 시간, 세로는 위치인 ‘시간-위치 그래프’로 여러 사인파 모양를 그려보았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얼마나 많이 반복되는지를 나타내는 진동수와 위아래 움직임의 크기인 진폭에 따라 여러 사인파 모양이 가능합니다.
» 진동수와 진폭이 다른 사인파들. 왼쪽은 시간-위치 그래프로, 오른쪽은 진동수-진폭 그래프로 나타냈다.
사인함수 모양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 진동수와 진폭을 표시하는 것만으로 특정 사인파를 간단하게 그래프로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가로 방향은 진동수, 세로 방향은 진폭인 ‘진동수-진폭 그래프’로 그리는 방법입니다. 시간-위치 그래프처럼 길게 물결 모양으로 그릴 필요없이 왼쪽 그림과 같이 막대기 하나로 사인파의 진동수와 진폭을 표시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모든 모양은 사인파로 분해할 수 있다: 푸리에 변환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떨림의 모양은 사인파처럼 단순한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사각 모양, 톱니 모양, 삼각 모양 등 무한이 많은 모양이 가능합니다. 소리의 경우에는 떨림의 모양이 다르면 소리의 색깔(음색)이 달라집니다. 같은 음의 악기 소리가 악기마다 다 다른 이유는 떨림의 모양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어떤 떨림 모양이라고 하더라도 여러 개의 사인파를 합쳐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래 그림에 사각 모양의 떨림을 한 예로 들었습니다. 일정한 규칙으로 진동수와 진폭이 달라지는 사인파를 합치면, 더해지는 사인파가 많을수록 점점 더 사각 모양에 가까와집니다.
‘시간-위치 그래프’만으로는 어떤 사인파가 모여 사각 모양이 떨림모양이 됐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진동수-진폭 그래프’로는 이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래 그림에는 각각의 ‘시간-위치 그래프’ 밑에 ‘진동수-진폭 그래프’도 함께 그렸습니다. 사각 모양으로 변해가는 떨림의 ‘진동수-진폭 그래프’를 보면 막대 갯수가 점점 늘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각각의 막대의 가로 위치와 높이로 사각 모양의 떨림을 만드는 데 사용된 사인파의 진동수와 진폭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시간-위치의 그래프에 그려진 떨림 모양을 진동수-진폭 그래프로 만드는 수학적 방법을 ‘푸리에 변환’(Fourier transform)’이라고 부릅니다. 다시 말해 푸리에 변환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데이터를 진동수와 진폭이 다른 사인파들로 분해하는 계산 방법입니다. 반대로 진동수-진폭 그래프로부터 시간-위치 그래프를 만드는 수학적 방법을 ‘역 푸리에 변환(inverse Fourier transform)’이라고 합니다.[5]
» 여러 개의 사인파(사인함수 모양의 떨림)을 합쳐 사각 모양의 떨림을 만드는 과정. 더 많은 사인파를 합칠수록 점점 더 사각 모양에 가까워진다. 거꾸로 사각 모양 떨림을 여러 개의 사인파로 분해할 수 있다. 사인파로 분해하는 수학적 방법이 푸리에 변환이다.
일부 음향기기나 음악재생 소프트웨어에는 소위 ‘스펙트럼’을 볼 수 있는 기능이 있습니다. 그래픽 이퀄라이저(graphic equalizer: 줄여서 이퀄라이저 또는 EQ라고 부름) 기능 위에 이 스펙트럼을 표시하기도 하는데, 맨 밑에 표시된 진동수에 해당하는 음높이 주변의 소리 크기를 막대 그래프로 그린 것입니다. 스펙트럼이 바로 ‘진동수-진폭 그래프’입니다.
» 음향기기나 음악재생 소프트웨어에서 볼 수 있는 스펙트럼과 그래픽 이퀄라이저. 스펙트럼은 각 음높이(진동수) 구역의 소리 크기(진폭)를
나타내다. 그래픽 이퀄라이저는 저음과 고음을 여러 단계로 나눠 각각의 음높이 (진동수)의 소리 크기(진폭)을 조절한다.
중력파 논문의 시간(가로)-진동수(세로) 그래프: 스펙트로그램
다시 PRL 논문으로 돌아와서 논문 그림1의 맨 아래 그래프를 보겠습니다. 세로 방향에 써 있는 Frequency는 진동수를 의미한다고 앞에서 설명했습니다. 가로는 시간, 세로는 진동수인 사각형 그래프 안에 가로 세로 위치에 따라 변하는 색으로 칠해진 독특한 그래프입니다. 이 그래프를 이해하는 데는 위에 설명한 음향기기의 스펙트럼이 도움이 됩니다.
» 논문 그림1 맨밑 왼쪽의 Frequency는 시간당 몇 번 반복되는지를 Hz(헤르츠) 단위로 나타낸 ‘진동수’를 의미한다.
스펙트로그램(spectrogram)이라고도
불리는 이 그래프를 만드는 과정을 간략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아래 그림 참조)
[1] 정해진 시간 주위의 데이터로 푸리에 변환을 적용해 스펙트럼을 만든다.
[2] 스펙트럼을 여러 색깔로 표현한 막대기 모양으로 변환한다. 밝은 노란색 부분은 큰 진폭을 어두운 파란색 부분은 작은 진폭을 나타낸다.
[3] 90도 돌려 세로로 세워 (1)에서 정한 시간에 옮겨 놓는다.
[4] [1]~[3]의 과정을 가로 방향의 모든 시간에 반복하면 스펙트로그램이 완성된다.
» 일부 시간구간에서 푸리에 변환을 적용해 스펙트럼을 만든 다음, 여러 색깔로 진폭을 표시하는 막대기 형태의 스펙트럼으로 변환해 세로로 세운 모습. 이 과정을 모든 시간 구간에서 반복하면 스펙트로그램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만든 그래프를 보면 진동수와 진폭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한 번에 알 수 있습니다. 주위에 비해 밝은 부분의 위치를 보면, 어느 시간(가로 위치)에 어느 진동수(세로 위치)에서 진폭이 가장 큰지 알 수 있습니다. 논문1 그래프에서 워싱톤주 핸포드 라이고의 관측 결과(왼쪽)를 보면 0.33초 부근에서 진동수가 대략 50Hz인 떨림이 0.4초까지 유지됩니다. 이후 0.43초까지 진동수가 300Hz 근처까지 커집니다. 진폭은 시간상으로는 0.42초 근처까지 진동수는 150Hz 근처까지 커지다가 이후에는 급격히 줄어듭니다.
이렇게 떨림의 진동수와 진폭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 한 번에 볼 수 있는 스펙트로그램은 음향이나 음성을 분석하는 소프트웨어에서 많이 사용됩니다.
잡음과 다른 변동이 섞인
중력파 관측 ‘미가공 데이터’
논문을 발표하면서 라이고에서는 웹페이지에 관측 데이터를 내려받을 수 있게 해놓았고,[3] 이 데이터를 처리하는 데 사용한 신호처리 (signal processing) 알고리듬에 대한 설명도 실었습니다.[4] 논문 그림1의 설명에도 나와 있듯이 그래프에서 보여주는 데이터는 컴퓨터로 처리된 데이터입니다.
» 미가공 데이터와 필터링한 데이터 비교.(데이터 및 신호처리 자료 출처: 라이고 웹페이지, 주 [4]): 상단 그래프의 세로 방향이 하단 그래프의 세로 방향보다 약 1000배 더 크다. 하단 그래프에서 볼 수 있는 중력파에 의한 떨림은 상단 그래프에서는 훨씬 큰 변동에 묻혀서 보이지 않는다. 이미 최첨단 기술을 동원해 측정기기에서 발생하는 떨림과 잡음(noise)을 최소화한 뒤에 관측한 결과를 신호처리 알고리듬으로 처리하지 않고 그대로 기록한 데이터가 ‘미가공 데이터’입니다. 이 데이터에는 논문에서 보여준 거리차이의 변화보다 1000배가량 큰 변동이 데이터 전역에 퍼져 있습니다. 이 때문에 중력파에 의한 거리차이 변화는 이런 변동에 묻혀 있어 미가공 데이터로 만든 그래프에서는 찾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1000배 크다는 변동조차 원자 크기의 10만 분의 1 또는 머리카락 굵기의 250억 분의 1에 불과 한 미세한 크기입니다.
미가공 데이터에서 중력파에 의한 떨림을 본다는 것은 마치 달리는 말의 등에 붙어 있는 진드기의 움직임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말의 움직임에 관심 있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진드기의 움직임에 관심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말의 움직임에 관심 있는 사람은 말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데 별문제가 없지만, 진드기의 움직임에 관심 있는 사람은 아무리 시력이 좋아도 눈앞에서 달리는 말 위의 진드기 움직임을 볼 수 없습니다. 말의 움직임이 진드기의 움직임에 비해 너무 커서 말의 움직임만 보이기 때문입니다. 말이 달리지 않고 가만히 있게 해야지만 말의 등에 붙은 진드기의 움직임을 가까이서 볼 수 있습니다.
이번 관측 데이터도 마찬가지입니다. 관측 데이터에 나오는 커다란 변동에 관심 있는 연구자도 있지만, 중력파 관측의 경우에는 미가공 데이터에서 중력파의 결과를 볼 수는 없고, 커다란 변동을 제거해야만 중력파에 의한 미세한 떨림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관측기기 자체에서 나오는 잡음(noise)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마이크로 소리를 녹음할 때 마이크 자체에서 나오는 잡음도 녹음됩니다. 만약에 아주 작은 소리를 녹음하면 이 잡음이 녹음된 소리와 함께 들려 녹음된 소리의 음질이 떨어집니다. 중력파 관측기기에서 오는 잡음도 이와 비슷합니다. 이 잡음 때문에 중력파에 의한 미세한 떨림이 잡아내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음향기기 이퀄라이저와 같은 원리의 데이터 처리
이 부분에서 연구진은 몇 가지 ‘신호처리’(signal pricessing) 알고리듬을 적용해 중력파에 의한 떨림 이외의 다른 변동과 잡음을 제거했습니다. 논문의 그림 설명에 따르면 밴드패스 필터(bandpass filter)와 밴드리젝트 필터(bandreject filter)를 사용했다고 나옵니다.
이번 연구에 사용한 밴드패스 필터는 ‘중력파에 의한 떨림’이 속해 있는 35-350헤르츠 진동수 구역의 떨림만 남기고 그밖에 진동수를 지닌 변동을 제거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밴드리젝트 필터는 관측 장비에서 나오는 특정 진동수의 잡음을 제거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논문 그림3의 그래프에서 툭툭 튀어나와 보이는 부분들이 보이는데, 주로 관측 장비에서 나오는 잡음의 진동수가 위치하는 부분입니다.
두 필터는 모두 진동수 영역에서 데이터를 처리합니다. 기본 원리는 음향기기에 있는 이퀄라이저의 원리와 별로 다를바가 없습니다.
밴드패스 필터는 일정 진동수 범위의 떨림은 이퀄라이저 슬라이더를 위에 놓아 그대로 유지하고, 그밖에 진동수의 떨림은 슬라이더를 끝까지 내려 제거하는 것과 같습니다. 소리의 경우, 사람 목소리의 진동수 영역만 남기고 다 줄이는 것이 이에 해당합니다. 물론 이 경우에 다른 소리가 사람 목소리 진동수 영역에 있으면 그 소리도 그대로 남습니다.
밴드리젝트 필터는 대부분의 슬라이더는 위에 놓아 그대로 유지하고, 특정 진동수의 떨림은 슬라이더를 내려 제거하거나 줄이는 것과 같습니다. 소리의 경우, 마이크로 녹음할 때 마이크 자체에서 나오는 잡음을 줄이는 것이 이에 해당합니다.
이외에도 다른 분야에서 자주 쓰이는 신호처리 필터로 낮은 진동수의 움직임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제거하는 로패스 필터(lowpass filter)와, 높은 진동수의 움직임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제거하는 하이패스 필터(highpass filter)가 있습니다. 아래 그림은 밴드패스 필터 그리고 밴드리젝트 필터와 함께 그 기본 작동 원리를 이퀄라이저 그림으로 표시한 것입니다.
» 진동수에 기반한 신호처리의 기본 필터들. 로페스 필터(lowpass filter): 낮은 진동수만 통과시켜 천천히 변하는 움직임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제거한다. 하이패스 필터(highpass filter): 높은 진동수만 통과시켜 빨리 변하는 움직임만 남기고 나머지는 제거한다. 밴드패스 필터(bandpass filter): 일정 영역의 진동수의 움직임만 남기고, 그밖의 낮은 진동수와 높은 진동수의 움직임은 제거한다. 밴드레젝트 필터(bandreject filter): 특정 영역의 진동수의 움직임만 제거한다.
논문의 그림2에도 시뮬레이션 결과 그래프가 나옵니다. 논문 그림1의 위에서 두 번째에 그린 시뮬레이션 결과과 비교하면 모양의 일부가 다릅니다. 관측 데이터처럼 신호처리를 적용했는지 안 했는지 그 차이 때문입니다. 논문 그림1은 관측 데이터처럼 신호처리를 적용한 시뮬레이션 데이터이고, 논문 그림2는 신호처리를 하지 않은 시뮬레이션 테이터입니다. 신호처리 알고리듬을 시뮬레이션 결과에도 적용해 실험과 이론의 결과를 비교하는 데 좀 더 높은 정확성을 기했다고 보면 됩니다.
데이터와 신호처리 알고리듬 공개로
교육에도 기여
중력파 관측 데이터를 처리하는 데 사용한 알고리듬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는 라이고의 웹페이지는 데이타 과학(data science)이나 신호처리(signal processing)에 관심을 둔 사람들은 한번 쯤 읽어볼 만합니다.[4] 대학교의 신호처리 강의에도 사용할 수 있을 만한 내용입니다. 이번 중력파 관측 결과가 여러 최첨단 기술이 동원되어 나온 과학계의 역사적인 성과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자세한 신호처리 방법을 공개하고 상세하게 설명함으로써 신호처리와 데이터 분석 분야의 교육에도 큰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논문의 그림1을 위주로 첫 중력파 관측 논문을 살펴보았습니다. 깊게 파고 들지는 않았지만, 그래프로 무엇을 보여주고, 그래프를 만들기 전에 관측 데이터를 어떻게 처리했는지에 대해서도 알아봤습니다. 이와 관련해 그래프를 어떻게 그리는지, 그리고 데이터 처리와 관련해 푸리에 변환과 신호처리는 어떠한 것인지에 대한 기초적인 개념도 알아봤습니다. 이번 연구에 관심이 둔 독자들의 호기심이 이 글로 인해 어느 정도 풀렸기를 기대해봅니다.
이 역사적인 중력파 관측 논문 이면에는 엄청나게 많은 비용과 시간, 그리고 노력을 투자해 연구를 수행한 연구자들과 관련 기관들이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관측 데이터와 이 데이터를 처리하는 방법까지 웹페이지에 자세히 공개한 점은 역사적인 관측을 더욱 빛나게 만듭니다.◑
[주]
[1] Observation of Gravitational Waves from a Binary Black Hole Merger, B. P. Abbott et al. (LIGO Scientific Collaboration and Virgo Collaboration), Phys. Rev. Lett. 116, 061102 (2016) http://journals.aps.org/prl/pdf/10.1103/PhysRevLett.116.061102
[2] 한국중력파연구단 보도자료 http://kgwg.nims.re.kr/home/LSC_KGWG_PressRelease.pdf
[3] Data release for event GW150914 https://losc.ligo.org/events/GW150914/
[4] Signal processing with GW150914 open data https://losc.ligo.org/s/events/GW150914/GW150914_tutorial.html
[5] 푸리에 변환과 역 푸이에 변환에는 진동수와 진폭외에 위상(phase)이라는 정보도 들어간다. 위상은 사인파가 좌우로 얼마나 옯겨져있는가를 나타낸다.
윤복원 미국 조지아공대 연구원(물리학)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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